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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문집(東國李相國集) - 제31권
●표(表)
○우정언 지제고(右正言知制誥)를 사은(謝恩)하는 표(表)
신(臣) 규보(奎報)는 아뢰나이다. 어제 제명(制命)을 받자와 성상께서 신에게 우정언 지제고를
제수하심을 삼가 입었나이다. 우정언은 요직(要職)이요 지제고는 근신(近臣)인데, 거듭 배명(拜命)
하오니 자신을 돌아보건대 황공하옵나이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자니(紫泥)의 조서[詔]를 지으려면 전아하고 화려한 문장이 아니고서는 성모(聖謨)를
부연할 수 없고, 조정의 반열에 서려면 강직하고 바른 사람이 아니고서는 국론(國論)을 진언할 수
없사오나, 오직 통달한 식견이 있는 자라야 ‘직책을 비운다.’는 비방을 면할 것입니다.
신과 같은 자는 세계(世系)가 평미(平微)하고 인격이 천단(淺短)하여, 어릴 적부터 문자만을
즐기어 잠시도 읊조리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급제가 발표되었을 때에는 바야흐로 벼슬
길이 탁 틔었는가 하였더니, 한산(閑散)에 던져져 오래 곤궁한 하소연을 하였나이다.
그러나 천성이 고지식하여 시속에 맞출 줄을 모르므로, 사람과 더불어 어울리는 일이 적으며 본래
소개하는 사람도 없었나이다. 그 때문에 몸을 사리고 퇴축(退縮)하여 죽도록 불우(不遇)함을 달게
여기려 하였삽더니 다행히 성대(聖代)를 만나 갑자기 홍초서(紅綃署)를 더럽혀서, 영광스럽게
궐내에 출입하여 백일(白日)의 신선이 된 듯하였나이다. 조정에 들어온 지 7년이 되기도 전에
벼슬이 뛰어올라 6품(品)에까지 이르매, 7품에 뛰어올라 사재승(司宰丞)을 제수받았음.
한 글귀는 잃어버렸다. 바야흐로 넘어지고 미끄러질까 근심하여 관직이 승진되기를 바라지 못하였
사온데, 성상께서 이 용허(庸虛)한 몸을 기억해 주시어, 특히 훈서(訓書)를 내리시어 갑자기 맑은
관직에 발탁하실 줄을 감히 생각하였겠나이까. 은영(恩榮)이 차서를 뛰어넘었으므로 사람들이
사다리 없이 하늘에 올랐다고 말하며, 총록(寵祿)이 별안간 더해지매 신은 채찍을 재촉하다가
수레가 엎어질까 염려되오며, 감격으로 눈물이 쏟아지고, 몸과 목숨이 아울러 가볍습니다.
이는 대개 성상 폐하께서 지극한 덕으로 포용해 주시고 깊은 인(仁)으로 덮어 주사, 비록 태양이
비치는 데 모닥불로 광명이 더해질 것은 아니나, 큰 집을 이룩함에는 뭇 재목을 모아서 넓은 것을
이룬다 생각하시어, 이 못난 것을 용납하사 큰 은혜에 목욕하게 해 주심을 만난 것이옵니다.
신이 어찌 감히 둔한 칼을 갈아 날이 서게 하고, 둔한 말을 채찍질하여 천리마를 따르게 하며,
주야로 게으르지 않아 더욱 나라뿐이라는 마음을 굳히고, 평탄한 데나 험난한 데나 변하지 않아
각별히 신하로서의 절개를 지키지 않겠사옵니까. 운운(云云)
[주D-001]자니(紫泥) : 자색의 인니(印泥). 옛날 문서를 봉할 때에 인니를 썼는데, 임금에 있어서는 특히 자니를 썼다.
[주D-002]한산(閑散) : 긴요하지 않은 관직.
[주D-003]홍초서(紅綃署) : 한림원(翰林院)의 아칭(雅稱). 한림원은 한 때의 재현(才賢)들이 모이는 곳이므로 이를 미화하여 이렇게 부르는 것이라 한다. 《東文選 答李允甫手書》
[주D-004]백일(白日)의 신선 : 대낮에 하늘에 올라 신선이 되는 일로, 갑자기 부귀하게 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通俗編 天文》
謝右正言知制誥表
臣奎報言。昨奉制命。伏蒙聖慈除授臣右正言知制誥者。拾遺職要。掌制地親。拜命稠重。撫躬戰懼。中謝。竊以演紫泥之詔。非典麗無以敷聖謨。立文石之階。非剛正不足陳國論。惟其有淹通之識。然後免瘝曠之譏。如臣者。世系平微。襟靈淺鯫。自童孺唯耽於文字。無須臾暫輟於諷吟。發策決科。方覬通衢之騁。投閑置散。久勞窮轍之呼。然守性直行而不解機宜。故與人寡合而本無介紹。以此奉身而退縮。固甘沒齒以平沈。幸遘昌期。遽玷紅綃之署。榮遊淸禁。擬登白日之仙。入朝未及於七朞。越序旋遷於六品。超七品受司宰丞。失一句。方懷顚蹶之虞。罔佇甄升之典。敢圖明聖曲記庸虛。特紆渙號於訓書。驟擢淸資於法從。恩榮不次。人言無級以昇天。寵祿暴加。臣恐促鞭而覆乘。涕緣感下。身與命輕。此蓋伏遇聖上陛下至德包含。深仁覆露。雖大陽所炤。不因爝火以增輝。謂廈屋之成。亦集衆材而致廣。故容蹇質。與沐鴻恩。臣敢不磨鈍生鋩。策駑希驥。夙夜匪懈。益堅國耳之心。夷險不渝。恪守臣哉之節。云云。
○예부 낭중 기거주 지제고(禮部郞中起居注知制誥)를 사은하는 표
운운. 명령이 대궐에서 나와 좋은 벼슬을 주시고, 은혜가 강군(江郡)을 적시어 쫓겨났던 신하를 소환하시매, 허리 굽혀 영광을 받자오니 황공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겠나이다. 중사(中謝)
삼가 생각하건대, 신은 성품이 무디고 기국이 용렬하고 문장은 능히 윤언(綸言)을 윤색(潤色)하지 못하고, 계책은 족히 곤직(袞職)을 미봉하지 못하면서, 정히 문명한 시대를 만나 바야흐로 시종(侍從)의 반열에 참예하였더니, 뭇사람의 비방이 집중되매 외로운 뿌리가 뽑히기 쉬웠나이다. 과연 풍파 같은 비방에 빠져서 장기 끼는 지방에 나가 원 노릇 하였더니, 정사는 졸렬하고 마음은 괴로우며, 녹은 적고 식구는 많았나이다. 비록 직무가 한가로와 일은 적으나, 땅이 박하고 백성이 가난함을 어찌하오리까. 몸은 말라 가죽만 남았고, 귀밑털은 온통 희어졌나이다. 천안(天顔)을 뵈는 길이 막히매 이 한몸이 뛰기도 어려웠고, 대궐을 그리워하는 정이 깊으매 공연히 천 줄기 눈물만 뿌렸나이다.
그런데 성상께서 돌보시어 조정의 반열에 돌아오게 하시어, 예조(禮曹)의 긴요한 직품을 제수하시고 간원(諫院)의 빛난 벼슬에 발탁하시며, 거듭 지제고를 제수하여 사림(士林)에 빛이 더해지게 해 주실 줄을 어찌 생각하였겠나이까. 이는 청직(淸職)과 요직(要職)이 합한 것이라 본래 어진이를 대우하는 자리거늘, 은혜와 총애가 겸해서 도리어 쓸모없는 사람에게 주시니, 한갓 감명만을 지극히 할 뿐 보답할 바를 모르겠나이다.
이는 대개 성상 폐하께서 하자를 씻어 주고 허물을 탕척해 주시며,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을 취하시어, 한 방울의 작은 물도 강호(江湖)의 넒음에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하사, 우악한 은총을 내리시어 어리석고 몽매한 몸에 과람히 빛내 주심을 삼가 만난 것이옵니다.
신은 삼가 평탄한 데나 험난한 데나 변하지 않아 더욱 상설(霜雪) 같은 절개를 가다듬고, 처음과 끝이 같기를 스스로 맹세하여 길이 비석(匪石)의 마음을 굳게 하겠나이다. 신은 못내[無任] 운운.
[주D-001]좋은……소환하시매 : 이 상국이 고종 6년(1219)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지방관의 죄를 묵인한 것으로, 계양도호부 부사(桂陽都護府副使)에 좌천되었다가 고종 7년 예부 낭중 기거주 지제고에 승진되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2]곤직(袞職) : 곤룡포(袞龍袍) 입은 직책, 곧 임금을 가리키는 말.
[주D-003]정사는……괴로우며 : 당(唐) 나라 양성(陽城)이 도주 자사(道州刺史)로 있을 때 납세를 제 때에 바치지 못하므로 관찰사(觀察使)가 독촉하였는데, 마침 주(州)에 고적부(考績簿)를 올리게 되매, 양성이 자서(自署)하기를 “백성을 어루만지고 사랑하는 데는 마음이 괴롭고, 납세를 징수하는 데는 정사가 졸렬하니 하등(下等)이라.”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唐書 陽城傳》
[주D-004]비석(匪石)의 마음 : 돌처럼 마음대로 굴릴 수 없는 마음. 곧 심지(心志)가 굳어서 확고 부동한 마음. 《시경(詩經)》패풍(邶風) 백주(柏舟)에 “내 마음은 돌이 아니라 굴릴 수가 없다.” 하였는데, 여기서 온 말이다.
謝禮部郞中起居注知制誥表
云云。命出宸居。優畀與縻之爵。恩霑江郡。召還謫宦之臣。傴僂拜榮。周章失措。中謝。伏念臣性資椎薄。器局庸虛。文章不能以潤色綸言。謨議不足以彌縫衮職。端遇文明之代。方參侍從之聯。衆爍橫生。孤根易拔。果陷風波之謗。出司嵐瘴之鄕。政拙心勞。食貧口衆。雖官閑而事簡。奈地瘠而民殘。皮腊僅存。鬢毛渾白。朝天路阻。難跳一箇之身。戀闕情深。空灑千行之淚。豈圖宸眷許復朝聯。崇緊秩於禮曹。擢華資於諫掖。申甄制職。增耀士林。淸與要俱。本是待賢之地。恩兼幸際。反加無用之軀。徒極銘藏。莫知報稱。此蓋伏遇聖上陛下滌瑕蕩垢。棄短取長。謂言涓滴之微。儻補江湖之廣。肆宣寵渥。過賁頑蒙。臣謹當夷險不渝。益礪懷霜之節。始終自誓。永堅匪石之心。臣無任云云。
○보문각 대제(寶文閣待制)를 사양하는 표
운운. 유림(儒林)의 높은 선발은 마땅히 탁월한 인재에게 맡겨야 하는데 성상의 특별한 은혜가 그릇 못난 인품에게 미치오매, 힘껏 사양하오니 수긍하여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문적(文籍)의 사(司)에 처하여 제왕(帝王)의 제작을 맡는 일은, 해박한 학문이 있지 않고서야 어찌 고문(顧問)하는 말씀을 받들겠사옵니까. 소임이 이미 어렵다고 해서 선조(先朝) 때부터 자주 이 직을 비워두었사오며, 간혹 제수하는 일도 있었으나 몇 세대를 지나도 오히려 몇 사람이 없었사옵니다. 신 같은 자는, 학(學)은 본래 섭렵하여 미세한 것을 분석하지 못하였고, 문(文) 역시 부박하여 대개 기골(氣骨)이 없사오며, 40세인 강사(强仕)의 나이에 늦게 문한(文翰)의 벼슬에 참예하였고, 구오(九五)가 등천한 시기에 정히 성명(聖明)의 시대를 만났으며, 두 번 청절(淸切)한 액원(掖垣)을 더렵혔고, 오랫동안 엄금(嚴禁)한 법종(法從)을 욕되게 하였으며, 여러 번 화요(華要)한 벼슬에 옮겼사오나 모두 제고(制誥)의 직을 떨어뜨리지 아니하였사오니, 이것도 오히려 소망에 넘치어 혹시 허물을 부를까 염려되옵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성상의 지극하신 인자로 또 문신(文臣)의 긴한 자리에 발탁하실 줄을 생각하였겠나이까. 은혜의 감격은 간절하오나 자신을 돌아보면 마땅하지 않사옵니다. 하물며 아경(亞卿)의 반열로써 참람히 3품의 관복을 더해 주심에리까. 신도 오히려 스스로 부끄럽사온데 어느 누가 능멸하지 아니하오리까.
