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결혼 생활은 의무인가, 합의인가?
매칭서비스 '프렌밀리(www.frienmily.com)'는 최근 미혼남녀 1646명(남자 877명·여자 769명)을 대상으로 '혼전계약서를 꼭 쓸 것 같은 남녀 연예인'이라는 설문을 진행, 이병헌과 서인영이 나란히 1위로 선정됐다.
이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이병헌은 남성 연예인 중 34%의 지지를 받아 1위에 올랐다. 뒤를 이어 '욘사마' 배용준이 25%로 2위, 류시원, 비(본명 정지훈), 김건모가 각각 뒤를 이었다.
여자 연예인 중 서인영은 38%의 지지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 2위에는 34%의 지지를 받은 현영, 이효리와 신지가 각각 13%, 11%로 3, 4위를 차지했다. (한국경제신문, 2010년 4월 30일)
미국의 헐리웃 배우들 사이에서 작성한다는 혼전계약서가 한국에도 드디어 등장했다. 위 기사에 따르면 혼전계약서를 꼭 쓸 것 같은 남녀 연예인 중 이병헌이 남자 1위, 서인영이 여자 1위를 했다. 자신의 이익을 확실히 챙길 것 같은, 또 현재 재산을 많이 갖고 있는 연예인들이 상위권에 있는 것 같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혼전계약서는 두 사람의 합의를 바탕에 둔 결혼생활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이혼을 전제로 해서 이혼할 때 손해를 안 봐야 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더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의미의 혼전계약서가 최근에는 결혼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약서로 바뀌고 있다. 결혼 후에 두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적고 지켜야 하는 약속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미래의 남편에게 “아이가 생기면 아이와 하루에 1시간 이상 함께 놀아주고 3시간 이상 함께 지낸다.”라고 결혼할 여자가 작성한다. 여기에 어느 남편은 “매일 아침 밥을 해 준다.”라고 적는다. 만약 두 사람이 이런 조항들에 합의를 본다면 결혼을 하는 것이다.
혼전계약서가 결혼에 대해서 합의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면, 혼전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결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의 합의’보다는 ‘결혼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 같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는 의무를 강조하지만, 이혼을 할 때는 합의를 더 강조하는 것 같다. 결혼 생활을 합의로 보는 것과 의무로 보는 것이 결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결혼 생활을 합의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합의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만 합의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집안일 중 청소, 설거지, 밥짓기, 반찬 만들기, 빨래, 전기제품 수리하기, 공과금 내기, 아이 돌보기, 아이와 놀아주기, 아이 숙제를 봐 주기 등 두 사람이 결혼한 뒤 해야 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미리 합의를 해야 한다. 합의를 하지 않으면 어느 한 쪽이 안 한다고 했을 때 또는 안 하고 있을 때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을 의무로 보는 입장에서는 결혼 후 발생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서로 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고 본다. 남편이 해야 할 일, 아내가 해야 할 일,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 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 사위로서 해야 할 일,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 등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두 사람 모두 이런 의무들을 지켜야 할 책임이 생긴다.
갈등은 결혼하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한 남자는 결혼은 의무라고 생각하고, 그의 아내는 결혼을 합의라고 생각한다. 이럴 경우 남자는 아내가 의무의 범위 안에 드는 일을 안 하면 화가 난다. 여자는 합의의 범주 안에 들지 않은 일은 안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청소를 하는 것은 아내의 의무라고 남편이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청소를 하지 않아서 집안이 더러우면 남자는 아내에게 화를 낼 것이다. 아내는 청소를 하는 게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합의도 안 본 상황에서 남편의 화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두 사람은 서로 싸우게 된다.
두 사람의 입장은 서로에게 아주 당연하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 그 상황에서 청소를 의무라고 생각하는 남편은 청소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게 된다. “당신, 요즘 청소를 너무 안 하는데” 청소를 합의라고 생각하는 아내는 그 말을 듣고 이해할 수가 없다. “난 내가 청소를 한다고 합의를 본 일이 없는데, 왜 내가 해야 하지?”
