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역량·비즈니스 모델 혁신' 주창
학계 이단아가 최고의 '경영 구루'로
게리 해멀 런던비즈니스스쿨 객원교수는 통상적인 교수와는 판이한 삶을 걸어왔다. 미시간에 있는 앤드루대학을 마친 해멀은 한 병원의 관리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뒤늦게 박사 과정을 시작했고, 미시간 경영대학원에서 그의 스승이자 평생 동지가 된 프라할라드 교수를 만나면서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발표하거나 사라지거나(Publish or Perish)'라는 말이 있듯,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위 유명 학술지에 많은 논문을 싣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해멀은 학계에서 인정받는 이론을 답습해서 학술 논문을 쓰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이 강한 새로운 이론을 개발해서 경영자들이 애독하는 저널에 글을 게재하는 길을 선택했다. 해멀은 프라할라드 교수와 함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 집중적으로 글을 발표했고,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 덕분에 전략 분야의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1985년 '당신은 진정 글로벌 전략을 갖고 있는가?(Do You Really Have a Global Strategy?)'라는 제목의 글을 시작으로, 1989년 '전략적 의도(Strategic Intent)', 1990년 '기업의 핵심역량(The Core Competence of the Corporation)' 등의 글을 잇달아 발표했다. 1994년에는 그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한 <미래를 위한 경쟁·Competing for the Future>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경영 분야 베스트셀러가 됐고 학계에도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책에서 해멀은 당시 전략 분야를 지배하던 결정론적 시각에 반론을 제기했다. 당시 마이클 포터 교수로 대표되는 산업조직론에서는 기업간 경쟁은 명확히 구분된 각 산업 내에서만 일어나는 일로 간주됐다. 때문에 산업 내의 경쟁 기업을 이기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해멀은 이런 시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 규제 완화, 글로벌화, 민영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중요한 경영자의 과제는 경쟁자 대비 자신의 상대적인 위치(relative position)를 찾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기 위해 자신의 '핵심역량'을 구축하는 일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뒤에 해멀은 실리콘밸리에 스트래티고스(Strategos)라는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혁신 도구와 기법 개발에 심취했다.
2000년 출간된 두 번째 저서 <꿀벌과 게릴라·Leading the Revolution>는 6년 동안 스트래티고스에서 해멀이 경험하고 연구한 내용들을 정리했다. 이 책에서 그는 20세기를 지배한 사고가 개선과 효율을 위주로 한 진보의 이데올로기였다면, 21세기는 불연속적인 변화가 지배하는 혁명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세기에는 미쓰비시·씨티그룹·닛산·듀폰 등의 거대 기업이 정교한 계획·식스 시그마·리엔지니어링 등과 같은 기법들을 활용해 시장을 지배했지만, 21세기에는 모토로라를 단기간에 넘어선 노키아나 델·아마존·스타벅스·사우스웨스트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에 구현해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혁신기업들이 지배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러면서 경영자들에게 진부한 모델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하는 보다 근본적인 혁신을 촉구했다.
2007년 해멀은 <경영의 미래·The Future of Management>라는 책으로 다시 화제를 일으켰다. 이전의 핵심역량 경영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 이어 이번에는 '경영 혁신(management innovation)'을 화두로 던졌다. 해멀은 이 책에서 기존 경영 방식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흔히 경영 혁신이라고 하면 비용 절감이나 인원 감축 등 극단적 쥐어짜기를 떠올릴 수 있지만, 해멀 교수가 주장하는 경영 혁신은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는 해멀의 주장이 추상적이고 실행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주장했던 핵심역량은 이제 기업에서 전략을 논의할 때 빠지지 않는 핵심 주제가 됐다. 해멀 자신도 이론가(theorist)보다는 행동주의자(activist)로 불리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