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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도 예배자로 나아오신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 일터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우리 앞뒤 좌우에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과 축복의 인사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20명의 성도가 다락방에 모여서 오로지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성령을 받고 밖으로 막 뛰쳐나가면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었어요. 이들은 그저 단순히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에 힘썼던 것이죠. 사람들이 기도 소리를 듣고 기도하는 그 자리에 한 명씩 한 명씩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오순절을 맞아서 각국에서 사람들이 모이는데 이 경건한 유대인들의 귀 속에 자기나라 방언으로 하는 그들의 기도 소리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이죠. 즉 그들의 방언은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사방에서부터 모이게 하는 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혹시 생각해 보셨어요? 그 자리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을까요? 120명의 기도 자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오는데 얼마나 많이 모였을까? 베드로가 이제 설교를 하는데 설교를 마치고 나서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세례를 받은 수가 확인되는데 거기에 보면 놀라운 숫자가 나옵니다. 당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함으로 세례를 받은 신도의 수가 삼천이더라. 120명을 중심으로 삼천이라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을 하게 되는데 삼촌보다 덜 있었는지 아니면 덜 있었는데 그들이 잘 이렇게 이야기해서 사람들이 더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요. 3천이라는 놀라운 수가 예수를 믿겠다고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것이죠. 120명의 신과 은혜가 굉장히 큰 파급력이 있었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왔다는 것이죠.
그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응집하여서 이렇게 120명을 보면서 이야기할 거 아니에요 이곳저곳에서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저게 도대체 무슨 일인거야 우리나라 말로 안 해 하면서 술 마셨나 이런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겠죠. 하지만 본문에서는 그들의 반응을 두 가지로 요약해 주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고 어찌 됨이냐 당황해하는 사람의 무리가 있었고요. 어떤 이들은 새 술에 취했다 하면서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모인 자들을 향해서 두 가지 반응에 따른 적합한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첫 번째 내용으로 조롱하는 이들을 향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이 성령의 충만한 사건은 절대로 새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면서 시작이 돼요. 또 그 증명으로 시작된 말씀은 결국 복음을 선포하는 구원의 메시지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베드로의 설교 중에 첫 번째 대지를 우리가 함께 묵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시작은 이렇습니다. 베드로가 11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외치는데 여러분 지금 일어난 이 일을 너희로 하여금 알게 할 테니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들의 귀를 열어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우리 14절 말씀 함께 읽어보실까요?
베드로가 11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여기서 이 일이라는 건 뭐겠어요?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일어난 성령 강림 사건이죠. 이 일을 알게 하겠다. 즉 이 성령의 역사와 그 결과 외적으로 드러난 방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지금 베드로를 비롯한 11 제자가 많은 유대인들 앞에 서서 당당하게 외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본문에 더 깊숙이 들어가기 전에 베드로와 열한 사도들 특별히 이제 베드로를 중심으로 생각해서 이들이 당당하게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령의 은혜, 성령의 충만함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 그들의 이 담대함은 무엇과 비교할 수 있어요? 성령이 오시기 전의 모습과 비교할 수 있잖아요. 40여 일 전만 해도 그들에게는 성령의 은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에 체포될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베드로는요. 두려워서 멀찍이 떨어져서 안 따라갈 수는 없고 내가 그래도 수제자인데 멀찍이 살금살금 따라가면서 예수님이 어떻게 되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따라갔습니다. 또한 그 두려움이 결국에는 예수님 모른다고 저주하는 자리에까지 가게 되었잖아요.
