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전자·정보통신 분과 김윤수
불과 몇 년 전 전 세계를 강타한 생성형 AI(Generative AI)의 충격은 인간의 언어와 지식을 디지털 공간에 초고속으로 찍어내는 기술적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수많은 직장인과 기업이 챗봇과의 대화에 익숙해졌고, AI는 든든한 ‘수동적 비서’로 자리 잡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이, 인공지능 생태계는 또 한 번의 거대한 지각변동을 마쳤다. 이제 AI에게 단순히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부탁하는 수동적 비서의 시대는 끝났다. 목표만 던지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팀을 꾸려 실행까지 완수하는 ‘에이전트 AI(Agentic AI)’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에이전트 AI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툴이 아니라 스스로 추론하고, 계획을 수립하며, 자율적으로 실행하는 독립된 주체에 가깝다. 이미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B2C 업무 비서부터 B2B 엔터프라이즈 프레임워크에 이르기까지 에이전트 생태계의 패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2026년 현재 이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인프라가 되었다.
그러나 이 눈부신 자율성의 이면에는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는 추론 전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PIM, 뉴로모픽 등 차세대 하드웨어(Backbone)로의 아키텍처 대전환이 요구되며, 방산 분야의 에이전트 워페어(Agentic Warfare)가 보여주듯 자율성 제어의 실패는 곧 치명적인 사회적·윤리적 재앙으로 직결될 수 있다.
결국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이를 다루는 인간 역시 강력한 주체성과 통제력을 갖춘 ‘에이전트 인간(agentic Humans)’으로 진화해야 할 것이다. 본 4부작 시리즈는 자율형 인텔리전스의 본질과 메커니즘, 글로벌 기술 지형을 조망하고, 나아가 인간과 AI가 균형을 이루는 이중 에이전트(Dual Agency) 모델의 정립을 통해 미래 컴퓨팅이 나아가야 할 책임 있는 이정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1부] 패러다임의 대전환: 생성형 AI를 넘어 에이전트 AI의 시대로
1. 인공지능 생태계의 범위와 새로운 분류
오늘날 인공지능(AI) 생태계는 단순히 하나의 기술 트렌드를 넘어, 인간의 지적·물리적 노동을 대체하고 확장하는 거대한 기술적 유기체로 진화하였다. 현재의 AI 범위는 기능과 작동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 분석형 AI(Analytical AI):
특정 규칙과 패턴을 학습하여 예측과 분류를 수행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집어넣으면, 그 안에서 인간이 찾기 힘든 패턴과 규칙을 찾아내는 데 특화되어 있고 수동적이며 주어진 데이터 안에서만 판단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보다는 있는 데이터를 분류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집중한다.
● 생성형 AI(Generative AI):
인간의 명령에 따라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ChatGPT, Midjourney처럼 최근 몇 년간 전 세계를 뒤흔든 AI이다. 분석형 AI가 데이터를 이해하는 데 그쳤다면 생성형 AI는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확장하고 창조한다. 생성형 AI는 인간이 던지는 프롬프트(명령어)가 있어야만 작동하며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코드 등 다양한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동작의 핵심으로는 확률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단어나 이미지를 조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 에이전트 AI(Agentic AI):
생성형 AI의 다음 단계(Next Wave)로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자율적으로 행동을 설계한다. 생성형 AI는 "이 글 좀 요약해줘"와 같이 매번 명령해야 하지만, 에이전트 AI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줘"와 같은 최종 목표(Goal)만 주면 된다. 이의 핵심은 자율성(Autonomy)과 추론 능력(Reasoning)으로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할 일 목록을 쪼개고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외부 툴을 사용하며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계획을 수정(피드백 반영)하기도 하여 목표를 달성한다.
실제 사례:
"시장 조사 보고서 써줘"라고 하면 알아서 구글링하고, 자료를 검증한 뒤, PPT 파일까지 만들어 저장해 두는 AI 비서
스스로 코딩을 하고, 에러가 나면 디버깅까지 마친 뒤 서버에 배포하는 자율형 개발 AI (Devin 등)
2. 실험의 시대의 종말과 에이전트의 요구
초창기 생성형 AI의 등장은 가히 혁명적이었으나, 철저히 사용자의 명령에 의존하는 '보조 도구'의 포지션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직 인간이 정교한 프롬프트(명령어)를 입력해야만 작동하는 챗봇 형태의 '수동적 비서'는 결과물의 퀄리티가 인간의 지시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로 갈렸으며, 연속된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자율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제 단순히 신기한 텍스트를 출력하거나 단편적인 업무를 도와주는 식의 실험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기업들은 단편적인 생산성 향상을 넘어, 비즈니스 전반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복잡한 워크플로우를 완전히 자동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혁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매번 사람이 개입하여 단계별로 지시해야 하는 시스템으로는 진정한 업무 자동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3. 디지털과 물리 세계의 융합
이러한 한계 속에서 기술은 현실의 한계를 깨고 물리적 세계로 도약하고 있다. 피지컬 AI(Physical AI)의 부상이 그것이다. 로보틱스, 스마트 모빌리티, 자율주행, 그리고 스마트 가전 및 정밀 제조 공장에 이르기까지 피지컬 AI는 현실 공간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인지하고 기계를 물리적으로 제어한다.
Key Takeaway
디지털 공간을 장악한 생성형 AI와 현실 세계를 움직이는 피지컬 AI의 급격한 성장은, 궁극적으로 이 둘을 연결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실행하는 고도화된 자율형 시스템, 즉 에이전트 AI로 나아가는 강력한 발판이 되고 있다. AI에게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부탁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AI에게 영화 한 편을 기획하고, 제작진을 꾸려 촬영을 진행하라고 명령하는 자율형 인텔리전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한국과학기술원 전기및 전자공학과 박사
Columbia 대학교 Research Scientist
삼성전자
아이캔텍(주) 대표이사
㈜엑스랩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