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한 해에 서울 광화문에 있는 잡지사에 입사했다. 한강도 신기하고 길에 사람이 너무 많은 것도 신기했다. 특히 자우림이 왜 굳이 일상이 지루할 땐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하자고 노래했는지 신도림역에 가보고서 한 번에 이해했다. 여기서 스트립쇼 하면 ‘비브라늄 멘탈’ 인정, 그 정도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하철을 왜 ‘지옥철’이라고 부르는지도 알게 됐고, 서울에서는 코딱지가 많이 생긴다는 것도, 도화살이 있는 건가 고민하게 한 서울 남자 특유의 ‘했니~’하는 다정한 말투가 굳이 나를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서울 생활에 익숙해져 가면서 나는 이상한 점을 깨달았는데 ‘서울 것들’은 무언가 때깔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자연스러운 가운데 멋이 흐른달까. 그 세련된 스타일에 주눅이 들었다. 당시 나는 내게 어울리는 것이, 무언지를 생각하고 구매해본 경험 자체가 빈약해 취향이랄 게 없었는데, 서울 것들은, 저마다 홍대, 스럽고 가로수 길, 스러웠다. 뭘까, 저 비결은? 그러다가 나는 하나의 포인트에 집착하게 됐다. 바로 명품 가방이다. 놈코어 어룩으로 옷은 심풀하게 입더라도 가방에 힘을 주면 시크해 보인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래, 명품! 명품 가방을 사야 해.
당시 내 월급은 세후 160만 원 정도였다. 월세, 교통비, 식비···.서울에서는 숨만 쉬어도 돈이 들어간다. 한쪽에선 명품 가방을 사고 싶어 하고 한쪽에선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구박하는 데서 불행이 시작됐다. 내 속물성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몸을 학대하며 도를 닦는 수도자처럼 명품 가방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를 경멸했다. 무언가 잘 안 될 때 자기경멸만큼 쉬운 해법도 없다.
이상한 일이다. 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미워할수록 머릿속에서 명품 가방이 다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빠진다,’고 하고 도박은 ‘중독된다’고 하는데, 맹목적으로 사로잡힌 상태를 ‘미쳤다. 고 표현한다면 당시가 꼭 그랬던 것 같다. 날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명품 가방을 검색하고,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가방을 구경하며 브랜드를 맞추곤 했으니까. 그리고 밤이면 다시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된장녀‘를 미워하며 자학했다. 그 짓을 무려 1년 넘게 하고 나니 지긋지긋해졌다. 결국, 10만 원을 주고 매장 언니의 말에 따르면 ’A급‘이라는 샤넬 가방을 샀다.
하지만 명품 가방에 대한 집착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도리어 더욱 강렬해지고 일그러졌다. 사람들이 자꾸 내 가방을 빤히 보는 것 같고, 그럴 때면 불안한 내 마음도 겉만 그럴싸한 짝퉁 같았다. 샤넬 가방을 메고 지하철에서 이리저리 흔들일 때의 자괴감, ’흥 저 사람 것도 짝퉁이겠지‘ 하는 후려치기의 마음이 사람을 구질구질하게 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한 달 치 월급이 넘는 명품 가방을 질러버렸다.
그렇게 구입, 한 명품 가방은 역시나 고급스러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사기 전에는 그것만 사면 인생이 바뀔 것 같았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면서 그간 내가 했던 비이성적인 행동이 점차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명품 가방을 산 게 아니라 ’서울의 멋진 직장 여성의 세계‘에 진입하는 이장권을 산 거였다. 하지만 그건 실체가 없는 이미지였을 뿐이므로 가방을 아무리 사더라도 행복은 딸려오지 않았다.
당시 나는 외로움, 애정 결핍, 낮은 자존감을 소비라는 가장 쉬운 방법을 통해 채우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거라도 갖추지 않으면 정말로 나는 작아지고 작아져 서울이라는 이 도시에서 사라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방으로라도 인정받고 싶었던 자그마한 마음을 돌보는 일이 우선이겠다고, 소가죽으로 된 무거운 가방을 들 때마다 난 생각했다.
요즘도 가끔 우울한 날이면 뭐라도 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일상은 굴욕적이지만 쇼핑의 세계에서는 소비자로서 배려와 존중을 넘치게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럴 때는 그저 그 상태임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 카드를 꺼내기 전에 먼저 나를 다독여주는 것이다. ‘너 요즘 많이 힘들구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