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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풍경, 아카이브☆]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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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아카이브◎]
전기철 시집 / 도서출판 작가(2019.05.30)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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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아키이브
전기철
아버지와 결혼한 걸 후회한 어머니가
마늘밭에서 아버지를 하나씩 뽑고 있을 때
어머니를 하와이 해변으로 옮긴다. 포토샵으로
비키니를 입히고 선글라스도 끼워준다. 물거품을 따라
해변이 파랗게 펄럭인다.
매운 해변에서 어머니는 콜록거린다. 오! 불쌍한 어머니
마늘 냄새를 지운 술잔에 데킬라를 붓는다. 재즈에 맞춘 어머니
어지럼증에 시달린 젊은 아버지를 클릭해 온다.
색다른 아버지, 혹은 빌려 온 어머니
피식, 해변에 웃음집이 생긴다.
어머니, 모조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들어간다.
아버지였던 아버지를 통 잊어버린 채
거울 밖에서 나는
어머니였을 어머니를 암만 찾으려 해도 적절한 색을 찾을 수 없으니
계절을 바꿔보기도 하고 해변을 바꿔보기도 하지만
낯선 풍경 위로 마늘 냄새가 기우뚱거리며 번질 뿐
여름 가족
사물 ,ASMS 아버지 흉내를 낸다. 분명 이 빠진 사기그릇인데 사물 A는 아버지인 척 헛기침을 하며 사물B를 연주한다. 찌그러진 양재기인 사물 B는 내 어머니인 양 사물 A에 맞춰 우는 소리를 낸다. 새벽 기침처럼 울리는 곡조에 돌연 사물 C가 된 내가 참회를 닮은 자조를 뱉으면 길어진 아침의 혈관으로 빗물이 스며든다. 낯선 계절에 갇힌 아침, 칙칙한 초록의 나라, 함석지붕으로 비가 불협화음을 뿌리고, 무채색의 여름 속으로 뛰어 들어간 사물C는 파랗게 질린다
한여름 밤의 꿈
세상은 마법에 걸렸어요.
이스라엘 사람 유리 겔라가
숟가락을 구부리는 밤
모두들 티브이 앞에서
알라딘의 요술 램프를 쓰다듬듯이
숟가락을
밥 먹는 숟가락의 고개를
부러뜨리는 밤
그 한여름 밤에
나는 알바에서 잘려 행복에 시달리며
동물원으로 표범을 보러 갔어요.
그 한여름 밤에
모두들 숟가락을 부러뜨리는 밤에
동물원의 담을 넘었어요.
먼 아프리카의 꿈을 만나러
한여름 밤에
숟가락을 구부리는
그 한여름 밤에
세상의 담을 넘었어요.
유리 겔라가 숟가락을 부러뜨리는 밤에
아프리카의 밤을 만나러 갔어요.
숟가락들이 부러지는 밤에
세상의 담을 넘었어요.
어머니는 아직도 배추를 다 팔지 못해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그 밤에
플라타너스
오늘은 예이츠가 죽은 날
그 날처럼
눈 내리고 춥다.
바람이 어둠과 범벅이 되어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거리에서
떨고 있는
나의 누이, 플라타너스여,
아직 나는
유년의 대륙을 찾지 못해
고독을 어깨에 짊어지고
증오를 직업으로 삼은 채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그리움은 쉽게 마모되고
희망은 마약인가.
가진 자들이 사이코패스가 되어 눈을 부라리는
엄혹한 세상에서
나는 저주받은 시나 쓴다.
나의 누이, 플라타너스여,
내 유년의 대륙으로 가고 싶다.
그곳에 가서
쓸모없는 나무가 되고 싶다.
오늘은 예이츠가 죽은 날
불평 많은 나의 시를 데리고
이니스프리로 가고 싶다.
