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 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9)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10)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고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코린토2서
9장 9절에서 구약 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인용한 성구는 시편 112장 9절이다.
'불쌍한 이들에게 후하게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존속하고 그의 뿔은
영광속에 치켜들리리라.'
시편 저자가 여기서 찬양하는 의로움,
즉 '디카이오쉬네'(dikaiosyne; righteousness)는 '동료 인간들을 향한
올바른 행동, 친절, 은혜를 베푸는 의로움'이다.
이 단어는 마태오 복음 6장 1절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자선의
의미이다.
신명기 15장 7~11절이나 레위기 25장 35절 등에서 나타내는 대로 이러한
자선과 구제는 단순히 선민으로서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분명하게 '명령'되고
있는 '필수' 사항이다.
말하자면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자는 불의한 자인 반면에, 가난한 자와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자는 의로운 자인 것이다.
한편, 자선과 구제에 대한 신약 성경의 탁월한 가르침은 마태오 복음 10장 8절에
언급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은 바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명령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풍성한 은혜를 무상으로 거저 받았으며,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선과 구제, 그리고 의로움(의)의 가장 근원적이며 원초적인
동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는 본절의 표현은 무슨 의미인가?
여기서 '존속하리라'로 번역된 단어는 '에케이'(echei)가 아닌 '메네이'(menei)
이므로 '머물러 있다'(remain)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근본적으로 그 자선을 행한 사람의 의로움이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즉 시간에 종속되는 현세가 끝나고 영원이라는 세계가 펼쳐질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의 의로움을 온 우주 앞에 드러내고 선포함으로써 그 사람의 의로움을
기려주실 것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그 사람의 의로움이 영원토록 남는다는 것이다.
궁핍한 자,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는 보잘것없는,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행한
의로움을 그리스도께서는 곧 당신께 행한 것으로 인정하시는다는 것
(마태25,40)과 그 자선을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느님께서 갚으실 것이라는
사실(마태6,4)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10)
코린토 2서 9장 10절부터 9장 15절까지는 자선 헌금으로 인해 상호간에 누리게
되는 제반 유익들을 밝히고 있다.
그 가운데 본절은 하느님께서 자선하는 자의 의로움의 열매를 풍성케 하실
것이라는 약속인데, 이것은 구약 성경을 간접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간접적으로 인용된 구약 성구는 바로 이것이다.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이라는 전반절의 경우
이사야서 55장 10절 곧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라는 후반절의 경우
호세아서 10장 12절 곧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 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 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해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라는 구절의 인용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구약 성경의 두 구절의 표현을 통합하여 인용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의로움을 행한 자에게 그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셔서 그의
의로움의 열매를 더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논증한다.
코린토 2서 9장 10절에서는 하느님 법칙의 확고함을 알려 주는 세 개의 직설법
동사들이 쓰였다.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에서 '코레게세이'(choregesei)와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에서 '플레티네이'(plethynei), 그리고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에서 '아욱세세이'(auksesei)인데, 모두 미래 직설법
형태이다.
여기서 미래 시제는 의지 미래로서 이 세 가지 목록이 하느님의 의지적
행하심으로 인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선언임을 나타낸다.
본절에서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는 자선을 행한 자에게 자선을
더하도록 더 풍성히 채워주는 축복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그 사람의 자선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 즉 자선의 직접적인 열매라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작은 구제금을 통해서 그것을 풍성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마치 농사를 위해 뿌리는 씨앗이 작고 보잘것없지만, 그 가운데 이미 거대한
나무와 열매를 잠재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하느님께서는 작고 연약한 것을
들어서 장차 크고 풍성하게 만드신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바로 하느님의 이와 같은 능력을 굳건히 믿었던 것이며,
코린토 교인들에게 요청되는 헌금의 자세 또한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다
(2코린8장,9장).
그들에게는 부요한 하느님의 놀라운 권능을 신실하게 부여잡는 것이 필요했다.
마치 이름없는 한 소년이 내놓은 오병이어가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았던 것처럼(요한6,5~13), 하느님께서는 코린토 교인들의 헌금을 통해 그
열매를 풍성케 하시고, 감히 인간이 상상하지 못하는 놀라운 축복으로 그 수확을
거두게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