그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이 제자들, 예수님을 그렇게 따랐던 제자들, 아마도 당시의 사내들이 잡아간다는 추종자들은 잡아갈 것이라는 그러한 염려와 걱정 때문에 두려워서요. 요한복음에 보니까 그들이 한 곳에 모여서 문을 딱 걸어잠그고 나오지도 않고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한 베드로와 사도들 두려워서 꼼짝도 못했던 그들이요. 성령께서 임하시니까 그들의 마음에 담력이 생기고 담대함이 있어서 그 많은 유대인들 앞에서 담대히 말씀을 선포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이신 예수의 이름을 담대히 외치고 전하는 이 일은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 수가 있죠.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그래도 우리가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다. 성령의 권능을 입을 때야 비로써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 복음 전파다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편지를 쓰면서 말미에 야 너희 성도들아 이 시대는 영적 전쟁인데 영적 전쟁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전신갑주를 쥐야 된다. 그렇게 말씀을 기록합니다. 즉 마귀의 관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반드시 입어야 된다는 것을 기록해 줘요.
그리고 그 전신 갑주를 취하기 위해서 마지막에 기록한 것이 이것을 위해서 너희 항상 뭐 해야 된다 기도해야 된다는 그래서 전에 성경 보면 무시로 기도하라 그렇게 기록되어져 있어요.
항상 전신갑주를 취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 기도를 하면서 더불어 바울이 요청을 해요. 그 기도하면서 나를 위해서도 좀 기도해 달라. 그 기도의 요청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우리 함께 보실까요? 에베소서 6장 19절인데 우리 같이 읽어봅시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여러분 그렇게 수도 없이 복음을 전했던 바울도요. 그의 입술을 통해 복음의 비밀이 담대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를 위해서 기도할 때 복음을 담대히 선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담대함이 있어야 되고 그 담대함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기도를 요청하면서 사도 바울도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야 너희 전신 각주 입고 싸워야 돼 그 기도해 그러면서도 더불어 나를 위해서도 좀 기도해 다오 이렇게 요청을 했던 거 아니겠어요?
마태복음 10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서 그들을 파송시키십니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셔서 보내.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낸 것과 같다. 그래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된다 이런 말씀을 주세요. 그러면서 더불어 하셨던 말씀이 있어요. 너희가 이제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게 될 것이고 그들과 이방 사람들 앞에서 증언할 날이 오게 될 것인데, 즉 너희들이 어느 순간에 법정에 설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에 무엇을 어떻게 말할까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말아라. 그때 내가 할 말을 주겠노라.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10장 20절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우리 같이 읽어볼까요?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누가 말씀하신다고요? 아버지의 성령 성령께서 말씀하실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그 말을 주시겠다. 누가복음에도 동일한 말씀이 이어지는데요. 너희가 통치와 권력자들 앞에 끌려가게 될 것인데 어떻게 무엇을 말해야 될지,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염려하지 말아라.
왜 그런가? 누가복음 12장 12절 이것도 같이 읽어보실까요?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마땅히 할 말을 누가 가르치신다고요? 성령께서 따라서 여러분 복음을 전하며 우리가 만나는 에게 예수를 소개할 때에 나는 할 수 없어라는 것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하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 내가 이 사람을 오늘 만나는데 하나님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꼭 필요한 말을 전하게 해 주십시오. 내 사랑하는 아내, 내 사랑하는 남편이 예수를 믿어야 되는데 내가 그 순간에 꼭 해야 될 말을 하게 도와주십시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그때 그 순간에 그의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을 통해서 말하게 하시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이렇게 말씀 되어졌던 것들이 지금 베드로와 11 제자 앞에 실제가 되어버린 거예요. 전에는 두려워가지고 어떻게 해야 되나 염려하면서 걱정했던 이들이요.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담력을 가지고 예수의 이름을 선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승천하면서 하셨던 그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그래야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땅끝까지 이르러 지원될 수 있다. 즉 증인의 삶은 성령이 임하여야 된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복음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담대함이 있으십니까?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있어 그 힘을 얻어 담대하게 예수의 이름을 전하는 귀한 사명자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단의 권세 앞에서도 어떤 세상의 권력자와 권세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언제 어디서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의 이름을 담대히 전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 신은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베드로는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는 자들을 향해서 야 우리 술 취한 것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합니다. 그 증명의 시작이 설교로 이어져서 결국에 말미에 가서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게 돼요. 그래서 15절부터 쭉 이렇게 흐름을 보면 마지막에 복음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15절부터 우리 한번 보실까요? 15절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읽습니다.