침묵
너의 어깨 너머에는 나의 과거가 있어, 후회와 거래한 나의 과거가, 미소의 카탈로그를 나열하고 있어. 나의 철사 같은 웃음 속에 묻은 침묵의 페이지를, 네가 읽지 못하도록, 나는, 푸른 권태와 노란 권태 사이, 비무장 지대에서 얼굴을 꺼버리려 하지만, 증오의 손이 침묵의 페이지 밖으로, 뛰쳐나오는 걸, 보는 이가 있어, 나의 손에는, 외로움이 진열되어 있거든. 나의 잘병인 불안이, 잠든 너의 어깨 너머, 어스름의 이끼 가득한 너의 어깨 너머, 비무장지대에서는, 노랑 도깨비 파랑 도깨바, 자본주의가 망하기 전에는, 절대로 서정시를 쓰지 않겠다는, 너의 시가 울고 있어. 후회와 거래를 하고 있어. 손수건이 품위를 잃을 것만 같아, 나의 기도를 묻은, 너의 어깨 너머에서, 젖은 시간이 흘러내려
내가 출근할 곳은 어디인가
왜 그렇게 결근이 잦느냐고 나무라는 시장에게 항변한다. 나는 매일 출근하여 착실하게 손도장을 찍고 있습니다. 내 부러진 손톱자국이 칸칸에 박혀 있는 것을 보지 못하셨나요. 킥킥거리는 내 흔적들이 사무실에서 쪼그리고 있는 게 보이지 않으시나요. 당신의 지구본은 낡았다. 날마다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고 전쟁으로 없어지기도 하는 것을 모르는가. 어느 정치가가 아직도 전쟁을 일으키고 있어 사무실이 섬처럼 떠다니나요. 수많은 전쟁으로 바늘 꽂을 곳조차 없는 대륙에서 사무실이 한 자리에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은가. 당신의 지구본은 20세기의 유물이다. 사무실이 한없이 움직이는데 당신은 어디로 출근하고 있단 말인가
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다
아내는 나를 조금씩 바꾼다. 쇼핑물을 다녀올 때마다
처음에는 장갑이나 양말을 사오더니
양복을 사오고 가발을 사오고
이제는 내 팔과 다리까지도 사온다. 그때마다
내 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리지만 아내는 막무가내다
당신, 이렇게 케케묵게 살 거예요, 하면
젊은 아내에게 기가 죽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만다
얼마 전에는 술을 많이 마셔 눈이 흐릿하다고 했더니
쇼핑몰에 다녀온 아내가 눈을 바꿔 끼라고 한다
까무러치게 놀라며 어떻게 눈까지 바꾸려고 하느냐. 그렇지 않아도 걸음걸이가 이상하다고 수군거린다고 해도
그건 그 사람들이 구식이라 그래요, 한다
내 심장이나 성기까지도 바꾸고 싶어 하는
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서 쩔쩔맨다
열심히 운동을 하여 아직 젊다고 해도
아내는 나를 비웃으며 나무란다
옆집 남자는 새 신랑이 되었어요. 당신은 나를 위해서 그것도 못 참아요, 한다
시무룩해진 아내가 안쓰러워 그냥 넘어가곤 하는데
아침 일찍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
거울 속에서 내 자신이었을 흔적을 찾느라
얼굴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내 모습이 없으니
밖에 나가면 검문에 걸릴까 두려워 일찍 귀가하곤 한다
K
― 프란츠 카프카에게 바침
K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K에서 이제 가족이라고는 물고기 한 마리밖에 없다. 새가 되고 싶어 하는 물고기
K에 불시착한 뒤 물고기는 바다 꿈에 사로잡혀 있다
물고기를 위하여 K를 떠나야 한다. K는 지문의 끝. 부서진 난간에 걸린 해처럼 지도에 없는 도시다
