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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Are most astronomical positions calculated rather than observed?
(C) 기록된 대부분의 천체 위상은 관측된 것이 아닌 계산에 의한 것인가?
The “most acute problem for making an absolute chronology based on astronomica1 tablets,” Furuli claims, is that many, “perhaps most positions of the heavenly bodies on such tablets, are calculated rather than observed.” (p. 15) Is this true? 푸룰리는 "천문일지 점토판에 기초한 절대 연표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첨예한 문제"는 "그 점토판에 기록된 천체의 대부분의 위치가 실제 관측된 것이 아니라 아마도 계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15면) 이것이 사실인가? As discussed in chapter 4 of the present work (pp. 154–156 above), Babylonian astronomers at an early stage were able to predict certain astronomical phenomena, such as the occurrences of lunar eclipses and certain planetary positions. These calculations presuppose that they had worked out theories for dating and locating such phenomena. In fact, about 300 texts have been found containing lists of lunar and planetary positions at regular intervals. (See above, p. 156.) Such arithmetical tables were termed “ephemerides” by Professor Otto Neugebauer, who published all extant tablets of this kind in his three-volume work, Astronomical Cuneiform Texts (1955). All these tablets are late, almost all dating from the 3rd to the 1st centuries B.C.E. 본 저서의 4장(154~156면)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바빌로니아의 천문관측자들은 초기 단계에서 월식의 발생이나 어떤 행성의 위치와 같은 특정한 천문 현상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 계산들로부터 그들이 그러한 현상들의 연대와 위치를 예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달과 행성의 위치를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한 약 300개의 문헌이 발견되었다. (156면 참조) 오토 노이게바우어 교수에 의해 이러한 산술표는 "에페메리데스"로 명명되었는데, 그는 그의 세권짜리 저서인 <설형문자로 씌어진 천문관측> (1955)에서 현존하는 이러한 종류의 모든 점토판의 내용을 밝혔다. 이 모든 판들은 기원전 3세기에서 1세기까지의 것으로 후기에 속한 것이었다. Does this mean, then, that all or most of the phenomena recorded on the astronomical tablets might have been computed rather than observed, as Furuli claims? Were the Babylonian astronomers able to do this? Are there indications in the recorded data that they did just that? 그렇다면, 이것은 천문관측이 실린 점토판에 기록된 모든 혹은 대부분의 현상들이 푸룰리의 주장처럼 관측된 것이 아니라 계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바빌로니아의 천문관측자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그들이 그렇게 했다는 조짐이 기록된 자료에 나타나는가? |
(C-.1) Phenomena the Babylonian astronomers were unable to calculate
(C-.1) 바빌로니아 천문관측자들이 모든 현상을 계산할 수는 없었다.
Although the Babylonian astronomers were able to calculate and predict certain astronomical events, the observational texts — diaries, planetary texts, and eclipse texts — contain reports of several phenomena and circumstances connected with the observations that could not have been calculated. 비록 바빌로니아 천문관측자들은 어떤 천문 현상을 계산으로 예측할 수 있었지만 관측 기록이 남아 있는 문헌ㅡ일지, 행성의 움직임에 관한 기록 그리고 월식 기록ㅡ은 계산이 불가능했던 관측과 관련된 몇 가지 현상과 상황에 대한 보고를 포함하고 있다. That the diaries usually record real observations is shown by their reports of climatological phenomena. For example, the scribes repeatedly report when bad weather prevented astronomical observations. We often find reports about “clouds and rain of various sorts, described in detail by numerous technical terms, as well as fog, mist, hail, thunder, lightning, winds from all directions, often cold, and frequent ‘pisan dib’, of unknown meaning but always associated with rain.”98 Other recorded phenomena were rainbows, solar halos and river levels. None of these could have been retrocalculated much later. What, then, about the astronomical phenomena? 