때가 제3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때가 잠시가 되었다라는 것, 이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내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죠. 베드로는 먼저 본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해주면서 이른 아침부터 술 취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라고 이야기하는 거 왜냐하면 특별히 이 제3시라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아침 9시거든요. 아침 9시는 유대인들이 정해놓고 뭐 하는 시간일까 기도하는 시간에 369시는 그들이 기도하는 시간이 특별히 명절 때가 되면 특별히 명절이라는 건 절기죠. 절기 때가 되면 요셉 푸스에 의하면 이들이 10시까지 금식을 했대요. 기본적인 유대인으로 사는 사람들이 9시에는 기도 시간인데 이 절기가 되면 10시까지 금식을 하면서 기도했다는 것이죠. 그러니 기도 시간이었던 9시 그것도 오순절 날 술에 취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베드로는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더욱 확실히 증명해내기 위해서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해서 선포합니다. 요엘서는 말세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져 있죠. 유대인들이 적어도 요에서에 말세에 관한 기록이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요엘서 2장 28절부터 3 2절에 기록된 이 말세에 관한 말씀이요. 오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임하게 되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거예요.
너희들이 그동안 알고 왔던 그리고 배워왔던 들어왔던 그 요엘의 말씀이 이후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임한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서 방언이 일어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무엇인가 성경 말씀의 성취라는 성취 그러면서 증명해낸 것이죠. 따라서 여러분 이 성령 강림 사건은 시대의 종말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큰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시면 말세 이 말새에 뭘 주신대요?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을 나의 영을 부어주시겠다. 누구에게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시겠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17절 18절 같이 읽어볼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오.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오.
요엘서에 보면 그 후에라고 돼 있어요. 그런데 베드로가 이 말씀을 그 후에를 싹 빼고 뭘 넣어요? 말세라는 표현을 대체시킵니다. 즉 오순절 성령의 임재가 종말론적 사건의 하나임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무슨 말씀이냐 하면 성경을 볼 때 구속사적 관점으로 보는 게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경을 풀어가는 거예요. 50 메시아에 대한 예언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셨다 살다가 죽으셨다. 부활하셨다. 승천하셨다. 그리고 다시 오신다. 그것을 쭉 풀어서 말하는 것이 바로 이 구속사적 관점 예수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시는 거 너희들 봤지. 근데 이제 성령 강림 사건 이것이 구속사적 관점으로 볼 때 종말의 사건의 하나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성령의 임재로 인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언제까지 이루어지는 게 맞습니까?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성령이 임재하셔서 지금도 계속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지면서 이 땅을 살아가잖아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 구속의 사역은 성령의 일로 인하여서 이루어진다.
또한 말세에 임할 성령 강림은 여러분 구약 시대에는 어떻게 임했습니까? 특정한 사람들에게 몇몇 사람들에게 제한적으로 임했던 것이잖아요. 그렇죠 누구에게 했어요? 선지자, 제사장, 왕 기름부음 받은 자들에게 특별히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계시의 말씀을 주신 것이죠.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성별이라든지 연령이라든지 사회적 계층 차이 없이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시겠다. 이게 오늘 주신 말씀의 핵심이죠. 그리고 이 약속의 말씀은 그들에게 임한 성령 강림의 그 현장으로 시작돼서 온 세상으로 이제부터 확대될 것이다.
