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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7. 묵상글 (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 주님의 이름으로. 등 )
*** 09:30, 김찬선 신부님 강론글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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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많은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대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하고 끝마무리합니다. 기도하되 내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능력을 지니고 계시고 그 풍요로움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일흔두 제자가 선교여행에서 돌아와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여러 질병을 낫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마귀까지도 쫓아냈는데 그것은 그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통해서 마귀들을 복종시킨 것입니다. 제자들은 기뻐했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10,20). 참다운 기쁨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하느님 나라에 뽑힌 것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마귀를 복종시킬 수 있었던 것도 하느님께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누리는 인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기의 바다에 빠지면 주님은 잊고 나를 드러내서 결국 주객이 전도되고 망하게 됩니다. 언제나 주님을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특별히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뽑아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불러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능력을 당신의 자녀들을 통해서 드러내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의 도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 마더데레사 수녀님은 자신을 “하느님의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이라 했고, 소화 데레사 성녀는 “주님 손안의 장난감, 주님 손안에 쥐어진 작은 공”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과연 나는 주님 안에서 무엇이 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이 되어야 할까?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인기가 좋아도 주님의 도구임을 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일을 함으로써 주님을 차지하는 기쁨에 머물길 바랍니다. 우리의 이름이 이미 하늘에 기록되었다면 그 이름의 빛을 잃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주님, 저의 머리 위로 당신의 손길을 얹어 주소서. 만일 당신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성 필립보 네리). 무슨 일을 하든지 당신의 이름이 살아있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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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2023.10.07 05:54
- 기쁨의 등급
오늘 복음은 아주 밝은 색입니다.
주님의 입에서 즐거움, 기쁨, 행복이라는 말이 연속으로 나옵니다.
오늘 복음은 일흔두 제자가 파견되었다가 돌아와 보고하는 10장인데
전 장인 9장에서는 열두 사도가 파견되는 얘기가 있었지요.
그런데 열두 사도는 별 성과가 없이 돌아왔는지 그에 관한 얘기는 없고,
주님께서 세 제자만 데리고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남은 제자들이
악마의 추방에 실패하고 주님으로부터 질책받은 내용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9장과 달리 오늘 일흔두 제자는 악마 추방에 성공하고
주님께서도 매우 기뻐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기쁨도 대단하셨겠지만 이들은 얼마나 더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제자들에게 악령추방을 기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그런데 이 말씀은 진정 악령추방을 기뻐하지 말라는 말씀일까요?
그런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악령추방은 기뻐해야 할 일이지요.
이 말씀은 우선 그 기쁨에 의기양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취의 기쁨은 종종 우리를 그 성취에 의기양양하게 하지요.
그리고 그 의기양양은 겸손보다는 교만에 가까울 수 있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것을 너무 기뻐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의 기쁨이 이런 것이나
이 정도에 머물거나 안주하지 말고 더 나아가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라는 것도 더 큰 성취와 성공으로 나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진정한 성취 또는 성공으로 나아가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더 큰 성취와 성공의 기쁨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의 진정한 성취와 성공 말입니다.
주님 말씀대로 하늘나라에 이름이 등록되는 것을.
주님께서는 참 행복 선언에서 이미 말씀하셨지요.
이 세상에서 배부르고 웃는 사람은 불행하고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인 사람이 진정 행복하다고.
아무튼 오늘 복음은 기쁨에는 등급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우리가 어떤 기쁨과 행복을 살아야 할지도 가르쳐 줍니다.
이 말은 기쁨이란 뭔가를 얻거나 성취했을 때의 만족인데
우리가 뭘 바라고 청하고 소유해야 할지와 관련이 있지요.
그것을 돌아보는 오늘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어제 바자회가 있었고,
너무 많은 분이 와주셔서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식사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고,
오늘 늦잠을 자 묵상을 깊이 하지 못하고 강론을 올렸습니다.