일지에는 보통 실제 관측치를 기록한다는 사실은 기후 현상에 대한 보고서로써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그 기록자들은 천문 관측이 악천후에 의해 방해 받은 경우를 여러번 보고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다양한 종류의 구름과 비뿐만 아니라 안개, 박무, 우박, 천둥, 번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종종 알 수 없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항상 비와 관련된 춥고 빈번한 '피산 딥(pisan dib)'과 같은 기술적 용어로 자세히 묘사되는 보고들을 발견한다."98 다른 기록된 현상들은 무지개, 태양 광선, 강 수위와 같은 용어였다. 이러한 현상들은 훨씬 후기 시대까지도 계산으로 예측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월식과 같은 천문학적인 현상에 대해서는어떠한가? As discussed in chapter 4 of the present work (p. 185 above), there were a number of planetary phenomena recorded in the texts that the Babylonian astronomers were unable to calculate. These included conjunctions of planets with the moon and other planets, with their distances. VAT 4956 records a number of such — for the Babylonian astronomers — unpredictable and incalculable phenomena. 본 연구의 4장(185면)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바빌로니아 천문관측자들이 계산할 수 없었던 많은 행성 현상들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행성들과 달 및 다른 행성들의 교차, 그들간의 거리 등이 포함된다. VAT 4956은 바빌로니아 천문관측자들이 계산에 의해서 예측할 수 없는 여러 현상을 기록하고 있다. With respect to lunar eclipses, the Babylonian astronomers were certainly able to predict and retrocalculate the occurrences of lunar eclipses, but they were unable to predict or calculate a number of important details about them. (See above, p. 185.) This has been discussed in detail by Dr. John M. Steele.99 Commenting on the claim that the eclipse records on the lunar eclipse tablets might be retrocalculations by Babylonian astronomers in the Seleucid era, Steele explains: 월식과 관련하여, 바빌로니아의 천문관측자들은 월식의 발생을 예측하고 역산할 수는 분명히 있었지만, 월식에 대한 많은 중요한 세부사항들까지 예측하거나 계산할 수는 없었다. (185면 참조) 이것은 존 M. 스틸레 박사에 의해 자세히 설명되었다.99 스틸레는 월식 기록들이 셀레우코스 시대의 바빌로니아 천문관측자들에 의한 역산일 수도 있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You were absolutely right when you argued that the Babylonians could not have retrocalculated the early eclipse records. The Saros cycle could have been used to determine the date of eclipses, even centuries earlier, but none of the Babylonian methods could have allowed them to calculate circumstances such as the direction of the eclipse shadow, the visibility of planets during the eclipse, . . . 당신이 바빌로니아인들이 초기 월식 기록을 역산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전적으로 옳다. 사로스 주기는 심지어 수세기 전이라도, 월식의 날짜를 결정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지만, 바빌로니아의 계산의 한계는 월식 그림자의 방향, 월식이 일어나는 동안의 행성의 가시성 등과 같은 상황을 계산에 의해 예측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Although the Babylonians could calculate the time of the eclipses, they could not do so to the same level of accuracy as they could observe — there is a clear difference of accuracy between eclipses they said were observed and those they say were predicted (this is discussed in my book), which proves that the “observed” eclipses really were observed.100 비록 바빌로니아인들은 월식의 때를 계산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관찰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수준만큼이나 계산에 의해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었다ㅡ그들이 관측했다고 보도한 월식과 계산에 의해서 예측되었다고 말하는 월식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이점은 나의 저서에서 논의 되었다.)"관측된" 월식은 실제로 관측되었다는 것을 말한다.100 |
(C-2) Most of the contents of the observational texts are observations
(C-2) 관측일지 내용의 대부분은 실제 관측된 자료이다.
