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역사의 길
(茶)의 메카인 비봉루(飛鳳樓)의 비사(祕史) 3
오성다도
1946년 4월 8일, 광복(光復)으로 구사일생한 반진단원(般震團員)들은 아인 선생의 자택에 모였다. 신생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가 각계 분야에 필요한 인재가 없음을 아쉬워하고 조국을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한 아인 선생은
한국전쟁 이후 1954년 2월 23일, 민족의식에 불타던 26세의 젊은 아인은 물려받은 전 재산을 털어 진주시 인사동에 대아 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학교 이름을 대아(大亞)라고 한 것은 대부분 사람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좁은 견해로 우리나라를 바라보고 있다며 "아시아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와 "아시아의 운명 속에 조국이 있다"라는 생각으로 아시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꾼들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맘으로 대아(大亞)라 지었다.
그리고 개교기념일을 4월 8일 마음의 결단을 내린 날로 삼았다. 설립할 당시를 선생은 이렇게 적고 있다. "많은 학생이 행동과 말이 거칠고, 정서가 산만했다. 따라서 가르치는 선생도 거칠어지고, 모든 것을 체벌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체벌은 일순간 적이고 교육 효과가 높지 않다. 체벌로 인한 악순환만 심해지고, 부모에 효도하라, 나라에 충성하라, 예절을 지키라는 것은 공염불이 되었다." 이런 학생들을 보고 고민하던 선생은 정서 안정이 최우선이라 판단하고 교육이념으로 오민교육(五民敎育 여기서 오성다도가 시작됨)을 들었다.
오민교육은 1970년 4월 8일, 손문의 삼민주의(三民主義)인 와 남명 조식의 반구실천(反軀實踐)을 깊이 연구하여 1974년에 오민교육(五民敎育)을 저술하고 시행하였다.
오민교육이란, 손문 삼민주의에 민성(民性)과 민복(民福)을 추가한 반진단 정신, 자립을 위한 기술 교육인 민생(民生) 배달민족 의식을 가져 자부심을 품는 민족(民族), 국민이 기본이 되는 국가를 이루는 민본(民本) 미와 예술로 차원 높은 민족이 되게 하는 민복(民福) 정신 곧 춘원(春園)과 도산(島山)이 주장하는 망국의 민족성 개조를 꿈꾸는 민성과 민족 최후의 목표는 문화의 창조로 얻어지는 인간의 행복에 있다는 민복 사상이다.(나무위키 박종한 2024-07-20)
아인 선생은 매나 말로만 훈계하는 일상과는 아주 다른 새로운 경험을 통해 학생들의 불안한 정서를 안정시키는 방법으로 매일 15명씩 다실에 초대하여 직접 차를 우려내 맑은 차를 천천히 마시게 하고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여 고쳐가도록 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순국한 군관민들의 위패가 있는 창렬사를 청소하게 하고 충무공의 백의종군 길을 따라 행군하는 등 민족교육을 다도와 함께하도록 하였다. 이런 노력으로 학생들은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여 1984년에는 서울대에 만 66명을 진학시켜 전국 서울대 최고합격률을 기록하게 하였고 고대엔 110명 연대엔 100여 명을 합격시켜 대아 교육의 우수성을 입증하였다.
* 꿈을 가진자는 역사를 만든다.
하지만
꿈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꿈을 가진 한사람 박종한
꿈을 가진 이들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