양해를 바라고,
오늘도 많은 분들이 와주시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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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오늘 <복음>은 파견 받았던 일흔 두 “제자들이 돌아와 기뻐하며 말하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드리는 감사기도요 찬미기도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이는 마치 예수님의 겟세마니 기도에서처럼, “아버지의 뜻”과의 친교와 일치를 나타냅니다. 그렇지만, 겟세마니에서의 기도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마태 26,42)라는 수난의 길을 앞두고 드리는 순명과 의탁의 기도라면, 여기서는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6)라는 확신에 찬 감사와 찬미의 기도입니다. 그러니 마치 이 기도는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합니다.”(루카 1,47)라고 기뻐 찬미하는 ‘성모님의 노래’와 같습니다. 곧 예수님의 “마니피캇”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에서, 예수님께서는 파견된 제자들에게 곧 철부지들에게 드러내주심에 “감사를 드리십니다.” 여기서 “감사”(Έξομολο-γουμαί)의 원어의 뜻은 ‘억제할 수 없는 기쁨으로 즐거워하는 감격스런 찬양의 고백’을 뜻합니다. 곧 “아버지의 뜻”에 대한 완전한 인식과 동의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슬기롭다는 자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는” “아버지의 뜻”에 대한 완전한 동의와 전폭적인 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잘난 체 하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아니라, 받아들이며 기뻐하고 돌아온 철부지 제자들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께 넘겨주셨다.”(루카 10,22)는 것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만이 당신이 누구신지를 알고, 동시에 당신과 당신이 드러내 보여주려는 이들만이 아버지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밝히십니다(루카 10,22).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를 알게 된 제자들에게 에수님께서는 행복을 선언하십니다.
“너희가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들은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루카 10,23)
오늘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버지께서 우리 안에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심을 믿음과 흠숭으로 고백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아버지를 확신하고 지지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할 일입니다. 곧 구원과 자비를 입은 경험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찬가”(마니피캇)을 불러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아버지! 저희에게서 일어난 모든 것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저희가 응답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주님!
미처 알아듣지도 못한 채, 당신의 ‘선하신 뜻’을 부둥켜안고 살아갑니다.
선하신 뜻을 드러내신 당신의 사랑에서 당신의 얼굴 뵙고,
감추신 신비에서 당신 심장의 소리를 듣게 하소서.
당신의 선하신 뜻, 그 안에 제가 달려 있으니
당신 뜻, 그 안에서 제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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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998년 9월입니다. 저는 본당 신부님과 월요일 아침 미사를 마치고 ‘온천’엘 가기로 했습니다. 신부님을 모시고 온천엘 가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고, 그만 아침미사에 늦었습니다. 제의실에서 본당 신부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부님은 제의실 수녀님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조 신부님이 미사에 늦을 사람이 아니니 10분 전에도 안 나오면 꼭 전화를 하세요.” 저는 신부님께 야단을 맞을 줄 알았는데 신부님께서는 저를 믿어 주셨습니다. 저는 미사 30분 전에는 고백소에서 성사를 주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수녀님에게 미안했습니다. 25년이 지난 9월입니다. 저는 마음 편히 아침산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퀸즈성당 본당신부님이 전화를 하였습니다. 신자들이 모두 걱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신부님도 제가 어디 아픈 것은 아닌지 전화하였습니다. 나는 평상시처럼 아침 산보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날 아침 미사가 제 차례였는데 저는 깜빡 잊었습니다. 수녀님은 본당 신부님에게 전화를 하였고, 본당 신부님이 저를 대신해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신부님도, 신자들도 모두 저를 걱정하였습니다. 제가 혹시 아픈 것은 아닌지, 산보 중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아닌지 걱정하였다고 합니다. 4년 동안 한 번도 미사에 늦은 적이 없었기에 그만큼 저를 믿어 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부주의를 탓하지 않고, 먼저 저를 걱정해 주었던 신자분들과 신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평소에도 미사에 늦은 적이 있었다면 본당 신부님도 저의 부주의를 먼저 탓하였을 것입니다. 