Although the observational texts, due to particular circumstances such as bad weather, occasionally contain calculated events , most of the entries are demonstrably based on actual observations. That this is the case with the Diaries is directly indicated by the Akkadian name engraved at the end and on the edges of these tablets: natsaru sha ginê, which means “regular watching.” (ADT, Vol. I, p. 11) 악천후와 같은 특정 상황으로 인해 관측 일지에 계산된 예측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실제 관측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음이 입증된다. 일지가 그렇다는 것은 이 점토판의 끝과 가장자리에 새겨진 아카드어로 '정기적인 관측'을 의미하는 나차루 샤 지니 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ADT, I권, 11면) Scholars who have examined these tablets in detail agree that they contain mostly genuine observations. Professor Hermann Hunger gives the following description of the various kinds of astronomical data recorded in the Diaries: 이 점토판들을 자세히 조사한 학자들은 이 판들이 대부분 실제의 관찰을 담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헤르만 헝거 교수는 일지에 기록된 다양한 종류의 천문 자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Lunar Six [i.e., the time differences between the settings and risings of the sun and the moon just before and after conjunction and opposition]; planetary phases, like first and last visibility . . . conjunctions between planets and the so-called Normal Stars . . . eclipses; solstices and equinoxes; phenomena of Sirius. Toward the end of the 3rd century 루너 6(즉, 태양과 달의 위치가 교차하거나 정 반대의 위치가 일어나기 직전과 직후에 태양과 달의 뜨고 지는 시차]; 처음과 마지막 가시성과 같이. . . 행성의 위상들; 행성과 소위 기준 별들(Normal Stars) 사이의 교차 . . . 월식들; 지점들(지점(至點: 하지(점)이나 동지(점)))과 분점들(춘분이나 추분); 3세기 말 무렵에 있었던 것과 같은 시리우스의 현상들. B.C., Diaries begin to record the dates when a planet moved from one zodiacal sign into another. The rest of the Diaries’ contents is nonastronomical. Hunger adds: Almost all of these items are observations. Exceptions are the solstices, equinoxes, and Sirius data, which were computed according to a scheme . . . furthermore, in many instances when Lunar Sixes, lunar or solar eclipses, or planetary phases could not be observed, a date or time is nevertheless given, marked as not observed. Expected passings of Normal Stars by the moon are sometimes recorded as missed because of bad weather, but never is a distance between moon and Normal Star given as computed.101 In summary, Furuli’s claim that “perhaps most positions of the heavenly bodies on such tablets, are calculated rather than observed” is groundless. It is refuted by statements in the tablets themselves and by the fact that they contain data that the Babylonians were unable to calculate. These circumstances are diametrically opposed to the suggestion that the data in the astronomical diary VAT 4956 might have been calculated later so that possibly “there never was an ‘original tablet’.” (Furuli, p. 30) 기원전의 천문일지는 행성이 황도대에서 다른 별자리로 이동한 날짜를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지의 나머지 내용은 천문 현상에 관한 것이 아니다. 헝거는 이렇게 덧붙인다: 열거된 이 모든 항목들은 거의 실제 관측치이다. 지점이나 분점, 시리우스 현상들은 예외적으로, 틀에 따라 계산되었으며, 더 나아가, 루너 6, 월식 또는 일식, 또는 행성의 위상을 관측할 수 없을 때, 날짜나 시간은 관측되지 않은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101 요약하자면, "아마도 그러한 점토판 위의 기록된 천체 대부분의 위치가 관측된 것이 아니라 계산된 것일 것"이라는 푸룰리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그것은 점토판 자체의 진술과 바빌로니아인들이 계산할 수 없었던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반박된다. 이러한 상황은 천문 일지 VAT 4956의 데이터가 나중에 계산된 것이어서 푸룰리의 책, 30면에 기술된 "원래의 정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과는 정반대이다. |
(C-3) A theory of desperation
(C-3) 필사적인 고육지책의 이론
