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명량> 초인적 실존의 재조명
-임 종 호-
영화 ‘명량’은 지난 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유례없는 화제작이다.
7월 30일 개관이래 연일 관람인파 신기록을 갱신하면서 9월 중순에 이르러서는 무려 1,7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 되고있다. 우리국민 3명중 1명이 명량을 관람한 셈이다. 아직 얼마나 더 발길을 향할지는 미지수이다.
누구나 다 아는 영웅예찬, 과정과 결말이 뻔한 전쟁이야기가 얼마나 관객을 모을수 있을까 하고 반신반의 했는데 이처럼 흥행 돌풍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영화가 잘 만들어 지기도 했지만 아마 그 같은 영웅을 만나 보고 싶어하는 목마름으로 인해 예상보다 크게 주목을 받은 것으로 풀이해 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답답한 현실을 탈피해 보고자하는 기대효과의 한 단면이 아닐까싶다.
이순신장군은 교과서를 비롯하여 위인전, 드라마, 영화, 난중일기, 충무공전서, 징비록 등을 통하여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익히 알고있는 불세출의 구국 영웅으로 각인 되어있다. 시대와 계층에 관계없이 역사이래 가장 위대하고 존경받는 인물이라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조선이 임진왜란 정유재란이라는 미증유(未曾有)의 전란을 당하여 나라의 운명이 바람앞의 등불같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때, 임금(선조)은 황망히 의주로 몽진(蒙塵)을 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은 피폐함이 극에 달해 속수무책의 상태에 처하게 된다. 다행이도 이런 국난에 대비하기 위해 하늘은 구국의 수호신으로 이순신 장군을 준비해 놓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같이 영화<명량>은 임진왜란중 이순신장군이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명량대첩’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명량해전은 전설 또는 신화에서나 있음직한 해상전투 같다. 하지만 이순신은 초능력을 지닌 슈퍼맨이기 보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비범한 리더였으며 전쟁 기록 또한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고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논리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도 설명 할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전투로 회자(膾炙) 되고 있다. 장군께서 이룩한 혁혁한 전과와 우국충정이 조선의 명운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음에 새삼 탄복을 금할수 없다. 명량해전은 세계 해전사상 전무후무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으며 아직도 풀리지 않는 연구 대상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 줄거리
1592년 임진년에 왜군이 쳐들어와(임진왜란) 온나라가 초토화 되어 가고 있었다. 때마침 명나라지원군의 내원(來援)으로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명나라와 일본간의 협상이 틀어지자 1597년 정유년에 다시 대대적인 재침을 당하여(정유재란) 조선은 혼란이 극에 달하게 된다.
한편 임금이 피란하는 상황에서도 연전연승의 전과를 올리던 이순신은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누명을 쓰고, 모진 고문을 받으며 파직(罷職) 당한후 백의종군하는 수모를 겪게 되지만 마침내 누명을 벗고 나라의 부름을 받게된다. 장군의 일대기를 더듬어 보면 파란만장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삶 그 자체였다. 공직에 봉직한 이래 세 번씩이나 억울하게 파직을 당하고 두 번에 걸쳐 백의종군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나라와 백성을 저버릴 수 없었기에 묵묵히 참고 견딘다.
수군통제사가된 원균이 임금의 명을 받아 160척의 전선을 이끌고 출정 했으나 칠천량전투에서 참패하여 대다수 병사가 무참히 수장 된다.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되자 조정에서는 다급히 백의종군 하고있는 이순신을 재차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것은 전의를 상실한 소수의 병사와 두려움에 떨고있는 백성 그리고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반면에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여 위세를 과시하며 공격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장비와 군사면에서 압도적인 열세에 놓여있어 모두가 패배를 직감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장군은 나라의 운명을 건 사생결단의 출정을 결행하여 마침내 혁혁한 승리를 이끌어 낸다. 이로써 7년에 걸친 왜란을 종결 짓는 큰 전환점이 마련 되었다.
◆ 명량해전이 있기까지의 전황과 이순신
오랜 전란으로 나라는 황폐화 되었고 백성은 지칠대로 지친 나머지 극심한 피폐와 혼돈 상태에 빠져 버리게 된다. 다행이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이순신은 미관말직으로 전전 했지만 전쟁의 징후가 엿보이자 특유의 리더십을 드러내며 크게 주목 받게된다. 때마침 비범한 자질과 출중한 역량을 알아본 영의정 유성룡의 천거로 정읍현감에서 일약 전라좌수사로 전격 발탁된다.
이순신은 시기 질투와 모함을 받기도 했지만 중책에 임명된 즉시 병력 충원과 훈련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무기 제조와 군수물자 확보에 매진했다. 또한 화포의 시험발사에도 성공 하는등 일본의 침략을 예상하고 대비에 혼신을 다했다.
