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영 <그것>
세상에는 “큰 죄를 덮기 위해선 작은 죄를 곁에 둬라. 그래서 그 작은 죄가 큰 죄를 덮을 수 있게”라는 법칙(?)이 있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자의 죄를 덮기 위해 별거 아닌 이들의, 별거 아닌 죄가 늘 필요했다. 굵직한 정치적인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어느선가 불쑥 자극적인 연예인 스캔들이 터지고, 실세에 가닿지도 못한, 꼬리나 깃털에도 못 미치는 이들의 작은 죄가 요란하게 신문이나 뉴스에 오르내린다. 그렇게 실세는 늘 안전한 곳에서 웃을 수 있었다. 마치 그의 아버지가 어린 그를 이용해왔듯이...
그러나 그는 이것도 알았다. 작은 죄 때문에 큰 죄가 드러나기도 한다는 것을.
‘멈추기 위해선 소리를 질러야 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아주 큰 목소리로.’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되고, 너무 늦어서도 안됐다. 적당한 타이밍에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켜야 했으며 누구도 듣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록 큰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그것'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빠른 속도로, 총 소요 시간 12분 안에 저장드럼을 꺼내 체인불록에 연결해 특수트럭을 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의 이야기다. 그는 고지식하다는 말을 들을 만큼 회사 규정을 잘 지켰고, ‘정직원’으로 7년째 사택에 살고 있는 몇 안되는 ‘우수사원’이였으며, 일상의 모든 것을 일에 연관해서 살아가던, 일에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회사가 하는 일을 멈추게 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이 돌아보게 하기 위해 무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직원이자 우수사원인 그도 모른다. 회사에서는 저장드럼(그것) 안에 재생에너지로 쓰일 원자재 물질이 들어있다고 하지만 경력직원들 누구도 믿지 않는다. 재생은 커녕 완전한 폐기도 불가능한, 그저 유독하고 위험하기만 한 물질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할 뿐, '그것'이 무엇인지 그도, 그 작업을 하는 누구도 몰랐다. '그것'이 무엇인지 따질 필요도 없었고 그래봐야 좋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누구도 '그것'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가끔 과거의 일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그 일에 머무르지는 않았다. 되도록 과거의 일은 기억하지 않으려 애썼다. 앞날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을 심각하게 느끼는 스타일도 아닌 그는 오늘이 가장 중요했다. 눈앞에 닥친 일들을 어떡해든 해치우자는 생각뿐이었다. 하루하루가 벅차고 힘들었기에 그렇기도 했지만 그러는 편이 마음이 놓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미래라는 것을 짜내듯 생각이라도 하게 된 것은 동생네 부부 때문이었다. 나이 차이 많은 동생은 애틋했고, 매제는 그를 부모 대하듯 하였다. 큰 학원을 하다가 학원생의 자살로 인해 학원을 접게 된 동생네 부부가 귀농을 해 농사를 지을 것이라는 말에 그는 심사숙고 끝에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땅을 사 동생네 부부가 들어가 살게 한다. 그런데 오늘만 사는 그에게 미래를 생각하게 한 동생 부부가 죽는다. 여동생은 부부가 살고 있는 동네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암에 걸려 죽고, 역시나 암에 걸린 제부는 뺑소니 차에 치여 죽는다, 의문의 통화내용을 남긴 채.
그는 동생의 동네 주변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47개의 저장 드럼이 묻혀 있는 (50년 전에 설치했으나 딱 10년 전부터 안전장치가 빈번하게 추가된) 곳을 찾아 낸다. 그는 드럼통의 숫자들을 헤아리면서, 실은 저장드럼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교육 기간 중에 들었던 온갖 말들이 실은 다 거짓이었다는 것도, 이를 애써 외면해왔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저장드럼이 묻혀 있는 지역마다 근처에 반드시 공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비료 공장이거나 시멘트 공장이거나 염색 공장이거나 철근 공장이거나... “큰 죄를 덮기 위해선 작은 죄를 곁에 둬라.” 그제서야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 그는 통신보안팀 차량으로 보이는 차를 피해 황급히 그곳을 떠나면서 한번씩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세게 치기도 하고, 머리를 핸들에 쿵쿵 박기도 하지만 그는 아프지 않았다. 어떻게 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 후, 그는 어떤 일을 계획한다. 일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그의 직업을 이용한다. 막연했던 계획을 하나씩 실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일상은 평온했다. 누런 개가 그의 차에 치인 것을 제외하곤. 강아지라 하기엔 충분히 자랐지만, 아직은 털이 억세지 않고 부드러운 개가 그의 트럭으로 뛰어들었다. 차바퀴에 끼여 뜨거운 피를 흘리고 있는 그 개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까만 두 눈을 끔벅이며 그를 가만히 올려다본다.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이 이상한 듯 고개를 한 번 가로젓더니 이윽고 온몸을 심하게 떨다 끙 하고 신음 소리를 크게 내더니 숨을 거둔다. 그는 그 개를 차마 길거리에 놔두지 못하고 자신의 차에 싣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물어야 한다. 순해빠져선 죽는다.’ 그는 소리 내기 위해, 물기 위해 달린다.
첫댓글 읽는 내내 그것이 몸에 달라 붙는 듯 끔찍했습니다. 그럼 끔찍함에 점점 무뎌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결한 발제문 잘 읽었습니다. 수업 시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