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기훈련인지, 어버이날 행사인지?
정동식
매년 대한민국의 5월은 바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고 최근에는 부부의 날이 제정되어 명실공히 가정의 달로 우뚝 섰다.
젊은 시절,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는 어버이날에 부모님을 찾아뵙는 일은 거의 상상할 수 없었다. 쥐꼬리만 한 용돈을 부쳐드리고, 안부 전화 한번 하는 정도였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4, 5월에 더 바빴다. 그래서 매년 여름휴가를 양가 부모님 댁에서 보내는 것이 당연시 또는 관례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5일간의 휴가는 생각보다 길지 않아서 처가에서 2박 3일, 본가에서 2박 3일을 머물면 어느새 상경해야 할 채비를 갖추어야 했다.
통상 포항이 서울에서 가까워 처갓집에 먼저 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처갓집에 가면 장모님께서 추어탕과 찰옥수수를 많이 삶아 주셨다. 지금도 장모님은 정서방이 옥수수 좋아하는 걸 기억하신다. 부산에는 아내가 닭백숙이나 전복죽을 끓여 부모님께 드리면 “오늘 며느리 덕분에 몸보신하네!” 하시며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거의 채식주의자에 가까워 육류 등은 거의 안 드셨고 표현도 잘하지 않는 성품이셨다. 그러나 아버님께서는 식성이 좋으시고 아무거나 잘 드셔서 아내의 요리에 만족하셨고 시간이 지나면 또 은근히 기대도 하셨다.
이젠 양가 부모님 중에 세 분은 돌아가시고, 장모님 한 분만 우리와 2년째 살고 계신다. 지난 3월에 올해 어버이날을 어떻게 보낼까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우리는 여행을 하기로 했다. 처음엔 정동진으로 가려고 했으나 호텔 예약이 순조롭지 않았다. 며칠간 예약을 시도했지만 ARS 안내만 울려 퍼지고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1주일 뒤 모든 예약이 끝났다는 안내를 받았다. 예약 시스템이 뭔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꼭 그곳에 가야 할 필요성은 없었다. 그래서 행선지를 청풍호 관광단지로 바꾸게 되었다. 아들이 청풍 레이크호텔로 예약한 날은 3월 22일이었다. 요즘은 예약문화가 보편화되어 웬만한 곳은 두서너 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방을 구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5월 6일, 7일 이틀간 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5월 6일 토요일, 전날부터 오던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우천으로 인해 일찍 나서려던 계획을 수정해서 집에서 점심을 먹고 천천히 출발했다. 우리는 명헌 처남이 운전하는 차에 장모님 포함 다섯 명, 범아, 웅주 두 동서네는 각자의 차로 부부만 참석하여, 차량 3대, 인원은 9명이었다.
다른 지방의 기상이 어떤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으나 중앙고속도로에서는 비가 오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예상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우리 일행은 호텔에 짐을 풀고 만찬장에서 모이기로 했다. 저녁 메뉴는 떡갈비인데 만찬식당이 예상보다 큰 규모라서 놀랐다. 500명 이상은 동시에 수용이 가능할 것 같았다. 시설도 좋고 친절했다. 1인 1식이 원칙이었지만 고령의 장모님이 계셔서 양해를 구하고 8인분을 주문했다. 그 대신 돌솥밥이 포함된 울금 떡갈비 정식을 선택해서 균형을 맞추었다. 애피타이저도 괜찮았고 대체적으로 반찬이 정갈하고 김치도 맛있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명자 처제네도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웅주 이서방이 크리스머스 튜리같이 예쁜 병을 꺼냈다.