전쟁이 발발되어 왜군이 파죽지세로 밀려오자 경상우수사 원균은 싸울 용기를 잃고 접전을 회피함으로써 일본군은 조선군과 한번 싸워 보지도 않고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하게 된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즉시 전선을 정비하고 면밀히 전황을 분석하며 임전태세를 갖추게 된다.
예상대로 전황이 벌어져 옥포대첩, 노량대첩, 당황포대첩, 한산도대첩, 부산포대첩등 연전연승의 승전보를 울리자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백성들로부터 열렬한 지지와 추앙을 받게된다. 임금은 승전보에 소극적인 격려를 보내는 한편 백성들의 이순신 환호 현상에 노골적인 질투와 위협을 느끼면서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명나라와 일본간의 협상으로 전황은 한동안 소강상태로 이어져 오다가 1597년 협상이 깨어지면서 다시 전운에 흽싸이게되자 이순신은 적을 격멸할 만반의 태세를 취한다. 그런 와중에 원균의 모함과 왜군의 계략에 말려 오해를 받으면서 옥에 갇히는 몸이 되고 만다. 특히 경상우수사 원균은 이순신의 연전연승에 대해 시기와 질투를 하고 있던 차에 이순신을 모함하는 소(訴)를 올리게 된다. 임금은 원균의 일방적 상소만을 믿고 크게 노한 끝에 왕명을 어기고 출전을 지연 했다는 죄를 물어 중형에 처하게 된다.
「나라에 충성하려 했건만 죄가 씌워졌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려 했건만 먼저 가셨구나.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에 나같은이 또있을까!
신의 죄 없음을 굽어 살피소서
저 한몸이야 일백번 죽어도 아까울 것 없건마는
이나라 일을 어찌 하리오...』
라고 기록 되어있는 난중일기가 당시의 상황을 잘 대변해 주고있다.
그동안 연전연승의 전공을 세웠음에도 아랑곳없이 가혹한 고문을 당한다. 자초지종을 듣고 실상이 밝혀진 후에야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죽음 직전에 처형만은 면하게 된다. 조정은 이순신을 버리려 했지만 이순신은 나라를 버릴 수 없어 또다시 백의종군의 길을 걷게 된다.
한편 앞에서 언급한 바와같이 삼도수군통제사가된 원균이 적의 유인전술에 말려 거제 칠천량전투에서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므로써 전세가 기울어지게 된다. 원균의 참패가 임금에게 보고되자 조야가 화들짝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다급하여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발탁하는 교서를 내린다.
「지난날 그대를 백의종군케 해서
오늘 이런 패전의 욕됨을 입었으니
무슨 할말이 있으리오.
그대는 부디 충의를 굳건히 하여
다시 나라를 구해 주기 바라오』
◆명량해전
수군통제사에 재임용된 장군은 남해등지를 두루 살폈으나 남은 군사 120명에 전선 12척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좌절 하지않고 모병(募兵)에 나서는 한편 적을 맞아 싸울 태세를 취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도망만 다닌다는 보고를 받은 임금은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합류 하라는 밀지를 내려 보낸다.
전황을 잘 모르고있는 조정에서 중대한 오판을 하고 있는것 같아 장군은 번민을 거듭한 끝에 불응키로 마음을 정했다. “왕명을 거스리면 내가 죽지만 왕명을 받들면 모두가 죽을 수 있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이로써 왕명에 역행하는 오만한 장수라는 꼬투리를 잡히게 되어 고심끝에 비장한 상소를 올린다.
「신에게는 아직 전선(戰船) 12척이 남아 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 수군을 폐지 한다면
이는 곧 적이 바라는 바일 것입니다
적은 호남을 거쳐 쉽게 한강까지 진격할 것입니다
신은 오직 그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비록 전선의 수가 적으나
신이 아직 살아 있으므로
적이 감히 무시 하지 못할 것입니다」
병사와 전선의 절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장군은 휘하 장수들과 병사들을 모아 놓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것이고, 살기에 급급하여 전투를 회피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生).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수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을 두렵게 할 수 있다.」라고 비장한 각오와 고뇌에찬 결의를 다진후 숨막히는 결전에 돌입하게 된다. 장군은 혼자 먼저 뛰어들어 최선봉에서 용전분투 하고있는데 나머지 배들은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난중일기에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내가 탄 배가 홀로 적진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면서 각종 총통들을 마구 쏘아대니 마치 우뢰치듯 하였다. 그러나 적선들이 여러 겹으로 둘러 싸고있어 배에 있던 부하들은 서로 돌아보며 겁에 질려 있었다. 여러 장수들의 배를 돌아보니 그들은 먼 바다에 물러나 있으면서 바라만 보고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순신은 자신이 앞장서 겁에 질린 부하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므로써 마침내 생사를 초월한 불꽃뿜는 격전에 돌입하게 된다.