저의 성실함이 있었기에 본당 신부님은 저의 부주의함 보다는 저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선교를 하고 다녀온 제자들을 맞이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마귀를 쫓아낸 일을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보고를 듣고 대견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교만해 질 것을 염두에 두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무엇이 하느님나라에 기록될까요? 우리의 업적, 능력, 재물은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것이 필요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는 회개와 이웃을 위한 선행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오늘은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16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현재의 튀르키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제국)은 영토를 확장하고자 유럽을 침공하였습니다. 1571년 10월 7일 그리스도교 연합군은 그리스의 레판토 항구 앞바다에서 벌인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무찔렀습니다. 비오 5세 교황은, 이 전투의 대승이 묵주 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간구로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덕분이라 여기고, 이를 기억하고자 ‘승리의 성모 축일’을 제정하였습니다. 나중에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저도 묵주기도에 대한 작은 체험이 있습니다. 적성 성당에 있을 때입니다. 운전 중에 묵주기도를 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서울에 가는 길에 묵주기도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차를 세우고 묵주를 꺼내는데 제 앞으로 큰 트럭이 지나갔습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운전했다면 큰 트럭과 충돌할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묵주기도를 한 것도 아니고, 묵주기로를 하려고 준비만 했는데도 하느님께서는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저는 그 뒤로 매일 묵주기도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2002년 ‘빛의 신비’를 제정하였습니다. 이로써 묵주기도는 예수님의 탄생을 묵상하는 환희의 신비, 예수님의 공생활을 묵상하는 빛의 신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고통의 신비,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하는 영광의 신비로 완성되었습니다. 묵주기도를 정성껏 바치면 성모님의 전구로 악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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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민동규 다니엘 신부님.
찬미 예수님
오늘은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묵주기도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으신가요? 저에게는 여러 가지 묵주기도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매일 봉헌했던 묵주기도, 군 생활 시절에 야간 근무를 서며 바쳤던 소중한 한 단 한 단의 묵주기도, 매일 아침 새소리와 함께 봉헌하는 이곳 성지에서의 묵주기도, 그리고 작년 파티마의 성모님과 함께 파티마에서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봉헌했던 묵주기도가 떠오릅니다.
모든 묵주기도가 잔잔하며 또 감동적이지만 특히 작년 파티마에서 봉헌한 묵주기도는 특별했습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같은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성모님을 필두로 행렬지어 기도하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그날 밤의 감동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고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감동은 단지 묵주기도를 다른 나라 사람들과 봉헌했기 때문에 느낀 감동이 아닙니다. 그 감동은 믿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앞장서 가심을 우리가 따르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동입니다.
오늘도 성모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우리 앞에서 걸어가십니다. 믿음으로 무장하고 겸손의 꽃을 들고 말입니다.
우리의 오늘 묵주기도가 성모님과 함께하는 감동이길 바랍니다. 묵주 알 한알 한알이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 겸손을 더욱 깊이 하기를 바랍니다.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운전 중 라디오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동기 신부님을 만나러 가는 길
어김없이 라디오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들려오는 노래 가사….
우리는 너나없는 이방인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맞습니다. 심수봉 님의 젊은 태양입니다.
다른 부분은 모르겠지만
제가 들은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참으로 복음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입니다.
주인이 아닙니다.
언제고 떠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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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어렸을 때의 기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한겨울 동네 친구들과 놀던 중에 추우면 햇볕이 잘 드는 담벼락에 나란히 기대서서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기억입니다. 그러면 따뜻한 것은 물론이고 기분도 좋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게 납입니다.