If the entries on the observational tablets — diaries, and lunar and planetary tablets — record mostly demonstrably genuine observations, and if the Babylonian astronomers were unable to compute and retrocalculate many of the astronomical and other data reported, how, then, is it possible for anyone to wriggle out of the evidence provided by these tablets? 만일 관측 기록이 담긴 점토판(일기, 달, 행성 평판)의 항목들이 대부분 증명 가능한 실제 관측을 기록하였고, 바빌로니아 천문관측자들이 보고한 천문 자료와 그외의 자료들 대다수가 계산에 의해 소급해서 예측할 수 없었다면, 누가 이런 점토판들에 의해 제공된 증거로부터 꿈지럭거리며 벗어날 수 있겠는가? Because the tablets often contain so many detailed observations dated to specific regnal years that they can be safely fixed to particular Julian years, the only escape is to question the authenticity of the regnal year numbers found on the tablets. 점토판에는 쥴리우스력으로 환산될 수 있는 특정한 통치년도의 여러 세부사항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점토판의 기록 내용이 아니라, 점토판에 기록된 통치년도의 진위를 의심하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이다. This is what Furuli does. He imagines that “a scribe could sit down in the 2nd century and make a tablet partly of some phenomena covering many years, partly on the basis of theory (the three schemes) and partly on the basis of tablets from a library” that might show real observations. Then, upon discovery that the dates on the library tablets conflicted with the theoretical data, “these erroneous data could be used to ‘correct’ the correct data of his library tablet, to the effect that the tablet he was making would contain wrong data of regnal years:’ (Furuli,p.41) 이게 바로 푸룰리가 주장했던 점이다. 그는 "2세기에 서기가 앉아서 몇년을 망라하는 현상의 일부를, 부분적으로 이론(세 가지 도식)에 기초하고, 부분적으로 기록 보관소의 점토판에 기초해서, 실제 관찰한 것처럼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의 점토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 후, 보관소의 점토판의 날짜가 이론적 자료와 충돌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잘못된 자료는 보관소의 점토판의 정확한 자료를 수정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그가 만들고 있는 점토판에 통치년에 관한 오류가 포함될 수 있었을 것이다." (푸룰리의 저서, 41면) Furuli indicates that not only the dates on the lunar and planetary tablets but also the dates on the diaries might have been tampered with by the Seleucid scholars in the same way. Referring again to the fact that the earliest extant diaries are copies, he says: 푸룰리는 셀레우코스 학자들에 의해 달과 행성의 날짜뿐만 아니라 일지의 날짜도 같은 방식으로 변조되었을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지가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라는 사실을 다시 언급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But what about the regnal year(s) of a king that are written on such tablets? Have they been calibrated to fit an incorrect theoretical chronological scheme, or have they been copied correctly? (Furuli, p. 42) 그러나 그러한 점토판에 쓰여진 왕의 통치 연도는 어떠한가? 잘못된 이론적 연대 체계에 맞추어 교정되었는가, 아니면 원본에 맞추어 정확하게 필사되었는가? (푸룰리의 저서, 42면) Furuli realizes, of course, that his Oslo Chronology is thoroughly contradicted by the Babylonian astronomical tablets. That is the reason he proposes, as a last frantic resort, the theory that these tablets might have been redated by Seleucid scholars to bring them into agreement with their own supposed theoretical chronology for earlier times. Is this scenario likely? What does it imply? 물론 푸룰리는 그의 <오슬로 연대기>가 바빌로니아의 천문기록이 담긴 점토판과 완전히 모순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그가 마지막 주장의 근거로서 셀레우코스 학자들에 의해 이 점토판들이 더 이른 시기에 그들의 추정된 이론적 연대표와 일치하도록 재작성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이론을 제안하는 이유이다. 이 시나리오가 그럴듯하게 들리는가? 그것이 무엇을 함의하고 있는가? |
(C-4) The scale of the supposed Seleucid chronological revisions
(C-4) 셀레우코스 연대기 개정 규모의 추정
To what extent does Furuli’s Oslo Chronology differ from the traditional chronology? In a chronological table on pages 219–225 covering the 208 years of the Persian era (539–331 BCE), Furuli shows, reign by reign, the difference between his chronology and the traditional one. It turns out that the only agreement between the two is the dating of the reigns of Cyrus and Cambyses — the period from the fall of Babylon (539 BCE) to 522 BCE, a period of 17 years. By giving the usurper Bardiya one full year of reign after Cambyses, Furuli moves the whole 36-year reign of Darius I one year forward. Then he moves the reigns of Darius’ successors Xerxes and Artaxerxes I 10 years backward by adding 10 years to the reign of the latter, creating a coregency of 11 years between Darius I and Xerxes. 