바라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신의 말이 망녕되이 꾸며대는 것이 아님을 양찰하시고, 신의 몸에 맞지 않는 두려움이 있음을 아시어, 성명(成命)을 거두시고 다시 맞을 만한 사람을 가리시면, 천리마가 들어와서 여섯 필의 말이 끄는 수레[六轡之馭]를 담당할 것이며, 뱁새가 분수를 지켜 스스로 한 나뭇가지에서 편안히 지낼 것입니다. 신은 못내[無任]…….
[주D-001]강사(强仕) : 40세를 이른다. 《예기》곡례 상(曲禮上)의 ‘四十曰 强而仕’에 대한 대계(戴溪)의 주(註)에 ‘40세가 되면 지기(志氣)가 굳게 되어서 흔들리지 않으므로 출사(出仕)할 수가 있다.’는 문자에서 온 말이다.
[주D-002]구오(九五) : 여기서는 《주역》의 건괘(乾卦) 구오효(九五爻)를 가리킨다.
[주D-003]액원(掖垣) : 문하성(門下省)과 중서성(中書省)을 가리킨다.
[주D-004]법종(法從) : 천자의 거가(車駕)를 가리킨다.
[주D-005]뱁새가……것입니다 : 자신을 뱁새에 비유하여 분수에 맞게 살 것을 이른 말.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에 “뱁새는 깊은 수풀에 깃들되,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鷦鷯巢於深林不過一枝]”는 문자에서 인용된 말이다.
讓寶文閣待制表
云云。儒林高選。宜推卓爾之才。宸極異恩。誤及蕞然之品。力辭至切。頷肯爲期。中謝。竊以處文籍之司。待帝王之制。非有該通之學。曷承顧問之辭。任旣稱難。自先朝屢虛此職。間或有授。閱數代猶無幾人。如臣者。學本涉獵而未析毫芒。文亦浮彯而略無氣骨。四十強仕。晚參文翰之官。九五時升。端遇聖明之代。再玷掖垣之淸切。久叨法從之禁嚴。顧屢遷華要之資。皆不落制誥之職。此猶溢望。恐或招尤。敢圖聖慮之至仁。又擢詞臣之緊秩。感恩則切。撫己非宜。況以亞卿之聯。僭加三品之服。臣猶自愧。物孰不欺。伏望聖上陛下諒臣非妄飾之言。知臣有不稱之懼。追還成命。更擇可人。則騏驥見縻。來當六轡之馭。鷦鷯守分。自適一枝之安。臣無任云云。
○보문각 대제를 사은하는 표
운운. 서각(書閣 보문각(寶文閣))은 청직(淸職)이라 세상에서 선관(仙官)이라 칭하는데, 은총이 갑자기 내리매 청운(靑雲)이 평지에서 일어났고, 영광이 지극하오매 대낮에 하늘에 오를 것입니다.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완미하고 비루하여 재능이 적사오며, 외롭고 한미하여 후원이 없삽고 재목은 서까래로 쓰는 데에 맞지 않으며, 학문은 오묘한 경지를 엿보지 못하였사온데, 다행히 밝은 시대를 만나 좋은 벼슬를 하여서, 8년 동안 한원(翰苑)에서 학(鶴)이 하늘에 날 듯하였고, 7년간 닭이 깃들인 간원(諫院)의 나무에 있었나이다. 사신(詞臣)의 자격이 모자라면서 유자(儒者)로서의 영광스런 자리를 여러 번 겪었고, 헛되이 은혜만 받고 아직까지 보탬과 도움이 없었는데, 지극한 밝으심으로 다시 특이한 표창을 주시어, 붉은 가죽띠가 허리에 빛나매 동료들이 다시 보고, 누른 옷 입은 자가 길을 인도하매 마을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해 주실 줄을 어찌 생각하였겠나이까. 겨우 아경(亞卿)의 관질을 밟았는데 이미 팔좌(八座)의 위의와 같사오니, 무슨 재주로 이런 발탁에 참여되었는지 스스로 괴이하게 여기나이다.
이는 대개 성상 폐하께서 정사를 하심이 거문고 줄을 자유로이 고루는 것처럼 하시고, 사람을 쓰심이 나무를 마음대로 다루는 것처럼 하시므로, 천박한 자질도 거두시어 특이한 장려를 주심을 삼가 만난 것이옵니다. 신이 감히 본뜻을 분발하여 둔한 칼날을 갈아서, 늙어도 학문을 폐하지 아니하여 문덕(文德)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 않겠나이까. 신의 가진 바는 충성뿐이니 이것으로 성은(聖恩)에 보답하려 하나이다. 운운.
[주D-001]대낮에……것입니다 : 갑자기 부귀하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通俗編 天文》
[주D-002]닭이……나무 : 오랫동안 간원(諫院)에 있었다는 사실을 미안스럽게 생각하여 하는 말. 위(魏) 나라 때 유방(劉放)과 손자(孫資)가 오랫동안 추요(樞要)의 직에 있으니까 대궐에 있는 나무에 닭이 깃들었다는 고사에서 인용된 말이다. 《淵鑑類函》, 《中書總載》
[주D-003]팔좌(八座) : ‘여덟 자리’란 말로 고관 대작을 가리키는 말. ‘여덟 자리’는 시대에 따라 각각 달랐는데, 한(漢) 나라에서는 6조(曹)의 상서(尙書)와 1영(令)ㆍ1복(僕)을, 위(魏) 나라에서는 5조(曹)ㆍ1영(令)ㆍ2복야(僕射)를, 수(隋)ㆍ당(唐)에서는 2복야와 6상서를 쳤었다. 《小學紺珠 職官類 八座》
同前謝表
云云。職淸書閣。世號仙官。寵渥驟加。靑雲生地。光榮藉甚。白日昇天。中謝。伏念臣頑鄙寡能。孤寒無援。材不中榱椽之用。學未窺閫奧之深。幸際明時。獲從膴仕。八年翰苑。曾撫翼於鶴天。七載諫垣。濫棲身於鷄樹。顧乏詞臣之望。屢更儒者之榮。虛荷恩榮。訖微補益。豈意至明之鑒。復宣特異之褒。鞓帶映腰而儕輩改觀。黃裾引道而里閭聳覩。才躡亞卿之秩。已侔八座之儀。自怪何才。得參玆選。此蓋伏遇聖上陛下爲政若張琴之緩急。用人如制木之方圓。故收譾薄之資。兼畀殊尤之奬。臣敢不激昂素志。勉礪鈍鋒。老不廢其學焉。庶或裨於文德。臣所有者忠耳。以此報於聖恩。云云。
○감시 시원(監試試員)을 사양하는 표
운운. 형경(衡鏡 시험)으로 유능한 사람을 뽑는 것은 본래 유문(儒門)의 큰 솜씨에게 맡겨야 하는데, 명령을 내리시어 과람되이 속학(俗學)의 미련한 몸에 가해 주시니, 어찌 구차히 참람한 영화를 탐내어 차마 수다한 비방을 받겠사옵니까. 감히 고충을 피력하여 우러러 총문(聰聞)을 번거롭게 하옵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집안이 한미하고 천성이 혼매하여, 지난날 남성(南省 국자감)에 서명(署名)할 때엔 완석(頑石)이 우연히 오두(鼇頭)를 눌렀고, 동도(東都)에 방방(放榜)함에 미쳐서는 노마(駑馬)가 과연 준마의 뒤를 따랐으며, 문사(文詞)는 질박하고 고루하여 열 가지 체가 모두 부족하고, 학술은 거칠고 묵어서 한 권의 경서도 궁구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의 모자라는 점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인재를 품평할 수 있겠으며, 이로써 선비를 취택한다면 어진이를 유실하는 일이 없겠사옵니까.
그런데 감히 성상의 그릇된 은혜가 갑자기 문장(文場)의 중임을 제수하실 줄을 생각하였겠나이까. 하늘에 부르짖어 스스로 진정하오며 땅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하옵니다.
바라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간곡한 정을 양찰하시고 애긍히 여기는 생각을 다하시어, 칙명을 거두시고 다시 영현(英賢)을 선임하시면, 아무도 간담을 비추는 밝은 거울을 속이지 못할 것이며, 신 또한 낯에 땀이 흐르는 목수를 면하겠나이다. 신은 못내…….
[주D-001]남성(南省)에……눌렀고 : 남성(南省)은 국자감(國子監)이고, 완석(頑石)은 자신을 비유한 것이며, 오두(鼇頭)은 장원(壯元)을 가리킨 것이니, 즉 국자감의 진사시(進士試)에서 장원을 차지했다는 말이다.
[주D-002]간담을……거울 : 사람을 알아보는 식감(識鑑)을 가리킨다. 진(秦) 나라 때, 사람의 오장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 있었는데, 진 시황이 그 거울을 가지고 궁녀들의 변심을 관찰하였다 한다. 《西京雜記 3》
[주D-003]낯에……목수 :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말. 한유(韓愈)의 〈제유자후문(祭柳子厚文)〉의 “깎음질을 잘못하여 손가락에 피가 나고 낯에 땀이 흐른다.”는 문자에서 인용된 말이다.
讓監試試員表
云云。衡鏡擇能。本屬儒門之大手。絲綸降命。過加俗學之頑軀。豈苟貪僭越之榮。而忍受衆多之謗。敢敷危衽。仰冒聰聞。中射。伏念臣門地孤寒。性資昏蔽。昔署名南省。頑石偶壓於鼇頭。及放榜東都。駑蹄果殿於驥後。文詞則椎朴鄙野而十體俱缺。術業則荒唐蕪廢而一經未窮。如玆已短之莫攻。又可人才之是品。以此取士。得無失賢。敢圖宸極之誤恩。遽受文場之重柄。籲天自列。伏地莫興。伏望聖上陛下諒懇迫之情。軫哀矜之念。追還訓勅。更選英賢。則物莫欺照膽之明。臣亦免汗顔之斵。臣無任云云。
○감시 시원을 사은하는 표
운운. 인재를 뽑는 소임이 중하므로 권한을 사람에게 맡기는 일이 어렵사온데, 순순(諄諄)한 명을 내리사 하늘[임금]로부터 손을 빌리시니, 자신을 반성하여 송구하매 얼굴 둘 곳이 없사옵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천성이 우활하고 추솔하며 위인이 느리고 둔하여, 어려서는 학문을 즐겨 형안(螢案)을 대하여 피곤함을 잊었으나, 늘그막에는 벼슬에 끌려 두편(蠹篇 좀먹은 책)을 덮고 읽는 일을 게을리했는데, 윤음(綸音)을 부여하는 직을 맡음에 미쳐 다시 묶어 두었던 글을 꺼내어, 그 경술(經術) 공부를 부지런히 하기를 마치 지난날 과거에 급제하기를 구하던 것처럼 하오나, 워낙 노쇠한 탓으로 대부분 유망(遺忘)하게 되옵니다.
그런데 어찌 옛것을 상고하는 준철(濬哲)하신 마음으로 오히려 신의 독서 근고(勤苦)함을 기억하시어, 특히 총훈(寵訓)을 내려 과거장을 열게 하실 줄을 생각하였겠나이까. 자신을 돌아보건대, 가죽 속의 양추(陽秋)가 없는데, 어찌 눈 앞의 주색[朱]과 자색[紫]을 분변하오리까. 사양함이 위의 들으심을 돌이킬 수 없겠기에 처음엔 마음이 공구하였사오나, 정이 이미 성상께서 알아 주심에 감격된지라 문득 눈물이 흐르며, 남에게 부러움을 받으니 이 몸 더욱 영광된 줄을 알겠나이다.
이는 대개 성상 폐하께서 천하의 뭇 재주를 망라하고자 하시어, 먼저 근시(近侍) 반열의 말단 선비를 추장하심을 삼가 만난 것이어니와, 이미 후한 녹으로 길러 주시고 또 인재를 품평하는 권한까지 부여하시니, 우러러 이 은혜를 생각하매 무엇으로 보답하오리까.
재예를 고사하여 사람을 앎은 비록 신의 부족한 점이오나, 어진이를 얻어 나라를 도움은 지금이 바로 그 때이오니, 다만 마땅히 힘과 마음을 다하여 둔한 자질을 연마해서, 티끌을 모아 산을 이루되 천 길의 높이를 북돋고자 하오며, 모래를 뒤져서 금을 골라내어 혹 쌍남(雙南)의 보배를 얻으려 하옵니다. 운운.
