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14년(1414 갑오 / 명 영락(永樂) 12년) 6월 1일(임인) 3번째기사
전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이문화(李文和)의 졸기
전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이문화(李文和)가 졸(卒)하였다. 이문화는 인주(仁州) 사람으로서, 전공 판서(典工判書) 이심(李深)의 아들이었다. 경신년 과거에 제1인(第一人)으로 급제하여 드디어 우정언(右正言)이 되고, 세 번 자리를 옮겨 우헌납(右獻納) 예문 응교(藝文應敎)가 되었고, 이후부터 모두 관(館)의 직임을 띠었다. 국초(國初)에는 좌간의 대부(左諫議大夫)에 임명되어 여러 화직(華職)을 역임하였고, 도승지(都承旨)로서 오랫동안 전선(銓選)을 관장하였으나, 소심(小心)하고 신중하고 치밀하였다. 기묘년 생원시(生員試)를 관장하였으며, 첨서 의흥 삼군부사(簽書義興三軍府事)에 올랐다. 임금이 즉위하여 의정부 문학(議政府文學)으로 발탁되어 정부·육조(六曹)를 떠나지 않은 지 10년 동안에 두번 헌부(憲府)의 장(長)이 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가 57세였다. 3일 동안 철조(輟朝)하고, 부의(賻儀)를 후하게 내려 주고, 시호(諡號)를 공도(恭度)라 하였다. 이문화는 정교하고 민첩하여 시사(時事)에 적합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일찍이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수령관(首領官)과 경기좌도(京畿左道)·경상도(慶尙道)·충청도(忠淸道)·서북면(西北面) 감사(監司)를 지냈는데, 서무(庶務)를 잘 처리하였다. 아들은 이효인(李孝仁)·이효의(李孝義)·이효례(李孝禮)·이효지(李孝智)·이효신(李孝信)·이효상(李孝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