지금 많이 확대되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도 성령의 은혜로 예수 믿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성령 강림의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확장되어서 온 인류에 확장되는 그 순간까지 주님은 기다리고 계시면서 이 사역들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따라서 성령 강림은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시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죠. 값없이 주신 생명의 은혜. 그런데 이 생명의 은혜가 우리 모든 인류에게 주신 선물임과 동시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도 동일하게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어떻게 된대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
여러분 여기 어르신들 꿈꾸고 계십니까? 주무시면서 꿈 좀 꾸셔야죠. 우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또 남성과 여성들에게도 뭐라고 얘기합니까? 예언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잖아요. 앞서서 얘기했듯이 예언과 환상과 꿈은 구약 시대에 누구에게 줬어요? 제사장 선지자 왕을 통해서 하나님을 하나님께서 계시한 것이 여러분 그때 개시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예요.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다. 초림의 예수에 대해서 개시한 것이죠.
그러면 이 시대에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예언과 환상과 꿈의 핵심은 뭘까요? 이것은 오신 메시아 다시 오시는 것이 그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고 깨닫게 하고 선포하게 하는 놀라운 역사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모여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 충만하에서 각 나라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이야기했잖아요.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그들에게 부어주셔서 예언과 환상과 꿈을 세상 가운데 선포하는 놀라운 일로 나타나게 된 것이죠.
대신 내용은 구약 시대하고는 다르다라는 거 이걸 알아야죠. 구약 시대에는 5일 메시아 이 시대에는 오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이 계시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 만족을 믿으십니까? 여러분 다시 오실 예수를 믿으십니까? 이것은 누가 알게 하신 거예요? 성령께서 어떻게 아세요? 여러분 오신 메시아도 못 봤는데 다시 오실 예수를 어떻게 여러분 믿고 고백합니까? 성령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그래서 여러분 베드로가 요엘서를 인용하면서 성령 강림과 더불어서 종말의 때에 나타날 기사와 징조도 쭉 풀어서 계속 이야기해 나갑니다. 우리 19절 20절 말씀 같이 읽어보실까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여러분 여기에는 주님의 심판 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의 핵심은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죠. 그날이 언제입니까?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 곧 심판의 날이기도 하고 구원의 날이기도 한 것이죠. 베드로는 심판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유대인들, 회중을 향해서 주님 다시 오시는 그 크고 두려운 날 그때의 기사와 징조가 나타날 것임을 선포하면서 그들에게 심판의 때를 경각심 갖도록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의 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베드로의 목적은 거기에 있지 않았어요 심판을 강조한 이유는 사실 그 이후에 이야기할 구원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과 같은 것이었죠. 이미 종말은 시작되었고 때가 찬 시각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이 있을 건데 그때 심판과 구원이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 뭐 하라는 거예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또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심판 중에서라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을 선포하기 위해서 이야기한 것이죠. 여러분 누구든지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심판의 것들을 끄집어낸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모든 인류에게 주님 오시는 날은 재앙의 날이 될 수가 없습니다.
심판의 날도 있지만 구원의 날이 있다는 이 사실을 저와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는 것이죠. 이를 조금 더 깊게 생각해서 우리 이렇게 이어갈 수가 있습니다. 왜 아직까지 심판의 날이 오지 않았는가? 주님 오시지 않는가 모든 인류를 위해서 수많은 시간과 기회를 허락한 것이죠. 실제 여러분 예수님께서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곧 오시겠다 말씀하셨는데 아직까지 강림하지 않으신 건 뭐예요?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시간을 주시는 것이죠. 기회를 주시는 거 그러나 분명히 도래할 그때가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 그날이 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이때에 구원받는 자의 수가 날마다 더해질 수 있도록 힘쓰고 애쓰고 노력해야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21절의 말씀이 사실 가장 큰 핵심인데 우리 한번 읽고 계속 진행해 볼까요? 21절 읽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는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러면 이제 15절과 21절을 연결해서 한번 생각해 보실까요? 15절에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주시면 모든 육체에게 왜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을까요? 따라 합시다.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기 위해
여러분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부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령께서 인자하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야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신할 수 없다. 고린도전서에 기록하고 있잖아요. 그 어떤 사람도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 신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겠다 약속하신 것이죠. 그래서 로마서 8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잘 읽어보실까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여러분 아무리 내 임의로 주의 이름을 부르고 열심히 부른다 할지라도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인입니다고 하면서 산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성령이 없다면 구원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구원은 예수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는 거예요. 그런데 그 믿음의 고백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성령이 내 안에 역사하죠. 그래서 여러분 거듭남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그냥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것이죠. 예수님께서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이야기하면서 그 후에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더러 주여주려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누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합니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여러분 아버지의 뜻은 누가 알 수 있어요? 성령 받은 사람이 할 수 있죠. 성령 받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뜻도 알고요. 그 성령의 힘으로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갈 힘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 수 없고 열매도 얻게 되는 것이죠.
