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토장정88-1 (2024. 2. 2) 화천군, 철원군
22.2km (서해 : 845.6km, 남해 : 817.7km, 동해 677.1km 누리 255.9km 합계 : 2,596.3km)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명월리 - 상서면 다목리 -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 - 사곡리 - 서면 와수리 - 김화읍 학사리)
명월2리 경로당에 도착한 시간은 중간에 아침밥을 먹고 왔는데도 9시를 살짝 지났다.
2024년의 첫 장정은 일찍 시작한다.
복주산 정상으로 넘어가는 화천의 마지막 DMZ 평화의 길 19코스는 아직 눈도 녹지 않았다.
해발 1,152미터의 설산을 장비도 체력도 부족한 우리는 포기하고 북쪽 상서면 다목리로 방향을 잡았다.
정확하게 40년 전 다목리에 왔었다.
입대를 앞두고 휴학을 하고 있을 때 서울에도 눈이 많이 온 어느 아침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전방에 눈이 많이 왔다던데 네 작은 누나는 먹을 건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냐?
그냥 있지 말고 한 번 다녀와라.”
배낭에 아니 니꾸사꾸에 스팸, 황도, 백도 등 통조림 아니 간스메를 가득 담아 주셔서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다목리행 시외버스를 타고
눈이 잔뜩 온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아마도 달린다는 표현보다는 엉금엉금 천천히 왔을 거다.
중간중간 군인들이 내리고 올라타고 몇 군데 군인 마을을 지나
이제나저제나 도착하나 지루해할 때
차장이 눈이 너무 와서 다목리까지는 못 간다고 모두 내리라고 한다.
그곳이 내 기억에는 분명 사창리다.
사창리 차부에 버려지듯 내던져진 나의 모습을 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양복바지에 아니 기지바지에 검정 구두 그리고 바바리
그 당시로는 최고로 멋을 부린 그런 모습이었다.
한가지 좀 맞지 않는 것은 니꾸사꾸였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몇몇 군인들이 산으로 올라간다.
다목리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차는 미끄러워서 못 가지만 사람들은 걸어서 다닌다고 하니
나도 멋모르고 따라나섰다.
미끄러운 구두가 몇 번을 길바닥에 나를 팽개쳤지만
그래도 다목리까지 넘어가서 누나와 조카를
그리고 늦게 집으로 온 작은 매형을 볼 수 있었다.
그냥 천지가 눈밭이었다.
근데 지금에 와서 보니 사창리에서 다목리까지 12km가 된다.
그 눈 덮인 고갯길을 내가 갔을까?
작은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네가 나 새댁일 때 거길 왔었니?” 한다.
하여간 모를 일이다.
사창리하고 다목리의 중간인 명월리에서 출발한 장정은
실내 고개를 넘어 다목리에 도착했다.
이제 다목리를 지나 수피령을 넘으면 철원군이다.
수피령은 780미터의 높은 고개다.
가파르긴 하지만 넘어갈 만하다.
제설작업을 하며 갓길에 눈을 쌓아 놓아
찻길로 걸어가야 한다는 위험이 있지만
56번 도로는 가끔 차가 지나갈 뿐 차량은 거의 없어서 다행이다.
수피령 정상에는 막걸리를 준비하고 있는 지원조가 있으니
땀도 나고 힘이 들지만
“이 굽이만 돌아가면 정상일 거야.
이 고비만 넘어가면 막걸리가 있다”라고 힘을 낸다.
이제 지원조가 멀리 보인다.
지원조를 만나 막걸리를 찾아본다.
실망이 너무 크다. 하지만 웃음은 나온다.
천안 입장에서 출발하여 서울에서 숙성 과정을 마친
막걸리가 지원조 차량에 없고 부지런하게도
벌써 김화읍사무소에 가져다 놓은 차에 있다는 걸 알았다.
막걸리가 없는 휴식보다는 계속 장정을 하는 것이 낫다.
이제 드디어 강원도의 마지막 철원군이다.
수피령 정상이 경계이다.
이곳부터는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다.
수피령은 오르기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든 것 같다.
한참을 내려가 다시 찾아온 막걸리로 기력을 회복한다.
잠시 더 걷고 근남면 사무소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사곡리를 지나 서면 와수리로 들어섰다.
롯데리아까지 있는 걸 보면 와수리는 근동에서는 가장 번화한 것 같다.
한국 전쟁 후 김화군은 휴전선으로 나누어지며
63년 철원군에 편입되며 남한에는 이제 김화군이 없어졌다.
지금 철원군의 동쪽, 화천군의 북쪽 지역이
남한의 김화군 지역이었다.
와수리는 김화읍과 바로 붙어 있고 김화 중고등학교. 김화 소방서, 김화 농협등이 이곳에 있다.
학포교를 건너 김화읍으로 들어섰다.
김화읍은 대감마님을 첩에게 뺏긴 안방마님같이 그곳에 있었다.
아주 조용히.
하지만 안방마님같이 김화 보건지소, 김화 우체국, 김화읍 사무소는 김화읍에 있었다.
우리도 조용히 이곳에서 오늘의 장정을 마친다.
첫댓글 오늘의 교훈 : 자전거는 혼자 타는거 아니다.
어여 또 가고 잡네여 ^^
잘읽고 갑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