완벽한 보완의 도시, 도서관과 인터넷으로 무장한 K에서 내 물고기는 새를 꿈꾸는 것조차 들키고 만다
물고기를 위하여 K를 떠나야 한다. 도시의 심전도를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의 비밀스런 문서를 빼낼 기회만을 엿보며
시그마 빌딩에서 잔고 바닥난 신용카드처럼 깊이 숨어 있다가 창문을 통해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물고기의 꿈을 가득 실은 채
산돼지처럼 어디에서도 안주하지 못하며 내 그림자들이 꾸미고 있는 속임수를 따라
물고기를 닮은 눈동자를 빛내면
바다를 가장한 스타벅스에서 사이렌이 울린다. 무균처리 된 도시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고
물고기에게 바다 냄새라도 맡게 하려고 도서관 깊은 창가에 서면 창밖에 목매달고 있는 무수한 편지들
저 멀리 십자가를 주렁주렁 단 교회들이 엉금엉금 걸어오고, 소독내 퍼진 하늘이 파랗게 질린다
K는 우주의 어느 은하를 떠돌고 있는가. 지금 내리고 싶다
사도우 문
배우 옥소리가 간통으로 고소를 당했다. 나는 도쿄로 도망쳐야 한다
이웃집 형은 직장을 잃고 개 사냥꾼으로 나섰고 친구동생은 서른 살이 넘었는데도 장난감이나 들고 다니며 공원에서 하루를 보낸다
우리 동네 풍경은 더 이상 숨 쉴 곳이 없어 새들도 아침이면 와서 울지 않는다. 나는 도쿄로 도망 갈 날짜만을 달력에다 바꿔 단다
오늘은 선배를 따라 한강으로 가야겠다. 선배는 또 다른 세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눈이 휘둥그레질 돌을 발에 묶고 강바닥으로 내려가겠지. 선배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곧 도쿄로 가야 한다고 변명하리라
아침이면
해는 샛노랗게 떠오르고 담쟁이가 우울한 밤을 풀어헤치기라도 하려는 듯 담장에서 고개를 살랑거리지만 개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형이 정육점으로 기름 덩어리를 얻으러 가는 발소리, 친구 동생이 골목에서 장난감을 굴리는 소리가 하루를 두드린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앳된 옥소리는 카랑카랑하다. 나는 다음 주에는 꼭 도쿄로 도망치리라 다짐하면서 선배가 돌멩이를 발에 묶고 강바닥으로 내려가서 올라올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세상을 찾을지 궁금해서 창문을 소리 나게 연다
하늘은 금세라도 무슨 말을 뱉을 것만 같다
종착역
한 꽃송이가 있습니다
한 꽃송이는 추운 대합실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한 꽃송이만이 오지 않는
다른 꽃송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버린 대합실에서
한 꽃송이만이 제 몸으로 불을 피우며 기다립니다
기차가 몇 번 들어왔지만
한 꽃송이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윽고
막차가 들어옵니다
우산처럼 안내방송이 펼쳐지고
외국어로 칙칙 이던 기차가 잠들 때까지도
한 꽃송이는
밤새 불을 끄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덕에 올라
-척호陟岵,『시경詩經』위풍魏風으로
불빛이 멀리 비척거린다
나뭇가지에 걸린 딱따구리가 철컥, 철컥, 점호를 하고
발아래 풍경이 가뭇없이 무너진다
귀가 웅웅,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하나
