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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성산.금원산(거창) @ ◎ <산행지 소개> .현성산은 금원산에 딸린 부속산으로 거무성, 또는 거무시로 불려온 산이다. 성스럽고 높음을 뜻한 ‘감’의 한문표기로 검을 ‘현’(玄)이 되어 현성산으로 되었다. 곧 ‘감뫼-검산-검무성-거무시’로 되어 ‘검다’의 한문식 이름 현성산(玄城山 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산은 기백산과 금원산에서 못다 푼 흥을 현성산에서 다 풀어버리려는 듯 단애를, 슬랩을, 기암을, 폭포를, 암릉을 그 기슭과 산사면에 한껏 빚어놓았다. 현성산은 1,300m대인 기백산이나 금원산보다 훨씬 낮으나 바위로 산전체가 철갑을 두른 듯하다. 기백산에서 금원산으로 가는 길의 봉우리에는 바위와 암릉이 조금 있지만 금원산은 거의 육산이나 다름없는 산이다. 그러다가 금원산에서 지재미 골로 내려오면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현성산과 마주 보는 하산길 지능선의 치마바위는 거대하다. 지재미골에 내려서면 문바위가 마치 큰 함선처럼 골짜기 한 가운데 버티고 있고 가섭사위로 보이는 암릉은 위압적이다. 현성산 부근에 와야 비로소 바위잔치가 벌어지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원산의 본디 이름은「검은 산」이다. 옛 고현의 서쪽에 자리하여 산이 검게 보인데서 이름하였다. 이 산은 금원암을 비롯하여 일암(一岩), 일봉(一峰), 일곡(一谷)이 모두 전설에 묶여 있는 산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옛날 금원숭이가 하도 날뛰는 바람에 한 도승이 그를 바위 속에 가두었다 하며, 그 바위는 마치 원숭이 얼굴처럼 생겨 낯바위라 하는데 음의 바꿈으로 납바위라 부르고 있는 바위, 비 내림을 미리 안다는 지우암(知雨岩), 달암 이원달 선생과 그의 부인 김씨와 얽혀 이름한 금달암(金達岩), 효자 반전이 왜구를 피해 그의 아버지를 업고 무릎으로 기어 피를 흘리며 올랐다 하는 마슬암(磨膝岩), 중국의 5대 복성중 하나로서 감음현을 식읍으로 받아 입향한 서문씨(西門氏)의 전설이 얽힌 서문가(西門家) 바위, 하늘에서 세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 하는 선녀담(仙女潭)들이 널려 있다. .금원산에는 크게 이름난 두 골 짜기가 있다. 성인골(聖人谷) 유안청(儒案廳)계곡과 지장암에서 와전된 지재미골이다. 유안청계곡은 조선 중기 이 고장 선비들이 공부하던 유안청이 자리한 골짜기로 유안청폭포를 비롯한 자운폭포와 소담이 주변 숲과 어우러져 산악경관이 빼어난다. 지재미골은 서문씨의 전설을 안은 서문가 바위와 옛날 원나라에서 온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를 따라서 감음현을 식읍으로 받아 살았던 이정공 서문기(理政公 西門記)의 유허지로 그 자손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전한다. 지재미골 초입에는 단일바위로는 우리나라 최대인 문바위와 차문화를 꽃피웠던 보물 530호인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이 있다. ‣ 미폭 .금원산 자연휴양림 매표소 200m 전 미폭 안내문이 있는 미폭 오른쪽 묘 뒤로 들머리가 있다. 미폭(米瀑)은 이름 그대로 하얀 쌀 낱알이 굴러 내리는 듯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40m쯤 되는 바위면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는 모양을 하고 있다. 옛날에 폭포 위에 동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해서 동암폭포라고도 불린다. 동암사에서 쌀 씻은 물이 흘러내렸다고 해서 '쌀 이는 폭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초반부터 목침계단을 오르면 바위구간 설치된 목책구간 지나 묘를 지나고 곧이어 또 다른 묘 좌측에 갈림길이 있는데 아마 미폭 상단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인듯 하다. ‣ 숲길과 바위구간이 교대로 나타난다. .이후 목계단 오름길 시작되며 잠시 숲길로 들어가다 벤치가 있는 쉼터 지나면 묘 지나고 다시 바위구간이 나타나는데 매끈한 슬랩바위에 목책이 설치되어 있어 전혀 어려움 없이 오르게 된다.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 경주정씨묘를 지나면 다시 바위구간이 나타난다. 계단을 오르면서 주변 조망은 다 열려있으니 특별히 전망대 설명 필요 없겠지만 목책이 설치된 커다란 암반 전망대에서 바라 본 전망은 특별히 훌륭하다 하겠으니 우측으로 위천면 들판과 대슬랩의 웅장함이 다가온다. 