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엷게 지나간 뒤에 상큼하게 열리는 아침이다, 구름 점점이 가린 사이로 햇빛이 들춰 내리고 이슬을 머금은 공원의 실록들의 푸르름이 상쾌하다, 어떤 지방은 죽음의 도시를 만들어 놓고 떠난 태풍 힌남노를 생각 해보는 아침이다. 만경강 변 언덕의 비비정(飛飛亭·영조 28년에 건립)의 주차장에 애마를 새우고 과거와 현대의 중간쯤으로 보인 풍경들이 시선을 바쁘게 한다, 내려 다 보이는 신, 구 철교의 주위 배경이 두 눈을 가득 메워준다. 비비정은 최근 들어 관광객들 사이에서 '만경강 포토존'으로 이름난 곳이란다. 폭넓은 만경강을 가로지르는 100년도 넘은 476m의 철교는 2011년 10월에야 임무를 끝내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에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 흘려보내며 길손을 맞이하고 있다. 그 시절을 잠시 훌터 보면 일제강점기인 1912년, 철교는 만경 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나르는 수단으로 쓰였다. 널따란 평야에서 생산된 쌀이 철교를 타고 군산항으로 옮겨져 일본으로 건너갔다. 수탈을 위해 이리∼전주 간 철도가 바로 만경강 철교다. 이곳의 농산물이 중요해지면서 목교를 1928년에 더 튼튼한 철교로 바꾸기도 했고, 일본 수탈의 아픔을 알려주는 철교는 국가등록 문화재 579호로 지정된 거대한 역사 교과서다. 철교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일제가 쌀을 보관하던 양곡 창고도 아직 남아 있다. 삼례읍의 물을 양수장으로 끌어올려 일본인들의 식수로 사용하는 바람에 삼례 주민들은 물 부족 상태를 겪었을 양수장은 철교와 같이 국가등록 문화재 제221호로 지정돼 있다. 일본의 탄압으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쌀과 농산물을 빼앗겼던 피해자였음을 비비정은 길손에게 말해주고 있다, 당국에서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일제가 쓰던 양수장을 비릇해 쓰린 상처를 보듬고 있을 철교와 마을에 2017년부터 '예술'이란 옷을 입히고 만경강 철교 위에는 멈춰버린 낡은 새마을호 4량을 옮겨 '비비정 예술열차'라는 이름을 붙혀 식당, 수공예품 갤러리, 카페로 개조하여 관광 활성화를 이루고 있다, 4량 어디서든 만경강의 탁 트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어 SNS에서 '뷰(view) 맛집'이란 입소문이 불길처럼 번져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삼례역사 옆으로는 일제가 쓰던 양곡 창고도 2018년에 전시회, 공연이 열리는 '삼례문화예술촌'을 조성하여 오욕의 수탈 역사를 잊지 않으려던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자'는 취지로 창고를 예술공간으로 꾸몃다. 비비정 과 예술열차와 예술촌의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새만금 방조제 너머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다짐과 용서를 함께 꾸며본다면 완벽한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은 벌써 가을준비를 하는가보다, 소쩍새 울어준 국화도 키를 쫑긋하고 가을 채소를 어루만지는 어눌한 손길이 제법 바쁜 모습이다, 여름꽃 백일홍은 가려고 마지막의 예쁨을 보여주고, 대추도 영글어 담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가을은 제법 익어간다, 혼자서 마시는 차 한 잔에 제법 낭만을 느끼는 날이다, 닦아올 가을은 내 얼굴의 주름살 같아도 그대로 맞이해 즐겁게 찬미하면 된다, 나는 또 그렇게 가는 세월 속에 묻혀가고 숫자로 싸여가는 세월을 숨기고 싶지도 않다 늙어도 나름 즐거움을 노래하고 머리결 흩날림이 하얀 세월에 채색됨도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폭염의 진저리로 에어컨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 아우성을 뒤로 한 체 벌써 단풍이라도 올 것 인양 시간은 가을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상기온으로 지구가 들썩였지만 그래도 살만한 우리나라다, 사계절의 가을을 기다리는 맛도 있으니 말이다, 걷는 길섶 너머의 농촌 들녘에서는 가을을 준비하는 굽어진 허리를 짊어지고 엎드리고 영농에 열중하는 늙은 아낙네의 모습도 보인다, 바람은 들녘을 흔들어댄다, 키다리 작물은 피사의 사탑 인양 비스듬한 모습으로 가을을 맞을 채비를 하고, 어디 작물만이 바람결에 흩날릴 것인가? 농촌 아낙네의 치맛자락도, 짧게 입고 나온 여인네의 예쁜 치마도 흩날림에 쓸어내리기 바쁜 그 광경을 바라보며 걷는 나의 마음도 바람 불어서 좋은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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