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에서 상부상조의 일환으로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것은 주로 부조(扶助)이다.
부조란, 잔칫집이나 상가(喪家) 따위에 돈이나 물건을 보내어 도와주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부의(賻儀)’라고도 한다.
부조는, 주로 잘 아는 사람이나 친구나 친척의 경조사에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안에 경조사가 있고나면, 방명록에 이름과 금액을 기록해둔다.
다음에 그 사람 집에 경조사가 생길 때 답례를 하기위해서다.
그런데 사실 부조의 목적은 남을 돕는 데 있고, 진정으로 남을 도우려면 아무런 대가를 구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내가 다른 사람의 경조사에 부조를 했다면, 그것으로 끝내고 어떤 대가도 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온갖 잔머리를 굴려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웃기는 일들이 벌어진다. 먼저 부조의 금액이다.
제대로 된 부조라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금액을 부조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 반대다.
가난한 집에 많은 부조를 하면, 다음에 내가 그만한 금액의 답례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만일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서면 아주 적은 금액의 부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적은 금액의 부조를 하게 되면,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그만한 답례는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만에 하나 다음에 답례를 받지 못하더라도 덜 아까울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지금 내가 부조해야할 집이 힘 있고 돈 많은 집안이라면 미련 없이 거금을 투자한다.
왜? 득을 봤으면 봤지 손해 볼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힘이 있는 집안에 많은 부조를 하는 것은,
다음에 내가 어떤 부탁을 할 때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그래서 “정승 죽은 데는 안 가도, 정승 말 죽은 데는 간다”는 속담이 있는 것이다.
힘 있는데 빌붙어 뭔가 작은 것이라도 건져내고자 하는 이기심에 거금의 아첨성 부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돈이 많은 집안에 많은 부조를 하게 되면 그만큼 생색도 내고,
다음에 내 집에 경조사가 있을 때는 어김없이 그만한 액수의 돈이 돌아 올 것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이처럼 어떤 조건이나 계산이 깔린 것은, 모두 상부상조나 부조의 근본정신을 벗어난 것이다.
이런 것은 도움을 받는 득(得)도 아니고, 도움을 주는 덕(德)도 아니다.
그저 잠시 돈 몇 푼 맡겨두었다가 나중에 도로 찾아가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현대적 부조의 의미는 남을 돕는다기보다 부조에 대한 답례에 중점을 둔다.
내가 부조하면 상대도 반드시 거기에 대한 답례가 있을 것이고,
또 많은 곳에 부조하면 다음에 내 집에 경조사가 생겼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오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에 부조가 가능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의 경조사에 열심히 다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만일 다음에 나의 부조에 대한 답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남의 경조사에 참석하게 될까?
내가 부조하면 상대도 반드시 부조할 것이라는 기대는,
부조를 반드시 갚아야 할 ‘차용증 없는 빚’으로 만들어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부조를 빚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은 부조를 받을 때는 좋을지 몰라도 다음에 갚을 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의 경조사에 부조를 한 사람은 그 즉시 그것을 잊어버리고,
그것에 대한 답례는 전적으로 상대방의 자의(自意)에 맡겨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요원한 일이다. 따라서 또 다른 해프닝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 경조사가 끝난 후 방명록을 하나하나 체크 하며
누가 얼마를 부조(扶助)했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상대가 자기보다 많은 부조를 했다면 입이 벌어질 것이고,
자기보다 적게 했으면 서운해 할 것이며,
아예 오지도 않았다면 그 사람의 처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당장 욕부터 튀어 나올 것이다.
그 외에도 부조가 반드시 갚아야 할 빚으로 전락하면서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문제가 생겨난다.
나는 상대방의 경조사에 부조를 했지만,
상대방은 나의 경조사에 부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차가워진다.
뿐만 아니라 경조사를 치른 다음에는, 가족 간에도 갈등이 생기고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여러 형제들이 함께 치루는 부모의 장례에 있어서는 뒤끝이 좋은 집안이 드물 정도이다.
들어온 부조금을 어떻게 나누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형제간에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것이 어렵다.
부조는 곧 빚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공평한 방법은,
들어온 부조금은 한곳에 모아두고 장례에 든 비용을 모든 형제들이 똑같이 나누어 계산한 후,
각자 자신의 앞으로 온 부조를 나누어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문제는 있다.
형제 중에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장례를 치르고 빚을 지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형평의 원칙만 주장한다면, 거기에 돈은 있지만 사람은 없는 것이고,
다른 형제에게 빚을 안기고 자기 것만 챙기기를 고집한다면, 거기에 돈만 있고 형제는 없는 것이다.
억만금을 주고서도 살수 없는 것이 형제다.
그렇다면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비록 흉사(凶事)에 속하는 상사(喪事)라 할지라도,
그 끝은 서로 웃을 수 있는 길사(吉事)가 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공평하고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상부상조나 부조는 모두 남을 돕는 일이다.
어떤 도움이든 거기에 어떤 조건이 개입되거나, 일말의 기대심리가 작용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도움이 아니다.
나의 도움에 대한 갚음은 상대방의 문제이고, 나는 나의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도움이고 덕이다.
경조사에 참석하거나 부조를 하는 사람들이여!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는 지금 다른 사람의 경조사에 진심으로 축하와 애도를 하기위해 참석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아무런 사심(私心) 없이 어떠한 기대나 조건도 없이,
진정으로 그 집에 도움을 주기 위해 부조하고 있는가를.
✍【 含笑 斷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