[주D-001]형안(螢案) : 서안(書案)과 같다. 진(晉) 나라 차윤(車胤)이 집이 가난하여 반딧불을 책상 위에 모아 놓고 밤에 글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晉書 車胤傳》
[주D-002]가죽 속의 양추(陽秋) :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선악을 포폄(褒貶)하는 일. 《진서(晉書)》저부전(褚褒傳)의 “환이(桓彛)가 저부(褚褒)를 지목하여 말하기를 ‘저부는 가죽 속에 양추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겉으로는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듯하나 속에는 엄연히 포폄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인용된 문자이다. ‘양추(陽秋)는 ‘춘추(春秋)와 같은 것으로, 진 간문후(晉間文后)의 휘(諱)를 피하여 이렇게 쓴 것이다. ‘가죽 속’은 ‘마음속’과 같다.
[주D-003]쌍남(雙南) : 남방에서 나는 품질 좋은 금. 쌍남금(雙南金).
同前謝表
云云。掄材任重。授柄人難。有命諄諄。自天假手。省窮懍懍。無地措顔。中謝。伏念臣賦性迂疏。爲人遲澁。早年嗜學。對螢案以忘疲。晚歲牽名。掩蠹篇而懶講。及典演綸之職。更尋束閣之文。其服膺經術之痛勤。若求擧場屋之平昔。尙緣衰耄。多至遺忘。豈圖稽古濬哲之心。猶記讀書勤苦之力。特加寵訓。俾闢文闈。顧無皮裏之陽秋。曷辨眼前之朱紫。讓莫廻於上聽。始則心兢。情已激於聖知。忽焉涕出。被人所羨。知身益榮。此蓋伏遇聖上陛下欲網羅天下之衆才。先奬飾邇聯之末士。旣厚以豢養之澤。又畀之品藻之權。仰惟此恩。何以爲報。考藝知人則雖臣之所短。得賢助國者卽今也其時。但當努力竭精。礪朽磨鈍。積塵成岳。庶培千仞之高。披沙揀金。儻得雙南之寶。云云。
○조의대부(朝議大夫) 국자좨주 한림시강학사(國子祭酒翰林侍講學士)를 사양하는 표
운운. 명망이 현관(賢關)에 높은지라 더욱 사유(師儒)의 소임을 중히 여기고, 직책이 내서(內署)에 친근한지라 학사(學士)의 영화보다 높은 것이 없사오니, 오직 그만한 사람이라야 감당할 바이옵고 신 같은 자는 처할 데가 아니옵기로, 명을 듣자오매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을 어루만지며 황공할 뿐이옵니다. 중사(中謝)
신은 천성이 본래 우둔하고 식견도 해박하지 못하오며, 학문은 비록 뜻을 독실히 하였사오나 장구(章句)에 얽매이는 선비를 면하지 못하였고, 재주는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데 어찌 감히 조정의 기용(器用)에 대비할 수 있겠습니까. 정히 융성한 시대를 만나서 갑자기 청직(淸職)에 올라, 4년 동안 서연(書筵)에서 대제(待制)로 있었고, 10년 동안 고원(誥院)에서 대언(代言)을 하였사온데, 무릇 문장의 높은 선임을 거친 것은 크게 소망에 넘쳤으나, 이제껏 한묵(翰墨)의 조그마한 재능이 우러러 신화(神化)를 도운 것이 없사옵니다.
그런데 성상의 은총이 또 허명(虛名)을 채택하시어, 특히 벽수(壁水)의 훈도(訓導) 직을 제수하시고, 거듭 은대(銀臺)의 강독(講讀) 자리를 주실 줄을 감히 생각하였겠습니까. 비록 염치를 무릅쓰고 받고자 한들 부끄러운 빛이 없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뭇사람들보다 건너뛰어 승진하면 적신(積薪)의 핀잔을 받을 것이 두렵사옵기로, 궐문에 외쳐 스스로 호소하며 내리신 명을 거두시기를 기대하옵니다.
바라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어리석은 정성을 굽어 살피고 내리신 명을 거두시어 가까운 신하에서부터 한사(寒士)들에 이르기까지 널리 찾으시면, 나라에 사람이 없지 아니하오니 성상의 기대하시는 마음에 부응됨이 있을 것이며, 신도 능히 분수에 편안하여 비등(沸騰)하는 물의를 면하게 되겠나이다. 운운.
[주D-001]벽수(壁水) : 태학관(太學館)을 가리킨다. 고대 중국 천자의 태학인 벽옹(辟雍)의 사면에 물이 벽처럼 둘러 있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2]적신(積薪) : 선후가 뒤바뀌는 일. 《한서(漢書)》급암전(汲黯傳)의 “폐하가 신하를 등용하는 것은 마치 나무섶을 쌓아 올리는 것과 같아서, 뒤에 오는 사람이 위에 올라가게 됩니다.” 한 고사에서 나온 문자이다.
讓朝議大夫國子祭酒翰林侍講學士表
云云。望峻賢關。尤重師儒之任。職親內署。莫高學士之榮。惟其人而敢當。非若臣之得處。聞命隕越。撫躬震惶。中謝。性本憃愚。識非該博。學雖篤志。未免爲章句穿鑿之儒。才不適時。安敢備朝廷器使之用。端逢盛際。驟躡淸資。四年待制於書筵。十載代言於誥院。凡閱文章之高選。大過夙心。訖微翰墨之片能。仰裨神化。敢圖異眷。又採虛名。特除壁水訓導之司。申以銀臺講讀之地。雖欲冒受。得無愧容。況躐衆超躋。懼涉積薪之議。故叫閽自訴。期還出綍之言。伏望聖上陛下俯諒愚誠。追收渙號。自邇臣而精簡。至寒士而旁搜。則國不乏人。有副上心之虛佇。臣能安分。免遭物論之喧騰。云云。
○조의대부 국자좨주 한림시강학사를 사은하는 표
운운. 높고 맑은 자급은 대개 비범한 재주를 가진 선비를 대우하는 것이옵거늘, 문견이 적은 자가 갑자기 차지하지 못할 영화를 차지하였는데 사양을 받아 주지 않으시니, 매우 놀랍고 부끄럽기만 할 뿐입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기능(器能)이 천박하고 가세(家世)가 미천하며, 소시에는 부과(浮誇)하여 망녕되이 붕건(鵬騫)의 뜻을 가졌삽더니, 만년에도 오히려 엄체(淹滯)하여 오래도록 자복(雌伏)의 탄식을 하였사옵니다. 이미 성년(盛年)을 지나서 바야흐로 미미한 벼슬을 하였으니 구학(溝壑)에 떨어짐을 면하는 요행을 얻게 되었는데, 또 어찌 풍운(風雲)에 날아오르는 기회를 생각하였겠나이까. 그런데 창성한 시대를 만나 고귀한 벼슬에 거하게 되었나이다. 액원(掖垣)은 국론(國論)을 내는 중요한 곳인데 일찍이 7년 동안 보결하였었고, 문각(文閣)은 성문(聖問)을 받드는 긴밀한 관아인데 5년 동안 영광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바야흐로 관직을 비운다는 핀잔을 걱정하고 있는 터인데, 다시 높고 화려한 관직을 받았사옵니다. 청금(靑衿)을 권면하는 직책이 모범되지 못한 자에게 어찌 마땅한 일이며, 자안(赭案)을 모시고 토론하는 것이 어찌 재주 없는 자에게 맞는 일이겠습니까. 빙함(氷銜)을 바야흐로 받자오니 눈물이 비처럼 흐르나이다.
이것은 대개……정사를 마치 정관(貞觀)의 초기처럼 하시기 위하여, 어진이를 예우하심을 곽외(郭隗)로부터 비롯하시므로, 용렬한 인품을 거두시어 특별한 은혜에 목욕하게 하신 것이옵니다.
신이 감히 처음에 먹었던 마음을 더욱 격려하여 옛 업을 힘써 생각하지 않겠나이까. 우부(愚夫)의 일득(一得)을 가졌사와 만분의 일이나마 홍조(洪造)에 보답하려 하옵니다. 운운.
[주D-001]붕건(鵬騫) : 허부(虛浮)하고 과대(誇大)함을 이르는 말.
[주D-002]자복(雌伏) : 형세가 굴하여 남의 밑에 있음을 이르는 말.
[주D-003]청금(靑衿) : 서생(書生)을 가리키는 말. 옛날 서생들은 옷깃이 푸른 옷을 입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청금(靑襟)으로도 쓴다.
[주D-004]자안(赭案) : 임금의 궤안(几案). 임금의 궤안은 붉은 색을 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주D-005]빙함(冰銜) : 청귀(淸貴)한 관직을 가리키는 말.
[주D-006]정관(貞觀)의 초기 : 정관은 당 태종(唐太宗)의 연호. 당 태종은 영명(英明)한 임금으로서 정관 초기에 방현령(房玄齡)ㆍ두여회(杜如晦) 등 현상(賢相)과 위징(魏徵)ㆍ이정(李靖)ㆍ이적(李勣) 등 명장(名將)을 써서 태평성세를 이룩하였다.
[주D-007]곽외(郭隗)로부터 비롯하시므로 : 본인을 등용한 것으로부터 비롯한다는 말. 《전국책(戰國策)》연책(燕策)의 “연(燕) 나라 소왕(昭王)이 곽외(郭隗)에게 ‘어떻게 하면 인재를 모을 수 있겠는가’ 하고 묻자, 곽외가 대답하기를 ‘옛날 어떤 임금이 천리마를 사오라고 천금을 주어 보냈더니 천리마가 마침 죽었으므로, 그 사람은 죽은 천리마의 머리를 5백금에 사 왔는데……1년도 채 못가서 천리마가 세 필이나 왔다 합니다. 왕께서도 천하의 인재를 구하시려거든 이 외(隗)부터 먼저 예우하시오.’ 했다.” 한 고사에서 나온 문자이다.
[주D-008]우부(愚夫)의 일득(一得) : 자신의 재능에 대한 겸사. 《안자(晏子)》잡 하(雜下)의 “성인도 천 번 생각하노라면 반드시 한 번의 실(失)이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노라면 반드시 한 번의 득(得)이 있다.” 한 대목에서 인용된 문자이다.
同前謝表
云云。峻級淸資。蓋待不羈之士。謏聞寡見。遽叨非據之榮。靡獲遜辭。徒深驚愧。中謝。伏念臣器能淺近。家世平微。少也浮夸。妄有鵬騫之志。晚猶淹滯。久興雌伏之嗟。已過盛年。方霑微祿。以得免顚隮溝壑之爲幸。又安思騰躍風雲之是期。及遇昌朝。得都顯秩。掖垣出國論之要地也。曾補缺於七載。文閣承聖問之祕曹也。凡竊寵者五朞。方憂瘝曠之譏。復躡高華之秩。董靑衿之挑撻。不範何宜。侍赭案而討論。無才可稱。氷銜方掇。雨涕橫流。此蓋云云。爲政若貞觀之初。禮賢自郭隗而始。肆收庸品。與沐異恩。臣敢不益礪初心。勉思舊業。苟有愚夫之一得。小酬洪造於萬分。云云。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를 사양하는 표
운운. 궁중에서 은명(恩命)이 내리시어 서액(西掖)의 관원으로 충당하시니 지위가 청직과 요직을 겸한 것이라 마땅히 스스로의 영광에 만족해야 할 것이오나, 벼슬이 간의(諫議)란 명칭을 가진 것이니 어찌 이 책임을 감당하겠사옵니까. 몸을 어루만지며 창황하여 궐문을 두들기며 호소하옵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학식이 소루하고 천성이 천박하온데, 다행히 좋은 시대를 만나서 지나치게 추장하시는 은혜를 입어 갑자기 은대(銀臺)에 오르매 한갓 사인(私人)이라는 핀잔만 받았고, 벽수(壁水)에 노닐매 그릇 사씨(師氏 스승)의 칭호를 얻었사옵니다.
그런데 어찌 성상께서 다시 은전(恩典)을 풍성히 하시어, 갑자기 지함(芝函 조서)의 밝은 명을 내리시어, 약성(藥省 중서성의 별칭)의 빛난 벼슬에 발탁하실 줄을 생각하였겠습니까. 은총이 상례에 벗어나매 도리에 난처한 일이오니, 비록 부끄러운 얼굴을 무릅쓰고 받고도 싶사옵니다만, 여러 사람의 기롱을 어찌 견디오리까.