푸룰리의 <오슬로 연대기>는 전통적인 연대기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가? 페르시아 시대 (기원전 539-331년)의 208년을 다룬 219~225면의 연대표에서, 푸룰리는 통치 기간마다 그의 연대표와 전통적인 연대표의 차이를 보여준다. 두 연대기 사이에 유일하게 일치되는 부분은 고레스와 캄비세스의 통치 기간 - 바빌론 함락 (기원전 539년)부터 기원전 522년 (기원전 17년)의 기간 - 으로 밝혀졌다. 푸룰리는 캄비세스 이후 바르디야에게 1년 동안의 통치를 부여함으로써 다리우스 1세의 36년 동안의 통치를 1년 앞당겼다. 그리고 그는 다리우스의 후계자 크세르크세스 1세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치세를 10년 뒤로 옮기면서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사이에 11년의 통치 기간을 두었다. But Furuli also assigns a one-year reign to the usurper Sogdianus between Artaxerxes I and his successor Darius II. The effect of this is that the remaining reigns up to 331 BCE are all moved one year forward. The end result is that Furuli’s Oslo Chronology is at variance with the traditional chronology for the Persian era for 191 of its 208 years, or for 92 percent of the period. 그러나 푸룰리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와 그의 후계자 다리우스 2세 사이에 소그디아누스에게 1년의 통치 기간을 부여하였다. 이것의 효과는 기원전 331년까지 남은 통치 기간이 모두 1년 앞당겨지는 것이다. 그 결과 후룰리의 <오슬로 연대기>는 페르시아 시대의 전통적인 연대기 208년 중 191년, 즉 그 기간의 92%가 다르게 변경되었다. But this is not all. As mentioned in the introduction, Furuli wants to add 20 extra years to the Neo-Babylonian period somewhere after the reign of Nebuchadnezzar — between 562 and 539 BCE. The effect of this — what Furuli calls the “domino effect” — is that not only the reign of Nebuchadnezzar but all the reigns of his predecessors are moved backward 20 years. 하지만 이게 모두는 아니다. 도입부에서 언급했듯이, 푸룰리는 기원전 562년에서 539년 사이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 통치 이후 어딘가에서 신바빌로니아 시대에 20년을 더 추가하고 싶어한다. 푸룰리가 "도미노 효과"라고 부르는 이 효과는 느부카드네자르 뿐만 아니라 그의 전임자들의 모든 치세가 20년 뒤로 후퇴하는 것이다. Because the Babylonian astronomical archive starts with the reign of Nabonassar, 747–734 BCE, Furuli’s Oslo Chronology is at variance with the traditional chronology for most, if not the whole, of the Babylonian era from 747 to 539 BCE. This means that the disagreement between the two runs to more than 90 percent of the 416-year period from 747 to 331 BCE. This also means that the Oslo Chronology is contradicted by more than 90 percent of the astronomical observational texts — diaries, eclipse texts, and planetary texts — dated to this period. Because these tablets record thousands of observations dated to particular regnal years, months, and days within this period, we begin to get some idea of the scale of the chronologica1 revisions the Seleucid scholars must have engaged in — according to Furuli’s theory. Yet, this is only a fraction of the full scope of the necessary revisions. 바빌로니아 천문 기록 보관소는 기원전 747-734년 나보나사르의 치세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푸룰리의 <오슬로 연대기>는 기원전 747년부터 539년까지의 바빌로니아 시대의 대부분(전부는 아니더라도) 전통적인 연대기와는 차이가 있다. 이는 기원전 747년부터 331년까지의 416년의 기간에서 두 연대기 사이의 내용 차이가 90% 이상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오슬로 연대기>가 이 시기의 천문 관측 문헌들 - 일지, 월식 기록의 문헌들, 그리고 행성의 관찰에 관한 문헌들 - 의 90 퍼센트 이상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토판들은 이 기간 동안 특정한 통치년도, 월, 일까지의 수천 개의 관찰을 기록했기 때문에, 우리가 푸룰리의 이론에 따르면 셀레우코스 학자들이 참여해야만 했던 연대 개정의 규모를 어느 정도 알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필요한 개정 전체 범위의 일부에 불과하다. |
(C-5) The scope of the original astronomical archive
(C-5) 천문일지를 모아 두었던 원래의 기록 보관소의 규모
It should be kept in mind that the extant archive of ca. 1300 nonmathematical and principally observational astronomical cuneiform tablets is only a fraction of the scope of the original archive available to the Seleucid scholars. In a lecture held at a conference in 1994, Professor Hunger explained: 1300년경의 계산된 예측에 의해서가 아닌, 주로 관측으로 기록된 설형문자 점토판들이 현재 남아 있는 보관소는 셀레우코스 학자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원래 보관소들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994년에 열린 한 회의에서 헝거 교수는 강연을 통해 이렇게 설명했다: To give you an idea of how much was originally contained in that archive, and how much is still preserved, I made