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갈매기 8부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나름 조금 바쁘다 보니 글 쓸 시간이 여의치 않아 양해를 구합니다.
범일동을 조금 지나면 범냇골이 나오고, 좀 더 가면 서면이라는 부산의 대표 지역이 나온다.
서면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범일동을 보충하자면, 대형 중앙시장과 중형대의 예식장과 구터미널을 중심으로 발전한 유흥업소가 많아 늦은 시각에도 주당들이 즐겨 찾는 곳 중 하나이다.
특히 범일동 유흥가는 유독 가라오케(반주기로 노래 부르는 업소)업소들이 많았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서울 낙원동 골목에나 간혹 눈에 띈다.
가라오케란 가라(거짓, 허위 등)란 말에 오케스트라가 합성된 말로 가짜 연주, 즉 연주자가 없는 반주만 녹음한 연주곡을 말한다.
당시 가라오케는 기본이 약 9천 원(업소마다 차이는 있음)으로 맥주 5병에 안주 2개가 나온다.
가라오케에 들어서면 마치 땡 도너츠 처럼 생긴 기다란 원탁이 있고 원탁 주위로 손님들 좌석이 늘어서 있다.
원탁 중앙에는 DJ 여직원이 있어 손님들이 신청한 곡을 테이프를 통해 틀어주고 중간중간 술도 따라주면서 흥을 부추긴다.
손님이 가라오케에 들어서면, 종업원은 노래책을 전해 주는데 필자가 초등학교 때 배운 음악책처럼 가로로 길게 만든 책에 악보는 없고 제목과 가사만 적혀있다.
가사가 적힌 페이지 상단에는 번호가 새겨져 있어 손님이 신청한 곡 번호만 보고 DJ가 테잎을 찾아 틀어준다.
지금은 노래방에 가면 반주와 함께 자막이 지워지면서 아마추어도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노래 좀 한다는 사람만이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즉, 반주에만 의존하여 가사만 보고 불러야 하기에 노래를 정확하게 음정 박자를 알아야 부를수 있어, 이곳에서 노래가 끝난 후 박수받기는 쉽지 않다.
필자의 자랑을 좀 하자면, 기본으로 만 원 한 장만 가지고 입장하면, 몇 시간은 공짜로 노래도 하면서 술을 실컷 마실 수 있다.
나름 길거리 가수라 자타가 공인한 실력으로 노래를 부르면, 옆 좌석에서 앵콜 요청과 맥주는 함께 따라온다.
여기저기서 불러달라는 신청곡이 쇄도하여 정작 필자가 부르고 싶은 노래는 못 부르고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노래방에 대한 얘기를 보충하자면, 부산하면 유흥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일본의 유흥 문화가 먼저 상륙하여 전국으로 유행을 선도하며, 부산의 유흥문화가 사라질시기가 되면 그때야 서울에서 유행하는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노래방은 최초 500원 동전 1개를 투입하면 1곡을 부르도록 반주가 흘러나오는 구조로 부산 전역에서 상당한 인기로 자리 잡았다.
업소마다 20~30명은 대기하고 있는 풍경은 예사이고, 24시간 영업하는 곳도 많았다.
먼저 노래방을 차린 업주들은 떼돈(?)을 벌었다는 말도 있다.
뒤에 오픈한 업주들은 막차를 타고 업종을 변경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동전 기계가 불편함을 더해주자, 노래방 기계 회사가 수요에 부응하고자, 동전 기계에서 시간당 얼마씩 내는 기계를 만들어 냈고, 이 또한 붐을 타고 현재 노래방 기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는 1시간당 2~3만 원을 내면 시간이 끝나기 10분 전에 주인은 서비스라며 10분 정도를 더 넣어준다.
이러한 상술로 손님들은 넘쳐났고,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술을 요구하는 손님이 늘자 업주는 아예 술 냉장고까지 들여와 본격적으로 술을 팔게 되었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고 술과 음악이 있으니 남자들의 세계에는 노래방 기계를 조작하고 술을 따라주는 여자가 필요했다.
이른바 도우미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이 도우미 들은 속칭 ‘보도’ 라는 곳에서 공수해 오며, 도우미들을 공수해주는 곳을 ‘보도방’ 이라 부르며, 이곳 업주를 보도장이라 부른다.
