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는 사랑을 찾아 / 조미숙
지난번 지리산에 갔을 때 파김치와 묵은지를 가져갔다. 바짝 구운 지리산 흑돼지 비계에 톡 쏘는 매콤한 파김치를 척 얹어 먹으면 고소한 풍미에 더해진 김치의 단맛이 확 배어난다. 다들 정신없이 먹어 치우는 바람에 내일을 위해 아껴 두자는 말까지 나왔다.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가 파김치로 옮겨 갔다. 담는 법은 까다롭지 않지만 파 까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하며 깐 파를 주면 담가 주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냥 그러지 말고 내일 인월 오일장이 서니 거기 가서 각자 몇 단씩 사와 같이 앉아서 노닥거리며 까자는 말까지 나왔다.
여행에서 돌아오니 다들 파김치를 담겠다고 야단이었다. 비법을 읊어보라며 나를 재촉했다. 별거 없다고 그냥 액젓에 살짝 절였다가 그 국물에 고춧가루 넣고 과일, 양파, 밥 갈아 함께 버무리면 끝이라고 했다. 나는 특별히 풀을 쑤지 않기에 밥통에 남아 있는 식은 밥 아무거나 쓴다. 간은 각자 식성에 맞추면 되고.
먼저 과외를 하는 동생이 파김치를 담갔다고 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 이에게 준다. 왜 나는 안 주냐고 했더니 어떻게 감히 내게 맛을 보일 수 있냐며 너스레를 떤다. 다른 이는 또 누구도 담근다는데 나는 못 하겠냐고 한번 해 볼까 한다고 했다. 결국 아는 언니마저 맛을 보고 평가내려 달라고 김치를 내밀었다. 보성의 어느 명인의 비법을 영상으로 배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맛이 어쩌고저쩌고할 단계도 아닐뿐더러 미각이 특출나게 발달한 것도 아니어서 한입 먹어보고 뭐가 부족한지 얼른 알아낼 수 있는 능력 또한 없다. 그냥 본인 입에 맞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조언을 구하니 열심히 맛을 탐구해 보았다. 맛은 좋은데 뒷맛이 좀 텁텁했다. 묵은 고춧가루를 사용했거나 멸치 가루를 넣었다는데 그 때문인가도 싶었다. 거기에 실파라서 쪽파 특유의 매운맛이 없었다. 그리고 거의 국물김치였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추석이 닥치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파김치를 담가야겠다고 새벽시장을 찾았다. 마침 오전 수업이 비어 시간 여유가 있었다. 파 두 단에 만육천 원, 열무 두 단에 만 팔천 원 주고 사 왔다. 대목이니 비쌀 것은 예상했지만 물가가 장난이 아니다. 싱싱한 꽃게 앞에서 간장게장을 좋아하는 둘째 생각에 한참을 망설였다. 김치도 담가야 하는데 너무 번거로울 것 같아 그냥 돌아섰다.
파부터 깠다. 두 단과 씨름을 마치고 부엌으로 가는데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니 나도 이제 늙나 보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을 해결한 뒤에 열무 손질하고 나서 파와 열무를 절였다. 열무가 너무 연해서 소금을 조금만 넣었다. 운동하고 올 시간을 고려해서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니 생각보다 열무가 절여지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아 그냥 씻어 건져놓고 양념을 준비했다. 고춧가루로 담글 파김치와 생고추를 갈아서 만들 열무김치 양념을 따로 해서 담다 보니 시간이 꽤 길어졌다. 부엌에 난장판을 하고선 부지런히 손놀림하는데 지켜보던 남편이 미안했는지 “지금 뭐한가?”한다. 아니, 보면 모르나 화가 치밀어 “내가 나 혼자 먹자고 이래?”하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물론 남편은 혼자서 애쓰는 내가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에 에둘러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안다. “아이고, 우리 마누라 고생하네.” 그렇게 말하면 더 좋았을 텐데. 피곤이 몰려오자 나도 그만 화를 내 버린 것이다.
파김치 맛은 역대급이었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먹는 즉석 육전 파티에서 당당하게 주요리를 차지했다. 뜨끈하고 부드러운 육전에 살포기 안긴 파김치 한 가닥을 크게 싸서 입에 넣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입속에서 팡팡 폭죽이 터진다. 쉴 새 없는 젓가락질에 한 그릇이 금방 뚝딱이다. 파김치는 짜파게티와 환상 궁합이지만 고기와도 찐한 사랑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사랑을.
첫댓글 선생님은 못 하시는 게 뭐예요?
아주 많아요. 그래서 늘 부러움과 시기에 눈이 멉니다.
마지막 단락에서 파김치의 맛을 글에서도 한껏 맛볼 수 있네요.
고맙습니다.
딱 봐도 부지런하시고 완벽한 분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맛 표현도 기가 막혀요. 입 속에서 팡팡 터지는 파김치 맛보고 싶네요.
부지런과는 거리가 멀어요. 나중에 기회되면 맛봬 드리죠.
구운 삼겹살에 얹어 먹는 파김치. 아는 맛이라 무섭네요. 한 밤에 쩝쩝거립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바로 꺼낸 뜨거운 전을 파김치와 함께 먹으면...으, 입에 침이 고이네요.
끝까지 읽고서야 멋진 제목을 이해했어요. 쪽파가 찾은 사랑의 대상은 고기군요. 재밌어요.
하하!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고민했어요. 고맙습니다.
읽는 내내 숨가쁘게 이어지는 내용에 몰두했습니다 파김치가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 같아요. 맛깔 나게 읽고 갑니다.
파김치는 라면과도 잘 어울리지 않나요? 나이들수록 파김치가 당기긴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