(너무 멀리 와 버린 건가)
약을 끊지 말았어야 했다. 쥐라도 키우든지
나뭇가지에 매달린 비닐봉지가 운다
옥련암의 댓잎은 아직 푸르겠지
와락, 안개가 얼굴을 묻어버린다
삼천포
너는 비스듬히, 갸웃한 이라는 말 속을 떠도는 비긋이, 혹은 유년의 꿈처럼 비릿한, 가끔 밤으로 기우는 말들이 모여 있듯, 어슷히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너는 삼천포에 갔다. ‘아득하면 되리라’를 생각하며, 아득하도록 비스듬히, 바다를 내려다보는데
비긋이 날아가는 구름의 손가락들, 빗물질적으로 녹아내리는 바람의 등고선을 따라, 뭉그러지는 너의 독백들, 낭떠러지의 목소리, 뿌리 내리지 못한 너의 이름들이 비인칭으로
구깃구깃, 그리고 까마득히
뭅
쨍, 날카로운 햇빛의 일요일
나는 사건이 된다
즉홍연주 같은, 끄나풀 같은, 수배자 같은
일그러진 빗방울을 주렁주렁 달고 오빠가 온다. 날 알아볼까
내일과 내 일에서
헤적이는 네일을 매단 봄바람이 출렁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그때 만나던 곳으로 와
나는 사건이다
압생트 같은, 할러데이 같은
욱, 하고
달나라로 날아간 나비 같은
베트남 소녀의 노래 같은, 공중화장실 계단에서 기다리는 모자 같은
그
골목
툭, 소리를 내며
마지막 비행을 꿈꾸는 나뭇잎 같은
사람
네 발 달 린 침 대 네 발 달 린 의
자 달 린 다 초 원 을 향 해 비 는
내 릴 것 이 다 태 양 너 머 네 발
달 린 기 린 을 따 라 네 발 달 린
악 어 가 뛰 어 가 고 네 발 달 린
자 동 차 가 달 리 는 데 바 보 마
냥 두 발 만 달 고 겅 중 거 리 며
뛰 는 장 대 처 럼 절 름 거 리 는
길 쭉 한 허 우 대 하 나 네 발 이
었 다 가 두 발 이 었 다 가 가 끔
은 세 발 이 기 도 한 약 골 하 나
저 멀 리 네 발 달 린 것 들 을 쫓
는 듯 쫓 기 는 듯 두 발 이 었 다
가 세 발 이 었 다 가 오 귀 여 운
앞 발 을 잃 어 버 리 고 겅 중 겅
중 쫓 는 듯 쫓 긴 다
가벼움에 대하여
이른 아침, 한없이 순환하는 지하철을 탄다. 꿈들은 모두 나의 반대편에 앉는다. 나는 기우뚱하는 차를 견딘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지하철은 한쪽으로만 달린다. 좌석에 앉아 경디기에는 나는 너무 가볍다. 머리가 빈다. 가슴이 울렁거려 일어설 수가 없다. 뱃속에서 허한 것들이 목을 타고 올라오려는 찰나, 참을 수 없이 가벼워져 몸이 공중으로 뜬다. 겨우 손잡이를 잡고 견디면서 이렇게 부당한 천칭에서 내릴 수 있을까 걱정한다
당나귀
나날이 귀가 자란다
귀가 자랄수록 거리에서 들었던
자음들은 모음을 만나기도 전에
안으로 들어와 내 몸 속을 떠돈다
시끄러운 소리들에
풍경조차 모자를 눌러쓴다
귓속에 든 소리들이 쥐를 낳는다
쥐는 지푸라기를 모으고
지푸라기는 길을 낸다
커지는 귀를 움켜쥐려
모자를 깊이 눌러쓴다
넓은 대로도 귀 안에 갇힌다
쥐똥과 지푸라기들로 난장판이 된
귀에서 낯선 세상은 자꾸 태어나고
수다는 길게 이어진다
비눗방울
사흘은빵집이요닷새는다리께낚시터다저
녁물에는어처구니를만나아삭소리를낼것
이다망설임은보험문제다멀뚱히서있다가
언덕에서굴러떨어져턱이깨진표정이다내
내평화를잃은사내가안절도부절도못한다
저만큼한소녀가앗과엇사이에서발을동동
구른다계절의경계에철조망이쳐지고깨진
목소리에서는그냥이쉬를한다오늘은그믐
과초승의사잇길어둑신한풍경속으로구깃
구깃종이가날아올라앵무앵무들볶아친다
머쓱허공이몇가닥의극사실로헝클어진다
손현주가 나오는 영화는 다 본다
