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나 공산당보다 그리고 좌파나 우파 보다 더 미운사람들...
선악의 윤리 도덕적 행위에 있어서 주지주의(主知主義)냐 혹은 주의주의(主意主義)냐 하는 물음이 있다. 이는 선이나 악을 행함에 있어서 아는 것이 먼저인가? 선의지가 먼저인가? 혹은 앎이 보다 중요한 요인인가? 의지가 보다 중요한 요인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실 이 질문에는 닭이 먼저인가 혹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물음 만큼 답이 없다.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알지 못한다면,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만으로는 선을 행할 수가 없을 것이며,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를 아무리 잘 알고 있다고 해도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선을 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어느 것이 우선이거나 어느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둘다 중요하고 둘 다 있어야 진정으로 ‘선한 행위’가 가능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친일이냐 친중이냐 친미냐 하는 문제로 논란이 있었고, 또 우파냐 좌파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있다. 어쩌면 이런 종류의 갈등이나 다툼은 역사를 가진 국가에서는 당연히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햇빛이 있으면 당연히 그늘도 있고, 왼발 오른발이 있어야 걸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다름은 서로 상호보완하여 보다 완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한계로 인해 이러한 대립은 가끔 갈등과 반목 그리고 심하면 투쟁과 싸움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할 때, 다툼이나 싸움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러한 이념싸움이나 진영논리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든 분명한 자신의 신념이나 관점을 가지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뚜렷한 신념이나 관점이 없이 자기 이익을 위해 그때 그때 유리한 쪽을 선택하는 기회주의자들도 있다. 이러한 기회주의자는 진실을 알기 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우파가 권력을 잡으면 괜실히 좌파를 비판하거나 좌파들에게 시비를 건다. 반대로 좌파가 권력을 잡으면, 괜히 우파에게 시비를 건다. 정치인이라면 이런 사람을 '철새 정치인'이라고 한다. 유튜브 등을 통해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공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오직 힘있는 어떤 편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심리적인 이유가 있다. 그렇게 해서 요행히 운이 좋으면, 먹고 사는데 도움도 되고, 또 정치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보통 ‘완장을 찬 사람’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사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 이러한 사람의 특징은 사람들이 늘 싸워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무언가 혼란하고 모호하고 복잡해야 기회가 많아지고, 어느 한쪽 편을 들면서 작은 사회적 성공의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마치 진급을 애타게 기다리는 장교가 빨리 전쟁이 터져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겉으로보기엔 신념이 강하고 심지어 애국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허당’인 경우가 많다. 그가 말하는 반 이상이 거짓말이거나 주워 들은 소리 즉 근거없는 개인적인 견해, 플라톤의 말을 빌리면 독사(doxa)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러한 영혼을 신랑인 신을 버리고 외도하는 영혼, 즉 이념의 창녀로 묘사하고 있다. 키르케고르도 이러한 사람들은 ‘정신이라고 조차 할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내가 어떤 쪽을 선택하든지, 어느 편을 지지하든지 그것은 자유이다. 하지만,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정당한 방법을 통해 ‘공동선’을 위한다는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중립을 지키는 것이 세상을 돕는 일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나약하기에 항상 “나도 틀릴 수 있다” “내 신념이 어쩌면 단순한 편견에 지날 수도 있다”라고 늘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안 되면 십중팔구 ‘이데올로기’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오늘 내가 무언가 강하게 외치고 있다면, 그 외침이 정당한 것인지 혹은 공정한 것인지 혹은 정의로운 것인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항상 검토하고 신중하게 성찰하고 진정으로 내 마음이나 정신 안에서 ‘명석판명’한 것을 지향해야 한다. 최소한 이러한 사람만이 ‘철학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