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1:13-2:10절) 욥이 당한 시련
Ⅱ.욥에게 닥친 환란(중)
욥의 집은 아주 평화로운 가운데 있었습니다.
1:13-14절)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환이 욥에게 와서 이르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욥의 가정은 지극히 평화로운 중에 있었습니다. 형제들 사이에 갈등이나 미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주위 사람들과 관계도 나빴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의 자녀들은 맏형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신다.”는 것은 지극히 평화로운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소는 밭을 갈고 있었고, 나귀는 풀을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종들이 하나씩 욥에게 달려와서 기가 막힌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스바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 종들을 죽이고, 소와 나귀를 빼앗아간 것입니다.
15절)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스바 사람들은 아마 아라비아의 도둑떼들인 것 같습니다. 갑자기 들이 닥쳐 종들을 죽이고, 소와 나귀를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사실 옛날에는 아무리 잘 살아도 매우 불안한 것이“부자(富者)”였습니다. 언제 도둑이 들이닥쳐서 사람을 죽이고, 소나 나귀를 빼앗아 갈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날 암이나 교통사고 없이 한평생을 산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언제 자신에게 암이 닥칠지 모르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심령 부흥이 중요한 이유는 부흥이 일어난다고 모든 병이나 사고가 완전히 봉쇄할 순 없지만, 그 가능성은 훨씬 줄일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完全)은 없습니다.
그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욥에게 드디어 일어난 것입니다. 욥은 한순간에 도적떼에 의해 상당한 재산(財産)의 손해(損害)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고난(苦難)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16절)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작은 재산의 피해였는데, 이번에는 욥은 대부분의 재산(財産)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라비아 도둑들의 소행도 아니요. 놀랍게도 하나님의 소행(所行)이었습니다. 여기“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모든 양떼를 불태워 죽여 버린 것입니다.
아마 번개가 떨어진 모양입니다. 얼마나 심한 번개였는지, 양 몇 천 마리를 모두 태워 죽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종 한 사람은 꼭 살아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욥은 이제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고난의 끝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욥에게 마지막 남은 것이 낙타였는데, 이것으로 운수업(運輸業)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대아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낙타를 모두 빼앗고, 종들을 죽였습니다.
역시 한 사람만 살아서 이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제 욥에게 남은 재산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단 하루 만에 인재(人災)와 천재(天災)가 겹치면서 완전히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욥에게는 재기(再起)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자녀들은 온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탄(詐誕)은 욥의 자녀들까지도 그냥두지 않았습니다.
18-19절)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사탄(詐誕)의 시험(試驗)은 욥의 마지막 희망까지 철저하게 꺾어 버렸습니다.
욥의 마지막 희망이 열 명의 자식들이었는데, 사탄(詐誕)은 열 명의 자녀들의 목숨까지 빼앗아가고 말았습니다.
즉 큰 태풍이 불어 자녀들이 식사하던 집의 기둥을 쳐서 무너지는 바람에 열 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사탄(詐誕)이 하나님 앞에서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즉 사탄(詐誕)이 보고 싶어 했던 것은 이렇게 되었을 때, 욥이 어떻게 하느냐? 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사탄(詐誕)이 얼마나 무자비(無慈悲)하며, 얼마나 인간이 망(亡)하고 죽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왜 하나님은 이런 사탄(詐誕)의 요구를 들어주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연약(軟弱)하며, 얼마나 넘어지기 쉬운 지,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를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사탄(詐誕)의 손에 넘기셔서 비참하게 망하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일까? 그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려운 환란(患亂)이 닥쳤을 때, 우리는 그 환란(患亂)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즉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을까?”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미쳐 버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왜 이런 어려움이 닥쳤는지,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오직 이것 밖에 없습니다. 즉 “지금 나에게 환란이 닥쳤으며. 나는 이 환란을 이겨내야 한다.” 는 것뿐입니다.
즉 “결코 이 환란이 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며, 내가 이 환란을 이겼을 때는 정금같이 나올 것이다”만 생각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욥에게 닥친 환란(患亂)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연약(軟弱)하며, 우리의 행복(幸福)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지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아무리 돈이 많고, 잘 산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의 입김으로 한번 후-하고 불어 버리시면,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날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우리는 행복(幸福)을 붙잡아서는 안 되며, 왜 하나님을 붙잡아야 하고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행복(幸福)은 실체(實體)가 아닙니다. 진정한 실체는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림자가 실체인 줄 알고, 그것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붙잡고 있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욥과 같은 처지에 빠졌다면, 절망하며 좌절할 것입니다. 그리고 울면서 하나님을 이렇게 원망할 것입니다. “하나님 왜 하필 저입니까?”
