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으로 나무를 죽일 수 있을까?
얼마 전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시간마다 한 번씩 내보내는 무슨 건전사회 캠페인 같은데, 여러분 중에도 들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의 어느 마을에서는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나무를 벤다고 합니다. 사람의 키보다 몇 배나 큰 나무를 손 하나 대지 않고 자르는 것입니다. 방법도 간단합니다. 나무 앞에서 크게 소리만 지르면 됩니다. 그렇게 30일만 하면 나무가 쓰러져 죽는다는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고함을 지르면 나무의 생명을 죽이는 힘이 발생합니다.
고함은 사람의 영혼도 죽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계속 고함을 지르고 날카로운 말을 할 때 그 사람의 생명력은 서서히 시들고, 관계는 죽어갑니다. 사람을 소생시키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힘은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과 격려의 말입니다. -
이 캠페인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녀나 배우자, 제자나 부하 등 주변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지 말라는 것이다. 고함을 치면 마치 솔로몬 군도의 거목이 죽듯이 사람도 상처 받고 시들어갈 수 있다는 경고다.
들으면서 내용이 귀에 솔깃할 뿐 아니라 제안하는 주제도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시에 내 마음 한편에서는 내 고질인 ‘의심증’이 도지고 있었다. 그 이후로 계속 다음과 같은 의문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1. 과연 솔로몬 군도 사람들은 큰 나무를 벨 때 고함치는 방법을 사용할까?
2. 큰 나무에 30일 동안 고함을 치면 정말 그 나무가 죽을까?
의문을 풀기 위해 먼저 위 내용의 출처를 알아보았다. 곧 그것이 ‘로버트 풀검’이 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삼진기획, 2004)라는 책의 118쪽에 있는 ‘나무를 쓰러뜨리는 소리’라는 제목의 글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같거나 유사한 내용이 수없이 많은 홈페이지, 블로그에 올려져 있고, 또 인성교육, 강연, 설교 자료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었다,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그래서 원전(原典)인 풀검의 책을 구해 글 전문을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무슨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그런데 아쉽게도 저자는 그저 이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 정확한 자료를 보여줄 순 없지만 분명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
책 구하느라고 고생했는데 결과는 조금, 아니 조금 많이 허탈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저자도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지만 어딘지는 잘 모르는’, 그런 것이라니.
그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앞의 내용 뒤에 이렇게 글을 이어가고 있었다.
- 가엽고 순진한 밀림의 원주민들은 현대 문명 대신 그런 기이한 방법을 동원한다. 소리를 질러 나무를 죽인다니 얼마나 원시적인가. 현대적인 기계와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
이건 또 뭐야? 저자는 솔로몬 군도 사람들을 현대 기술의 혜택을 누리지 못 하는 순진무구한 원시인들로서 가엽다고 한다. 그렇다면 혹시 저자 자신도 ‘고함치면 나무가 죽는다’고는 믿지 않는다는 말인가?
게다가 그 다음 부분은 또 이렇게 이어진다.
- 도시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도 막히는 도로에게, 경기 심판에게, 청구서를 향해, 은행에서, 기계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소리를 질러본들 무슨 소용인가. 기계나 물건은 멀뚱멀뚱 거기 서 있을 뿐이다. -
이 글의 흐름은 이렇듯 좀 복잡하다. 시작 부분에서는 고함으로 나무 베는 신기한 이야기를 마치 사실인 듯 전하고는, 바로 뒤이어 그것은 단지 어리석은 원시 풍습이라고 규정한다. 또 그 뒤로는, 그런데 우리 문명사회에도 마치 밀림의 원주민들처럼 도로, 청구서, 기계 등에 대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마지막 결론은 갑자기 또 이렇다.
- 사람에 한해서는, 솔로몬 군도 원주민들의 생각이 옳다. 살아 있는 것에 대고 소리를 치면 그 안의 영혼이 죽는다. 막대기와 돌멩이는 팔다리를 부러뜨리지만, 말은 우리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
아, 이게 뭐야?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니 내 머리가 빙빙 돈다. 이제는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나무나 사람과 같은 생명체에게는 고함이 나쁜 영향을 주니까 큰소리치지 말 것이며, 도로나 기계 같은 무생물은 고함을 쳐도 아무 소용 없으니까 역시 큰소리치지 말라는 건가? 한 마디로, 생물에게나 무생물에게나 다 고함치지 말라는, 그 말인가?
그래서 도대체 저자는, 나무에 소리 치면 죽는다는 거야, 안 죽는다는 거야?
물론 나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사람들에게 고함치지 말라’는 말을 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이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고, 인용한 사례는 왜 또 그런가?
어쨌거나 나는 궁금증을 풀려다가 머리만 복잡해지고 말았다.
이제 그만 여러분께 몇 가지 질문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여러분은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뒷 부분이 이렇게 혼란스럽게 이어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나요, 아니면 전혀 뜻밖인가요?
글 전체의 구조와 전개 방식이 좀 웃긴가요, 안 웃긴가요?
라디오에서 이 말을 들을 때 저처럼 의심을 했나요, 아니면 당연히 사실일 거라고 믿었나요?
매스컴에서 이처럼 근거가 희박한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무 문제 없나요, 아니면 문제가 있나요?
또 사실 여부가 확실치도 않은 내용을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여기저기 퍼다 나르고, 교육, 강연, 설교 자료 등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아니면 ‘우리 사회에 위험한 것은 의심이 아니라 오히려 섣부른 믿음이다’라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앞의 말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전화로 물건을 파는 통신 판매업자라는군요.)
30일 동안 고함치면 과연 나무가 죽을까요?
끝으로, 솔로몬 군도에는 정말 나무를 베기 위해 소리치는 풍습이 있기는 할까요?
(2012. 5.20.)
(경남대 김원중)
<참고 자료>
http://blog.naver.com/thgk1124/110015188358
media literacy 2(비판적 해독능력,신문기사 요약).hwp
첫댓글 솔개 우화랑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네요.
우리 맏이 선우야.
아빠 홈피에서는 오랜만이네.
네 말이 옳아.
이번 글은 지난 번에 썼던 '솔개(혹은 독수리)' 이야기와 주제가 같지.
(무슨 말인지 궁금하신 분은 '김원중 살아가는 이야기' 112번 글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