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받을 자 수11:16~20절 2024.6.16. 주일 오전
* 십자가의 은혜 아니면 안 되는 인간
18~20절에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들과 싸운지가 오랫동안이라 기브온 주민 히위 족속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이스라엘이 싸워서 다 점령하였으니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을 진멸하여 바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들을 멸하려 하심이더라"고 합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죄 중에 태어난 완악한 자들입니다. 인간의 본질이 죄이기 때문에 진리에 대해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소경이요, 깨달을 수 없는 마음이 완악한 자들입니다. 이들을 그대로 버려두면 모든 것을 자신의 욕심이 충동질하는 마음대로 행동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을 해롭게 하거나 자기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고 대적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가나안땅 족속들도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정복하려고 공격하여 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맞서게 되는 것이고 대적하게 되는 것은 20절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대로 버려두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들에게 은혜로 역사하셨다면 이들도 기브온 주민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항복하여 굴복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20절 하반절의 말씀처럼 그들로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을 멸하려 하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이 그대로 버려두심입니다. 우리가 로마서1장의 말씀을 살펴보았듯이 이 세상의 인간들은 하나님께 죄를 짓고 하나님께 버려진 자들입니다. 이것이 죄요 저주요 하나님의 진노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들의 증상은 자신이 욕심이 이끄는 대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의 본질은 하나님이란 진리를 싫어하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섬기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각종 흉악한 죄의 열매를 발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완악한 죄인들이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을 멸망시키기로 이미 뜻을 정하시고 작정하셨기 때문에 이들은 기브온 주민처럼 이스라엘에게 항복할 수 없고 그들을 대적하다가 다 멸망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버려둠의 증거입니다.
인간의 저주는 하나님의 버려둠의 상태입니다. 지금은 인간이 자기의 마음대로 욕망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것이 하나님의 저주요 진노인 것입니다. 즉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이 없는, 생명이 없는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음부의 권세 아래 종노릇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하지 않고는 결코 음부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마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마귀가 유혹하는 마음이고 욕망이 충동질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자신이 판단하는 이성에 따라 사는 것이 죄요 사망이라는 저주의 상태인 것입니다. 인간은 마귀가 이끄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만족이 없고 욕구불만에 의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생명의 길은 자신의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해서 말씀에 지배를 받고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은혜입니다.
*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김
인간의 시각 인간중심의 생각에서 '하나님은 나쁜 인간은 벌주는 것이 마땅하지만 착한 인간은 사랑하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 착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이 보시는 세상도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착한 인간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서 반발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인간이 착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서 반발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고 여기십니까? 당장 오늘 본문을 대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의문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가나안 사람을 이스라엘과 싸우게 해서 진멸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싶지 않습니까? 세상을 보면 비참함에 처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굶주림 속에서 살다가 죽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바라볼 때 사람들은 누구나 혀를 찹니다. 그러면서 결국 하는 말은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왜 이들을 이렇게 비참하게 살게 하시느냐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반발입니다.
인간의 얄팍한 윤리와 도덕과 양심과 감정과 동정심까지 다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선택에 반발하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세상의 누가 이해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세상은 착한 사람이 없고 모두가 진멸을 당해야 할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진멸하실 자를 진멸하신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저주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가나안을 진멸을 하기 위해서 그들이 은혜를 입을 수 없도록 완악한 그대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결국 진멸에서 벗어난 자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쪽에서는 가나안이 은혜를 입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이것은 은혜를 입을 자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곧 택한 자입니다. 오직 택한 자만 구원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택함 받지 않은 자들은 은혜를 얻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롬9:15~16절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합니다.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은혜를 받고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애쓰고 열심을 낸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엡2:8절에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인데, 은혜를 주는 자도 인간의 윤리나 도덕이나 양심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오직 성령에 의해서
아무리 인간이 원한다고 해도 받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그리스도를 믿고 싶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싶어하는 자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주님이 가신 길을 나도 따라가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신 길이 인생의 성공이 있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적으로 볼 때 실패의 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늘의 것만 소망하고 산다는 것을 반길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 역시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는 자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자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인데 누가 이 은혜를 사모하고 받고자 하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오직 택한 자만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성령을 받지 아니한 인간은 하나님의 세상을 망치고 더럽게 하는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가나안의 마음을 완악하게 해서 이스라엘과 싸우게 함으로서 그들을 진멸 시키는 모든 일은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진멸하면서 우리 역시 진멸 당할 자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임을 철저히 깨달아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가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하셨는데 이스라엘이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도 역시 우리들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멸을 당해야 할 우리가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신 그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은혜를 받았으니까 받은 티를 내야 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물론 은혜를 받았으면 그 표가 나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에 봉사나 열심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도 '나는 주님의 은혜로 주를 믿게 되었음을 자랑하고 주님만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애써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행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린 다만 주님만 자랑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주님만 높인다는 것은 성령 받지 아니하면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자기 행위를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랑할만한 일을 내 해놓고도 그것을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이 오셔서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