바라건대……애원을 굽어 살피시어 내리신 명을 거두시고, 많은 선비들 가운데에서 다시 영재(英才)를 가리시어, 보잘것없는 미미한 몸으로 하여금 조금이나마 제 분수에 편안하게 하여 주소서. 운운.
[주C-001]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 《동문선》에는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 되었다.
[주D-001]벽수(壁水) : 태학관. 고대 중국 천자의 태학인 벽옹(辟雍)의 사면에 물이 벽처럼 둘러 있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讓右諫議大夫表
云云。墮眷中宸。備員西掖。地兼淸要之選。宜足自榮。官以諫議。爲名曷當是責。撫己惶駭。叩閽訴號。中謝。伏念臣學識空疏。性資近淺。幸遘通嘉之會。過蒙甄奬之私。步驟銀臺。徒被私人之誚。優游壁水。謬叨師氏之稱。豈意上心復豐。褒典遽降。芝函之明命。擢除藥省之華資。寵過尋常。理難忝竊。雖欲冒顔而受。可堪交口之譏。伏望云云。俯諒哀祈。追還渙號。以藹然之多士。更揀英才。令蕞爾之微軀。少安愚分。云云。
○우간의대부를 사은하는 표
운운. 간서(諫署)의 높은 자리는 진실로 한직(閑職)이 아니온데, 엄한 분부로 발탁하사 사양함을 주지 않으시니, 분수를 살피매 마땅하지 않사온지라 부끄러운 낯을 어디에 두오리까.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젊어서는 졸눌(拙訥)하였고 늙어서는 더욱 우소(迂疏)한데, 한미한 데서 발탁되어 다행히 천년 만의 제회(際會)를 만나, 시종(侍從)에 발탁되어 10년 동안 제고(制誥)를 관장하였사온데, 바야흐로 제량(鵜梁)의 풍자를 두려워하는 처지에 다시 봉소(鳳沼 중서성(中書省))의 높음에 참예하게 되오니, 신이 무슨 재주가 있기에 여러 번 이 자리를 밟게 되옵니까. 돌아보건대, 한 말씀 보좌해드린 것 없이 무릇 세 번이나 들어가게 되는 영광을 차지하여, 관반(官班)이 당년(當年)에 훨씬 높고 녹봉(祿俸)이 금일에 지나치게 풍부하오니, 정이 속에서 감격되어 눈물이 밖으로 떨어집니다.
이는 대개……선비를 얻으심이 주(周) 나라보다 많고, 어진 이 예우하심을 곽외(郭隗)로부터 시작하시므로, 용렬한 인품도 또한 후한 은혜를 입게 해주신 것이옵니다.
신이 어찌 감히 노둔한 자질을 채찍질하고 둔한 기국을 연마하지 않으오리까. 평소의 포부를 다 기울여 진실로 위에서 알아주심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찌 미미한 몸을 아껴서 공론(公論)을 주달하지 않사오리까. 운운.
[주C-001]우간의대부 : 《동문선》에는 좌간의대부로 되었다.
[주D-001]제량(鵜梁)의 풍자 : 어질지 못한 사람을 등용한 데 대한 풍자. 《시경》조풍(曹風) 후인(候人)에 “사다새 할일 없이 수문에 앉아만 있고 날개 적셔 일하지 않네.[維鵜在梁 不濡其翼]” 한 대목에서 나온 문자인데, 이 시는 조(曹) 나라 임금이 군자를 멀리하고 소인을 가까이하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주D-002]선비를……많고 : 주 문왕(周文王) 초기에 인재를 잘 길러서 선비가 많았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3]곽외(郭隗)로부터 시작하시므로 : 본인을 등용한 것으로부터 비롯한다는 말. 《전국책(戰國策)》연책(燕策)의 “연(燕) 나라 소왕(昭王)이 곽외(郭隗)에게 ‘어떻게 하면 인재를 모을 수 있겠는가’ 하고 묻자, 곽외가 대답하기를 ‘옛날 어떤 임금이 천리마를 사오라고 천금을 주어 보냈더니 천리마가 마침 죽었으므로, 그 사람은 죽은 천리마의 머리를 5백금에 사 왔는데 1년도 채 못가서 천리마가 세 필이나 왔다 합니다. 왕께서도 천하의 인재를 구하시려거든 이 외(隗)부터 먼저 예우하시오’ 했다.” 한 고사에서 나온 문자이다.
同前謝表
云云。諫署選高。誠非曠瘝之地。嚴宸勅厲。莫容遜避之辭。省分非宜。靦顔何措。中謝。伏念臣少而拙訥。老益迂疏。拔自孤寒。幸際會於千載。擢登侍從。掌制誥者十年。方懼鵜梁之剌。復參鳳沼之遊。自惟何才。屢涉斯地。顧之一言之補。凡叨三入之榮。官班斗峻於當年。俸祿過豐於今日。情由中激。涕自外零。此蓋云云。得士多於維周。禮賢始於自隗。故令庸品。亦荷優恩。臣敢不鞭策駑資。研磨鈍器。盡傾素蘊。苟可報於上知。何惜微身。有不陳於公論。云云。
○동지공거(同知貢擧)를 사양하는 표
운운. 세상에서 거유(鉅儒)라고 칭한 이도 인재를 뽑는 데 이르러서는 보는 눈이 어두움을 면하지 못하는데, 신 같은 짧은 지식으로써 시장(試場)에 임하면 반드시 혼취(昏醉)한 것 같으리니, 칙명이 비록 엄하오나 의리상 어찌 그대로 받겠사옵니까.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몽매한 천성에 글이나 섭렵한 유자(儒者)로서, 학업은 정하지 못하여 마치 농사짓는 일을 폐하고서 수확을 구하려는 것 같사옵고, 글을 저술하는 데도 그릇됨이 많아서 수미(首尾)가 항상 전도되는 일이 많습니다. 젊어서도 본래 총명이 적었사옵고 늙어서는 더욱더 지둔하온데, 변변치 못한 부수(膚受)의 말학(末學)을 가지고서 망녕되이 한음(翰音)의 헛 이름을 전파하게 되어, 성지(聖知)를 욕되게하여 일찍이 조반(朝班)에 참예하게까지 되었사옵니다. 좨주(祭酒)는 유림(儒林)의 아름다운 직함인데 이미 지냈사옵고, 학사(學士)는 내한(內翰)의 친밀한 벼슬인데 아직도 눌러 있사오며, 간원(諫垣)에 출입한 적이 거의 9년이었고, 고원(誥院)에 노닌 적도 또한 10년이옵니다.
그런데 어찌 인명(仁明)하신 성념(聖念)이 선발의 권병(權柄)을 맡게 하실 줄을 생각하였겠나이까. 지난날 일찍이 성균(成均)의 전시(典試)에 있어서도 세상에선 기롱한 자가 많았사온데, 지금 다시 종백(宗伯)의 주맹(主盟)이 된다면 누가 적임이라 하오리까. 구차히 자신의 영화를 탐내어 굳이 소임에 나간다면, 비록 선발하는 일에 희미하지 않으려 하더라도, 갑자기 어리석음을 고치기는 진실로 어려운 일이오며, 사림(士林)의 수다한 비방은 그만두고라도, 성조(聖朝)의 어진 이를 잃는다는 것은 실로 작은 일이 아니옵니다. 죄과가 만일 갑자기 이르게 된다면 후회한들 소용이 있겠사옵니까.
바라건대……반한(返汗)의 혐의를 잊으시고 윤음의 명령을 거두시어, 다시 정강(精强)한 인품을 가리어 분제(奔踶)의 선발을 맡게 하시면, 반드시 괴재(魁才)가 누락되지 않아 족히 문덕(文德)에 보익될 것이며, 신도 또한 분에 편안하여 본직을 지키는 데 전심하겠사옵니다. 운운.
[주D-001]부수(膚受)의 말학(末學) : 겉만 배우고 속은 모른다는 말. 《동문선(東文選)》에 실린 장형(張衡)의 ‘동경부(東京賦)’에 ‘말학부수’(末學膚受)라는 말이 보인다.
[주D-002]한음(翰音) : 닭 울음 소리인데, 처하지 못할 지위에 처하여 실정보다 지나치게 성문(聲聞)이 나는 일을 비유한 것이다. 《주역(易經)》중부(中孚)에 “닭 울음 소리가 하늘에서 들린다.” 하였다.
[주D-003]반한(返汗) : 이미 내린 명을 환수하는 일.
[주D-004]분제(奔踶) : 사람이 타면 난폭해지고 옆에 있으면 발로 차는 말. 곧 사납기는 하지만 비상시에 쓰이는 준마를 뜻하는 것으로, 훌륭한 인재를 비유하는 문자로 쓰인다.
讓同知貢擧表
云云。世稱鉅儒。至掄材則未免視眩。臣以短識。其臨試也決若醉昏。勅雖有嚴。理豈冒受。中謝。伏念臣蔽蒙之性。涉獵之儒。講業未精。若廢耕而求穫。著詞多誤。恒操末以續顚。少本寡於聰明。老益加於遲鈍。粗將膚受之末學。妄播翰音之虛名。至忝聖知。夙參朝綴。祭酒儒林之美職也。已曾閱過。學士內翰之昵官也。尙爾冒居。出入諫垣者。或幾九年。優游誥院者。亦僅一紀。豈意仁明之眷。俾提選擧之權。昔嘗典試於成均。世多譏者。今復主盟於宗伯。孰曰宜哉。苟貪自榮。勉就斯任。雖欲不迷於揀採。固難遽革於昏愚。士林之騰謗也。猶可任聞。聖朝之失賢也。實非細事。過如忽至。悔可能追。伏望云云。忘返汗之嫌。寢出綸之命。更擇精強之鑑。伻當奔踶之求。則必不漏於魁才。仰足裨於文德。臣亦安分。心專守官。云云。
○동지공거를 사은하는 표
운운. 과장(科場)에서 재능을 시험하는 일은 본래 저울과 같은 감별을 요하는 것이거늘, 대궐에서 내리신 명이 그릇 무식한 몸에 미치오니, 무능한 자신을 돌아보매 송구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깊사옵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사람을 알아보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은 옛적부터요 지금뿐이 아닙니다. 곱고 추하고 길고 짧음은 보아서 알 수 있어도, 굽고 곧고 어질고 어리석음은 뜻으로 헤아리기 어려우니, 이는 어찌 재주는 얼굴에 감추어져 있고 지혜는 마음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니오리까. 그러므로 사율과(詞律科)를 베풀어 흉중에 쌓인 것을 시험하고자 하오나, 문(文)은 그럴 듯하면서도 질(質)은 그른 자가 있고, 혹 재주는 부족하여도 행실은 바른 자가 있으므로, 시권(試券)을 읽을 때에 종일 되풀이하여도 분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또한 방방(放牓)한 뒤에도 사람들의 훼예(毁譽)가 어떠할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신은 조정의 반열에 덧붙어 문원(文苑)에 길을 찾는 자로서, 학문이 근거가 없어 부허(浮虛)하여 실하지 못한데, 운명이 때와 함께 와서 뛰어오르고 앞으로 나가기만 해서, 매양 자계(資階)를 뛰어넘어 청직과 요직을 역임하여, 제고ㆍ학사의 중임을 어깨에 짊어지고, 과거 시관의 권한도 대강 손에 쥐었나이다. 그러나 그 때에 선비를 잃었다는 비난이 없지 않아, 신이 몸둘 바를 알지 못했던 일이 바로 어제와 같사옵니다. 그런데 어찌 성명께서 하자를 다 씻으시고 다시 고선(考選)을 관장하는 권한을 내려 주시어, 다시 현사(賢士)를 놓치는 비난을 거듭하게 해 주실 줄을 생각하였겠나이까. 사양하여도 허락을 얻지 못하매 물러와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옵니다.
이는 대개……정사는 우문(右文)을 숭상하시고 인(仁)은 능히 단점을 덮어 주시어, 이 노쇠한 물건으로 하여금 참월한 영화를 차지하게 한 것이니, 신이 감히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마음을 잠시도 해이치 않으려 하지 않겠사옵니까.
산에 들어가 뭇 나무를 고르는 일은 대목[大匠]이 아니면 분변하기 어렵사오나, 저자를 지나다가 기특한 보배를 보면 보통 사람도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고 좋아할 줄을 아는 법이오니, 진실로 훌륭한 인재가 있다면 어찌 끝내 식별하지 못하고 버리겠나이까. 한 영재(英才)라도 얻어서 조금이나마 성대에 이익되게 하려 하옵니다. 운운.