부부 스스로 의무와 합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을 뿐이다. 또 합의는 명시적이고 두 사람 모두 그 내용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하지만 의무는 암묵적이고 두 사람 모두 그 내용에 대해서 각자만 알고 있다. 대체로 그 의무는 두 사람의 부모님들이 하는 행동들이 기준이 될 가능성이 많다. 어머니가 청소를 하는 집안에서 자란 남자는 여자가 청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아버지가 청소를 하는 집안에서 자란 여자는 남자가 청소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다.
여기서 짚어가야 할 것은 우리들은 결혼식을 할 때 혼인서약서와 성혼선언문을 통해 서로의 의무에 대해서 합의를 했다는 걸 잊고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 도리를 다할것을 맹세합니까?”와 “양인은 일가친척과 친지를 모신 자리에서 일생동안 고락을 함께할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주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에 대해 결혼하는 사람들은 “예”라고 큰소리로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합의를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혹자는 말한다. 만약 결혼 생활이 합의라면 결혼을 하는 것 자체가 복잡해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본질은 결혼 자체보다는 결혼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사랑해서 결혼한다면, 결혼하기 전에 그 결혼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은 어떨까? 우선 서로 결혼 생활을 의무로 생각하는지, 또는 합의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본다. 그래야 미래의 갈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뒤에 서로 남편이 해야 할 일, 아내가 해야 할 일,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 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 사위로서 해야 할 일,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 등 각자의 의무에 해당되는 일들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배우자와 합의를 하는 것은 어떨까?
2011년 5월 16일 칼럼니스트 고용남(자기이해 전문가)
첫댓글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면서..이젠 그만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야할 일...특히 마지막 문구..며느리로서..사위로서... 해야할 일...갑자기 답답해지는건.^^ .뭐랄까.. 의무로서 지워지는 것보단 이왕이면 자발적인 것.. 그래서 합의라는 말이 더 듣기 덜 거북한가봅니다.. (그 합의 하는 과정의 지난함을 알기에 약간은 그것도 거북하지만서도 ㅋ) / 아이들에게도 의무로서 지워주지 말고. 합의해 나가는 과정을 계속 실천해가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결혼 및 가정 생활을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합의해 나가는 과정을 실천하고 계시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어제 아이들 결혼시킬 나이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 되었습니다.
약사하는 딸에게 결혼정보업체에서 전화가 온다고 합니다..
약사니깐... 6회 2백 알선료지만 할인해 준다고....
그러면서... 나의 딸과 비슷한 직업이면 좋겠다고....
자랑삼아 말씀하시더군요..
힘이 빠지더군요...
대출을 권하는 사회... 물질만능주의로 흘러가는 것이 슬픈데...
신랑과 신부가 상품이 되어가는 소수분들로 슬퍼지더군요...
연애할 때는 사랑이라고 하지만.... '열정' 이라고 정의를 하더군요...
사랑은 그 열정으로 맺어져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나가는 과정속에
생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합의라는 말이 약간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과 배우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행복하게 위해서 원하는 것들을 이해하고 인정해가는 과정이거든요, 좋은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결혼전에 자신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되었는지?
결혼할 상대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는지? 를 서로 논의하거나...
상담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시스템이 생길때까지는 그 과정을 공부하거나, 상담받는
곳을 찾아야 겠지요....
저희집이나... 울산 등대지기소모임에서는
자신을 알고 이해하고 남편에 대해 알기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생각보다 모르고 있는 것이 참 많더군요...
결혼하지 않고 사는 독신녀가 부러웠는데...
막상 결혼해 보니... 남편과 . 아이들로 통해서 나를 좀 더 알아가서
좋은 점도 있네요...
맞습니다. 상대방과 합의를 하려면 나의 욕구를 내가 정확히 알아야하지요. 내가 나를 잘 알아야 합의도 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