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
🌻07년 한국 주재 헌병에 관한 건' 공포 : 일본 헌병의 경찰권을 강화하고 병력 증가시킴. |
🌻10년 구한국의 고관 이완용 등 76명에게 일본 작위를 줌. 조선 귀족령에 따라 작위식을 거행함.
▶1910년 일제, 조선귀족 75인에 작위 수여
일제 친일파 매국노 이완용 등 75명에게 귀족작위 수여. | |
🌻17년 한강인도교 준공 🌻28년 서울법원청사 낙성식-서소문 🌻29년 조선일보, 서울에서 경평 축구대항전 개최 🌻45년 건준, 인공으로 발전적 해체 선언. 🌻45년 경기매일신문 창간 🌻46년 좌우 합작위, 합작 7원칙에 합의. 🌻49년 동독, 독일민주공화국 수립 🌻50년 유엔총회, 유엔군의 38선 이북진격· 유엔한국 통일부흥위원회 설치를결의 🌻50년 전남일보 창간 🌻61년 한국음악협회 발족. 🌻69년 한국 최초의 다목적댐인 진주 남강댐 준공. 🌻77년 국방부, 창군이래 최대규모 동원훈련 '쌍룡연습' 실시 |
🌻78년 충남 홍성에 진도 4의 지진 발생해 가옥 3800여채 균열.
▶1978년 10월7일 <충남 홍성 지진 발생(가옥 2800여채 균열, 강도 4)
한국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충남 홍성에 진도 5지진 발생. 오후 6시 쯤 충남 홍성군청 주변 건물들이 갑자기 심하게 흔들렸다. | 주민들은 '꽝' 하는 굉음과 함께 탱크가 지나가는듯한 소리에 전쟁이라도 난 것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였다.
땅바닥이 마치 바닷물처럼 물결 치기도 했다. 진도 5가 넘는 지진이 충남 홍성 중심과 일대에 발생한 것이다. 이 지진으로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부상 2명에 파손된 건물이 118동, 벽에 금이 가는 등 건물 균열이 1,000채 정도의 피해였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도 저녁 TV 뉴스를 보던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오랜 믿음을 대번에 뒤 흔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
🌻79년 전 중앙 정보부장 김형욱 파리에서 실종 : 박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회고록 집필중.
▶1979년 10월7일 김형욱 前 중정부장 파리서 실종
권력과 음모!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
5.16 군사쿠데타 주체세력,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장을 7년이나 지내며 막강한 권력과 힘을 자랑했던 남산 돈까스 김형욱!
| 불가능해 보였던 3선개헌을 성공시켜 유신정권의 막을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끼쳤던 그는 돌연 중앙정보부 부장에서 해임되고 미국으로 망명한다!
이후 유신철폐와 반 박정희를 부르짖으며 미의회에서 박정희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고 5.16 군사쿠데타 이후의 자신과 박정희에 관한 회고록 집필에 열중한다.
1979년 10월 7일 오후, 프랑스 파리 '르 그랑 세르클' 카지노에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당시 54세) 이 나간 이후 그를 봤다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 |
🌻80년 상공부, 중전기기. 디젤엔진. 전자교환기. 동제련 등 중화학투자 직권조정 발표 🌻80년 부산도시고속도로(남구-동래간 15.7㎞) 개통 🌻81년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7소구 시추 개시 🌻81년 교통부, 제5차 5개년 수송부문 계획 확정 🌻81년 주 국방부장관, 국회에서 북한의 남침 땅굴이 적어도 12개라고 언급 🌻83년 미국 국무성, 미국 외교관과 북한 외교관의 접촉을 허용했다고 발표 🌻84년 서울 남산의 케이블카 고장으로 탑승객 79명을 태운채 5시간 동안 공중에 멈춤 🌻87년 제31진영호, 백령도 서쪽 공해에서 조업 중 북한함정에 의해 피격 침몰, 선원 11명 실종 🌻88년 정부, 7개 항의 대북 경제개방조치 발표 🌻88년 국가유공자 615명 가짜-감사원 감사결과 🌻89년 한국 양궁대표팀, 제6회아시아양궁대회서 종합우승 🌻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89년 89' 한국전자박람회 개막 |