손현주는 부사다. 몸의 명랑, 속으로 빠져들어, 으흥, 식물성으로 히죽거리다가 ‘똥이 탄다, 스벌놈아!’ 바슬바슬한 말에 홀리다가 안방에서 정글로 널뛰는 손현주는 야생동물이다
잔웃음을 피식, 비릿해진 머릿속이 깜깜한 밤 속을 거닐고 있을 때, 전화기 속으로 알약을 삼키는 소리를 듣고는 울컥 울컥, ‘이런 법이 없어!’ 허벌나게 깊이 담배의 본능을 빨아들이느라 눈과 입이 따로 노는 손현주는 너무 덥다
가끔은 으스대기도, 혹은 어긋나게 나가다가 미래를 향해 질주할수록 과거 속으로 쫓겨, ‘나를 더 괴롭히고 싶다!’ 뾰족한 한 수를 내뱉는, 손현주는 엉큼 쌉싸름한 동사다
뜨개뜨개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해 쓴다. 분실물에 대해, 잊어버린 꿈에 대해, 중독된 노래에 대해, 그리고 허공으로 도약하고 싶어 한 오래 전에 죽은 친구에 대해, 그의 눈에 대해 쓴다. 물고기의 언어에 대해
네 병실은 바흐의 칸타타가 울렸지, 창가에서는 풀잎이 숨 쉬는 소리가 들리고 플라스틱 단봉낙타가 너 대신 백일몽을 꾸었지. 안개꽃 같은 숨결로 너는 말했지. 여기 거울 속 맞지, 나는 눈으로 말했지. 너는 이 지상의 손님이야
오늘도 나는 종작없이 걷는다. 찰흙 같은 어둠 속 밤이 너덜너덜하다. 멀리 있는 강이 푸드득거린다
크래커로 만든 아이가 있었지. 생쥐를 키우고, 누가 내 머리에 똥을 눴어. 씩씩거리는 아이는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말을 거꾸로 했지. 집을 먹었어요. 엄마도 먹고 동생도 먹었어요
육식동물들이 길을 메우고, 길 건너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좋아요’를 몇 번 눌렀나
거울을 깨고 나온 새, 태양 너머를 힐끗
배꼽
어느 슬픈 총상인가
만지면 덧나는 가족사진처럼
감춰진 흉터에서는
쇳소리가 나고
과녁이 똬리를 튼다
풍경에 절망한 눈
황폐한 길들에는
잉크가 묻지 않으니
총상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풍경을 잃어버린 도시
더 이상 과녁일 수 없는
눈
문고리보다 단단한 무덤
버스는 죽었다
버스는 죽었다. 총소리가 수상한 거리를 검색할 때 버스는 쓰레기처럼 거리에 버려진 채 문을 열어젖히고 누워버렸다. 죽은 사람들이 버스 안에서 기침을 하고 봄 감기에 떠는 회색 빌딩들이 조곡을 부르고 있었다. 골목 여기저기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몰래 버스를 관찰하고 낡은 하늘에 찢어진 깃발을 내걸었다. 버스는 죽었다. 암호처럼 시체들을 가득 싣고 버스는 죽었다. 세기말로 향하는 길을 뚫어 놓은 채 해독되지 않은 문자로
월정리
말없음으로도 묻지 않는다. 여기서는
네모나게 날아가는 바다로 가득한 창문, 고래가 될, 파도가 저만치 부스럭, 해안을 털어내면, 큼큼, 바람개비들이 꿈처럼 비상하는
여기는 귀환불능지역입니다
한 소식인 듯 바다를 끌고 다니는, 고래가 될, 무게 없는 얼굴로 떠다니는 창문으로, 어제의 비가 내리고, 고래가 될, 바삭한 한 컷의 시선이 한소끔 들어오는
해끔한
고래가 될
*<고래가 될>은 제주도 구좌읍 월정리 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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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나는 오래 전부터 불안, 강박, 공황 장애를 앓아 왔다. 그걸 가끔 술에다, 그리고 자주 시에다 감췄다. 나를 견뎌줘서 고맙다. 시야, 언어의 꽃다발아.
퇴임기념시집을 묶어준 숭의여대 문창과 동문회에 감사드린다.
