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 발귀리의 노래 해석을 통한 빛의 이해
- 수행의 바른길 3편
제목 : 삶의 바른길과 수행의 실용성 161페지 아래 내용 발췌 -
본 장에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원방각경이라는
‘선인 발귀리의 노래’를 통해,
빛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자연의 이치와 법, 진리는
인간 유사 이래 똑같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아래 내용과 해석은 인터넷에서 가져온 것이며,
그것을 통해 빛은 수행의 바른길을 이끄는 실체이며, 신은 빛이시며,
만물 속에 빛으로 자연에 의해 움직여지는 체험 이치를 말한다.
아래 내용과 해석은 인터넷에서 가져온 것이며,
그것을 통해
빛은
수행의 바른길을 이끄는 실체이며,
신은 빛이시며,
만물 속에 빛으로 나타내시고,
조화를 만들어 내면서,
전체를 이끌어가고 계시다는 것 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해를 돕기 위한 별도의 설명은
각자 스스로 공부체험 속에 가질 수 있는 상황과 현상들을
예를 들어 첨언해 보았다.
본 내용은 일반적으로 철학적 종교적으로 해석을 하나,
여기서는 수행의 바른길 과정에서 반드시 겪게 되며,
실제 각자 스스로 체험 하게 되는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해 본다.
수행의 바른길 2편 내용 중
‘나의 존재와 깨우침’의 단락에서 1이 2가 되고, 3이 되며,
3은 다시 1로 돌아가는 이치를 설명하면서,
계 정혜 이치를 통한 체험수행을 간단하게 설명했듯이,
부처님 가르침 의 공부체험 속에 불법승과 삼위일체의 의미가
다 들어있다는 내용도 상세히 잘 나타나 있다.
체험공부를 근거로 하여, 아래 내용을 설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공부 속 체험’이란
수행을 이끄는 실체가
부처님 하느님은
신이시며, 빛이며, 파장이고, 에너지라는 것을
체득하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의식함이 없이,
자연에 의해 움직여지는 체험 이치를 말한다.
‘공부 속 체험’이란
자연의 이치와 법,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이며,
곧 불법승 또는 삼위일체를
직접 몸과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체험을 말한다.
그것은 일상을 통한 ‘계정혜의 수행’에서 찾아진다.
(참조 : ■ 2편 41p, 계정혜를 통한 수행의 이해 및 실제적 체험)
빛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수행체험의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실제 경험이 가능한 것에 대한 표현과 설명을 해 보면서,
수행의 바른 길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각자 나름대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 선인 발귀리의 노래 ■
大一其極是名良氣 대일기극시명양기,
無有而混虛組而妙 무유 이혼허조이묘 대일(大一),
즉 극(極)은 양기(良氣)를 말한다.
유무(有無)가 섞 이고, 빈 것과 찬 것이 묘함을 이룬다.
三一其體一三其用 삼일기체일삼기용,
混妙一環體用無枝 혼묘 일환체용무지
삼일은 그 바탕이 되고 일삼은 그 쓰임이 된다.
묘하게 섞여 하나의 고리가 되어
바탕과 쓰임은 따로 분별되지 아니한다.
▶ 그냥 단어 자체의 내용은 쉽게 이해하겠지만,
일반인들로서는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쉽지 않다.
전체를 움직이는 실체를 이치 속에서 설명하고 있으나,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불법승과 삼위일체,
이 세 가지가 돌아가는 이치를 알면 쉽 게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의 이치와 법, 진리에 대한 가장 기본을 설명 하고 있다.
(참고 : ■ 2편 32p “나의 존재와 깨우침”)
大虛有光是神之像 대허유광시신지상,
大氣長存是神之化 대기장존시신지화
커다란 허공에 빛이 있으니, 이것이 신의 모습이며,
큰 기운 이 오랫동안 머물고 있다는 것은,
그게 바로 신의 조화이다.
▶ 기도나 절을 하거나, 경전을 읽거나
시작 전, 빛기둥을 보고 시작한다.
그것을 수행의 바른길이라고 하며,
불성화 혹은 성령화를 말한다.