a few rough estimates. From well preserved Diaries, I found that in each month about 15 lunar and 5 planetary positions, both in relation to Normal Stars, are reported. Also, every month the so-called lunar Six are recorded. Each year will in addition contain 3 Sirius phases, 2 solstices and 2 equinoxes, at 1east 4 eclipse possibilities or eclipses, and about 25 planetary phases. Together, this results in about 350 astronomical observations per year. In 600 years, 210,000 observations are accumulated. Now I do not know whether the archive was ever complete to this extent. Sometimes copies of older Diaries indicate that things were missing in the original. But on the whole, this is the order of magnitude. By counting the number of reasonably (i.e., not completely, but more than half) preserved months, I arrived at ca. 400 months preserved in dated Diaries (undated fragments do not help for the purposes of this lecture). If we compare this to a duration of 600 years for the archive, we see that we have preserved ca. 5% of the months in Diaries.102 그 보관소에 원래 얼마나 들어있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많이 보존되어 있는지 대략적으로 추정해 보았다. 잘 보존된 일지들을 통해 나는 매달 기준 별들(Normal Stars)과 관련된 약 15개의 달과 5개의 행성 위치가 보고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매달 소위 루너 6 이라 불리는 날이 기록된다. 매년 시리우스 위상이 3개, 지점이 2개, 분점이 2개, 월식이나 월식이 가능했던 날이 적어도 4회, 행성의 위상이 25회 추가된다. 이를 합치면 연간 약 350회의 천문 관측을 할 수 있다. 600년 동안 21만 개의 관측 결과가 축적된다. 기록 보관소가 이 방대한 양을 보관할 정도로 많이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때때로 오래된 다이어리의 필사본은 원본에 없는 것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이것이 당시의 기록보관소의 규모를 추측케 한다. 합리적으로 보존된 관측기록이 존재하는 개월 수(즉, 완전히 보존된 것은 아니지만 절반 이상)를 세어본 결과, 나는 날짜가 적힌 400개월 정도의 일지가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600년 기간의 기록물 전체로 비교하면 단지 약 5% 기간에 해당되는 개월 수만의 일지가 보존되었음을 알 수 있다.102 If only five percent of the original Babylonian astronomical archive is preserved today, the scale of the chronological revisions Furuli thinks Seleucid copyists engaged in becomes apparent. To bring their whole archive into harmony with their supposed theoretical chronology, they would have had to redate thousands of tablets and tens of thousands of observations. Is it likely that they believed so strongly in a supposed theoretical chronology that they bothered to redate four centuries’ worth of archives containing thousands of tablets? The idea is patently absurd, asinine. 오늘날 바빌로니아 천문 관측 기록의 원본 5%만 보존되어 있다면, 푸룰리가 셀레우코스 필사자들이 관여했다고 생각하는 연대기 개정판의 규모는 명백해진다. 그들의 전체 기록물을 그들의 연대기와 논리적으로 조화되게 하기 위해, 수천 개의 점토판과 수만 개의 관찰 기록을 다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연대표에 이론적으로 추정된 것을 너무 강하게 믿어서 수천 개의 점토판에 들어 있는 4세기와 맞먹는 기간의 기록물을 수정하려고 했을까? 그것은 너무도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We can also ask why the Seleucid scholars would work out a theoretical chronology for earlier centuries when a reliable chronology for the whole period back to the middle of the 8th century could easily be extracted from the extensive astronomical archive at their disposal. Is it not much more realistic to conclude that their chronology was exactly the one found in the inherited archive of tablets, an archive that had been studied and expanded by successive generations of scholars up to and including their own? 우리는 또한 셀레우코스 학자들이 8세기 중반까지의 전체 기간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연대기를 그 많은 천문 기록 보관소에서 그들 마음대로 쉽게 추출할 수 있을 때, 더 이른 세기에 대한 이론적 연대기를 만들어내는지 이유를 물어볼 수 있다. 그들의 연대기가 그 연대기를 포함한 다음 세대의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확장되었던 기록물이 담긴 점토판의 기록보관소에서 발견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결론짓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지 않는가? It should be noted that, to make any claims at all about dates in his Oslo chronology, Furuli must rely on the dating of the tablets that the Seleucids supposedly revised. But if one assumes that his chronology is valid, then so must be the dates recorded on the tablets — which destroys his claim that the Seleucids revised the tablets. Thus, Furuli’s argument is internally inconsistent and cannot be correct. 