중학생 이후 그렇게 담벼락에 기대서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햇볕에 얼굴이 타지 않을까 싶어서 그늘만을 찾았습니다. 햇볕은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태워버릴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기억이 떠올려져서 사제관 베란다에 나가서 따뜻한 햇볕을 느껴보았습니다. 약간 덥기도 했지만, 요즘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져서인지 그 햇볕이 좋았습니다. 햇빛이 천천히 피부를 통과해 스며들고 빛과 따뜻함으로 몸 전체가 채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사랑으로 몸 전체가 채워지면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햇볕을 맞기 위해 먼저 햇빛이 비치는 담벼락에 기대 서 있어야 하는 것처럼, 주님 앞에 먼저 나가야 합니다. 전혀 기도하지 않으면, 또 어떤 신앙생활도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의 빛을 느낄 수가 있을까요?
지금 당장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얻으려는 것보다 먼저 주님을 보는 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의 사랑과 은총도 보일 것입니다.
전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말합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주님의 이름만으로도 마귀들이 힘을 잃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에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굳게 믿고 주님의 뜻에 맞춰서 행함으로 인해 하늘 나라에 가까이 가게 된 것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즉, 마귀를 쫓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이름을 간직하면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이유는 분명해집니다. 이 세상의 삶은 결코 무한한 시간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께 나아가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됩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서 머물면서 이 세상 안에서도 기쁨과 행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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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언: 인생에서 찬란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세월을 이기는 유일한 기술은 ‘희망을 유지하는 것’이다(송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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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일치의 중심
-그리스도 예수님과 우정의 여정-
“기도가 답이다”
10월 묵주기도 성월에 맞이하는 오늘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은 참 의미가 깊습니다. 462년전 이슬람제국의 침략으로 유럽이 풍전등화 상태에 있을 때 1571년 10월 7일 주일, 오전부터 시작된 그리스의 앞바다 레판토 해상에서 그리스도교 연합군과 이슬람 제국의 치열한 전투는 오후 4시경 그리스도 연합군의 대승으로 끝납니다. 어느 역사가는 말합니다.
“이 오스만 제국의 패배는 지중해에서의 오스만의 확장을 저지시켰고, 서부의 주도권을 유지하였으며. 예전에는 저지할 수 없었던 오스만을 격퇴할 수 있다는 서방의 자신감을 신장시켰다.”
그리스도교 연합군의 신성동맹을 성공시킨 성 비오 5세 교황은 이날 모든 신자에게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하였고 교황 자신도 함께 베드로 광장에서 묵주기도를 바쳤다 합니다. 마침내 치열한 해상 전투 끝에 그리스도교 연합군은 대승을 거두었고 사람들은 묵주기도의 힘 덕분에 승리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 비오 5세는 10월 첫 주일을 ‘승리의 성모 축일’로 지내도록 했고, 후에 10월 7일로 확정되면서, 1960년 성 요한 23세는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그 명칭을 바꿉니다. 성 비오 5세가 전 유럽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했고 기도의 힘으로 대승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술탄 셀립 2세는 “나는 모든 기독교 제왕들의 무력에는 꼼짝도 안 하지만, 다만 저 교황의 기도의 힘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합니다.
여기서 잠시 성 비오 5세 교황에 대해 소개합니다. 교황이 없었다면 신성동맹도 없었을 것이며 레판토 해상 전투에서 유럽의 승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 비오 5세 교황은 무엇보다 기도의 사람이었고 실행의 사람이었습니다. 성 비오 5세는 자신이 속해있던 도미니코회의 규율에 따라 종래의 호화스러웠던 교황청의 의식주를 간단하고 검소하게 하여 교황청을 수도원과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황 즉위식을 중지시키고 그에 들어갈 경비를 모조리 빈민구제 및 경영이 곤란할 정도로 가난한 수도원을 원조하는 목적으로 기부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교황용 제의를 맞추지 않고 전임 교황들의 제의를 그대로 입었으며 때때로 맨발로 로마의 성당들을 순례했다고 합니다. 교황이라는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으면서도 예전의 검소한 수도생활을 평생 그만두지 않았으며, 따라서 교황청은 도덕과 근면의 모범적인 곳이 되었고, 교황청의 개혁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합니다.