2019년 봄
전기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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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철 詩集 [※풍경, 아카이브※]
[ 나의 시론 ] -
시에는 폭풍이 있다
왜 시를 쓰는가? 날마다 수많은 시들이 발표되고, 시인들이 쏟아져 나온느데 왜 당신까지 시를 쓰려고 하는가? 이렇게 묻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술자리에서 그런 말을 들으며 허허 웃고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은 집으로 도로아오는 길에서 내 영혼에 상처를 입힌다. 나는 왜 시를 쓰지? 백 년도 견딜 수 없는 나의 소모품이 아닐가. 일회용 시는 아닐까, 하는 자괴감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수없이 던진다.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는 아닐까. 스마트폰처럼 취향이 수시로 바뀌는 시의 흐름 속에서 나의 시는 어디에 자리할 수 있을까? 두렵고 떨리기만 하다. 시인이란 나약하고 소심한 자여서 나는 내 영혼을 수없이 의심한다. 이 소음의 언어 시대, 수입 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은 혼돈의 바벨탑을 한 층 더 쌓는 일이 아닐까. 더구나 대상과 자아 사이에서 언어가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까지 하다. 언어는 나를 배반하고, 제 나름의 길을 갈 뿐이니 내가 표현하려는 어떤 의도를 갖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어떤 자괴와 절망 속에서도 나는 시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시를 허턱, 잘 써서가 아니라 그 길이 내 영혼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우주에서 우발적인 존재이다. 모든 사물들이 원자들의 우발적인 마주침에 의해서 탄생되듯이 나의 시는 언어의 우발적인 존재다. 시란 언어의 a무의미와 의미사이 시공간에서 우발적으로 나타난다. 그 곳에서 시인은 안식처를 찾고, 그 시공간이 자아와 대상 사이 어딘가라고 가늠한다. 시는 라이프니츠가 말한 수학의 허수(i)처럼 존재와 비존재 사이 영혼의 성스런 피난처이다. 나의 시는 언어의 해체와 결합을 반복하면서 제 길을 간다. 그 시를 제대로 읽고 못 읽고는 타인의 몫이다. 나는 세계를 규정할 수도 없고 자아를 내 보일 수도 없다. 내가 우발적인 존재이듯이 나의 언어 또한 우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가지 바람을 갖는다. 나의 언어가 누군가의 영혼에 가 닿아 그의 우주를 흔들리게 했으면 좋겠다.
나는 항상 언어에 기죽어 있고, 눈치를 보고, 떨리는 손으로 언어를 만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언어의 안부를 묻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 언어의 안녕을 기원한다. 얼마나 조마조마하겠는가? 그렇게 조마조마해도 결핍에의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에게 시란 결핍에 시달리는 서정적 자아가 타락한 언어 속을, 실체를 잃어버린 언어 속을 방황하는 정서이다. 다시 말하면 시는 근대적 이성을 배반한 문제적 자아가 본래적인 자아를 찾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의 표현이다.
타락한 언어 속을 방황하는 서정적 자아는 이 지상의 어떤 언어로도 진정한 자아를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늘 결핍에 시달린다. 이러한데 어떻게 시 쓰기를 멈출 수 있겠는가. 욕망 속 끝없는 방황이다. 그러나 시를 써 놓으면 금세 타락한 세계 속으로 내몰린다. 시인은 어떻게 보면 언어의 수형자인지도 모른다. 언어를 지향하나 언어는 결코 시인의 것이 될 수 없다. 이렇게 안달하다가 발견한 게 침묵이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처럼 침묵을 지향한다. 비크겐슈타인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고 했다.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은 침묵으로만 나타낼 수 있다. 침묵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견딤이다. 침묵은 어디에나 있으며, 불교적인 것도 비언어적인 것도 아니며, 영혼의 텅 빔이다.
이 글을 쓰다가 중단하고 술을 한 잔 마신다. 독자여, 이해해 달라.
하루가 지났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세상이 빙빙 돈다. 또 시를 생각해야 하나, 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까. 나는 현재 멍한 침묵이다. 술이 덜 깼다. 하지만 침묵은 나를 구제한다. 지금 나는 사람들이 붐비는 기차역에서 노트북 속을 헤매고 있지만 침묵 속을 거닐고 있다. 나는 현재 시를 쓰고 있다는 상상으로 침묵 속을 거닐며 행복을 느낀다. 침묵은 텅 빔이고, 어디에나 있고, 나의 유일한 탈출구이다. 침묵이란 픽, 웃음 짓는 것이다. 가면 가고 오면 오는 것이다. 허수를 생각하는 사람이, 시를 생각하는 사람이, 오백 년 후는 생각지도 못하는 사람이, 우발적인 사람이, 언어에 시달리는 시인이 뭘 걱정하겠는가. 단지 불망어不忘語, 거짓말을 하지 말자. 시는 말의 눈치를 보고 말은 시를 곁눈질한다. 시와 언어는 애증의 관계이다. 끊임없이 해체되고 결합되는 자의적인 존재가 굳어버리기 쉬운 언어를 말한다는 것은, 더욱이나 시를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내 시 위에 비가, 내 언어 위에 침묵의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시는 절대 타락할 수가 없는데 언어가 타락되었다고 하는 이 비애 위에 처연하게 봄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동안 했던 나의 거짓말들이 땅속으로 녹아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시에는 초의식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저만치서 픽, 웃는다.
