하늘 높이 차 올리는 구두
고향에서 어렵게 지내던 어떤 과부가 무작정 상경을 했다. 점을 배워서 운명감정소를 차리고 있는 중인데 '뜨겁게 맞춘다.'는 소문이 나서 큰 재산을 모았다는 것이다. 연때가 맞았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크고 작은 도시마다 '운명감정소니 운명철학연구소' 등 '운명'이 붙은 간판이 자주 눈에 뜨인다. 그래서 앞잡이를 내세워서 그럴듯하게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도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일본에는 얌통머리 없는 사람을 말할 때 쓰는 '남의 샅바로 씨름을 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운명감정업은 남의 운명으로 돈을 버는 말하자면 좀 얌통머리 없는 묘한 직종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상에는 누구나 미지의 운명에 대한 것보다 더 알고 싶은 일은 없을 것 같다. 작은 일에서부터 일생의 아주 중요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린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답답한 일은 끝이 없는 일이니까. 어떤 집에서는 가정의(家庭醫)처럼 단골 점쟁이를 두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불러댄다고 한다. 또 어떤 기업가는 매일 아침 점괘를 보고서 일과를 시작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말도 들었다. 새로 사원을 모집할 때 관상사를 배석시켜서 면접을 하는 회사도 있는 모양이다.
어릴 때 우리 마을 어린이들은 학교 가는 길에 개울가 모래밭을 거닐면서 고무신이나 짚세기짝을 하늘 높이 차 올렸었다. 다들 뾰족한 수들이 있을 턱이 없는 주제에 그런대로 그날의 운수를 점쳐보는 것이었다. 신발이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젖혀지거나 아니면 엎어진다. 젖혀지면 운수가 좋은 날이고 엎어지면 나쁜 것으로 치는 것이다. 한 짝은 젖혀지고 한 짝은 엎어지는 확률이 가장 컸을 것으로 생각한다. 두 짝이 다 엎어질 때도 있어서 고무신 한 켤레면 세 가지 운을 점칠 수 있었다. 두 짝이 다 엎어진 날은 물론 재수 옴 붙은 날로 치는 것이지만, 아카시아 잎과 함께 신발은 어린 시절의 점치는 구실을 했던 것이다.
이 밖에도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는 연필이나 막대기를 쓰러뜨려서 향방을 대중했다. 여간해서 맞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시험을 칠 때 객관식 출제에서는 볼펜이나 연필을 굴려서 서운하지 않게 점수를 땄다는 학생들이 있다. 이렇게 되면 점(占)은 점(點)하고도 통한다고나 할까?
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우리가 백사장에서 신발을 차올릴 무렵이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는 식객 한분이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었다. 몇 해 동안을 한 식구처럼 지내는 터였는데 점을 치는 분이 할머님의 친정쪽 집안인데 나에게는 아저씨뻘 되는 분이었다. 이름도 쓸 줄 모르는 분이었는데도 어떻게 해서 육갑을 배워 가지고 점쟁이 행세를 하고 있었다. 솔잎을 뽑아다가 대오리 대신 쓰고 손을 꼽짝거리는 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가끔 찾아왔지만 신통한 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답답한 사람들은 가끔 찾아와서 그분의 점괘에 기대를 걸었고 영험이 있을 거라면 권하는 대로 경도 읽었다. 실상 그분은 점보다는 경을 더 잘 읽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해원경(?)인가 하는 것을 일등으로 잘 읽는다는 평이었다. 요즘 연료정책에서 주유종탄(主油從炭)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 분의 경우는 주경종점(主經從古)인 셈이었다. 흰 두루마기에 창호지로 고깔을 접어 쓰고 밤을 새워가며 경을 읽는 일도 많았다. 목청을 돋구어서 독경할 때 보면 어떻게 그 많은 사설들을 외우고 있는지 놀라운 일이었다.
하루아침에 말문이 터졌다는 소문이 있었다. 신령이 현몽했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이 아저씨에게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다슬기사건이었다. 다슬기 가루가 위장에 좋은 약이 된다는 말을 들었던 모양이다. 다슬기를 무제한 살터이라고 인근 부락민들에게 나팔을 불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농촌에서는 춘궁기에 품팔이 할 곳이 만만치를 않아서 어렵게 지내던 때였다. 다슬기를 산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수십 명이 떼 지어서 개울로 들어섰다는 정보가 우리집에도 들려왔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다슬기 바구니를 들고서 우리집으로 몰려들 것이 뻔했다. 식객 신세를 지고 있는 아저씨의 처지로서는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첫째 값을 치를 돈이 없는 것이다. 다음은 이 분은 위장이 너무 튼튼해서 도리어 부엌 식구들의 눈총을 받는 분이었다. 그런데 다슬기까지 자셔가면서 어쩌자는 것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그분에게는 고모부가 되시는 나의 할아버지와 고종 아우인 큰아버지, 아버지로부터 한창 몰리던 생각이 난다. 밤 새워 가며 경을 읽는 분도 이 때만은 쇠귀에 경 읽으라는 배짱인 것 같았다. 숫제 소처럼 눈만 꿈벅꿈벅하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분수없다고 핀잔을 받기가 일쑤였지만 아이들은 많이 따랐다. 나이 먹은 어린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나 할까? 성격이 단순하고 세상의 물정에 어두운 분 같았다. 이 점쟁이 아저씨가 언제 어떻게 우리집을 떠나갔는지는 그분의 점괘만치나 나의 기억도 애매하다.