다시 숲길로 들어가다 다시 만난 목책 암반 전망대에서는 좌측으로 금원산~기백산 능선, 암봉으로 이루어진 현성산이 멋진 스카이라인을 긋는다. ‣ 암릉구간마다 조망 좋아... .아기자기한 바위구간을 지나면 커다란 바위 옆 돌탑 바위에서도 금원산~기백산의 능선, 현성산을 바라 볼 수 있다. 이어지는 암릉은 초보자도 쉽게 진행할 수 있는 구간이라 부담스럽지도 않고 조망도 좋지만 뜨거운 햇빛 아래라 다소 부담스러웠는데 그나마 습도가 낮아 다행이다. 현성산과 그 뒤로 서문가바위도 웅장하게 다가오네.. 다시 숲길로 들어가 잠시나마 땀을 식혀주고는 다시 바위구간 계단이다. 뒤돌아보는 조망도 좋네.. 바위구간 지나자 사거리 지점 <현성산 960m ; ←문바위 2.5 / ↓미폭 3 / ↑금원산 4.5>이정표를 처음 만나니 뒤쪽 바위구간을 잠시 올라가야 정상이다. ‣ 현성산 .현성산 정상은 암봉으로 이루어져 사방 조망이 활짝 열려있다. 위천면 들판, 금원산~기백산 능선, 서문가바위, 그 뒤로 덕유산 능선이 바라보인다. <현성산 965m 거무시>정상석 (지도 958.7m) 현성산의 또 다른 이름이 ‘거무시’ 이네.. 현성산을 내려와 좌측 문바위 방향을 무시한 채 직진한다. .현성산 정상석에는 작은 글씨로 '거무시'라고 따로 적혀 있다. 이 산의 옛 이름이다. 원래 현성산은 '거무시' 또는 '거무성'으로 불렸다. 성스럽고 높음을 뜻하는 '감'의 한문 표기를 검을 현(玄)으로 해서 현성산이 됐다는 것이다. 감뫼-검산-거무성-거무시로 변천한 것의 한문 표기라는 것. 또 '거무시'를 '검은 성'으로 해석해 현성산으로 썼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현성산의 모산(母山)인 금원산(金猿山) 역시 정상석 뒷면 원래 이름이 '검은산'이었다고 설명돼 있다. 금빛 원숭이가 날뛰는 것을 붙잡아 바위에 가두었다는 전설 때문에 금원산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금원산 역시 '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성산 남쪽에 솟은 오두산(烏頭峰) 역시 원래 이름이 '가막달'이다. 이 산의 정상에 거무스름하고 둥근 바위가 얹혀 있다. 역시 '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거창 위천면을 둘러싼 금원산 현성산 오두봉 등은 모두 '검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검다'는 말의 뜻을 단순히 색상의 의미로만 보기보다는 '높고 성스럽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 서문가바위 .험악한 암릉도 아닌 아기자기한 암릉이 이어지면서 전방에 보이는 서문가바위의 바위형상을 뚜렷하게 확인하게 되고 다시 숲길로 들어가면 안부지점 좌갈림길 지나 오름길 이어가면 서문가바위 좌측 아래에 이르게 되는데 그냥 지나치기 쉽다. 우측 바위구간 오르면 서문가바위 둥그스름한 바위 아래까지는 올라갈 수 있는데 그 위로는 올라가기가 쉽지않네.. 얼마 안 되는 높이인데 매끈한 바위라 잡고 디딜 곳이 없다.
.서문가바위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서씨와 문씨 성을 가진 두 남자가 한 여인과 함께 이 바위 아래 석굴에서 피란생활을 했는데 그 여인이 아이를 낳자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어 성을 서문(西門)씨(氏)로 붙였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전설일 뿐이다. 안음 서문씨의 시조는 고려 말 공민왕의 왕비였던 원나라 노국공주를 따라 원나라에서 건너온 서문기(西門記)이며, 왕으로부터 안음군(현재 거창 위천면, 함양 안의면 일대)의 땅을 식읍으로 받아 이 지역에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다. 서문기는 이후 고려가 패망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금원산 자락의 바위 암봉 아래에 숨어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 암봉이 현재의 서문가바위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도 한다. 또 다른 전설도 재미있다. 임진왜란 때 한 여인이 서씨와 문씨의 남자와 함께 이곳의 한 바위로 피란왔다가 아기를 출산했다. 하지만 아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몰라 아기의 성을 두 남자의 성씨를 하나씩 따와 이자성인 서문으로 했다. 지금 그 바위가 서문가바위라 불리는 것은 그런 연원이라 한다. 그러나 이 바위는 고려말 충신 서문기가 이성계의 부름을 거절하고 이 바위에 살았다고 하는데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특히 이 부분은 이 일대가 이정공(理政公) 서문기(西門記)의 유허지로 알려져 있어 신빙성을 더해준다. ‣ 수승대갈림길 .