주목해야 할 것은 <오슬로 연대기>에 들어 있는 푸룰리의 모든 주장은, 셀레우코스 왕조가 수정한 것으로 추정되는 점토판의 연대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의 연대기가 유효하다고 가정한다면, 그 연대기에 기록된 날짜도 유효할 것이 틀림없는데, 이것은 셀레우코스 왕조가 그 연대표를 수정했다는 그의 주장과 충돌되어 무너진다. 따라서 푸룰리의 주장은 내부적으로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정확할 수가 없다. Another problem is what became of the original pre-Seleucid tablets. A necessary consequence of Furuli’s theory is that almost all extant tablets should reflect only the erroneous theoretical chronology of the Seleucid scholars, not what Furuli regards as the original and true chronology — the Oslo Chronology. In his view, therefore, all or almost all extant tablets can only be the late revised copies of the Seleucid scholars. Thus, on page 64, he claims: 또 다른 문제는 셀레우코스 왕조 이전의 원본 점토판이 어떻게 되었냐는 것이다. 푸룰리 이론의 결과는 현존하는 거의 모든 판들이 셀레우코스 학자들의 잘못된 이론적 연대기만을 필수적으로 반영해야 하며, 푸룰리가 원본이자 진정한 연대기로 간주하는 <오슬로 연대기>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견해에 따르면 현존하는 거의 모든 판은 셀레우코스 학자들의 후기 개정본일 뿐이다. 따라서 64면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As in the case of the astronomica1 diaries on clay tablets, we do not have the autographs of the Biblical books, but only copies. 우리는 성경의 원본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사본만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점토판에 쓰인 천문일지의 경우도 그러하다. This is certainly true of the Biblical books, but is it true of the astronomical diaries? Is there any evidence to show that all the astronomical tablets preserved today are only copies from the Seleucid era? 이것은 성경에 포함된 책들의 사본인 경우 분명히 진실하지만, 천문일지의 사본도 그러할 것인가? 오늘날 보존된 모든 천문기록이 담긴 점토판이 셀레우코스 시대의 사본들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타내는가? |
(C-6) Are all extant tablets late copies from the Seleucid era?
(C-6) 현존하는 모든 점토판은 셀레우코스 시대 후기의 필사본인가?
It is certainly true that some of the earliest diaries, including VAT 4956, are later copies. As discussed in chapter 4 of the present work, they frequently reflect the struggle of the copyist to understand the ancient documents they were copying, some of which were broken or otherwise damaged. Twice in the text of VAT 4956, for example, the copyist added the comment “broken off,” indicating he was unable to decipher some word in the original. Often the documents used archaic terminology that the copyists tried to modernize. What about diaries from later times? VAT 4956을 포함한 초창기 일지 중 일부는 나중에 필사된 것이 확실하다. 본 저서 제4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사본 제작자의 고문서 이해 노력이 자주 반영되어 있는데, 그 중 일부는 깨지거나 훼손되었다. 예를 들어, VAT 4956의 본문에서 필사자는 원본의 어떤 단어를 해독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끊어진" 주석을 두번이나 추가했다. 종종 그 문서들은 필사자들이 현대어로 바꾸려고 노력했던 오래된 용어들을 사용했다. 후기에 기록된 일지들은 어떠한가? As an example, there are about 25 diaries from the 46-year reign of Artaxerxes II (404–358 B.C.E.), 11 of which not only preserve the dates (year, month, day) but also the name of the king. (ADT, Vol. I, pp. 66–141) Some of them are extensive and contain numerous observations (e.g., nos. –372 and –366). None of these tablets show any of the above-mentioned signs of being later copies. Is it likely, then, that they, or at least some of them, are originals? 예를 들어,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기원전 404년–358년)의 46년간에 걸쳐 약 25개의 일지가 있는데, 그 중 11개는 날짜(년월일)뿐만 아니라 왕의 이름도 보존하고 있다. (ADT, 1권, 66~141면) 그 중 일부는 광범위하고 수많은 관측(예: –372호 및 –366호)을 포함하고 있다. 이 점토판들은 어느 것도 위에 언급된 필사본의 표시가 들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그것들 혹은 적어도 그것들 중 일부는 원본일 가능성이 있는가? This question was sent to Professor Hunger a few years ago. He answered: 이 질문은 몇년 전 헝거 교수에게 보내졌다.