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
정 신 재
우리 집 베란다에는 개를 키웁니다. 소위 ‘똥개’라고 불리는 평범한 개인데, 나는 그 개를 볼 때마다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저 개는 왜 하필 개로 태어나서 냄새가 난다고 하여 갇혀 지내야 하고 심한 경우에는 사철탕 음식 재료가 되기 위하여 선택의 자유도 없이 죽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벌레 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가지게 됩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수많은 별들이 있는 천체 바깥에는 도대체 어떠한 세계가 있을까 하는 상상을 많이 하였습니다. 또 그 천체를 만든 존재는 누구이며, 그 존재를 만든 존재는 누구이며, 왜 지구에만 인간이 살게 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는 하나님은 스스로 있으며, 이 천지를 창조하고 주관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주기도문’에서는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고, 영적인 필요에 의한 기도를 하라 합니다. 그 사이에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내가 한동안 간과하고 있었던 구절입니다. 나는 요즈음 나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마음의 여행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이 나에게 두신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한 사색의 길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누구도 갈 수 없는 나만의 길입니다.
대학 시절, 나의 아버지는 같은 교회 집사에게 사기를 당하여 42년간 재직하고 받은 퇴직금을 하루 아침에 다 날렸습니다.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지자 나는 간호사로 독일에 간 누나가 보내 준 여자 청바지를 입고 대학 4년 동안을 버텨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내 아랫도리가 꽉 조인 가운데 살았던 것은 주님도 잘 아십니다. 그때 난 일용할 양식이 없으면 사람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가도 잘 알았습니다. 나는 이때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리라 다짐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내 또래들이 강남으로 이사가서 20억, 50억을 운운할 때에도, 나는 담담하게 서민과 함께 한다며 서민의 권리를 찾고자 ‘이문동’을 지켰습니다. 서민 생활의 행복을 알리는 <이문동 소견>이란 시집도 출간하였습니다.
고즈넉한 햇살이 문을 두드린다
눈 먼 창문을 넘어서면
[아가의 기도]를 건너
하루치의 손님을 기다리는 여자
고향 얘기를 서러운 밥에 말아 먹고
가죽띠 위로 날선 칼을 간다
도시의 거품을 걷어낸 후
넋두리의 수염은
여자의 손길에 잘려 나가고
파아란 하늘과 만나는 거울
학벌이 날아가고
이데올로기가 날아간 실내가
바다처럼 가라앉고
거울 위에선
영원의 친분마저
나뭇잎으로 된 치마를 벗는다
- 정신재,「이발소 풍경」전문
이 외에도 나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도 평등한 권리를 누리라는 뜻에서 「변기 위에서」란 시도 써서 발표하였습니다. 이 시는 어느 날 변기 위에 앉았더니 이명박 대통령도 이러한 변기 위에서 볼 일을 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건강하게 일상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고상한 면이 있었던 반면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야 할 건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광대 기질이 있었습니다. 유치원 시절에는 조숙하여 ‘성탄의 밤’을 준비하다가 옆에 앉은 여자 아이의 볼에 갑자기 뽀뽀를 하여 주변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고, 총각 시절에는 음식점이나 다방에서 나올 때마다 맞선 상대 앞에서 빳빳한 만 원 짜리 지폐가 수십 장 들어 있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며 여유 있는 척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한 번은 처갓집에 신선한 과일을 잔뜩 싣고 가다가 차에 펑크가 나서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서 가족들 앞에 자신감을 보이며 타이어를 갈아끼웠는데, 펑크난 타이어를 다시 끼우는 바람에 가족들에게 망신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교수 채용 면접 때에는 김동길 교수 흉내를 낸다고 콧수염을 멋있게 기르고 면접을 보다가 이사장한테 툇자를 맞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내가 나의 ‘일용할 양식’을 모르고 너무 꿈이 큰 데서 생긴 과장된 몸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어느 정도의 숙련을 거친 나의 그릇을 좀더 크게 만드시려는 것 같습니다. 우이 교회에서 실시하는 제자 훈련을 받으면서 주님은 나에게 ‘일용할 양식’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의 기준에 비추어 보니 그동안 나는 ‘큰 그릇’에 못 미치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아직 퇴직하려면 많은 햇수가 남았는데도 연금이나 받으며 지내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젖어 있었으며, 20년 이상 해 오던 대학 강의도 놓아 버렸고, 잡지사에서의 원고 청탁도 귀찮다며 거절하였습니다. 집 안에서는 소파에 누워 등허리가 배길 정도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 바둑을 하는 것으로 소일하였습니다. 이는 도저히 주님이 원하는 그릇이 아닙니다.
제자 훈련 후 나는 나에게 하나님의 ‘일용할 양식’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일용할 양식’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주님이 오래 전부터 계획하신 것 같습니다. 주님은 나의 청년 시절에 선교의 비전을 주셨고, 젊은 시절부터 찬양의 행복을 느끼도록 축복하여 주셨으며, 6개월 동안 총회 신학대학원 강의를 듣게 해 주셨고, 6년 동안 선교사 후보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나를 빛나고 뾰족한 화살로 빚어 어디든지 주님이 원하는 곳에 가 꽂힐 수 있도록 나를 연단시키신 역사입니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교회 성가대에서 성가를 부르며 주님께 드리는 찬양으로 행복을 느끼고, 작가로서 하나님의 의에 걸맞는 글을 써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도 열심히 합니다. 직장에서는 교재 연구를 열심히 하고 학생들을 사랑으로 대하며 가정에서도 나의 변화를 보고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일용할 양식’을 감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도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첫댓글 하하, 읽는 내내 웃었습니다. 교수님에게는 참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으십니다. ^^ 교수님 글 참 따스합니다. ^^
오랜만에 올리신 수필 일요한 양식 시간을내어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교수님 글은 자주 보기 힘들던데 감사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께서 들어 쓰시기 위한 은사를 주신것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성가대에서 자가로서의 은사를 표보이시고 계시며
전 교회에서 전속사진사로 색소폰 연주로 가끔은 헌신예배때 신앙시로
봉사하고 있답니다 가끔은 주신말씀에 순종치 못하는 삶을 살고있음에
회게하고 기도하고 있답니다 좋은 글 일용할양식 감상 잘하였습니다
교수님의 간증을 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많은 메타포를 주셨습니다. 주님을 향하여 세상을 바라보시는 心眼이 은혜를 받아
밝게 빛나리라 확신합니다. 교수님의 체험을 통햐여 수록하신 작품을 통하여
저도 일용할 양식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ㅎㅎ
저도 크게 웃으며 읽었습니다.
청바지 입은 사연에서..ㅎㅎ
저도 강아지를 키우면서 왜 쟤는 개로 태어났을까 연민을 느껴 말 안듣고 야단치다가도
간식하나 더 주게 되더이다.
종교인이 아니어서 주님이란 단어가 어색하나 솔직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글,
교훈이 되는 글에 감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