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고전-교양 13＞ :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흐르는 등불]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좋은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가난 때문에 힘들어하는 젊은 법학도 라스티냐크와 같은 하숙집에 투숙하고 있는 부유했지만 지금은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부르주아 출신의 고리오 영감을 중심으로 1820년대 파리 시민들의 속물적인 삶의 모습을 명철하면서도 냉혹하게 그려내고 있다. 파리에서의 출세와 성공에 모든 것은 걸은 라스티냐크는 성공의 사다리를 타기 위해 사교계에 진출하려고 시도한다. 다행히 명문 귀족 가문이었기에 사촌누이를 통해 사교계의 여성들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그 가운데는 레스토 백작부인과 은행가인 뉘싱겐 남작 부인도 있었다. 라스티냐크는 특별히 뉘싱겐 부인과 가까워지게 된다.

하숙집 사람들이 자행한 고리오 영감에 대한 모욕을 막아준 일로 인해 라스티냐크와 고리오는 급격하게 친해지게 되고, 그에 대한 과거의 사정을 알게 된다. 라스티냐크가 사교계에서 만난 레스토 부인과 뉘싱겐 부인은 고리오의 딸이며 고리오는 딸들의 결혼 지참금으로 엄청난 금액을 제공했지만 그 후 딸들과 사위는 그를 멸시하였고 결국 “두 딸들은 그를 자기들 집에 못있게 했을 뿐 아니라 찾아오지도 못하게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절망한 나머지 이 하숙집에서 칩거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고리오의 딸들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고 헌신적이었다. 딸들의 냉정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딸들이 금전적인 부탁을 하면 고리오는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해결하려 시도하였다. 무분별한 사랑이었다.

라스티냐크는 같은 하숙집에 거주하는 보트랭이라는 중년 사내로부터 세상에 대한 현실적 충고를 듣게 된다. 사교계라는 위선적인 세계에서 정직은 불필요하며 오직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고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곳 파리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출세하는가를 알고 있나? 천재성을 펼치든지 아이면 능수능란하게 타락해야 하네, 사회집단 석으로 뚫고 들어가거나 페스트 균처럼 스며들어 가야 하네. 정직이란 아무 소용없네.” 라스티나크 또한 사교계 여성들을 사귀면서 그들의 화려함과 부유함이 실제로는 대부분 거짓이고 허영과 빚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대분분 돈과 얽혀 서로에 대한 애정을 잃은 지 오래지만 어쩔 수 없는 체면과 사회적 지위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거짓과 위선의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때 두 개의 커다란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는 라스티나크에게 인생에 대한 충고를 해준 보트랭이 ‘불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탈옥수였으며 같은 하숙집 사람의 밀고에 의해 체포된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리오 영감의 급격한 건강악화와 죽음이었다. 고리오 영감은 라스티냐크가 자신의 딸인 뉘싱겐 부인과 가까워지자 청년을 통해 딸과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꿈을 꾸었고 희망에 넘쳤다. 하지만 그 사이에 일어난 딸들의 재정상 문제와 그 문제로 다투게 된 두 딸의 모습 때문에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진다. 결국 죽음의 문턱에 이를 정도로 고리오의 병세는 악화된다.

그럼에도 두 딸은 자신의 문제에만 몰두한 채 아버지의 고통을 외면하고 무시한다. 자신을 찾지 않은 딸들에 대한 분노로 고리오는 딸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라스티냐크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기도 한다. “자네는 결혼하지 말게, 결코 자식을 낳지 말게. 자넨 자식들에게 생명을 주지만, 그 애들은 자네에게 죽음을 줄거야.” 그럼에도 고리오는 끊임없이 딸들의 손길을 기대하고 기다렸지만 결국 쓸쓸하게 라스티냐크와 다른 청년의 돌봄만 받은 채 죽고 만다. 딸들과 사위들은 고리오의 죽음에 대해서도 불성실했지만 죽음 이후의 비용에도 전혀 무관심했다. 두 청년들은 복수를 위해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세워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비열하면서도 냉정한 자식들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레스토 백작부인과 뉘싱겐 남작부인의 아버지인 고리오씨가 두 학생의 비용으로 매장되어 이곳에 영면하고 있다.>”

소설 <고리오 영감>의 배경은 1789년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집권 이후의 파리이건만 그 속에는 어떤 정치적 움직임이나 혁명에 대한 이상은 찾을 수 없다. 오로지 돈과 욕망 그리고 지위를 얻으려는 추악하고 이기적인 욕심만이 넘치고 있는 것이다. 하숙집 주인은 그들이 내는 돈의 액수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가 얻을 수 이익과 돈에 따라 인간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그러한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모습은 사교계의 귀족들이나 보통의 평민들 모두 차이가 없는 동일한 모습들이다. 라스티냐크는 아직 젊고 순수한 심성을 가졌기에 이러한 모습에 절망하고 분노한다. 특히 고리오에 대한 두 딸의 냉혹함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보트랭의 경고처럼 이 세계에서 참다운 진실과 윤리는 사라졌고 다만 표면적이고 허위적인 냉소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작가는 <인간희극>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하나로 <고리오 영감>을 썼다. 속물적인 욕망이 넘치는 인간들의 모습이 생생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 장면, 라스티냐크는 사교계와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자신의 순수한 세계로 돌아갔을까? 아니다. 그는 인간들을 지배하고 있는 탐욕과 위선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경험한 것이다. 고리오 영감의 죽음을 통해 인간들이 얼마나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가장 가까운 가족도 버릴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을 알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학습했다.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영감 앞에서 마지막 순수함을 버렸다. “그는 무덤을 바라보았다. 그는 청춘 시절에 흘려야 할 마지막 눈물을 그곳에 묻었다.” 그리고 그가 향한 것은 남작부인과의 식사였다. 그러면서 그는 결심한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보트랭이 충고했던 “원칙이란 없네. 단지 사건들만 존재한다네. 법률이란 없네. 오로지 상황만이 있을 뿐이지. 뛰어난 사람은 사건과 상황에 순응해서 그것을 조종하는 법이야.”을 실천하기 위해 냉혹한 무대 속으로 부와 성공을 위해 위선을 방패삼아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시니컬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보보]

- 나이듦의 품격과 가족간의 관계, 생각하기보다는 사는대로 살며 항변하는 사람들, 온 세상이 사기공화국으로 가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