同前謝表
云云。棘院試能。本屬衡懸之鑑。楓宸降命。誤加墻面之軀。靜省顓蒙。伏深兢愧。中謝。竊以知人不易。自古非今。娟媸長短則見之可知。枉直賢愚則意所難度。豈以才藏於貌。智隱於心者歟。故張詞律之科。欲試胸襟之蘊。然文是而質非者有矣。或才虧而行備者在焉。不惟臨紙之時終日反覆而自惑。抑亦放榜之後畏人毀譽之何如。如臣者。附贅朝聯。索塗文苑。學無根據而浮虛不實。命與時來而騰躍敢前。每越資階。歷更淸要。制誥學士之重任。無不荷肩。場屋座主之劇權。亦粗梁指。然其時不能無失士之譏。臣之無所措顔者。至今宛如昨日矣。豈圖明聖悉滌瑕疵。復加掌選之權。更重遺賢之誚。讓不獲可。退莫寧心。此蓋云云。政尙右文。仁能護短。至使衰遲之物。得叨僭越之榮。臣敢不力所可當。心不暫弛。入山而擇衆木。非大匠雖難判分。過市而見奇珍。在常人猶知愛悅。苟有可觀之作者。亦何終昧而棄焉。得一英材。少益明代。云云。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추밀원부사 좌산기상시 보문각학사(樞密院副使左散騎常侍寶文閣學士)를 사양하는 표
운운. 지위가 높은 황추(黃樞 추밀원을 말한다)는 본래 고화(高華)한 데라고 칭하는데, 자검(紫檢 조서)의 명이 지나쳐서 노둔한 재주에게 미루어 주시니, 자신을 살피매 마땅하지 아니하와 글을 올려 스스로 호소하나이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천성이 옹졸하고 인품이 용렬하며, 글을 지으면 광탕(狂蕩)하고 부과(浮夸)한 말이 많고, 몸가짐은 긍지(矜持)와 신중(愼重)의 태도가 적으므로, 세상에서 모두 행실이 경박한 자라고 지목하옵니다. 신도 또한 멀리 미쳐 갈 기약이 없어 오랫동안 벼슬하지 못하고 한갓 즙린(戢鱗)의 탄식만 하다가, 늦게야 벼슬에 종사하였사오나, 그래도 오히려 양수(驤首)의 달림이 없었더니, 다행히 창성한 시대를 만나 비로소 요직에 참여하였으며, 매양 거두어 주시는 은혜를 입어 시종의 반열에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조용히 약성(藥省)에서 노닐고 긴밀히 화전(花甎)을 거닐었으며, 혹은 반궁(泮宮)의 사석(師席)을 욕되게 하였고, 혹은 비각(秘閣)의 천서(天書)를 맡았습니다. 이는 모두 분에 넘치는 영광이라 비록 자격없이 처하기는 어려웠으나, 이미 글을 주로 하는 소임이고 보면 혹 처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악(帷幄)의 정책에 참예하고 태형(台衡)의 아체(亞體)가 되는 것에 있어서는, 본래 경륜(經綸)의 보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라 부유(腐儒)를 수용하기에는 마땅치 않사옵니다. 더구나 초당(貂璫)을 귀에 달고 연승(輦乘)을 모시는 것임에리까. 신은 본래 나타난 공훈이 없사온데 어찌 이런 제수가 있을 수 있사옵니까. 거듭 생각하건대, 신은 오직 국가가 달단(韃靼 몽고(蒙古)를 말한다)과 사귐을 맺은 이래로, 문한(文翰)을 전임하여 항상 정신을 쓰고 생각을 짜내어 변변치 못한 서독(書牘)을 대략 엮어냈을 뿐이오니, 만약 성적을 따진다면 이것은 다만 붓대를 놀리어 오랑캐와 통상한 미미한 노고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족히 공이 될 것이 없사오며, 상을 받게 된다면 깃발을 빼앗고 적을 평정한 자들과 함께 승진되어야 하는데도 저들은 도리어 밑에 있게 되었사오니, 핑계할 말이 없사오며 낯이 부끄럽지 않겠사옵니까. 진실로 모르는 척하고 감히 받으면 곧 낭패되는 일이 뒤따를 것입니다.
바라건대, 신이 참으로 가득찬[盈] 것을 두려워하여서 사양하려는 것임을 아시고, 신이 사양을 가식하여 이름을 얻으려는 것이 아님을 양찰하시어 밝은 조서를 거두시고, 다시 영재(英才)를 구하시면, 함륵(銜勒)의 아래에 어찌 천리마가 매이지 않겠사옵니까. 울타리 사이에서 스스로 뱁새의 자유스러움을 지키겠사옵니다. 운운.
[주D-001]즙린(戩鱗) : 용이 비늘을 수습하는 일. 전(轉)하여 큰 뜻을 가지고 때를 기다림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주D-002]양수(驤首)의 달림 : 말이 머리를 쳐들고 달린다는 말로, 득의(得意)함을 뜻한다.
讓銀靑光祿大夫樞密院副使左散騎常侍寶文閣學士表
云云。位峻黃樞。本號高華之地。命宣紫檢。過推駑猥之才。省己靡宣。緘辭自訴。中謝。伏念臣天資拙訥。人品妄庸。爲文多狂蕩浮夸之辭。行己寡矜持愼重之態。世皆目薄行之輩。臣亦無遠到之期。久莫除官。徒有戢鱗之嘆。晚方從宦。尙稽驤首之驅。幸遘昌期。始參要職。每沐甄收之渥。不離侍從之班。雍容藥省之游。密勿花甎之步。或玷泮宮之師席。或司祕閣之天書。此皆踰分之榮。縱難謬處。旣曰業文之任。幸或得居。若其帷幄豫謀。台衡亞體。本欲待經綸之佐。未宜容腐爛之儒。況復珥於貂璫。而獲陪於輦乘。臣本無所效。何有此除。因反覆思之。則臣唯於國之與達旦。交好已來。專以文翰委之。常耗竭精思。粗修不腆書牘而已。若考績則此特弄筆通戎之薄勞也。不足爲功。及受賞則乃與褰旗平賊者同昇而彼反在下。辭無可籍。顔得無慙。苟冒昧以敢當。卽顚躋之隨至。伏望云云。知臣實懼盈而思遜。諒臣非飾讓以徼名。追寢明緡。更求英器。則銜勒之下。豈無騏驥之縻。蕃籬之間。自守鷦鷯之適。云云。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 좌산기상시 보문각학사를 사은하는 표
운운. 중추(中樞)는 긴밀한 자리요 서성(西省)은 화려한 벼슬이므로, 운구(雲衢)처럼 아득하여 일생에 이르기 어려우리라 생각하였삽더니, 조그마한 못난 자질이 곧 오늘날 이에 오르게 되매, 물러와 참람함을 살피오니 꿈결인가 의심되옵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우매하여 일을 알지 못하고 곧아서 모남을 떠나기 어렵사오며, 글은 졸속하여 도무지 좋은 말이 없는데, 사람들은 혹 망녕되이 허여하오나, 책을 범연히 보아 정밀한 데 이르지 못한 것을 세상에서 어찌 다 알리까. 이것으로 허명(虛名)을 얻었사온데 이것이 어떻게 성상에게까지 알려졌나이까. 벼슬에 들어온 지 몇 해 안 가서 겪은 관직이 이미 열경(列卿)을 넘었사오니, 1천 년의 때를 만남이 실로 아름다운 기회이옵고, 19년의 제고(制誥)를 맡음이 가위 영화로운 놀이었나이다. 세 번이나 간관(諫官)에 임명되고 두 번이나 학사(學士)가 되었으니, 그 동안 지낸 사림(士林)의 청선(淸選)만으로도 오히려 족히 남자의 소원이 성취되었사옵거늘, 하물며 이 추밀의 벼슬은 본래 범부(凡夫)의 바랄 바가 아님에리까.
그런데 감히 특이한 은혜가 갑자기 이 미미한 몸에 내려질 줄을 생각하였겠나이까. 귀 밑에 허연 머리가 흩날리니 형용이 비록 말랐다 하지만, 금의(金衣)가 쌍으로 인도하므로 문득 길거리의 영화가 피나이다. 신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던 바이옵니다.
이는 대개……성상께서 예지(睿知)를 발휘하시고 영웅을 부리시어, 어진이의 진출할 길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아울러 보잘것없는 용재(庸材)까지도 채용하신 것이옵니다.
신이 감히 평소의 조행을 더욱 연마하고 어두운 마음을 다시 씻지 않사오리까. 군상께 바칠 바는 오직 세한(歲寒)의 절개가 있사오니, 진실로 이 뜻을 변할 이 있겠사옵니까. 하늘이 내려다보는 데 맹세하옵니다. 운운.
[주D-001]금의(金衣) : 금빛으로 꾸민 화려한 옷을 입은 하인(下人).
[주D-002]누구도……바이옵니다 : 원문 ‘물역미지의(物亦未之擬)’의 뜻을 명백히 알 수는 없으나, 우선 상하의 문의로 미루어 이와 같이 번역해 둔다.
[주D-003]세한(歲寒)의 절개 : 굳은 절개라는 말. 《논어》자한(子罕)의 “날씨가 추운 뒤에야, 송백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대목에서 나온 문자이다.
同前謝表
云云。中樞地密。西省資華。邈若雲衢。謂一生之難到。蕞然蓬質。乃今日而得躋。退省僭踰。怳疑夢寐。中謝。伏念臣憃不諳事。直難離方。文拙速而訖無好詞。人或妄許。書泛觀而未至精析。世豈盡知。由此得其虛名。夫何逮於上聽。入官無有幾歲。歷位已踰列卿。一千載之遭時。實惟嘉會。十九年之典誥。可謂榮遊。三忝諍臣。再叨學士。以所閱詞林之淸選。尙足償男子之夙心。矧玆機密之司。本非凡庸之望。敢圖異渥遽及微軀。霜鬢兩垂。縱曰形容之枯槁。金衣雙引。忽爲途巷之光華。臣之得至於斯。物亦未之擬也。此蓋云云。發揮睿智。駕馭英雄。要開賢路之恢恢。幷採庸材之譾譾。臣敢不益研素履。更滌昏襟。所貢於君。唯有歲寒之節。苟渝此志。一如天鑑之明。云云。
○금자광록대부 지문하성사 호부상서 집현전태학사를 사양하는 표
운운. 자소(紫霄 궁궐)에서 명이 내리시어 황각(黃閣)의 높은 벼슬을 제수하시니, 제서(制書)가 반포될 때부터 얼굴을 들 수 없었사오며, 집에 돌아오기 전에 바로 근심빛이 나타났사온데, 어찌 영화를 탐내어 차마 우충(愚衷)을 호소하지 아니하오리까.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용렬하여 재능이 없고 한미하여 후원도 적으며, 옛글을 헛읽어 학문을 두루 관통하기 어렵고, 세미한 행실을 돌아보지 아니하여 경망하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장성한 나이에는 낙척[平沈]의 탄식을 면하지 못하다가, 만년에 와서 미관(微官)에 종사하였사오나 지위는 낭관(郞官)에 지나지 아니하였고, 비록 차츰 현달한 벼슬에 나아가기는 하였으나 어찌 감히 재상을 기대하였겠습니까. 다행히 밝은 때를 만나서 여러 번 우악한 은혜에 젖어, 시종의 밀접한 자리에 있었고, 제고를 관장한 지 여러 해 동안이옵니다. 옛사람들은 세 차례 승명전(承明殿)에 입직한 것을 영광으로 자랑하였는데, 소신은 무릇 다섯 번째 성랑(省郞)을 지낸 것도 영화롭거늘, 더구나 반년이 채 못 되어서 유악(帷幄)의 모획(謀畫)에 나아가 참예하고, 그 해 섣달이 다 안 가서 또 균형(鈞衡)의 지위에 발탁되었음에리까. 중추에 들어온 지 몇 달이 안 되어서 이처럼 승진하면 남들이 또한 정상이 아니라고 지목할 것이며, 허다한 선진을 누르고 올라서면 신이 어찌 부끄러움이 없겠습니까. 비록 그대로 처하고자 하여도 빨리 넘어질 터인데 어찌 하오리까.
바라건대……애원을 따르시어 그릇된 은총을 환수하소서. 어진이가 많은 시대를 당하여 인재가 모자라는 것은 아니오니, 세상을 울리는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명을 고치시기를 어찌 혐의하오리까. 운운.