박진감 넘치는 스펙타클! 비장미를 담아낸 전투씬(scene)이 숨막히게 이어 졌다. 조선의 화포와 일본의 조총이 불꽃을 튀기는 한편 배위에서 칼과 칼이 맞붙는 백병전(白兵戰)까지 다양한 액션이 쉴틈없이 펼쳐져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렇듯 압도적인 긴장감에 몰입되어 관객들은 숨죽이며 실전을 방불케하는 전황을 지켜보게 되었다. 초인적인 리더십, 기상과 조류와 지형지물을 활용한 뛰어난 전략전술, 죽기를 각오한 용전분투가 드라마틱하게 결합되어 전쟁은 조선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하늘은 중립일 것이지만 혼신을 다한자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일까! 장군은 전과(戰果)를 본인의 공으로 돌리지 않고 “이번 승리야말로 하늘이 내린 행운이다” 라고 겸양의 미덕을 보이며 임금에게 승전보고서를 올릴때도 부하의 공을 앞세웠다. 어부․농부․종들로 이루어진 병사들이 마음속 깊이 장군을 존경하고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것은 탁월한 리더십과 따뜻한 인간애에 기인한것 으로 보인다.
이 기적같은 승리를 통해 조선은 일본에 빼앗긴 해상권을 되찾고 일본의 조선 정복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만약 명량해전에서 패배 했다면 일제의 식민지배가 300년 앞당겨 졌을 수 있었다는 전문가들의 관측(역사의 가정)이 전해지고 있을 만큼 명량대첩은 조선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으로 기록 되고 있다. 이 불멸의 기록은 세계 해전사에 영원히 신화로 남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전쟁 영웅으로서의 강인한 모습 이면에 묵묵히 고뇌하며 두려움과 외로움에 맞섰던 인간 이순신의 모습이 영화 전편에 걸쳐 읽혀지고 있었다. 아들과의 대화에서 “충(忠)이란 백성을 향해야 하며,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 라고 술회(述懷)하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참혹한 전쟁의 시대를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야 했던 구국의 화신, 죽음을 두려워하는 군사를 이끌기 위해 먼저 목숨을 걸어야 했던 리더로서의 면모에서 한없는 존경과 옷깃 여미어지는 숙연함이 느껴졌다.
◆ 이순신 장군의 어록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 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14년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장교로 복무했다.
윗분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직속 상관들과의 불화로 몇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몸이 약하다고 고민 하지 말라
나는 평생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나는 47세에 겨우 제독이 되었다.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 세 번 싸워 스물 세 번 이겼다.
윗사람이 알아 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말라
나는 끊임 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채 옥살이와 백의종군을 감수 해야 했다.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12척의 낡은 배로 330척의 적을 막았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
나는 스므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 고매한 인품에 뭉클함이 느껴지며 옷깃이 여미어 진다.
◆ 우국충정이 담긴 시조 초록(抄錄)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한바다에 가을 빛 깊어가고 있는데
추위에 놀란 기러기 진중에 높이 떳네
근심으로 뒤척이며 잠못 드는밤
스산한 달빛이 활과 검을 비추누나
비바람 부슬부슬 흩뿌리는 밤
생각만 아몰아몰 잠 못 이루고
간장이 찢어질 듯 아픈 이 가슴
살점이 에이는 듯 쓰린 이 심사
강산은 참혹함 그대로이고
물고기와 새들도 구슬피 우네
나라는 허둥지둥 어지럽건만
바로잡아 세울 이 어디 있으랴
밤늦도록 불밝히고 나라 일 생각하니
엎치락 뒤치락 위태롭기 그지없네
구제할 대책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장부로 태어나 나라에 쓰이면
죽기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권세에 아부해 영화를 누리는 것은
내가 가장 부끄럽게 여기는 바이다
◆ 세계 명장들이 본 이순신
● 이순신은 다른 어떤 장수와도 비교 될 수 없다.
