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기적"
- 박성태 교수 사례 -
박동창 회장 :
지난해 9월 달에 동아일보에 보도가 되면서 전국적으로
단 하루 만에
160만 뷰라는 엄청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기적의 주인공이 바로 박성태 교수님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뵐 때보다 우선 머리가 검어지셨어요.
박성태교수 :
안녕하십니까?
NY시티 금대산에서 온 박성태입니다.
NY시티가 어딘지 모르시죠.
남양주시입니다.
예, 제 나이는
지금 만 1살입니다.
약봉지에 보면은
'만 1살'로 찍혀 나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난 지 만 1년이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나이를 만 1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작년 2월에 제가 암을 발견했습니다.
허리가 조금 아파서 병원에 갔습니다.
저는 월남 참전 용사입니다.
월남 참전 용사이기에 보훈병원에 가서
허리가 아파서 왔다니
엑스레이와 피검사를 하더라고요.
피검사를 했는데 바로 수치가 얼마가 나왔느냐?
935가 나왔습니다.
전립선암 정상 수치는 1, 2, 3, 4 정도 됩니다.
9, 10, 11, 12 이 정도 되면은 말기암입니다.
저는 거의 100배가 나왔습니다.
935면 9의 100배죠.
어마무시한 숫자입니다.
의사가 기절할 정도의 숫자였죠.
그런데 전립선암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암세포가
척추 즉 흉추입니다.
허리뼈로 전이가 돼서 9번 10번 허리뼈가 완전히 시커멓게 되었답니다.
나중에 제가 밑에 영상자료 올린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옆으로 내려가는 중추 신경도 역시 암세포가 완전히 전이되었고요.
그래서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됐습니다.
화장실도 못 가고
서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이렇게 악화가 된 사례는 보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저는 의사 선생님 다리를 잡고 사정했습니다.
"암은 치료 안 해도 좋으니 열 발자국만 걸을 수 있게 해 달라"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께서
왜 열 발자국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화장실을 가려면 10발작쯤은 걸어야 되지 않습니까?
우선 화장실을 못 가니까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의사 선생님 말씀이
"의학적으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집에 돌아가셔서 운명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라고~
그건
"집에 가서 죽으라"는 소리입니다.
어떻게 하겠어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왔지요.
집에 와서 마음 비우고 죽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동안 금대산에 오시는 많은 분들은 제 얘기를 들으셨겠지만 죽을 준비를 하려고 하니까
제가 1시간 뒤에 죽을지
일주일 뒤에 죽을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제 비상금 숨겨 놓은 곳을 아내한테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말을 안 하고 그냥 죽으면
그 비상금 못 찾을 것 같아서요
제가 숨겨 놓은 비상금이 조금 많았습니다.
3억 5천만 원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알려주고 죽어야죠.
그러면서도 누워서는 살고자 하는 마음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많은 자료와 같은 환자들의 사례도 찾아봤습니다.
말기암 환자가 척추까지 전이가 되어서 살아났다는 사람도 치료할 수 있다는 사례는
아무리 찾아보고
뒤져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마음 비우고 죽기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보낸 어느 날
우리 예쁜 딸이 책 한 권을 사가지고 와서
저에게 읽어보시라고 주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맨발로 걸어라'라는 책이었습니다.
지금 제 옆에 계신 박동창 회장님이 쓰신 책입니다.
저는 원래 등산 마니아였습니다.
아마 저만큼 산을 많이 다닌 사람들도 없을 겁니다.
3,000봉을 다녔습니다.
직장 다니면서 산 3천 개에 오르기는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저는 건강을 자신하고 열심히 살았는데도 암이 걸렸으니 어떡합니까?
그것도 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라니~
딸이 사 온 책을 받아 본 저는 책 제목인
'맨발로 걸어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책 제목 밑에
'암도 고친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제 눈에 번뜩 보이는
'암도 고친다'는 글에 솔깃하여
그 책을 읽어봤습니다.