讓金紫光祿大夫知門下省事戶部尙書集賢殿大學士表
云云。命出紫霄。位崇黃閣。自初頒制。無所措顔。不待歸家。尋已形於憂色。豈宜貪寵。忍不訴於愚衷。中謝。伏念臣庸鄙寡能。孤寒少援。虛讀古書而學難淹貫。不護細行而名涉輕狂。故當鼎盛之年。未免平沈之歎。及晚從微宦。望不過於郞官。雖稍進顯途。意敢期於宰相。幸遭明旦。屢沐優恩。居侍從之邇。聯。掌制誥者累載。古人以三入承明而自詑。小臣凡五忝省郞之爲榮。況復歲方半而進參帷幄之謀。臘未終而又擢鈞衡之地。入中樞無幾月而超受。人亦指爲非常。越先進許多員而躐登。臣豈安然無愧。雖欲濫處。其如疾顚。伏望云云。曲徇哀祈。追還誤寵。當富賢之代。所乏者非人。得鳴世之才。何嫌於改命。云云。
○금자광록대부 지문하성사 호부상서 집현전태학사를 사은하는 표
운운. 그릇이 차면 기울어지는 법이라 논사(論思)의 자리를 사퇴하기를 빌었삽더니, 내리신 윤음을 거두지 않으시고 도리어 위자(慰藉)의 말씀을 내리시며, 공경히 훈서(訓書)를 받자와 오직 감격하여 눈물이 흐를 뿐이옵니다. 중사(中謝)
생각하옵건대, 신은 천성이 편협하고 사무에 소루하여 종사한 바가 비록 문장이오나 오히려 조룡(彫龍)의 솜씨를 가지지 못하였사온데, 더구나 군무(軍務)에는 워낙 생소하옵거늘 어찌 일찍이 한마(汗馬)의 공이 있었사오리까. 일신을 돌아보건대 숫제 조그마한 공로도 없사오매, 이미 방원(方圓)의 쓰임에 적당하지 못할 뿐더러 또 진퇴(進退)의 기회를 짐작하지 못하여, 늦게야 미관(微官)을 같게 되었사오나, 이미 미미한 분수에 만족하였사옵니다.
그런데 노쇠한 물건이 명성(明聖)한 조정을 만나서 벼슬이 승진되고 자급이 뛰어올라 금방 요로(要路)에 오르고 문득 고위(高位)에 이르며, 곧 은장(銀章)을 차고 추부(樞府)의 영직(榮職)에 제배되었다가, 갑자기 금인(金印)을 띠고 봉각(鳳閣)의 자리에 참예하여 앉은 자리가 녹기도 전에 직함이 문득 고쳐질 줄을 어찌 생각하였겠나이까. 하물며 태학사의 칭호는 본래 서생(書生)의 가장 높이는 자리임에리까. 돌아보건대, 신이 무슨 재능이 있기에 이런 발탁을 받사오리까.
이는 대개……성상께서 선(善)을 구하되 행여 구하지 못할까 염려하시고, 사람을 등용하되 그 장점만을 취택하시어, 이 노쇠한 몸까지도 특수한 은명을 받게 하신 것이옵니다.
신이 감히 낮이나 밤이나 태만하지 않고 평탄한 데나 험난한 데나 변절하지 않으려 하지 않겠사옵니까. 조그만 재목이 비록 동량(棟梁)은 되지 못할망정, 확고한 뜻만은 금석(金石)과 같이 변하지 않겠사옵니다. 운운.
[주D-001]조룡(彫龍) : 문장이 훌륭함을 뜻하는 말. 문장의 꾸밈새가 마치 조각하여 용의 무늬를 이룬 듯하다는 뜻이다.
[주D-002]한마(汗馬)의 공 : 말에게 땀을 내게 하며 전장(戰場)을 왕래한 공. 즉 전공(戰功)을 이른다.
[주D-003]방원(方圓)의 쓰임 : 모날 데는 모나고 둥글 데는 둥글어서, 어디서나 적당하게 쓰이는 것.
同前謝表
云云。器盈則傾。乞避論思之位。汗出不返。申加慰藉之詞。祗服訓書。唯知感涕。中謝。伏念臣受資褊狷。臨事迂疏。所自業者文章。猶未擅彫龍之手。矧不閑於軍旅。何嘗有汗馬之功。環顧一身。略無片效。旣不適方圓之用。又莫斟進退之機。晚涉末寮。已甘微分。豈謂尫殘之物。得遭明聖之朝。凡荷遷除。輒超資級。故立登於要路。得徑到於巍階。方佩銀章。光拜鴻樞之寵。遽腰金印。超參鳳閣之遊。坐席未溫。頭銜忽改。況學士之稱大。本書生之所高。顧有何能。獲叨玆選。此蓋云云。求善如不及。用人取所長。至令疲曳之軀。與沐殊尤之命。臣敢不夙夜匪懈。夷險勿渝。蕞爾之材。雖棟梁之莫中。確然之志。與金石以不移。云云。
○지공거(知貢擧)를 사양하는 표 갑오년
운운. 윤음을 내리시어 과장(科場)의 시험을 맡아보게 하시니, 명주(明主)의 급급히 구하심은 어진 이를 얻으려는 것이온데, 우신(愚臣)의 구구한 식견으로 어찌 그 선발을 논하오리까. 감당할 바 아니므로 사피하기에 급하옵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천성이 우매하고 문견이 부족하며, 젊어서도 오히려 총력이 적어서 능히 한 가지를 들면 세 가지를 미루어 알지 못하였사옵고, 늙어서는 더욱 둔하여 열에 아홉 가지는 잊어버리는 지경이온데, 창성한 시대를 만나서 화려한 관직에 올랐으며, 무릇 문장에 관한 소임은 역임하지 않은 것이 없사옵니다. 과장의 시관까지도 또한 두 차례나 지냈사오니 이미 평생의 소망에 넘쳤사오며, 족히 독실히 배운 노고를 갚게 되었사옵니다.
그런데 성상께서 이 쇠잔한 몸을 거두시어, 다시 중책을 맡게 하고 여론을 상고하시지 않을 줄을 어찌 생각하였겠나이까. 지난날 인재를 취택할 때에도 이미 자색[紫]과 주색[朱]의 혼동을 구별하지 못하였사온데, 지금 노력하더라도 어찌 갑자기 수경(水鏡)의 밝음을 가져올 수 있사오리까.
반드시 어진 이를 잃고 말 것이오니 다만 꾸지람만 자초할 것이옵니다.
바라건대……애원을 불쌍히 여기시어 빨리 윤음을 내리시고, 명을 믿음 있게 고치시어 진실로 형경(衡鏡 저울과 거울처럼 밝고 공정한 인재 선발을 뜻한다)의 식견을 가진 인격을 선택하시면, 인재를 얻음이 풍성하여 온독(蘊櫝)의 무리를 모조리 거둬들일 것이옵니다. 운운.
[주D-001]한 가지를……못하였사옵고 : 추리력이 없음을 뜻하는 말. 《논어》술이(述而)의 “한 가지를 들어 세 가지를 미루어 알 줄 모르면, 다시 가르치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인용된 문자이다.
[주D-002]온독(蘊櫝) : 재능(才能)을 궤 속에 쌓아 둠. 곧 숨은 인재를 비유한 말이다. 《논어》자한(子罕)의 “아름다운 옥이 여기에 있는데, 궤에 넣어 두겠습니까, 비싼 값을 줄 사람을 찾아서 팔겠습니까?”라는 대목에서 나온 문자이다.
讓知貢擧表 甲午年
云云。批詞芝檢。假手棘圍。在明主汲汲之求。所欲得者賢耳。以愚臣區區之識。詎可汰其選歟。非所承當。急於辭避。中謝。伏念臣性資蒙弊。記問空疏。少尙寡聰。不能擧一而三反。老益加鈍。無奈在十而九忘。端遇盛時。驟躋華秩。凡以文章而爲任。無不歷叨。至如場屋之主盟。亦嘗再忝。此已溢平生之望。尙足酬篤學之勞。豈意至明曲收殘質。俾復當於重責。而不考於僉言。昔也取才。已不辨紫朱之混。今雖努力。豈遽廻水鏡之明。決必失賢。祗目速誚。伏望云云。俯矜哀懇。遄降兪音。改命有孚。苟擇懸衡之鑑。得人爲盛。盡收蘊櫝之倫。云云。
○지공거를 사은하는 표
운운. 인재를 뽑는 권한은 실로 큰 솜씨를 요하는데 윤음이 그릇 미미한 몸에 미치시니, 물러와 은영(恩榮)을 생각하매 한편 기쁘고 한편 송구하옵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부유(腐儒)로서 천성이 우매하여 약관(弱冠)에 과거를 보았으나 부끄럽게도 금방(金榜)에 이름을 쓰지 못하였다가 중년에 벼슬하여 요행히 옥당(玉堂)의 자리를 더럽혔사옵니다. 그러나 위로는 학사(學士)의 반열보다 낮으며 아래로는 공봉(供奉)의 자리만도 못하여, 귀밑털이 학(鶴)처럼 세어서도 허리에 서대(犀帶)를 띠지 못하였삽더니, 성명한 시대를 만나 비로소 청운(靑雲)의 걸음을 디뎌 오랫동안 제고(制誥)의 직에 있었사옵니다. 그러면서도 일찍이 훈모(訓謨)를 아름답게 윤색하지 못하였고, 두 번 고시관에 임명되어서도 또 영준(英俊)을 망라하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런데 감히 성상의 넓으신 아량으로 종전의 허물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방금 재부(宰府)의 벼슬을 제수하셨다가 곧 과장의 고시를 맡기실 줄을 생각하였겠나이까. 세상에서 허여하는 유장(儒匠)으로도 이것을 한 번도 지내지 못한 이가 있거늘, 신이 유독 무슨 기특한 재주를 가졌기에 무릇 세 번이나 임명되었나이까.
이는 대개……성상께서 정사에선 준재(俊才)를 부름을 먼저 하시고 덕에선 문(文)을 닦음을 숭상하시어, 어리석은 신이 글 읽는 일에 자못 힘썼다고 생각하시고, 오늘날 인재를 고시하는 일에 임하게 하신 것이옵니다.
신은 삼가 고예(考藝)하는 일에 온갖 정력을 기울여 큰 재덕을 품은 인재를 거두어서 조정에 들여보내어, 수의(垂衣)의 정사를 돕게 하려 하옵니다. 운운.
[주D-001]수의(垂衣)의 정사 : 태평한 정사를 뜻한다. 《주역》계사하(繫辭下)의 “황제ㆍ요순은 의상을 드리우매 천하가 크게 다스려졌다[黃帝堯舜垂衣裳而天下治].”는 대목에서 인용된 문자이다.
同前謝表
云云分桂之權。實關大手。出綸之命。誤及幺軀。退省恩榮。竊深欣悸。中謝。伏念臣爲儒腐爛。賦性悾恫。弱冠策名。愧莫書於金榜。中年筮仕。幸得玷於玉堂。雖然。上絶卑學士之班。下不及供奉之屬。鬢幾變鶴。腰未綰犀。及遭聖日之昇。始展天衢之步。久居制職。未嘗斧藻於訓謨。再闢選闈。又莫網羅於英俊。敢圖廓度。不責舊愆。方除宰府之官資。旋委文場之題品。世所許爲儒匠。有未一經。臣獨負何奇才。凡今三忝。此蓋云云。政先籲俊。德尙修文。謂愚臣頗力於讀書。奈今日俾臨於試士。臣謹當研精考藝。儻收抱璞之家。盛飾入朝。有補垂衣之化。云云。
○지공거를 사양하는 표 병신년
운운. 나라에서 선비를 취택하는 것은 뜻이 반드시 어진 이를 얻는 데 있사온데, 조정에 어찌 사람이 없어서 신이 홀로 권병(權柄)을 독차지한단 말입니까. 크게 지나친 것임을 스스로 알므로 기어이 사양을 하옵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어릴 때부터 홀로 경술(經術)을 전공하여, 업(業)은 진실로 근로(勤勞)를 다하였사오나, 뜻은 오히려 아득하기만 하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은 재주를 가지면 다방면으로 쓰이지만, 선비가 한 가지에만 얽매이면 쓰임도 또한 편협한 것입니다. 소신으로 말하오면 오직 학문에만 종사할 뿐이오매 당세에서 능한 줄로 오인하여, 한번 헛소문을 내매 문득 선가(善價)를 올렸사오며, 그 때문에 매양 조정의 직을 맡는 데는 일찍이 한묵(翰墨)의 소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소찬(素餐)이라 송구함을 견딜 수 없사온데, 하물며 종백(宗伯)이란 능한 자를 간택하는 직이오니 이는 사림(士林)의 분수에 넘치는 영광임에리까. 대저 이미 높은 벼슬에 이르렀으나 불행히도 그 숙망(宿望)에 어긴 일이 있사옵니다. 멀리는 학식이 왕도(王度)ㆍ국검(國儉) 같은 이도 이 자리를 한 번도 지내지 못하였고, 가까이는 재주가 승단(升旦)ㆍ양경(良鏡) 같은 이도 역시 그 권병을 두 번 관장한 데 불과하옵니다. 돌아보건대, 신이 무슨 사람이기에 항상 이 선발을 맡습니까. 더구나 노쇠함은 나날이 더하고 심령(心靈)은 아침에 가진 것도 저녁에 잊게 되오니, 비록 스스로 힘쓰고자 하나 너무도 참람하지 않사옵니까.