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In my opinion, the diaries from the time of Artaxerxes II can all be from his reign. You know that the larger diaries are all copies in the sense that they are collections of smaller tablets which covered shorter periods. But that does not mean that they were copied much later. To me it would make most sense if after every half a year the notes were copied into one nice exemplar. I had a quick look through the edition and did not find any remarks like ‘broken” which are an indication that the scribe copied an older original. So I would answer your question “is it likely” by “Yes”. 103 내 생각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시대의 일지는 모두 그의 통치 기간의 것일 수 있다. 당신은 더 큰 다이어리가 더 짧은 기간을 다룬 더 작은 판들의 모음이라는 점에서 모두 필사본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점이, 그것들이 훨씬 나중에 필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년마다 그 노트들이 하나의 좋은 예시로 필사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내게는 이치적으로 와 닿는다. 판본을 대충 훑어봤지만 필사자가 오래된 원본을 베꼈다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인 '깨졌다'와 같은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원본일 가능성"에 대한 당신의 질문에 "예스"로 대답하겠다. These tablets, therefore, do not reflect any “theoretical chronology” supposedly invented by the later Seleucid scholars. The tablets might very well be original documents. We cannot take it for granted that they are late copies from the Seleucid era. And the same holds true, not only for the diaries from the reign of Artaxerxes II but for most of the observational tablets dating from before the Seleucid era. Even if some of the diaries and other tablets dated to the earliest centuries are later copies, it is usually not known how late these copies are, or whether they were copied in the Seleucid period or earlier. 그러므로 이 점토판들은 셀레우코스 후기 학자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론적 연대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점토판들은 원본 문서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그것들이 셀레우코스 시대의 후기 사본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시대의 일지뿐만 아니라 셀레우코스 시대 이전의 대부분의 관측 기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가장 이른 세기에 기록된 일지와 다른 점토판들 중 일부가 나중에 사본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 사본들이 얼마나 늦은 것인지, 셀레우코스 시대에 복사된 것인지 혹은 그 이전에 복사된 것인지는 대개 알 수 없다. In conclusion, the theory that Seleucid scholars worked out an erroneous hypothetical chronology for earlier times that they systematically embodied into the astronomical tablets they were copying cannot be supported by the available facts. It is not based on historical reality and is a desperate attempt to save cherished but false dates. 결론적으로, 셀레우코스 학자들이 그들이 필사하였던 천문기록이 담긴 점토판에 잘못된 가상의 연대기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구현했다는 이론은 실제 가능한 사실로 뒷받침될 수 없다. 그러한 이론은 역사적 실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장을 관철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잘못된 연대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
98 N. M. Swerdlow, The Babylonian Theory of the Planets (1998), p. 18.
98 N. M. 스웨들로의 저서 <바빌로니아 행성 이론>(1998년), 18면.
99 John M. Steele, Observations and Predictions of Eclipse Times by Early Astronomers (Dortrecht-Boston-London: Kluwer Academic Publishers, 2000); also in his article, “Eclipse Prediction in Mesopotamia,” Archive for History of Exact Sciences, Vol. 54 (2000), pp. 421–454.
99 존 M. 스틸레의 저서 <초기 천문학자들에 의한 월식 시간의 관측 및 예측>(도르트레흐트-보스턴-런던: 클루워 학술 출판사, 2000년); 또한 그의 기고문 <메소포타미아에서의 월식 예측>, 정확한 과학사를 위한 기록보관 54권 (2000년), 421-454면.
100 Communication Steele to Jonsson, March 27, 2003.
100 2003년 3월 27일자의 스틸레가 죤슨에게 보낸 대화내용.
101 H. Hunger in Swerdlow (ed.), Ancient Astronomy and Celestial Divination (1999), pp. 77, 78. (Emphasis added)
101 스웨들로(편집인)의 <고대 천문학과 점성술> (1999), 77, 78면에서 H. 헝거, (강조체는 추가됨)
102 H. Hunger in Swerdlow (ed.), Ancient Astronomy and Celestial Divination (1999), p. 82. (Emphasis added)
102 스웨들로(편집인)의 <고대 천문학과 점성술> (1999), 82면에서 H. 헝거, (강조체는 추가됨)
103 Communication Hunger to Jonsson, January 26, 2001.
103 2001년 1월 26일자로 헝거씨가 죤슨에게 보낸 대화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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