반면 우리에게 임한 성령의 열매는 내가 그리스도인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내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 약속하신 것은 누구든지 성령을 통해서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다.
여러분 같은 맥락에서 말씀도 한번 생각해 보실까요? 말씀 모든 성경은 어떻게 돼 있어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감동 성령으로 된 것이죠. 거기에 나오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내 안에 뭐가 있어야 된다고요? 성령 아무리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지혜가 부족한 것이죠. 그래서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은혜를 허락해 달라고 우리는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를 향해서 기도합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는가? 우리 한번 보실까요? 에베소서 1장 17절 19절 이어지는 말씀 한번 보실까요? 읽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이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기도의 핵심의 단어는 무엇입니까? 17절 끝에 알게 하시고 19절 끝에 알게 하시기를 구한다. 그러면 이것을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해요?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도 안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영이신데 어떻게 육체인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성령이 있어야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뭐로요? 영과 진리로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그만큼 성령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죠. 이 성령께서 임하실 때에 지혜 계시의 영이 열릴 때에 바로 부르심의 소망, 즉 하늘 소망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땅에 살아도 야 그래 하나님 나라에 소망이 있구나라고 하면서 살아가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 이 땅의 것은 비교가 안 되네. 하나님의 나라의 그 풍성함, 그것을 바라보며 사는 은혜가 어디에 있다고요? 성령의 은혜가 뿐만 아니라 믿는 우리에게 강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가만히 있으면 모르는데 성령께서 하나님이 역사하셨어.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 역사가 있었습니다. 누가 고백해 하는 거예요? 성령께서 나를 통해 고백하는 거 이 모든 것들은 여러분 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즉 성령의 조명하심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으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성령을 통해 예수의 이름을 부름을 통해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의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안에 소망이 있고요. 그 안에 기쁨이 있고요. 그 안에 사랑이 있고요. 그 안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돌아가서 베드로와 열한 제자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예요? 성령이 있었는데 먼저는 이들이 먼저 깨달은 거죠. 그렇지 않겠어요? 내 안에 성령이 있어서 예수가 나의 구주임을 먼저 고백하지 않았겠어요. 그 고백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 성령의 힘을 얻어서 담대히 선포할 수가 있었던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 왜 부르셨어요? 먼저 하나님의 자녀 삼기 위해서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해요? 성령의 하나님 내가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 자녀 된 그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더불어서 그 은혜가 충만해 이제는 베드로와 사도들처럼 아직도 예수를 알지 못하여서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지 못하는 저들을 위해 우리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이게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신 목적이에요. 집에서 해야 할 일 참 많죠. 이 땅을 살아가면서 먹고 살아야 할 것 많잖아요. 그런데 그게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신 목적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위한 수단이잖아요. 그쵸?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먼저는 구원의 은혜의 기쁨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풍성하기를 소망합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이 구원의 기쁨의 감격 속에 살기를 소망합니다. 더불어서 이 기쁨을 아직 그걸 몰라 허덕이고 살아가는 저 안타까운 인생들을 향해서 선포할 수 있는 담대함, 저와 여러분 가운데 보여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