바라건대……성상께서 영단을 내리시어 미세한 정성을 따라 주시고, 윤음을 환수하시어 다시 거울처럼 밝은 사람을 명하시어, 난초와 쑥대가 혼동되지 않고 주색[朱]과 자색[紫]이 쉽게 구별되게 하소서. 그런 연후에야 나라는 어진 이를 잃지 않고 신도 또한 허물을 면할 것이옵니다. 운운.
[주D-001]소찬(素餐) : 공로가 없이 녹봉만 먹는 일. 《시경(詩經)》 위풍(魏風) 벌단(伐檀)에 “저 군자는 소찬하지 않는다.”고 보인다.
[주D-002]국검(國儉) : 곧 정국검(鄭國儉). 고려 신종(神宗) 때의 문신으로 어사대부(御史大夫)를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는데, 《증속자치통감(增續資治通鑑)》을 수정하는 등 문교에 관한 업적이 많았다. 《高麗史 列傳》
[주D-003]승단(升旦) : 곧 유승단(兪升旦). 고려 중기의 문신으로 고문(古文)과 경사(徑史)에 밝았다. 《高麗史 列傳》
[주D-004]양경(良鏡) : 곧 김양경(金良鏡). 고려 중기의 학자며 정치가. 재주가 뛰어나고 총명하며 예서(隷書)를 잘 썼는데, 벼슬이 뒤에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高麗史 列傳》
讓知貢擧表 丙申年
云云。國之取士。意必在於得賢。朝豈無人。臣獨專於操柄。自知大過。期以牢辭。中謝。伏念臣爰自童年。獨攻經術。業誠勤矣勞矣。志尙茫然懜然。雖然。人負多可則施必旁通。士拘一端則用亦偏係。以小臣唯事于學。而當世誤認其能。一鼓虛聲。便擡善價。故每歷朝廷之任。未嘗離翰墨之司。此已素餐。不堪深懼。況宗伯揀能之寄。是士林越分之榮。大抵雖已至於巍官。不幸違其宿望。遠則學如王度,國儉者。猶未得一經斯地。近則才若升旦,良鏡者。亦不過再掌其權。顧惟何人。常領玆選。矧衰耗日加而月益。卽心靈朝取而夕忘。雖欲自強。得無大濫。伏望云云。廓揮英斷。曲徇微誠。追收綸出之言。更命鏡明之鑑。使蘭蕭莫混。朱紫易分。然後國不失賢。臣亦知免。云云。
○지공거를 사은하는 표.
운운. 적은 일을 맡은 것도 두 번 하면 혹시 어긋나는 수가 있으며, 뭇 인재를 간선하는 책임은 한 번 맡은 것도 오히려 그 옳은 일인지 모르거늘, 하물며 지극히 어두운 신이 여러 번 고시의 일을 관장함에리까. 힘에 감당하기 어려우니 사양함이 망녕된 허식이 아니옵거늘, 허락하시는 성지(聖旨)를 얻지 못하고 도리어 극진히 타이르시는 윤음을 받았나이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천단한 재질에 기문(記問)의 학(學)이므로, 재상(宰相)은 본래 바란 바가 아니었사온데 인연하여 이처럼 높은 자리에 이르렀고, 사부(詞賦)는 비록 자신이 종사하였으나 허박(虛薄)하여 순유(醇儒)가 되지 못하였사온데, 그릇 성상의 알아 주심을 입어 여러 번 시관의 자리를 맡았나이다. 방(榜)이 발표된 뒤에 뭇사람들이 불평을 하였사온데, 땀이 마르기도 전에 또 이 책임을 맡으니, 붉은 얼굴이 다시 붉어져 어찌할 바를 모르겠사오며, 삼가 가명(嘉命)을 받자오매 창황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이는 대개……성상께서 사람의 단점을 덮어 주시고 미약한 것을 용납해 주시어, 이 식견이 부족한 자에게 인재를 뽑는 권병을 주신 것이옵니다.
신은 삼가 속속들이 살펴서 나라를 위하여 인재를 구하되, 산해(山海)의 유주(遺珠)를 얻어서 조금이나마 조정의 이용에 도움이 되게 하려 하옵니다. 운운.
[주D-001]기문(記問)의 학(學) : 마음에 자득한 것 없이 한갓 옛 글만 기억하는 학문. 《예기》학기(學記)에 “기문의 학은 남의 스승이 될 수 없다.” 하였다.
同前謝表
云云。句當小事。再斯容或有差。揀選群材。一尙未知其可。況臣至暗。掌選大頻。力所難堪。讓非妄飾。未獲曰兪之旨。反蒙曲諭之音。中謝。伏念臣蹇短之材。記問之學。宰相本非所期。而寅緣至此高位。詞賦雖所自業。而虛薄靡爲醇儒。枉承睿哲之知。屢涉品題之地。榜出之後。衆隨以欺。白汗未乾。又當斯任。赬顔更厚。莫識何爲。俯伏拜嘉。周章失措。此蓋云云。護人之短。容物之微。至令寡識之才。授此擇能之柄。臣謹當披文相質。爲國求人。儻得搜山海之遺珍。庶少補朝廷之利用。云云。
○퇴직(退職)을 비는 표 병신년(1236) 10월 16일에 표(表)를 올렸더니 21일 내시(內侍) 모(某)가 성지(聖旨)를 전하였는데, 올린 표는 궁중에 보류해 두고 나와서 일을 보라고 돈유(敦諭)한 것이었다.
신 모(某)는 아뢰나이다. 신은 본시 환갑되던 해에 이미 퇴직을 고하는 예에 해당되었고, 또 신병에 얽히었으므로 기무(機務)에서 풀려나기를 비는 바입니다. 오랫동안 어진 이의 진출할 길을 방해하였으니 이미 책임이 가볍지 않음을 염려하오며, 다시 70의 나이에 임박하였으니 무슨 빙자할 말이 있어 감히 처할 수 있겠사옵니까. 어리석은 심정을 피력하여 번거로운 기무(機務)를 해면하여 주시기 비옵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학업이 본래 정밀하지 못하고 재주도 채택할 만한 것이 없는데,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만나 오랫동안 움추리던 숙심(宿心)을 씻었사오며, 눈이 아직 자추(紫樞)에 익숙하지 아니한데 몸은 벌써 황각(黃閣)에 올랐사오니 신의 분수에 있어서는 영광됨이 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국가가 다난한 이 때에 가당찮은 재상의 지위에 처하여 이미 이길 수 있는 신기한 꾀를 내어 비린내 나는 오랑캐들을 쓸어 버리지 못하였사옵고, 또 조화(造化)를 돕고 원기(元氣)를 고르게 하여 음양의 화기(和氣)를 돕지 못하였으니, 기록할 만한 공이 없이 오직 녹만 허비할 뿐이옵니다. 물러감이 오히려 늦었사온데 머물러 있음이 무엇이 유익하오리까. 신의 마음을 아는 자는 마땅히 떠나야 한다 할 것이옵고, 신의 비위를 맞추려는 자는 한갓 위로하는 말만 할 것이옵니다. 그러나 혹 생년(生年)을 숨긴다면 곧 성상을 속이는 일인데, 어찌 그 안적(案籍)에 나이가 줄여서 써진 것을 요행으로 여겨, 조정의 고로(告老)하는 기한을 폐기할 수 있겠나이까. 하물며 쇠병(衰病)이 번갈아 침범하고 혼몽(昏蒙)이 너무 심하여 걸음은 비틀거려 거의 땅에 넘어질 듯하옵고, 몸은 여위어 겨우 옷을 이길 정도임에리까. 만약 뻔뻔스럽게 그대로 눌러 있게 된다면, 누구인들 지목하여 서로 비웃지 않겠사옵니까.
바라건대……성상께서 밝게 살피시고 강단을 내리시어, 특별히 허락하는 윤음을 내리시어 자유로운 낙을 갖게 하여 주시면, 마치 짊어진 짐을 벗는 것처럼 여겨 여생을 섭신(攝身)하는 데 힘쓸 것이오며, 비록 향리에 엎드렸사오나 하루인들 어찌 순국(殉國)할 것을 잊겠사옵니까. 운운.
[주D-001]고로(告老) : 연로(年老)로 인하여 사직하는 일.
乞退表 丙申十月十六日。上表。二十一日。內侍某至。奉傳聖旨。所上表留中。仍敦諭起視事。
臣某言。臣本生年。已當告退。又纏疾恙。乞解機務者。久妨賢路。已虞任責之非輕。更迫耄年。寧有藉辭而敢處。罄披愚懇。乞解繁機。中謝。伏念臣業本未精。才無可採。遭稀闊難逢之嘉會。雪淹延久屈之宿。心目未熟於紫樞。身已登於黃閣。在臣之分。爲榮莫加。但國家多難之時。居宰相非據之地。旣不得出奇制勝掃戎醜之腥涎。又未能贊化調元協陰陽之和氣。無功可錄。維祿是糜。退也猶遲。留之何益。知臣心者謂宜高謝。媚臣意者徒有慰言。然或祕其生年。卽已誣於上鑑。豈幸其案籍縮書之歲。而廢却朝廷告老之期。矧衰病之交攻。顧昏蒙之大甚。步欹側而幾至踣地。體淸羸而僅能勝衣。假若強顔而冒居。孰非指目而相笑。伏望云云。大明委炤。剛斷無疑。特垂開可之音。俾遂優遊之樂。則如釋負擔。餘生自力於攝身。雖伏里閭。一日何忘於徇國。云云。
○정유년 퇴직을 비는 표
운운. 나이가 퇴직을 빌 때를 당하였으므로 기무(機務)에서 풀려나기를 바라는 것이옵니다. 늙어서도 물러가지 않는 것이 어찌 평소의 마음이겠습니까. 일을 꼭 기필하지도 못하면서 오랫동안 높은 지위에 있다가 늦게서야 이 표(表)를 올리오니 황공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매양 시무(時務)에 어두워 오직 고졸(孤拙)만을 지켰을 뿐이온데, 일찍이 벼슬길이 막혔을 적에는 마치 구렁으로 떨어지는 것 같사옵더니, 성조(聖朝)를 만나서는 바람을 타고 오르는 것 같이 요진(要津)을 두루 거쳐서 기형(機衡)에 나갔사옵니다. 몸은 정승의 지위에 처했사오나 도(道)를 논하고 나라를 경륜하는 데 미숙하였고, 이름은 유신(儒臣)이라 칭하나 부족한 것은 문(文)으로 나라를 빛나게 하는 일입니다. 공연히 녹봉을 허비하여 처자를 부양하오니, 자신을 위한 계책은 그럴 듯하오나 세상을 보익하는 데는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이와 같이 쓸모없는 것이 다시 고로(告老)할 시기는 당하였사온데, 어찌 영화만을 탐하여 앉아서 어진 이를 방해한다는 꾸지람을 쌓을 수 있겠사옵니까 그러므로 지난 해에 물러가 쉬겠다는 청을 드렸사오나 성상께서 선뜻 버리기를 어렵게 여기시어, 특별히 내신(內臣)을 보내어 간곡히 윤음을 내리시니, 미천한 인품이 위유(慰諭)까지 하시게 만든 것이 진실로 부끄럽사옵니다. 명을 이미 어길 수 없어 부득이 직에 나갔사오나, 국가의 성례(成例)가 지금부터 폐기되는 듯싶사옵니다. 입을 가진 사람이면 다 기롱하니 낯을 들 수 없사옵니다. 지금은 노병이 더욱 심하여 걸음 걷기조차 어렵사오니, 억지로 눌러 있고자 한들 또한 어떻게 견디어 처할 수 있겠사옵니까.
