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부터 읽으리라 벼르던 [지식의 역사]와 [세속의 철학자들]을 펴들었다.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럴까, [지식의 역사]는 완전 번지수를 잘못 찾았네? 내 타입의 책이 아니어서 중간에 덮었다.
<고대 문명에서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가장 위대한 혁신>과 발전에 공헌한 인물과 업적을 시대별로 보여주지만 글쎄, 내용을 보면 한결같이 학창시절에 배우던 아카데믹들이라 구미가 당기는 내용이 없다. 900페이지에 이르는 지식의 관용구들을 보는 건 시간낭비다. 내가 원하는 내용은 주연뿐 아니라 저변에 있는 조연들과 사건/사례들이다. 누구에게는 아주 소중한 책일진 몰라도 나는 훅 당기는 요소가 그만큼 딸리는 책이다. 그저 350페이지까지 읽은 게 감지덕지.
책을 두고 방대한 지식의 나열이라는데, 과연 이게 저자의 것인지 되묻고 싶다. 메소포타미아, 아스테카와 잉카,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피타고라스 그리고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3인방은 이 책 아니라도 많이 봤다.
재미있게도 [지식의 역사] 저자 서문에 [세속의 철학자들]를 소개하는 부분이 나온다.
[지식]의 저자 찰스 밴 도렌은 50년대 미국 TV 퀴즈쇼의 조작사건의 주역으로 한때 시끄러웠던 인물이란다. 뒤에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편집자 자리를 얻으며 저술로 연명했다. 그중 [지식의 역사]라는 방대한 클리셰를 저술했을 것이다.
[세속의 철학자들]은 볼만하다. 경제사상의 역사적 발전에 대한 책인데, 역사상 주효했던 인물이나 사례 말고도 무대 막간에서 활약했던 숨은 공로자들의 면면과 근간도 나와 있어 나를 만족시킨다.
이 책도 [지식]처럼 우리가 흔히 아는 애덤 스미스, 맬서스, 마르크스 등의 아카데미들을 줄줄이 나열하지 않아 좋았다.
그런 책을 뭐 하러 보나. 애덤 스미스의 관용어들-[국부론]이나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여러 면들을 알고 싶다.
실제로 스미스는 <대부분의 현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보다도 사업가의 동기에 공공연하게 적대적>이었으며 신흥 자본가들에게도 좋지 않은 시선을 가졌음에도 오늘날 세상은 그를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후원하는 성자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 심지어 스미스는 노예제도의 폐지도 자신의 논리를 동원해 주장했다. 책은 스미스가 단순한 경제학자가 아니라 철학자, 심리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라며 그를 극찬한다.
일생을 학문 연구로 보낸 맬서스와는 반대로 리카도는 20대에 사업을 시작해 돈을 벌고 40대 초반에 은퇴한 인물이다. 모순되게도 <현실세계의 일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학구적인 맬서스였고, 이론가로서의 면모를 보인 것은 실무적 인간인 리카도였>며, <부유한 지주계급을 옹호한 것은 소득이 많지 않던 맬서스였>고 리카도는 나중에 <지주가 되었으면서도 지주의 이익에 반대하여 투쟁했다>고 썼다. 그런데 사사건건 학문적으로 부딪히던 상극인 두 인물이 학문을 떠나선 희한하게도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이러기 쉽지 않을 텐데.
마르크스는 정리정돈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집에는 먼지투성이 원고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옷도 아무렇게나 걸친 채 눈도 제대로 못 뜰 정도로 담배 연기를 뿜으려 살았다 한다. 엥겔스는 자신이 경멸하던 부르주아지처럼 생겼고 또 그렇게 살았다. 키도 크고 금발에 생기기도 잘 생겼고 머리도 좋았다. 20개 언어를 어느 정도 구사했고 부르주아적 삶을 즐겼다. 마르크스는 병적일 정도로 완벽주의자였다. 엥겔스는 일필휘지로 한편의 논문을 뚝딱 끝낸 반면 마르크스는 어떤 문제든 죽도록 물고 늘어졌다.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였다고.
하지만 마르크스는 가장으로서는 무능 그 자체였다. 맨체스터 증권거래소의 존경받던 엥겔스는 마르크스 일가에게 수표와 돈을 끊이지 않고 보내주었다. 그래도 그는 돈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의 결정적 위대한 공헌은 다른 게 아니라 변증법적 유물사관이었고 자본주의 경제의 비판적 전망이었다.
사실 마르크스는 미래에 관한 어떤 전망이나 비전도 제시한 바가 없다. [자본론]도 사실은 엥겔스가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권이 나오기까지 마르크스 사후 18년이 흘러야 했다.
마르크스가 죽은 해에 태어난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아버지도 유명한 경제학자였다. 케인스는 마르크스와 같이 자본주의체제를 이해하는 철학에 깊은 영향을 주지만 그 양상은 많이 달랐다. 마르크스는 모질고 고지식하고 좌절에 빠진 반면 케인스는 인생을 사랑했고 명랑했고 대단한 성공을 거두며 오래도록 잘 먹고 잘 살았다.
슘페터는 케인스를 싫어했다. 철학적으로 케인스의 비전과 대립했고 자신의 학계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데 만족했지만 케인스는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존경을 받는 것이 싫었다 한다.
이외에도 로버트 오언, 생시몽, 푸리에 등 우리가 교과목에서 접하는 그런 선이 굵은 경제학자가 아닌 소소하면서도 독특한 인간미가 흐르는 인물들을 면면을 살펴볼 수 있어서 재미가 솔솔하다.
무엇보다도 독특한 인물은 [유한계급론]으로 유명한 소스타인 번드 베블런이다.
[세속의 철학자들]은 가끔 이런 저런 독서가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책이기도 하다. 잊을 만하면 회자되고 회자되는 꼴을 보면 전혀 유명하지 않은 책은 아니다.
첫댓글 학창시절 사회경제 시간에는
주로 숙면을 취했는지라
경제는 물론 학자들은 더 모르지요. ㅎㅎ
그럼에도
몇년전 아래의 글이 저에겐 신선하게 다가왔더랬지요. ^^
사회적 의식이 사회적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마르크스
이 글을 보는 순간
뒤통수 한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사회적 존재를 벗어나서 사회적 의식을 가지고있는 있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존경할만한 멋진 사람일거라 생각합니다. ^^
너무 함의가 큰 말이라 한참 고민되네요. 존경까지 받는, 님이 말한 사회적 의식을 가진 자라 함은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자를 뜻하는 거겠죠? 솔직히 말하자면 복덩이님 댓글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숨어 있습니다. 대단히 어려운 문제라 생각합니다. 패스~~
다음에 고양이 한마리를 더 들이면 이름을 스미스로....ㅋ
마르크스로 하기엔 애가 너무 지저분해질 것 같고...
내 사랑하는 마르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