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을 가야겠는데,
2주간 격리라는 무시무시한 규정으로 인해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얼마 전부터 직계가족방문은
격리가 면제라는데...
직계가족이 없어서 그것도 어렵다.
꼭 격리문제 때문은 아니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립다.
아버지는 오랜기간 뇌경색으로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그 사이에 어머니는 본당신부인 아들의
주방보조원으로 나와 함께 지냈다.
3년!
다른 본당으로 옮기면서
어머니는 다시 집으로 가셔야 했다.
"신부야, 신부 땜에 지난 3년, 참 행복했다.
매일 아들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하고
공기도 좋고, 풍광도 좋은 곳에서
인심 좋은 사람들 많이많이 만나서
내 인생에 제일 행복했다."
어머니께서는 용돈으로 드린 돈을
하나도 쓰지 않으시고 모으셨나보다
"이제 중고차 그만 타고 새차 하나사라.
작은 차라도 하나 사는데 보태라!"
그렇게 나는 다른 본당으로 가고
어머니는 본집에 가셔서 홀로 계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 갔다가 췌장암 진단을 받고
8개월 정도 병원을 오가다가
하느님 품으로 돌아 가셨다.
수녀인 누나와 신부인 아들의 묵주기도 속에
힘겹게힘겹게 숨을 유지하시다가
서울에 있는 장남인 형이 오자
몇 분 지나지 않아 마지막 숨을 내쉬고 떠나셨다.
본당에 주방을 지키며 같이 계시는 동안,
힘에 부치셔서 제대로 일도 못 하셨고,
아들의 잔소리도 만만찮았을텐데
그래도 좋으셨나보다.
행복한 3년을 지내셨다니
아들로써 다행스런 마음이다.
본당에 모시기 전에
처음에 어머니에게 몇 가지 부탁을 드렸었다.
사목활동에 절대 뭐라 훈수두지 마시고,
신자들에게 신부어머니라고 폼잡지 마시라고...
다행히 그런 모습없이 조용히 잘 지내주셨다.
내가 힘들어하고 짜증스런 모습을 보일 때,
안스러우셨는지 딱 한번 충고를 주셨다.
"신부야, 너무 잘 할려고 하지마라."고
여러 의미로 내게 다가온 그 말씀을 가끔 되새긴다.
나 혼자의 욕심으로 신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신부들의 어머니들은
아들이 찾지 않으면 찾아가기가 어렵다.
먼발치에서 묵주알을 굴리면서
아들이 좋은 신부로 살아가기를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보좌신부 때는..
나도 8년간의 보좌신부 때는 한달에 한번씩은
꼭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이런저런 걱정들 정말
많이 하시는게 읽혀진다.
본당신부가 되고 나서
보좌신부를 맞이하면 제일 먼저 한 일이 있다.
보좌신부의 부모님을 초대하는 일이다.
교중미사에 보좌신부님 미사를 집전케 하고
공지 시간에 부모님 소개시키고
언제나 마음편히 아들의 미사에 오시라고 한다.
잘 오시지는 않으시지만, 그래도 본당신부나
신자들과 가끔 왕래하고 지내게 되면서
신부아들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린다.
오늘 복음의 성모님도 그런 마음이셨을까?
집을 떠나 공생활 중인 예수님을 찾아 오셨다.
정작 아들 예수는 어머님을 푸대접하는 것 같지만
그 어머니와 아들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한마음으로 깊이 일치된 모자가 아닌가?
성모님은 성자 예수님의 참된 어머니이시다.
누구보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내어 놓으신 분이 아니신가?
그래도 아들걱정은 다른 어머니와
똑 같으신가보다.
우리 모두 성모님의 마음으로
모든 신부들의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