바라건대……성상께서 지극한 인자로 두호하시고 큰 도량으로 포용하시어, 신의 물의가 비등함을 두려워하는 것을 살피시고, 신이 두 해를 연달아 아뢴 사정을 참작하시어, 벼슬을 돌려 주고 향리로 물러가게 해 주시면, 고기가 풀려나서 헤엄치고 노니는 양 족히 즐거울 것이오며, 새가 돌아와서 깃드는 양 잠시 휴식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운운.
丁酉年乞退表
云云。年當乞退。望解機務者。老而不退。是豈出於夙心。事未必期。乃久恬於巍位。上章稽晚。伏地慞惶。中謝。伏念臣動昧機宜。唯守孤拙。曾淹宦路。若推壑以下之。及遘聖朝。類搏風而上者。歷更津要。進詣機衡。身都相位而未聞乎論道經邦。名竊儒臣而所欠者以文華國。糜費廩祿。豢養妻兒。顧自爲謨則殆幾。其於補世也何有。以玆無用。復當告老之期。豈可貪榮。坐積妨賢之誚。故去歲有歸休之請。而上心難遽棄之爲。特遣內臣。曲傳宣語。誠愧賤微之品。仰煩慰諭之勤。命旣莫違。縱不獲已而就職。國有成例。猶恐自今而廢常。有口皆譏。無顔可措。今則老病交劇。步履猶艱。雖欲自強。又可耐處。伏望云云。至仁篤護。大度兼容。察臣懼群議之沸騰。諒臣連兩年而控告。俾還官政。退伏里閭。魚見放而泳游。亦足以樂。鳥知還而棲止。訖可少休。云云。
○두 번째 퇴직을 비는 표
운운. 어제 표를 갖추어 벼슬에서 떠날 것을 빌었더니, 교서를 내리시어 윤허하지 않는다고 하심을 받았사옵니다. 필부(匹夫)가 피곤함을 고하면 두 어깨의 짐을 풀게 하는 것이옵고, 노마(老馬)가 지치면 천릿길 가는 일을 멈추는 법이옵니다. 신이 물러가 쉬려고 하는 것도 그 뜻이 이와 같으므로 사정을 호소하게 되었사온데 윤음이 아직도 막연하옵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학문이 본래 공허하고 성품이 오직 편협하온데, 사조(四朝)를 거쳐서 우리 성상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봉인(奉引)의 반열에 참여하였사옵고, 양제(兩制)에 오른 지 몇 해 안 가서 논사(論思)의 지위에 뛰어올랐사옵니다. 장구(章句)의 부허(浮虛)한 지식을 가지고 조정의 요직에 처하였사오니, 그것은 평시에도 오히려 견디어 처하기가 어렵삽거늘, 바야흐로 국가가 오랑캐에게 시달리는 즈음이요, 묘당(廟堂)이 적을 요리할 시기에, 서격(書檄)이 무지(無知)한 오랑캐를 깨우칠 만하지 못하고, 지략(智略)이 제승(制勝)의 계책을 짜낼 만하지 못하면서, 헛되이 붓을 이끄니 무엇이 묘책에 도움이 되겠사옵니까. 더구나 다시 귀로(歸老)의 나이를 지났사온데 어찌 모거(冒居)의 부끄러움이 없겠사옵니까. 그러나 공이 없이 녹을 먹으면 뭇사람의 책망을 달게 받아야 하오나, 기한이 찼는데도 물러가지 않는다면 역시 본정이 아니옵니다.
이는 대개 폐하께서 전일 신의 정부(政簿)에 나이가 잘못된 것이라 하여 유임하게 하시므로, 신이 거역하지 못한 때문이었사옵니다. 지금 조지(詔旨)를 받자오니 전번의 유시와 같사옵고 또 병들지도 않고 늙지도 않았다고까지 말씀하시오나, 병을 어찌 거짓 칭탁하겠사옵니까. 누워 있은 지 이미 백일이 지났사온데, 늙음을 스스로 꾸민 것이 아니라 나이가 바로 70에 미친 것이옵니다. 비록 성상의 도량에는 너그럽게 보아주심이 있사오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돌아보면 또한 어찌 두려움이 없겠사옵니까. 이미 들은 말도 많은데, 거기다 또 더 보태서야 되겠사옵니까. 물러감이 이미 더디었으니 혹시 본조(本朝)의 성례(成例)가 폐기되었을 것이오나, 이제라도 사직을 얻는다면 오히려 예전(禮典)의 명문(明文)을 어기지 않는 편이옵니다. 사세가 절박한 이 때에 어찌 허락하시는 조서를 지체하시옵니까. 전에도 이미 청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지금도 해직하여 돌아가지 못한다면, 다만 한 때의 기롱을 받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만세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옵니다.
바라건대……매우 노쇠한 것을 민망히 여기시고 진심으로 호소한 것을 가엾게 여기시어, 구속에서 벗어나 편안히 휴양케 해 주시면, 황은(皇恩)이 비호한 바에 진실로 구렁에 묻힐 시기를 연장할 것이며, 천감(天鑑)이 다다르신 바에 어찌 임금 생각하는 마음을 게을리 하겠사옵니까. 운운.
[주D-001]양제(兩制) : 지제고(知制誥)와 제고(制誥)를 뜻함인 듯하나 미상.
[주D-002]귀로(歸老) :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양로(養老)하는 일.
二度乞退表
云云。昨具表乞還官政。蒙降敎書不允者。匹夫告勞。許釋兩肩之負。老馬方倦。可停千里之行。臣欲退安。義與此類。卑情自訴。兪詔尙稽。中謝。伏念臣學本空疏。性惟褊躁。歷四朝而至我代。始參奉引之聯。登兩制者無幾年。驟擢論思之地。以章句浮虛之伎。居朝廷機要之司。其在平時。尙難堪處。方國家厭虜之際。是廟堂料敵之時。書檄不能曉無知之戎。智略不得施制勝之策。虛提寸管。何益前籌。況復過歸老之齡。夫豈欠冒居之恥。然無功而妄食則甘受衆責。其滿限而未去則亦非本情。蓋陛下前以臣政簿誤年勅留。而臣不得違忤故爾。今伏奉詔旨。又如前諭。而申以不病不老及之。病豈僞稱。臥已更於百日。老非自飾。年正屆於七旬。雖聖度有所示寬。顧人言亦豈無懼。其已聞者足矣。又可使之多歟。退也已遲。雖或廢本朝之成例。今而得謝。猶不違禮典之明。文勢誠迫於玆時。詔何淹於曰可。前旣未遂其請。今又不解而歸。非獨一時之譏。亦爲萬世之笑。伏望云云。憫耄衰之甚。憐號訴之勤。俾脫牽拘。得從頤養。皇恩所庇。苟延塡壑之期。天鑑斯臨。曷怠戀軒之念。云云。
○세 번째 퇴직을 비는 표
운운. 어제 두번째 봉장(封章)을 갖추어 기무에서 풀려나기를 빌었사오나, 교서를 내리어 다시 윤허하지 아니하심을 받았사옵니다. 추언(蒭言)을 두번 올렸사오나 천청(天聽)을 돌이키지 않으시므로, 감히 번거롭게 세번째 표(表)를 올려서 허락하시는 말씀을 얻으려 하여 엎드려 기다리오니 황공하와 마음이 편하지 못하옵니다. 중사(中謝)
생각하건대, 신은 일에 있어서는 융통성 없이 한 가지만을 고집하옵고, 글에 있어서는 옛법에 따르지 않고 함부로 쓰는데도 다행히 좋은 때를 만난 탓으로 그릇 인량(寅亮)의 직에 참여하였사옵니다. 문벌이 한미한 것은 사람들이 본디 경멸하는 바이옵고, 언행이 조급한 것은 세상이 또한 다 아는 바이온데, 갑자기 뛰어올라 정승이 되니 뭇사람의 시비가 매우 많사옵니다. 다만 성주(聖主)의 지극하신 인자를 빙자하여 인신(人臣)의 높은 지위를 보존하였사온 바, 은명의 우악(優渥)이 후하고, 조정의 기탁(寄託)이 중하오매, 마땅히 근력을 다하여 자나 깨나 부지런하여, 한 몸에 지닌 것을 모두 기울여서 만승(萬乘)의 지우(知遇)를 조금이나마 보답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그러나 본래 우둔한데다가 노쇠까지 겹쳤고, 평소의 마음은 오히려 있사오매 비록 금석(金石) 같은 굳은 뜻은 변하지 않겠사오나, 얕은 그릇은 차기 쉬우므로 아직까지 연애(涓埃 물방울과 티끌)만한 이익은 보이지 못했사옵니다.
마땅히 휴직을 아뢰어 일찍이 물러났어야 할 터이온데, 오히려 연독(緣督)하여 그대로 처해 있사오니, 총록(寵祿)이 크게 지나쳐서 재앙이 이로 말미암아 생기옵고, 질병이 번갈아 침범하여 몸이 점점 위태로운 지경에 당하였사옵니다. 그래서 지난 겨울부터 간절히 호소하였사오나, 돌아가게 해주시는 관대한 조서를 받지 못했사옵니다.
이에 감히 다시 아뢰어 기어이 청을 이루려 하옵는데, 어찌 강물을 터놓는 듯한 결단을 지체하시어 초개(草芥)같이 작은 것을 선뜻 버리지 않으시옵니까. 생각하건대 ‘조그마한 재능을 가진 자이므로 조금의 보익은 있을 법하니, 차라리 몸을 편히 할 계책을 이루어 주지 않고서 오히려 나라를 위하여 머물러 두는 것이 무방하리라.’고 여기신 듯하오나, 재주의 천박함이 이미 이러하옵고 늙어서 더욱 혼미함이 또 저러하온데, 어찌 쇠잔하여 쓸모없는 몸으로, 감히 염치 없이 직위를 탐할 마음을 가질 수 있겠사옵니까.
바라건대……특별히 하고 싶어하는 것을 따라 주시는 인자함을 베푸시어, 병을 요양할 곳으로 나아가게 해 주시면, 화일(化日)에 자유롭게 노닐면서 한적한 사람이 되겠사오며, 성공(聖功)을 가영(歌詠)하여 태평의 송(頌)을 선양하겠사옵니다. 운운.
[주D-001]추언(蒭言) : 꼴 베는 사람의 말, 곧 고루하고 촌스러운 말이란 뜻으로 자기의 말에 대한 겸사.
[주D-002]인량(寅亮) : 여기서는 태보(太保)를 비유한 말이다. 《서경(書經)》주관( 周官)에 “천지를 인량하여 나 한 사람을 도우라.” 하였는데, 인량은 공경하여 밝힌다는 뜻이다.
[주D-003]만승(萬乘) : 원래는 만승의 수레를 낼 수 있는 천자의 나라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왕을 뜻한다.
[주D-004]연독(緣督) : 중도(中道)를 순하게 지킴. ‘독(督)’은 웃옷의 등솔기, 곧 중도의 뜻. 《장자》양생주(養生主)의 “연독하는 것으로 떳떳함을 삼는다.”는 대목에서 인용된 문자이다.
[주D-005]화일(化日) : 덕교(德敎)로 나라를 다스리는 날이란 말.
三度乞退表
云云。昨再具封章。乞解機務。蒙降敎書復不允者。芻言再貢。淵聽靡廻。敢將三黷之煩。覬荷一言之肯。俯伏以俟。凌兢罔寧。中謝。伏念臣事莫通變而蔽于執方。文不據古而失在率意。徒以遭逢之幸。謬參寅亮之司。門地之孤寒也。人所素輕。言行之燥辨也。世亦備識。暴起而相。衆噪孔多。但憑聖主之至仁。粗保人臣之卓位。恩命之優渥厚矣。朝廷之寄託重焉。固當耗竭筋骸。憂勤寤寐。罄例一身之有。少酬萬乘之知。然本惟鈍蒙。申以衰耗。夙心尙在。雖不移金石之堅。淺器易盈。訖莫效㳙埃之益。宜告休而早退。尙緣督以剩居。寵祿大過而災由是生。疾病交侵而身至漸殆。故自去冬而哀訴。莫蒙寬詔之遣歸。玆敢復陳期於得請。何久鬱江河之決。未遽捐草芥之微。顧若負其片能。理或存於少補。寧不作安身之計。猶不妨爲國而留。然才之譾譾也旣若玆。而老益昏昏也又如彼。豈可以尫殘無用之狀。乃敢有貪冒竊位之情。伏望云云。特垂從欲之慈。俾就養痾之地。優游化日。得爲閑適之人。歌詠聖功。助播泰平之頌。云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