우리에게 믿음의 분량이 있습니다. 환란이 닥치면, 믿음의 그릇은 완전히 말라 버리고, 더 심하면, 그릇이 완전히 타 버립니다. 그때 우리는 완전히 믿음이 없는 자처럼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정말 무서운 시험(試驗)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믿음이 완전히 타 버리면, 믿음 없는 사람보다 더 무섭게 절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사탄(詐誕)은 수시로 정신적으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는 이런 시험(試驗)을 당할 수밖에 없는 나의 무기력함에 화가 납니다.
“왜 나는 무기력하게 이런 일을 당하고 말았는가? 왜 나에게는 이런 시험을 이길 힘이 없는가? 그동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이런 일에 전혀 대비해 놓지 못했던가?” 그러고 난후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내 신앙이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왜 하나님은 이런 환란을 막아주지 아니하셨을까? 그러면 내가 그동안 기도하고 봉사한 것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렇게 되면 진짜 시험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불같은 분노의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에서 끌어 올라 오게 됩니다. 이것을 저는“사탄의 불청객”이라고 부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무능과 현실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데, 이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이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가까운 산(山)으로 가서 나무뿌리를 붙잡고 머리를 나무에 처박으면서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사람을 만나면, 모든 분풀이를 그 사람에게 다 퍼붓게 됩니다. 이것은 정말 응급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병원으로 치면, 응급 환자가 생긴 것입니다. 교회는 그것을 위해 합심기도가 필요합니다.
욥은 같이 기도할 자식들까지 모두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때 욥이 한 것이 무엇일까?
20절)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욥이 옷을 찢는 것은 격심한 분노의 감정을 나타냅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자신의 감정을 옷에 다 퍼부었습니다. 이것은 죄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서 화가 났을 때, 옷을 찢는 것은 죄가 아니었습니다. 옷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욥은 옷을 찢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머리털을 밀었습니다. 머리털을 민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욥은 환란을 통해 두 가지를 보게 됩니다.
먼저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한 순간의 불행으로 모두 다 없어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가 자랑했던 소떼와 양떼 낙타와 나귀와 종들 자식들 집들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자기 몸뚱이와 부인(婦人)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다음으로 그는 이 환란(患亂)중에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즉 인간이 하는 일에는 완전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철저한 것이 특징입니다.
욥의 불행은 철저한 불행이었습니다. 즉 재산(財産)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소떼와 양떼와 다른 가축들 모두 다 없어졌습니다.
자식(子息)들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죽었습니다. 종들도 소식을 전해 줄 종하나 말고는 모두 다 죽었습니다. 여기서 욥은 이 재난(災難)이 단순한 우연(偶然)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내가 모르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하신 일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진노(眞怒)앞에서 자신의 경건이나 믿음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알게 됩니다. 그분이 한 번 크게 숨을 쉬시니까 그의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욥의 자식(子息)들은 모두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크신 분이셨습니다. 욥은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다가 이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실제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하나님의 위엄(威嚴)앞에 머리를 깎고 엎드렸습니다.
여기서 욥에게 놀라운 것은 엄청난 불행 중에 하나님의 존재를 느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21절)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 올 지라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 하고”
욥은“하나님이 가져가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욥이 가진 생각은 “적신론”이었습니다. 즉“내가 알몸으로 왔기 때문에 알몸으로 가야하고 주신분도 하나님이시니까 거저가시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가파 토공에게 재산과 영적 자식들 모든 것들을 다 빼앗기고, 알거지가 되어 가족에게도 왕따 당하고, 뇌출혈까지 왔을 때, 울며 기도하는 중에 성경을 연구하다가 응답받은 구절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질투의 하나님”이시라고 원망합니다. 즉 “하나님은 내가 행복한 것을 못 봐 주셔서 제일 사랑하는 것을 빼앗아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嫉妬)는 그런 질투(嫉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행복한 것을 못 봐 주시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얼마든지 주고 싶어 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차원에서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을 때, 욥은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가져가셨다면서 찬송을 했습니다.
즉 그것을 잃어버린 고통은 크지만, 하나님께서 주셔서 그동안 함께 있었던 그 행복(幸福)이 더욱 감사한 것입니다.
자식(子息)을 잃은 슬픔도 크지만, 그동안 열 명이 함께 있으면서 사랑했던 그 기쁨을 크게 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아흔 아홉 개는 감사하지 않고, 없어진 하나로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욥의 신앙은 없어진 하나로 그동안 주셨던 아흔 아홉 가지를 감사하는 자세입니다.
22절)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입을 벌려 말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즉 생각이야 어떻든 간에 욥이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을 때, 그의 시험(試驗)에서 승리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 사람의 신앙입니다. 즉 축복 받고 기분이 좋았을 때는 누구든지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련(試鍊)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을 쏟아 놓으면, 그 사람의 신앙은 전부 엉터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시험(試驗)을 입으로 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아무리 억울하고 원통해도 입을 잘 지켜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욥이 승리하면, 무슨 큰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입을 지킨 것이 그의 승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