간호사인 조카, 혜나가 서울에 출장 갔을 때 사 온 샤인머스캣이라고 한다. 우리는 달콤한 과일주로 어버이날을 축하드리며 건배하고 덕담을 나누다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호텔담장의 붉은 장미꽃을 어루만지며 넘어온 여명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우리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해장국 식당에서 오늘 일정을 의논했다. 유람선이나 케이블카 중 하나만 타기로 했는데 처남이 케이블카 비용을 찬조하겠다고 해서 결국 두 개를 다 타기로 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먼저 유람선 선착장으로 가려면 큰길에서 100m쯤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고 타려고 했던 11시 50분 배는 이미 매진이었다. 오후 배도 예매하지 않으면 탄다는 보장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13시 30분 배를 예매하고 그 사이에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청풍호반 케이블카는 청풍면 물태리에서 비봉산(531m) 정상까지 2.3Km를 운행한다. 비봉산 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조망이 너무 좋아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남해안의 해협 사이로 크고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노니는 한려수도 같았다. 동쪽으로는 우리 숙소였던 레이크 호텔, 남쪽으로는 청풍대교와 청풍호반 일부를 조망할 수 있었고 남서쪽으로는 우뚝 솟은 월악산 영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생각보다 강한 바람과 날씨가 우리의 등을 떠밀며 정상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하게 심술을 부렸다. 서둘러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어르신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느린 행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점심 먹을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미봉책으로 선착장 가는 길에 큼지막한 수제 밀단팥빵을 사서 승선 대기 중에 점심으로 대용하니 꿀맛이었다.
어느 곳을 관광하든 놀이기구나 탈 것은 평범한 일상에 묘미를 주는 도구이다. 특히 이곳의 유람선은 옥순봉, 구담봉 등 볼거리가 풍성하고, 1시간 30분의 운항시간 동안 금수산, 작성산, 청풍호, 충주호의 빼어난 풍광과 만날 수 있어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해안을 관광하는 듯한 운치를 느끼기도 했다.
청풍나루에서 출발한 유람선은 장회나루에서 일부 손님을 내리고 다시 태워 운항을 시작했고, 우리가 탔던 원점, 청풍나루로 복귀했다.
나는 어제 가려고 했던 정방사를 보고 싶었다. 승선 중에 유람선 선장님도 안내 방송을 통해 정방사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천하제일이라고 소개를 하셨다. 처남도 처음엔 생각이 별로 없다가 선장님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정방사에 함께 가기로 했다. 정방사로 올라가는 길은 예상보다 험난했다. 약 2Km 정도 올라가는 도중에 내려오는 차량과 4번이나 마주쳤다. 내 운전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지만 처남은 위기를 잘 극복했다.
곳곳에 교행 할 수 있는 틈이 있기는 했으나 아슬아슬한 순간을 몇 번이나 넘기고 정방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이라고 해야 겨우 서너 대 정도 댈 수 있는 공간뿐이었다. 우리는 장모님이 계셔서 최대한 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서 멈추었다. 먼저 출발한 헌자처제로부터 장모님은 안 오시는 게 낫겠다는 전화가 왔으나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기도 그랬다. 구순의 장모님께서도 가시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하셨다. 나와 명헌 처남이 부축하고 아내는 등을 밀었다. 장모님께서도 지팡이를 짚고 200m 정도의 가파른 길을 엄청난 저력을 발휘하며 올라가셨다.
드디어 크나큰 암벽 아래 자리 잡은 정방사가 눈앞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사찰이라기보다는 작은 암자에 가까웠다. 원통보전 안쪽에 아담한 관세음보살님이 정면의 우람한 월악산 영봉을 포용하고 있었다.
보살님께 삼배를 드리고 미성의 시주를 했다. 많은 소원을 빌 수 없었다.
오로지 모두 건강하게 해 달라는 단순한 기도를 드렸다. 걱정을 내려놓아서인지 성취감을 맛보아서인지 하산하는 발걸음은 동자승의 눈망울처럼 맑고 모과나무 꽃잎 한 장처럼 가벼웠다.
이번 어버이 날은 청풍호에서 장모님과 극기훈련 같은,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 하나를 쌓아 올렸다. 아무쪼록 오늘 피어난 화목의 꽃향기가 참여하지 못한 모든 가족에게도 스며들어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2023.5.14.)
첫댓글 양가 부모님 중 생존 해 계신 장모님이 구심점이 되고있네요. 가족끼리 아름다운 모임 부럽습니다. 저도 며칠 후 아버님 생신에 조촐한 가족모임을 갖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