미안하다. 시인이여, 4차원의 머리로 3차원에서 비굴하게 살아가는 너는 단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고, 잘난체를 하고 싶지 않겠지. 백년도 견디지 못할 나의 시에게 미안하다. 나의 시를 읽는 독자에게 미안하다. 텅 빈 영혼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니 자꾸 어긋나고 한 마디의 거짓말을 또 하고 있다는 생각에, 초의식을 갖고 저만치서 픽, 웃고 있는 자에게 미안하다. 독자여, 절대 나의 시는 읽지 말라. 다, 거짓말이므로, 한 마디의 거짓말을 또 다른 거짓말을 낳으므로 시는 언어로 읽으면 안 된다. 그냥 텅 빈 페이지의 침묵만을 읽어 달라. 침묵의 페이지를 확인하고, 그리고 잊어버려라. 나는 곧 기차를 탈 것이다. 당신의 봄날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언어, 말이든가, 빠롤이든가, 혹시 랑그? 언어여, 너는 늘 너의 길을 가고 싶어 하지만 내가 자꾸 불러내는구나. 나는 너를 모른다. 모르면서 시를 쓴다. 실컷 비웃어라. 하지만 숨을 만한 곳을 찾을 수 없구나. 단지 하나, 하나만 말하고 싶다.
언어, 너를 잘 모르지만 시에는 폭풍이 있다. 세계를 흔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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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숨길 수 없는 본원적 인간애와 사람들에 대한 순정한 애정이 가끔 일적적인 상상력을 과감하게 뛰어넘어 일반인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시인으로서의 전기철 교수는 그 시가 출발한 세계에 대한 근원의 따뜻함과 건강함이 장흥 바닷바람처럼 맵짜고 상쾌하다. 당대 최고의 학문적 수련기관에서 단련한 모범적인 학구생활과 그 너머까지 꿈꾸며 육박했던 궁극적 세계에 대한 탐구심과 호기심이 그 배음으로 깔려있고, 그에 상응 하는 돌발적 상상력이 때로 극단적인 언어유희까지 껴안은 모습으로 현란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길고 너른 학문의 세계가 시로 육화되는 다양하고 신묘한 형상들이 구체적인 사례를 볼 수 있다. 시가 얼마나 다채롭게 그 몸을 얻는지 시의 종합전시실을 둘러본 상쾌함을 준다. 모순어법을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의 과정이 시로서 경이롭다. ― 강형철. 숭의여대 교수. 시인
전기철 시인의 영혼은 자유롭다. 그는 자유를 꿈꾸며, 그 지유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려 한 시인이다. 때론 넘치는 자유를 어찌지 못해 고통을 받기도 하고, 그 고통 속에서 겨우 눈만 깜빡거리고 있기도 한다. 그만큼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낯선 남자의 아이를 낙태한 누이와 늘 돈이 모자란 아내와 함께 이미 패잔병이 되어버린 시인은 위독한 풍경 속에서 개가 되어 컹컹 짖는다. 숭의 여대에서 퇴직을 앞두고 낸 이 시집이 자유롭게 해주길 ― 노은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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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철 시인∥
∙ 1954년 남도 바다가 보이는 산촌 전남 장흥 관산에서 태어났다.
∙ 1988년 월간 시전문지《심상》과 1992년《계간문예(서울신문)》를 통해 등단했다.
∙ 시집으로『나비의 침묵』『풍경의 위독』『아인슈타인의 달팽이』『로깡땡의 일기』『누이의 방』등이 있으며,
∙ 현대불교문학상, 이상시문학상을 수상했다.
∙ 현재 만해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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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달빛자락 / 명상음악
*출처: 이동활의 음악정원(http://cafe.daum.net/musicgarden/5r73/4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