사실 그분의 점은 집안에서도 별로 신뢰를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할머님은 친정 조카님을 젖혀놓고 항상 양씨 부인이라는 무당 점쟁이를 부르셨으니 말이다. 점쟁이들이 대개 특징이 있지만 이 부인은 복채를 오른 손바닥에 놓고 아래위로 흔들어 대면서 주문(呪文)을 외웠다. 학생들이 응원할 때 모자를 쥐고 흔드는 것과 비슷한데 다른 것이 있다면 이 부인은 돈을 쥐지 않고 손바닥에 붙인 채 흔들었다는 것이다. 본인은 신접(神接)을 내세웠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주문이 끝나면 수를 헤아리며 손가락으로 가슴을 쿡쿡 찔렀다. 대개는 두세 번으로 그쳤지만 어떤 때는 네 번 다섯 번씩이나 자기의 가슴을 찔렀다. 영신(靈神)이 꼬인 일들을 집어내는 것이라고 말해서 우선 사람들의 기를 죽여 놓았다. 집안에 못을 잘못 박았고 밖에서 마귀붙은 물건이 들어왔고 부정탄 음식이 들어왔고 살림을 손 있는 방향으로 옮겼고… 등이었다.
할머님은 양씨 부인의 점괘가 떨어지기가 바쁘게 용하게도 꼬인 일들을 밝혀내셨다. 그리고 그것들을 원상대로 회복시켜놓느라고 분주하게 돌아다니셨다. 그런데 생각해 내셨다는 일들이 '군화에 발을 맞추라'는 억지처럼 점괘에 억지로 맞추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할머님은 양씨 부인을 부를 때마다 사랑쪽 눈치를 보시느라고 애를 쓰셨지만 부엌 식구들이나 어린 손자들 앞에서는 뜨겁게 맞춘다고 강조를 하셨다.
할머님은 별다른 약을 먹이는 일 없이도 많은 손자 손녀를 모조리 무탈하게 키우셨다. 양씨 부인이 점을 잘 쳤는지도 모르지만 할머님의 손이 더 뜨거운 약손이었던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할머님이 양씨 부인을 더욱 신임하게 된 것은 큰아버지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을 예언한 것이 적중했기 때문이었다. 딸 여섯을 위로 두고 기다리던 아들이었다. 옛날이나 요즘이나 우리 가정에서는 태아의 성별도 자주 점괘에 오르내리는 것 중의 하나다. 어떤 집안에서는 점쟁이가 아들이라고 장담하는 바람에 다음 다음해서 계속 낳다보니 7공주를 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머지않아 아들딸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는 말이 있지만 아직은 과학의 힘으로도 태어나는 아기가 무엇을 달고 나올는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맞추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어떤 산부인과 의사가 뜨겁게 맞춰서 인기가 대단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누군가가 재미있게 꾸며낸 말일 것이다. 의사가 어떤 산모에게나 이번에 낳는 아기가 고추가 틀림없다고 장담을 한다. 얼마 뒤에 아들을 낳은 산모는 뜨겁게 맞췄다고 고마워한다. 딸을 낳은 산모가 서운해 하며 항의(?)를 하면 진료부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어김없이 '⨢'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사실은 딸인데 산모가 서운해 할 것 같아서 아들이라고 했다는 설명을 해준다. 이 산모도 역시 뜨겁게 맞췄다고 감탄을 하며 미안한 생각을 하면서 돌아간다.
이 방법은 운명감정에서는 꽤 효력있는 비방이 될는지 모른다. 선거 때에는 운명감정소의 문턱이 닳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도 산부인과 의사의 비법을 도입하면 어떨까? 모두당선이라고 말이다. 우선은 즐거운 마음으로 복채를 받을 수 있어 좋을 것이다. 당선된 사람은 뒷날 찾아와서 사례금 조로 두툼한 봉투라도 하나 놓고 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운명철학의 소재(素材)는 유형(有形) 무형(無形) 할 것 없이 그 종류가 다양해서 일일이 들어서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얼굴, 손, 골격, 사주에 해당하는 생년월일, 걸음걸이, 음성에서 풍수지리, 꿈, 이름, 상호, 인장 등등.
