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6일 목요일
나는 독일인입니다
ㅡ노라 크루크
김미순
"이 작품은 역사 속에 휘말린 한 가족의 역사를 규명하는 놀랍도록 정직한 책이다. 읽기를 멈출 수 없었고, 다 읽은 후에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가족의 역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동안 작가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에 대해 쓰고 있다."
작가 세바스찬융거의 찬사다. 그림 동화책이라 생각했다. 내용도 깊이가 있었고 내용이 달라질 때마다 어울리는 그림이 있어 내용 이해가 퍽이나 쉬었다.
전후 2세대 '독일인에게 독일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작품은 새로운 세대 독일인의 정체성 문제를 깊이 탐색하고 있다. 정신적 고향을 상실하고 과거의 시간을 부정해야 하는 독일의 젊은 세대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되었까? 오늘을 사는 독일인에게 가장 예민한 정체성 문제를 이 작품은 추적한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데,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독일인의 정체성이 약한 이유는 자신의 기원에 대한 인식이 얕기 때문이다. 70년대 이후 '과거청산 교육' 이후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사' 로서의 과거는 여전히 금기 영역으로 남아 있었고, 그 결과 전후 2세대마저도 대단히 불안한 '시대적 자아' 를 가질 수밖에 없는 깊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미학적으로도 빼아난 작품이다. 이 작품의 고갱이는 과거 '내 고향이 견뎌야 했던 상실을 돌아보는 일' 이다. 이러한 상실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더듬는데 있어 세련된 방법을 취하고 있다. 사진의 신비로운 아우라와 짧은 문장의 함축적 암시가 절묘하게 결합된 여백의 미학적 상실을 입체적으로 재현한다. 단아한 다의성의 언어가 주는 처연한 여운이 깊은 울림을 준다.
테어도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또 '과거청산' 이란 '과거에 종결점을 찍고 가능하면 그것 자체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 이 아니라 , '지나간 것을 깨부수는 것' 이라고 말했다. 독일이 경우 68혁명 이후 '과거청산' 이 상당 정도 성공적으료 이루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지난 한 세기 동안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는 기이한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혼란스러웠던 미군정기, 4ㆍ3과 여순사건, 그외 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 6ㆍ25와 분단, 남북 체제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피땀 흘리는 사람들의 처절한 투쟁을 거의 잊고 있었다. 지금도 곳곳에서 눈 뜬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오고 있다.
언어가 절망한 곳에서 그림이 말한다는 말이 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말을 확인시켜준다. 읽기도 쉽고 내용도 금방 이해할 수 있어서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