🌻89년 교황 요한바오로2세, 세계성체대회 참석차 방한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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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중국 정부,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안전협정에 서명토록 북한에 공식 권유 🌻90년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 폐막. 한국, 금메달 54개로 2위 🌻91년 서울반포동 팔레스호텔 앞에서 폭력조직 광주파 - 목포파 20여명 칼부림 패싸움 1명사망 3명 중경상 🌻91년 과학기술처, 자기부상열차 개발에 착수, 대전 엑스포 시험운행한후 초고속 자기부상열차 개발추진 🌻91년 제72회 전국체전, 전주공설운동장에서 국내외 선수 임원 2만2000여명 참가개막, 7일동안 계속 🌻92년 노태우대통령, 중립내각을 이끌 신임국무총리에 현승종 한림대 총장을 내정-국회임명동의. 🌻92년 합천군 가야면 88고속도로 ,11t 화물차가 화물차와 충돌, 뒤따르던 승합차 추돌, 일가족등 6명사망 🌻96년 김영삼대통령. 신한국당 이홍구대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자민련 김종필 총재, 4자회동 🌻96년 한국전자전(KES'96) 개막(세계 16개국 442개 업체 참가) 🌻96년 제77회 전국체육대회 개막(∼13일, 춘천. 강릉. 원주. 속초, 15개 시.도및 해외동포팀 2만556명 참가) 🌻96년 LA타임스, 미국은 80년 광주사태 당시 한.미 연합사 소속 병력차출 사전승인-군동원계획 지지- 보도 🌻96년 대전시 유성구 소재 충남방적 대전공장 화재 (피해액 120여억원) 🌻97년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 김대중 비자금 670억설 폭로 |
🌻98년 탤런트 이낙훈씨 별세
▶1998년10월7일 탤런트 이낙훈씨 별세
탤런트 이낙훈씨가 1998년 10월 7일 40여년 무대인생을 마감했다.
이낙훈씨는 어려서 무대 인생을 시작한 타고난 연기자였다.
10살 때 이미 라디오방송의 아역 성우를 했던 그는 중학 시절 연극을 시작했으며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후인 1962년 KBS 개국과 함께 본격적인 탤런트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TV를 통해 명성을 쌓으면서 연극과 영화에도 관심을 가져 연극 `리어왕` `맥베스`, 영화 `갯마을` `청춘극장` 등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 또 `6백만불의 사나이` `형사 콜롬보` 등 인기 TV 외화 시리즈를 번역하기도 했다. 1979년 탤런트협회 회장이 됐던 이씨는 11대 국회의원(민정당ㆍ전국구)을 지낸 후다시 본업인 연기자로 돌아왔다.
이씨는 1980년대 후반 영화제작과 영화수입에 손을 댔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는 1990년대 들어 다시 TV에 출연하는 한편, 경기고 출신 연극인들과 함께 `화동연우회`라는 연극단체를 만들어 정열을 쏟았다.
이후 정상적인 활동을 하던 이씨는 갑자기 지병인 당뇨병이 악화된 후 합병증으로 세상을 등졌다. |
2000년대 |
🌻2002년 강화도에서 돼지콜레라 발생
▶2002년 10월7일 강화도에서 돼지콜레라 발생
9일 오전 방제복을 입은 군·경 단속요원들이 돼지콜레라가 발생한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마을 입구에서 외부차량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마을을 빠져나가는 차량을 소독하고 있다. |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노모(46)씨가 기르던 돼지들이 의사(擬似)돼지콜레라 증상을 보여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정밀검사를 하는 동안 돼지값 폭락을 우려한 강화도 양돈농가들이 무더기로 돼지를 출하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시는 의사돼지콜레라 발병 소문이 돌기 시작한 7일 오후부터 강화도에서 평소보다 많은 양의 돼지가 인천·김포·부천 등지의 도축장으로 반출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인천 서구 가좌동 S식품 수탁과에 따르면 7일 오후부터 8일 오후까지 강화도에서 390마리의 돼지가 들어왔다.
이는 평소 반입량 100여마리의 3배가 넘는 수치. S식품은 이 돼지들을 9일 오전까지 도축, 유통시켰다. 인천시 농정과 관계자는 “돼지콜레라가 확인된 8일 오후 6시 이전에 팔려나간 돼지는 정상 출하로 봐야 한다”며 “7~8일 사이에 강화도의 돼지 출하량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확인 결과 돼지콜레라가 발생한 화도면에서 반출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농림부는 노씨의 농장을 중심으로 반경 3㎞ 안에 자리잡은 양돈농가의 돼지들을 대상으로 혈청검사를 실시, 돼지콜레라에 감염된 것으로 판명되면 역추적해서 판매 금지조치를 내렸다.
돼지콜레라는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이 아니기 때문에 감염된 돼지고기를 먹어도 탈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