점에도 전공과목이 따로 있는 모양이지만 그중에서도 일부 성명철학가들의 재치는 알아주어야 할 것 같다. 자유당 시절 거리의 성명철학가들은 큰 종이에 당대의 세도가들의 이름을 열거해 놓고 있었다. 음양배열이 어떻고 삼원오행(三元五行)이 어떻고 하면서 모두 성공길상격(成功吉祥格)이라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
4·19가 나자 거리의 성명철학가들은 누구보다도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어제까지 고매하다고 외치던 인사들의 이름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산부인과의 비법을 빈다면 사실은 그들의 이름은 애초부터 불길한 조짐이 있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시치미를 떼고 새로 정계에 등장한 인물들의 이름을 다시 내걸었다. 그리고 음양오행설에 또 목청을 돋우는 것이다. 출세에는 이름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겨낭하면서 말이다.첫째 시치미를 떼는 요령 없이는 운명감정 같은 애매모호한 일은 해낼 수 없을 것 같다.
우리집 취사부장(次事部長)은 가끔 점을 치러 다녀서 나의핀잔을 받기가 일쑤다. 그런데 이번에 점이란 제목으로 받은 원고 청탁서를 보더니 큰 원군(援軍)이라도 얻은 것처럼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꿈보다는 해몽을 잘하는 식으로 점이 안 맞으면 이러한 청탁을 할 리가 있느냐고 엉뚱한 비약을 한다. 역시 점은 꼭 맞는 것이라며 수필의 소재가 될만한 뜨거운 사례(事例)를 몇 개만 알려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말았다. 변변치 못한 글을 부부합작으로 쓰고 싶지도 않았지만 운명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나의 소신 때문이었다. 이것은 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남자들의 전통이기도 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굳게 닫혀 있는 한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고통을 겪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운명도 역시 우리가 모르고 있을 때 더 매력이 있을 터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의 말이라고 전해 온다. '운명은 신이 생각하고 인간은 인간답게 일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라고.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을 어찌 나약한 운명론자라고만 몰아붙일 것이라!
로마의 도덕 선생 세네카의 '인자, 근면, 봉사가 운명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 '라고 한 말도 결국 운명을 열 수 있다는 쪽보다는 운명은 신에게 맡기고 인간답게 살라는 앞에서의 말과 통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역시 도덕쟁이다운 말이다. 영국의 수필가 A F 가디너는 「동행자」라는 수필에서 한치 앞을 모른다는 점에서는 사람도 미물인 모기보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에 대한 모독이라고 분개할는지 모르지만 그 글을 읽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평생의 운명을 자신있게 판단한다는 역학자(易學者)나 성명 철학가들이 들으면 얼마나 대경실색할 말인지 모르겠지만.
묵은 서류뭉치를 정리하다보니 어느 때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나의 평생의 운명감정서라는 것이 한 장 튀어나왔다. 깊숙한 곳에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 집 안주인의 기대가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사람이 누군가를 찾아갔던 모양인데 아무래도 그날 복채는 후하게 건넸던 것 같다.
초운(初運)은 유위유권(有威有權)에 만인응복(萬人德伏)이고, 주운(主運)은 재롱중적(財祿重積)에 명진사해(名振四海) 란다.
권력자와 재벌의 운을 합쳐놓고도 남을만한 대운이다. 훈장 직업으로는 근처도 못 갈 점괘를 받아 놓고 이 집 주부는 얼마나 기대에 부풀었을 것인가? 나도 갑자기 굴러떨어진 이 복음서에 잠시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뿔사! 나이를 따져보니 이미 흘러간 곡조들이 아닌가? 이미 지나간 점괘는 무효라 치더라도 학업성대(學業盛大)에 인덕광명(仁德光明)이라는 말운의 가락은 아직도 유효한터라 한번 '뜨겁게 맞는 점괘'가 되었으면 하고 은근히 기대해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새 마음이 이렇게 분수를 모르게 되었나 보다. 심장이 약해진 것일까? 아니면 강해진 것일까? 독일이 낳은 불세출(不世出)의 문호 괴테는 젊었을 때 애지중지 하던 회중시계를 개울가 늪속 깊숙이 던져서 운명을 시험했다고 한다. 나에게는 지금 그런 시계도 없거니와 그만한 배짱도 갖지를 못했다.
백사장에 나가서 고무신 대신 이번에는 구두나 한 켤레 하늘 높이 차올릴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