보도장은 노래방에서 요구하는 도우미를 노래방까지 차로 실어주면, 도우미들은 1시간당 2만원을 받는다 그중 5천 원을 보도장에게 주고 자신은 1만 5천원 씩 챙기는 형태이다.(업소, 지역 마다 차이는 있다/필자의 20~30년 전 일이다)
이렇다 보니 보도장이 도우미를 10명씩만 데리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이들 도우미가 하루저녁 1인당 10시간씩 일을 하면, 한사람당 5만원씩 받아 10명이면 50만원을 번다는 계산이 나온다.
10명 데리고 있는 보도장은 드물고 보통 15명~20명 정도이니 왠만하면 중소기업 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았다.
때를 같이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대형 룸살롱은 이들 노래방이 등장하면서 차츰 손님이 줄자 대부분 정부가 정한 이름의 간판 ‘단란주점’으로 한 단계 내려 영업을 했지만, 이 또한 영업이 신통치 않아 문을 닫거나 노래방으로 전업한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룸살롱에서 종사하던 접대부들이 보도라는 곳으로 몰려오자 노래방은 춘추전국시대마냥 대 호황을 누리는 시기도 있었다.
유흥업종을 보통 3단계로 나뉘는데 1종은 술, 음악, 접대부 등이 가능하며, 이들은 유흥지역에서만 운영이 가능하다.
2종은 술과 음악만 허용하며, 3종은 음악만 허용하는 청소년 노래방 수준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손님들이 원하고 업주들은 매상을 올리기 위해 위법인 줄 알지만 도우미와 술을 팔수 밖에 없는 현실에도 합동단속을 나오면 대부분은 영업정지를 맞았다.
유흥의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래이며,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음주가무가 발달한 민족이기에 더욱 노래는 빠질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노래방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까닭일까?
나이트클럽이 대 유행되자 덩달아 발전한 곳이 미드나이트 클럽으로 이는 보통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 형태이며, 클럽과 노래방을 합친 것처럼, 무대가 있고 노래부를수 있는 밴드(생음악)가 있어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드나이트에는 술을 팔지만 보통 돈을 따로 주고 노래를 부르는데, 당시에는 1만원을 내면 5곡을 부를수 있는 번호표를 준다.
즉, 한 손님이 부르고 나면 다음 번호표를 가진 손님이 노래를 부르는 형태로 단체 손님들이 많았다.
이또한 한동안 호황을 누렸지만, 손님들이 영업시간 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단속을 받지않기 위해 전업을 한 경우가 많았다.
보도란 일정한 사무실이 없고 차량한대만 가지면 영업을 하는 구조로 사람이 다니는 길을 인도 또는 보도라고 부르듯이 길거리에서 도우미를 공급한다고 해서 보도라고 불리어졌다.
도우미는 주로 교차로나, 벼룩시장 광고를 통해 도우미를 확보하며, 인기있는 도우미는 보도장이 숙소까지 잡아주며 데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가게에서 원하는 도우미는 주로 20~30대, 40대정도의 미씨들로 50대이상 은 잘 요구하는 없소가 없어, 이 업도 50대 중후반은 은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후 탄생한 것이 소위 ‘7080 라이브 카페’이다.
라이브 카페는 이들 미드나이트가 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들은 대중음식점이나 일반 음식점으로 신고한 후 영업을 하기에 노래 부르는 것은 위법으로 단속이 나오면 피할 길이 없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인지 과거로 돌아가 현재 코인 노래방이 우후죽순처럼 다시 등장하여 성업중인걸 보면 세상의 유행도 사이클이 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암튼 부산 지역을 소개하다가 유흥 문화를 소개하게 되어 죄송하며, 잘 몰랐던 독자를 위함이라고 양해를 구한다.
범일동을 지나면 자성대가 나오고 부산의 대표지역인 누구나 부산에 오면 한번쯤 들린 적 있다는 ‘서면’ 이라는 곳이 나온다.
서면은 로타리를 중심으로 발달 되었으며, 서면시장부터 현재 롯데백화점, 복개천도로, 극장가, 대형 입시학원, 백화점, 냉면 전문점, 대형 서점 등 다양한 상가들로 다음 회에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부산갈매기 9부에서 계속
첫댓글 부산 갈매기!
오랜만에 날아왔네요.
부산의 문화와 역사를 기자의 시선으로
낱낱이 전달하고 계신 듯 합니다.
가라오케, 지금의 노래방이라 할 수 있을까요?
바쁜 일상에서 발걸음 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늘 부족함으로 번민하지만
지기님의 응원이
또 컴퓨터 앞으로 나를 인도 합니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 밖에 드릴수 없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