실체를 알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게 올바른 수행과
일상사의 올바른 실천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기도나 명상에서 신과의 만남 혹은 자연과의 교감이란
빛기둥을 세운다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
커다란 허공의 빛은 빛기둥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게 신이심의 모습을 의미한다.
그 빛의 기운이 몸을 감싸 보호해 주시기도 하고,
몸속을 흘러서 생각을 깨우쳐 주시기도 하며,
아픈 곳을 낫게 하여 건강하고 행복 하도록 만든다.
그게 신의 조화다.
단 내가 한 만큼이며,
그게 믿음의 크기다.
지금의 현실적 가치관과 상황이 맞지 않는,
알지 못하는 글들은 깨달아가기 힘들며,
믿음을 올곧게 이해하고 키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수행의 바른길 시리즈 전 편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된 표 현과 설명을 하고 있다.
眞名所源萬法是生 진명소원만법시생,
日月之子天神之衷 일월 지자천신지충
참된 모습의 모든 법들이 여기서 나온다.
온 세상을 위해 천신은 그 가운데에 계시면서,
以照以線圓覺而能 이조이선원각이능,
길을 따라 비추시어 참된 깨달음을 주신다.
▶ 여기 내용 역시 이해하기는 쉽지만,
실생활 속 실제상황을 인식하기가 어렵다.
참된 모습의 모든 법이라 함은,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모든 것 들의 현상과 결과가
신의 조화 속에서 나온다는 것으로,
가령, 수행과 정 속 체험에서,
각자가 겪을 수 있는 몸에서 일어나는
안팎의 모든 현상을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모든 법이 나온다는 것은 어떤 사람은
팔이나 다리나 허리 기타 등등 아픈 곳이 치유도 되고,
어떤 사람 은 몰랐던 것이 갑자기 생각이 나게 되며,
어떤 그림이나 형상들이 순 간 머리에 떠오를 수도 있고,
동영상으로 움직이는 형상들을 볼 수도
있는 등등 변화무쌍하다.
‘신의 조화’란 신의 빛이며,
자연의 파장이며, 기운이며, 신의 사랑이다.
그 기운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곳이 없다.
불성과 성령이 그것이다.
신은 그것을 인간 몸 스스로가 터득되도록,
각자가
최선을 다하는 만큼,
믿음의 크기만큼,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여 가르치신다.
즉 자 연의 이치와 법, 진리를 말한다.
‘깨달음’이란
‘신의 빛’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말을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부하면서 부처님 하느님의 수행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은
여기 빛에 의해 인도를 받고 보호를 받는다.
참고로 빛은 보살이 될 수도 있고,
천사가 될 수도 있는 등
많은 표현이 있는데,
오직 한 분이신 창조주의 빛은
한 종류의 빛뿐이다.
모든 빛과 에너지의 바탕이 되는
그 빛은 신의 빛이며, 신, 즉 빛이다.
불교에서 생각하고 표현하는 많은 종류의 보살들은
전부 부처님, 즉 신의 화신이다.
똑같은 빛이다.
신은 하나다.
인간 의식의 표현으로
부처님 또는 하느님이라고 한다.
위 말의 뜻은 모든 사람의 근기 에 따라 혹은 공부하는 정도에 따라,
빛을 비추어서 혹은 빛을 통해서,
제각기 다르게 공부를 가르쳐 주신다는 것이며,
이렇게 하여 참된 깨달음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은 자연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
위 내용에 내포되어 있다.
大降于世有萬其衆 대강우세유만기중,
故圓者一也無極 고원자 일야무극
큰 빛으로 세상에 내려오시니 모든 사람들을 거느린다.
그러므로 원(圓)은 일(一)이니 무극(無極)이며
方者二也反極 방자 이야반극, 角者三也太極夫 각자삼야태극부
방은 이(二)이니 반극(反極)이며, 각은 삼(三)이니 태극(太極)이다.
▶ 우주 자연의 이치를 원방각에 의해 설명한 것이고,
이의 원리도 한 번의 체험 속에 다 들어있는 원리이다.
수행의 바른길 2편에서 나오는 관계되는 내용을 읽어 보면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