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창작동요 이야기
어머님 은혜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로 시작하는 <어머님 은혜>는 윤춘병(尹春炳·1918~2010) 작사, 박재훈(朴在勳·1922~ ) 작곡의 동요곡이다. 라장조, 6/8박자, 두도막 형식, 2절 가사의 곡이다.
윤춘병이 1945년 해방 직후, 공산당원들의 탄압을 피해 월남한 후 이북에 남기고 온 그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1946년 만든 가사에, 박재훈이 1948년에 작곡하여 발간한 동요곡집 <산난초>에 실려 발표되었다. 서정적 가락으로 전개되는데 여기에 정감과 인간미가 잘 표출되어 있다. 어머니를 그리는 수많은 동요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애창되고 있다.
동요 어머니의 마음은 처음 발표될 때 3절까지의 가사가 있었다.
‘산이라도 바다라도 따를 수 없는 / 어머님의 그 사랑 거룩한 사랑 / 날마다 주님 앞에 감사드리자 / 사랑의 어머님을 주신 은혜를.’
1953년 ‘어린이 찬송가’ 99장에 수록되어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며 인기를 끌기 시작한 찬양은 어른들에게까지 사랑받았다. 교회로 모여든 실향민들의 마음도 울렸다.
이후, 종교적 이유로 3절 가사를 제외하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어 지금까지 왔다.
윤춘병이 해방 직후에 당시엔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면서 만날 수 없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더욱 커졌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써 내려 갔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가 ‘어머님 은혜’다.
윤춘병은 생전 인터뷰에서, “투병 중 환상 속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향길을 오갔다. 고향을 떠나던 날 어머니가 우시면서 ‘이제 가면 언제 오냐’고 하셨던 기억이 아른거렸다. 이런 생각 속에 창밖을 떠가는 구름을 보며,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라는 시를 써 주님께 감사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회상했다.
윤춘병은 평남 중화 출생으로, 평양요한신학교와 중앙신학교를 졸업 후 감리교 목사로 활동하였다. 목사 은퇴 후 감리교신학대학교역사박물관장을 하면서 기증한 자료는 1885년부터 해방시기까지 개신교 각 교단에서 발행한 잡지와 신문 등의 자료와, 1945년부터 2010년까지 교계 잡지 등 1만여 점에 이른다. 자료 중에는 심훈의 '상록수'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실제 모델인 최용신의 루시여고 졸업앨범(1928) 등 희귀자료도 많다.
박재훈은 강원도 김화 출생으로,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자랐다. 평양 요한신학교 졸업 후 1942년에 오르가니스트로 데뷔하였다. 일본 유학 중 징병을 피해 귀국하였다. 1949년에 해군 하사로 주로 해군본부 군악대 근무를 하였다. 한국전쟁 휴전 후 초·중등교원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초등학교 재직시 <일맥(一麥)동요집>을 출판하였다. 이후 장수철 등과 함께 기독교 음악활동을 하였고, 서울영락교회 장로와 한양대학교 음악학과 교수를 지냈다. 그는 37세의 나이로 미국에 유학하여 웨스트민스터 합창대학에서 공부한 후 크리스천 신학교(인디애나폴리스)에서 교회음악을 공부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하여 다시 영락교회의 지휘자가 되었고(1963-1973), 기독교 관련의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서양 교회음악 합창곡들을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또한 지휘자 장수철의 후임자로 선명회 어린이합창단을 이끌고 북미 지역을 순회 연주하기도 했다.1966년 순회 연주 도중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아주사 패시픽 대학으로부터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에 오페라 <에스더>를 작곡하였다.
박재훈의 큰 활동은 주로 성가대 지휘자와 합창단 지휘자였다.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79년 캐나다에 정착했다. 모태신앙이었던 박재훈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서원대로 60세에 목사고시를 통과해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토론토 ‘큰빛 장로교회’를 개척했다. 현재는원로목사로 음악 활동과 사목 활동을 겸하고 있다.
박재훈 작곡의 동요로는, 어머님 은혜 외에<눈꽃송이·‘송이송이 눈 꽃송이 하얀 꽃송이…’>, <별·‘가만히 가만히 낙엽이 내려지는 가을 밤…’>, <봄이 왔어요·‘산 높고 물 맑은 우리 마을에…’> 등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찬송가로 <어서 돌아 오오><눈을 들어 하늘 보라><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 등을 작곡하였다.
찬송가와 성가곡, 어린이 동요 등 모두 1,500여 곡을 작곡했다.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 담긴 노래로, 우리 가곡인 <어머니의 마음(양주동 작사·이흥렬 작곡)>과 외국곡 <어머니(Mother of mine/유병무 역사·Bill Parkinson 작곡)>도 함께 애창되고 있다.
첫댓글 어렸을 적에는 어머니날에 멋모르고 불렀지만 지금의 나이에 이르서는 그 의미가 너무 깊고 커서 목이 메이면서 부르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노래입니다. 예전에 어머니날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도 불러야 한다고 어버이날로 바뀌면서 그 다음엔 <어버이 참사랑에>라는 노래를 부르게 되었지만 지금 어버이참사랑에 라는 노래를 과연 몇 사람이나 부를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없네요. 학교에서 직접 그 노래를 가르쳤던 저에게도 가물가물 하니 말입니다.
박원자 부회장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어머님 은혜>는 일찍부터 불러 지고 <어버이 참사랑은> 나중에 불려지기도 하였지만, 가사나 멜로디의 흐름이 어머님 은혜가 더 친근감이 있어서 많이 불려지지 않는가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