내가 제일 두려워 하는사람이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고, 가장 흠모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다.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고,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도 이 순신이다. - 한산도대첩에서 장군에게 참패 당했지만 육전에서 우리 아군 에게 가공할 타격을 입힌 일본의 명장중 명장 와키자카 야스하루 -
(※그 후손들은 4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충무공을 추모코자 탄신일 을 맞이하여 내한해 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 나를 영국의 넬슨제독과 비교 하는것은 좋다. 그러나 조선의 이순신장군 과 비교 하는것은 감히 감당 할 수 없다. 그에 비하면 나는 일개 하사관 에 불과하다. 이순신 장군이 만약 나의 함대를 갖고 있었다면 그는 세계 해상을 지배 했을 것이다. -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무적함대를 궤멸시킨 일본 해군영웅 도고헤이하치로 -
● 이순신은 천지를 주므르는 경천위지의 재주와 나라를 바로잡은 보천 욕일(補天浴日)의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 명나라 장수 진린이 1598년 선조임금에게 올린 글중에서 -
● 위대한 해상 지휘관들 중에서도 첫 손을 꼽을 만한 이순신 제독을 낳게 한 것은 신의 섭리다. - 영국 해전사 전문가이자 해군 중장 G․A 발라드 -
● 만약 이순신 장군이 중국에 있었더러면 중국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는 초강국이 되어 있을 것이다. - 중국의 석학 장웨이 -
●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 충렬과 영명(英名)은 천추에 길이 빛날 것이다.
- 일본의 아오야기 난메이 -
※ 전 세계 해군사관학교에서도 이순신장군의 전법과 전술을 배운다고 한다.
◆ 이 시대에 던져 주는 멧세지
작금의 우리 사회는 불신과 불안의 만연(蔓延)으로 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세월호 침몰을 비롯하여 여러 참사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으며, 핵을 개발한 북한은 남한을 향해 아직도 호시탐탐 적화야욕을 드러 내고 있다. 또한 먹고 살기에 급급한 서민들의 하소연과 신음 소리가 높아 가고 있지만 속시원히 해법을 제시하는 지도자나 믿고 따라갈 리더는 잘 보이지 않는것 같다.
영화 <명량>이 흥행 돌풍을 일으킨 요인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극단적인 진영논리로 치닫고있는 정치권의 이전투구 양상과 국정 난맥상에 실망한 나머지 진정한 리더의 출현을 갈구하는 민심과 맥이 닿아 있는 것 같다. 또한 역사 왜곡에 매몰 되어있는 일본의 아베총리와 일본 정부에 대한 반감도 상당부분 자리잡고 있을상 싶다.
이땅에서 수많은 전쟁 참화가 소용돌이쳐 왔지만 이순신 장군만큼 나라와 백성을 위해 장수된 자의 도리를 다한 이가 또 있을까?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는 불사조 같은 민초들의 위기 극복 저력에 비해 죽기를 무릅쓰고 백성을 위하는 지도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조선에 이순신 같은 왕이나 장군이 한명만 더 있었더라면 보다더 자랑스런 역사를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대한민국은 지금 국제화 시대에 발맞추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국민 국민’ 하며 구두선(口頭禪)만 앞세우고 진정성과 실천이 뒤따르지 않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시대 역시 이순신같은 리더의 출현을 갈망 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연하다.
정치권에서 걸핏하면 이순신장군의 어록을 인용하며 흉내를 내곤 하는데 공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가령 ‘백의종군’이라는 말의 경우 그 말이 유래된 역사적, 상황적 배경을 간과한채 미사여구 삼아 인용 해서는 아니되며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라는 구국의 결단도 아무데나 갔다 붙여서는 더더욱 안될 일이다. 그것은 장식품도 멋스러운 구호도 아니다. 절체 절명의 상황에 처한 장군의 비장한 결의가 아로새겨져 있기에 시대를 관통하여 감동과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격에 맞지않게 남발하며 흉내를 내는것은 자칫 어색한 자기 포장으로 비쳐 질 수 있을뿐만 아니라 장군의 존엄과 신성한 명예에 오점을 남기는 경우가 될 수도 있으므로 삼가할 일이다. 또한 나라를 경영함에 있어서 백년대계를 염두에 두고 중지를 모아 전향적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희망적인 미래는 열리지 않을 것이며 제2, 제3의 왜적이 밀려들 수 있음을 지도자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영화 감상이 보는이에 따라 관전평이 상이할 수 있겠지만 다소 아쉽게 느낀 점도 없지 않았다. 전쟁씬(scene)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그랬던지 장군의 처절한 인간적 고뇌와 민초들의 애환이 절실하게 부각되지 못한 듯한 감이 든다. 그런 측면이 좀더 밀도감있게 조명 되었더라면 한층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회자(膾炙) 되었을법 하다.
아쉽긴 하지만 일관되게 저류(底流)하는 벅찬 감동의 여운으로 인하여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곧바로 일어나 지질 않았다. 새삼스럽게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러웠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대한민국 만만세...!!
※ 문학지에 실었던 글입니다.
첫댓글 다시 보니 글도 새롭고 사진도 더욱 멋져보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