서문가바위를 지나 잠시 이어진 바위구간 지나면 좌갈림길(Y") 지나 수승대 갈림길("T)을 만나게 된다. <←금원산 3.9 / ↓현성산 1.0 / →수승대 6.5> 현성산 능선은 여기서 끝이 나고 우측 길은 수승대로 이어진다. 금원산 방향은 좌측이다. ‣ 갈림길 .여기부터 금원산 까지는 암릉 아닌 육산의 능선이 이어진다. 중간 갈림길 만나면 좌측 혹은 직진 길은 모두 외딴집으로 내려가게 되는 길이다. 갈림길 만나면 우측 길 택해야 한다. 수승대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3분여 내려가면 만난 직진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급회전해야한다. 주의지점이다. 이후 넓은 터를 가진 좌갈림길에서 식사 후 재출발한다. 우측 방향이다. 지금부터는 금원산까지 중간 봉우리를 살짝 내려가는 것 말고는 꾸준하게 오르는 숲속 능선이다. 5분 후 ‘山’자가 새겨진 작은 바윗돌을 지나 986.4봉 지나 좌갈림길(-↑) 2곳 지나 공터가 있는 1057봉 넘어 다시 좌갈림길(-↑)을 만난다. <1-5>구조목이 있는 1코스 구간이다. ‣ 계속 오르막길 .계속 이어지는 능선 오름길은 小공터 (1143.8봉) 지나 <1-6>지점 지나 만난 小공터가 있는 좌갈림길은 금원암으로 가는 길인듯 하다. 금원암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1013.6봉(암봉 인듯) 부근 인듯 하다. 옛날 여기에 금빛 원숭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하도 날뛰는 바람에 부근 마을에 피해가 컸다. 이에 한 도승이 나타나 원숭이를 잡아 한 바위에 가뒀다. 지금의 금원암이 바로 그 바위라 한다. ‣ 금원산 ~ 동봉 .<1-7>지점 지나 막바지 오름길 끝에 금원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금원산 1353m>정상석(지도 1352.5m) 동봉~기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건너편 거망산~황석산 능선이 바라보인다. 직진 방향은 수망령, 좌측으로 간다. 곧 큰 헬기장을 지나면 돌탑이 있는 동봉(삼거리)이다. 우측은 기백산 방향, 11시 방향은 2코스 하산 길이다. 지금부터 2코스 하산이다. ‣ 2코스 하산 ~ 임도 ~ 유안청폭포 .<2-5>지점 지나면 연이어 바위전망대 2곳이 나타나니 서문가바위, 현성산이 바라보인다. 바위전망대 아래 밧줄 타고 내려와 <임도 1.0 / ↓금원산 0.8>이정표에서 직진 길도 보이는데 좌측으로 진행하여 <2-4>지점 지나 묵묘도 지나고 이정표 <↑임도 0.8 / ↓금원산 1.0>도 지나고 <2-3>지점도 지난다. 꽤나 가파르게 내려가는 길이 생각보다 피곤하게 느껴지다 <2-2>지점 임도에 안착하자마자 임도 무시하고 건너편 산길로 다시 내려가면 목교를 건너 <←관리사무소 / ↓금원산 2코스 / ↑유안청폭포>이정표에서 유안청1폭포 구경 후 관리사무소 방향으로 내려가면 목교가 있는 유안청2폭포 상단부에서 숲속의 집 방향으로 직진한다. 계곡이 유려한 유안청계곡은 빨치산들의 애틋한 흔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내용은 이태가 쓴 '남부군'에 잘 나와 있다. '기백산 북쪽 기슭 어느 무명 골짝에 이르러 오백여명의 남부군들이 남녀 모두 부끄럼도 잊고 옥 같은 물속에 몸을 담그고 알몸으로 목욕을 하였다' 지금도 그 골짝을 비롯, 산의 곳곳에 빨치산의 흔적이 세월의 아픔으로 흩어져 있다.
‣ 원점회귀 .유안청계곡을 우측에 두고 내려가면 시멘길 진입 후 숲속의집(산막)에서 우측 목교를 건너 포장길 따라 내려가면 자운폭포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데크를 지나 삼거리(우;기백산)에서 좌측으로 좀 더 내려가면 매점이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 방향으로 간다. (좌측은 문바위) 곧 좌측으로 내려다보이는 선녀담을 지나면 금원교 (우측 대형주차장) 에서 금원교 건너면 매표소를 지나 미폭 앞에서 원점회귀 산행을 마친다.
소사벌코스//상천리매표소ㅡ작은구름다리ㅡ현성산 향일봉ㅡ서문가(연화봉)ㅡ갈림길ㅡ금원산ㅡ유안청폭포ㅡ금원자연휴양림ㅡ상천관리소(매표)ㅡ원점산행ㅡ소요예상 5시간30분정도 * 준 비 물 : 회비 : 30,000원 식수. 및 행동간식. 아이젠, 스패츠, 보온자켓. 우비. 스틱. 장갑(2컬레). 안면마스크(필수). 산행장비 일체.
*차량운행시간 : 송탄귀빈예식장06시00분 - 등기소06시05분 - 장당육교06시10분 - 안정리06시25분 - 객사리06시30분 - 삼성아파트06시40분 - 시장06시45분 - 평택역06시45분 - 운동장06시50분 - 문예회관06시55분 - 진사리0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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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사벌 산악회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