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
-일일문학
출-일일문학회
2021. 제 7호
<앉은 굴뚝>-공영구
사람 안 사는 집도 그리울 때 있다
숨은 잘 쉬는지
잘 먹고 잘 싸는지
궁금할 때 있다
몇 십 년 만에 찾아간
대문도 담장도 무너진 외갓집
온전히 남은 것은
마당 한 켠 앉은 굴뚝
굴뚝에 앉아서 텅 빈 아궁이 본다
지붕 위로 연기 오르면 못사는 이웃의 허기 더해 간다고
땅에 자욱이 깔려 서서히 사라져야 그들에게 덜 미안하다고
양반들 지혜인지 속임수인지는 몰라도
요즘처럼 메마르고 고단한 생활 속에서
남 배려하며 산다는 게 그냥 만만하지 않았을 게다
마당에 퍼진 연기가 담 넘지 않고 사라지듯이
“집도 먹고 싸고 숨 쉬어야 한다.
대문이 코고, 아궁이가 입이다.
구들은 창자고, 굴뚝은 똥구멍이다
굴뚝 청소 잘해야 베설이 잘 된다
똥구멍 막히면 죽는 거 알제.“
앉은 굴뚝에 앉아서 근엄한
외할아버지 입에서 ‘똥’이란 말을 하셨다.
<욕봤다>-조명선
낯익은 오늘 하루 전력으로 달려와선
짚을 것 없어 멈춘 여기 후다닥 미끄러진다
눈물 삼키지 말고 흐르게 냅두라며
욕봤제 그까짓 거 괜찮다 한마디가
더운밥 못지않은 어머니의 방점이다
그래야 멀쩡한 내일 주문처럼 품는다며
<칼-말> 각원
어느 물건에는 독이 되고
어느 용도에는 꿀맛이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쓰임에 따라 아파하고
자신의 발밑에 두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도 있고
자신의 가스에 품고 살아가는
어떤 위인도 있으며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이도 있고
자신의 방향으로 놀아나고 있으며
타인을 위해 놀아 주는 이도 있고
가치성과 값어치를
다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었고
칼은 칼로써
칼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칼긑은
처음은 끝을 보고
끝에서
처음을 보는 이는 드물고
운명처럼 휘젓고 있나 보다
<등대> -권영시
어두움 디디고
망부석처럼 포구 언저리를
떠날 줄 모르는 저 홑몸
자신의 얼굴 드러내지 않고
먼 산 아니라도 가족 품으로 돌아올
지아비의 잠든 바다를 일깨운다
먼 길 들고 날 때 동구 밖에서
곱상한 얼굴에 버선발 내딛던 내 어머니
흡사 그런 모습 같아라
오늘도 눈초리 엄습하는 졸음 떨쳐 가며
그믐달 초승ㄹ달 가리지 않고
수평선 뒤덮은 검은 적요를 일깨우는
포구의 등대는 어머니
해파를 이기고 돌아오는
우리의 아버지를 맞는다
<나를 고발하네> 최재현
그대는 영안실 딱딱한 냉장실에 누었고
나는
따뜻한 방 침대에 누웠네
사는 게 다 자리다툼인데
아무리 편한 자리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고
끝없이 편안한 자리를 찾아
물불 가리지 않고 쫓아다닌
지난날의 나를 고발하네
내 것만 소중했고
길가에 핀 목마른 꽃들마저 외면한 채
눈길조차 주지 ㅇ낳았던
그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지금
목마른 꽃들을 찾아
물을 주고 싶네
그대와의 긴 이별 앞에서
자신과의 이별도 가까이 있음을 보며
이 땅에 발 딛고 있음이
축복인 걸 이제야 아네
목말랐던 꽃들이 물을 받아먹고
고개를 드는 시간
나를 사랑하네
<겨울 풍경> 홍승우
중략
귓문이 빨간 집토끼 한 마리
눈밭을 뛰며 발자국으로 인화를 찍는다. 눈은 내리고
따뜻한 털들이 일어서는 오후
상수리나무 가지에 내려앉아
잠을 자던 산까치도 시린 발을 오그리고
<할머니 덧귀> 이재순
가는 귀 우리 할머니
불러도 대답이 없다
-할머니니니-
귓바퀴에 갖다 대며
귀 하나 더 만든다
그제야,
-응, 왜 그랴-
귓바퀴에 덧대어 만든
솜바닥 귀
할머니 덧귀
<내가 꿈꾸는 우리 집 설계도>-최춘해
주춧돌이 될 바위가
대들보가 될 나무도
나달에 실려서
설계도 쪽으로
쉼없이 옮겨집니다
정원수에 지저귈
새들이 알을 깝니다
둥지에 어린 새들은
나달을 쪼아 먹고
목청을 곱게 다듬습니다
지하수는 꽃밭을 축이려고
물길을 바꿉니다.
모두 잠든 한밤
설계도 위엔
아담한 집이 들어서고
저원엔
새들이 노래를 물어 옵니다.
지하수는 쉼 없이
꽃밭을 축입니다.
새들이 물어온 노랫소릴 듣고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꽃을 피웁니다
과일나무도
주렁주렁 열매를 맺었습니다.
<뿌리 송일호> 소설
손자는 자가용 타고 아파트로 가고, 아버지는 택시 타고 양옥집으로 가고, 할아버지는 버스 타고 시골 오두막집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되었다.
뿡련 안개가 아침 햇살에 밀려나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 동네가 완연히 드러났다. 철이 벗겨진 양철집은 묵은 때를 안고 있다. 이사간 빈집은 기울어진 지붕을 썩어가는 기둥이 받치고 있다. 겨울에는 볏집이 주된 사료가 되고 여름에는 산으로 들로 나가 풀을 베어와 사료로 쓴다. 등겨와 허드레 음식을 ㄴ허고 푹 삶아 먹음직하게 만들어 먹이면 암소는 살이 쪄서 털이 반들반들하고 젖이 많이 나와 송아지도 잘 자랐다. 쇠죽 끓인 아궁이에서 달아오를 잔불에 얼굴이 술 취한 사람 같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옛날에는 이 잔불이 화롯불이 되었지만 지금은 감자나 고구마를 구어 먹는 여가볼이 되었다. 소들은 살이 뒤룩뒤룩하다. 그 덩치가 살로 뒤엉킨 것을 보면 마른풀 속에 영양이 많은지, 아니면 소는 원래 살이 찌는 동물인지 모르겠다. 가마솥 두겅을 열자 하얀 수증기가 처마를 타고 산산이 흩어지고 있다. 위의 것은 아래로, 아래의 것은 위로 뒤집어 놓고 박 노인은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다.
콩나물 무침에는 고소한 마음을 함께 버무리고 삶은 계란에는 아람드리 미소 소화제를 덤으로 얹는다. 몽글몽글 김 오르는 밥에다 따뜻한 마음마저 고봉으로 담는다-
투박한 면발 같은 한 여자의 생인 듯
손마디마다 박힌 진한 노동의 시간들
잰 듯이 썰어낸 간격
자존심의 칼날이다-윤경희-할매 손칼국수 전문
<겨울 잔별>윤경희
겨울밤
유난히도 잔별이 많아
개동벌에의 영혼 때문이다.
여름이 올 때쯤
이슬을 타고 ?땅에 내려온 잔별들이
개동벌레가 되어
낮에는 풀숩 사이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반짝거린다.
그렇게 한철 지내다가
밥이 깊어지는 겨울이 되면
개똥벌레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다시 잔별이 된다
누군가의 영혼이 된다.- 윤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