또 하나 소개드리고 싶은 일화입니다. 성 비오 5세 때부터 교황이 본격적으로 하얀색 의복을 입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까닭은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성 비오 5세가 교황들과 추기경들이 입었던 기존의 붉은 색 의복을 입는 대신에 자신의 하얀색 도미니코회 수도복 입기를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성인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지 하느님께서 유럽을 구하라 예비하신 섭리의 교황임을 깨닫습니다. 성인은 레판토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다음해인 1572년 5월1일 “오, 주님! 저에게 고통과 인내를 더하여 주소서.”란 기도를 남기고 선종합니다. 아마도 레판토 해전으로 인한 심신의 충격이 컸던 듯 합니다.
기도의 힘은 믿음의 힘이자 바로 하느님의 힘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수도생활 만 41년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에는 여전히 초보자같습니다. 그래도 심기일전하여 다시 기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레판토 해상 전투에서 대승을 거둘수 있었던 것도 묵주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전구 덕분임을 깨닫습니다.
묵주기도 성월 10월 묵주기도 많이 바치시기 바랍니다. 묵주는 천국에 들어가는 패스포드란 말도 있으니 늘 묵주는 소지하시기 바랍니다. 성모님 손잡고 천국문 입장하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해도 감각은 마지막까지 살아있기에 마지막까지 손에 들고 할 수 있는 기도가 묵주기도입니다. 그래서 수도자들이 임종하면 손에 묵주를 쥐어주나 봅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 또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일흔 두제자들이 복음 선포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귀환하자 감격에 넘쳐 감사기도를 바치는 주님이십니다. 당시 제자들은 주님께 그대로 기도도 보고 배웠을 것입니다.
일치의 중심이신 주님과의 우정의 여정중인 우리들에게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기쁨에 벅차 자신들의 업적을 고백하는 일흔 두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대로 우리를 용기백배하며 더욱 기도할 의욕을 북돋우는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한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참으로 끊임없는 한결같은 간절한 기도로 주님과 날로 깊어지는 우정의 사람들인 우리를 세상 무엇도 해치지 못합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음이 바로 참 기쁨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기쁨의 감격에 벅차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바치는 주님의 감사기도입니다. 다음 기도문은 공관복음에 전해오는 단 하나 예수님의 감사기도문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일흔 두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가 겸손하고 순수한 영적 철부지들입니다. 주님의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 주셨다.” 라는 고백에서 아버지와 일치의 절정을 보여주니 이 또한 예수님의 깊은 기도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이런 예수님과 우정을 깊이하는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절대적이겠는지요! 이어 제자들에게 주시는 행복 선언 역시 그대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눈이 있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요,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무지에 눈멀고, 무지의 귀먹으면 참으로 영적현실을 보지도 못하고 하느님의 말씀도 듣지 못합니다. 가을은 기도의 계절입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깨어 바치는 간절한 기도가 믿음을 더해주고 주님과의 우정을 깊이해주며 날로 마음의 눈을, 마음의 귀를 열어주고 밝게 해줍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의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끝이 없습니다. 기도와 회개는 함께 갑니다. 잠시 기도와 회개의 삶에 소홀했다 하더라도 다음 제1독서 바룩서의 말씀에 용기백배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아, 용기를 내어라. 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였으나, 이제는 돌아서서 열 배로 열심히 그분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신 그분께서, 너희를 구원하시고, 너희에게 영원한 기쁨을 안겨 주시리라.”
그러니 날마다 끊임없는, 한결같은 기도와 회개로 열 배로 그분을 찾고 사랑하며 주님과 우정의 여정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게 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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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작지만 큰 바램>
어딘가 날 닮은
사람을 만나면
참 좋다
하느님께서도
내게서 그러시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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