책을 읽어보니 어차피 의사도 못 고친다고 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습니다.
살아야겠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읽다 보니,
(맨발로) 걸으면 살겠다고
그래서 저는 집에서 며칠간 죽어라고 걷는 연습을 한 뒤에 산으로 갔습니다.
저희 집 앞에 금대산이라고 나지막한 89m 높이의 산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살아야겠다는 신념으로 기어 다녔습니다.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사람이 며칠 걷는 연습을 했다고는 하나
그 몸으로 산을 오르려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어요.
죽을힘을 다해 오르고 또 오르고 며칠을 하다 보니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2주쯤 다니다 보니
다리에 힘도 좀 생겨서 그때부터 더 열심히 걸었죠.
죽을힘을 다해서요.
그렇게 2개월을 죽어라고 걸었습니다.
요즘 금대산에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몇 시간 걸었습니까?"입니다.
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걷고 들어왔습니다.
하루에 5~6시간씩 걸었던 거죠.
그렇게 운동을 두 달쯤 했을 때
병원 예약 날짜가 되어 병원에 갔습니다.
가서 엑스레이도 찍고 피검사도 했습니다.
전립선암 검사, PSA 검사도 했고요.
2개월 맨발로 걷기하고 검사를 한 결과 935였던 게 0.05로 내려왔습니다.
의사가 깜짝 놀라며 이게 무슨 일이냐고 했습니다.
935가 0.05로 내려온 것은 1만 8천 분의 1이 떨어진 겁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기적이라 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랍니다.
척추에 있던 암세포가 생생하게 재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척추에 커다란 암덩어리가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게 재생이 될 수 있냐고
믿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의학적으로는 증명할 방법이 없답니다.
중추 신경
다시 살아났답니다.
그래서 하체 마비된 게 자동으로 풀렸다고~
딱 2개월 만입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일까요?
박동찬 회장님이 책에 그렇게 썼기 때문에 저는 그걸 실천한 것뿐입니다!
여러분들,
책 쓰실 때 그런 책 쓰셔야 됩니다.
그래서 또
죽으라고 걸었죠 얼마나 좋습니까? 살아났으니까.
또 하나 일화가 있습니다.
시골에 있는 친구들 동창들 서울에 못 오니까
며칠 내로 죽을 줄 알고 조의금 걷어 가지고 나에게 보내왔습니다. 조의금 받았습니다.
보내오는 걸 어떡합니까?
그런데
2개월 만에 살아났죠.
다시 죽으라고 3개월 걸었습니다.
걷고 나니까
5개월 걸었죠.
0.05가 그다음에는 0이 하나 더 붙었습니다.
0.008로 떨어졌습니다.
또 걸었죠.
죽으라고 걸었죠.
그다음 3개월 뒤에 8월이겠죠?
8월 말입니다.
0.006으로 떨어졌습니다.
0.006이란
1, 2, 3, 4까지가 정상인데 완전한 정상이죠.
척추가 완전 정상이 돼 있습니다.
중추 신경, 완전히 정상됐습니다.
지금 저 달리기도 합니다.
20kg 쌀 한 포대도 버쩍버쩍 들고 다닙니다.
운전도 잘합니다.
요즘 등산도 다닙니다.
맨발 걷기 하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어느 누구나~
그런데
제 경험상으로 잠깐 말씀드리면 맨발 걷기 할 때 그냥 걸으면 효과가 적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걸어야 됩니다.
그냥 멍하니 걸으면
효과가 잘 안 나타납니다.
이왕 걸으시려면
어떤 땅이 제일 좋으냐?
마른땅보다는 젖은 땅이 더 좋습니다.
맑은 날보다는 비 오는 날이 더 좋습니다.
멀리 걷기보다는
멀리 몇 km를 갔다 왔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몇 시간을 걸었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땅에 발바닥이 접지가
몇 시간 됐느냐가 중요합니다.
거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곳은
바닷가 해수욕장 모래사장입니다.
모래사장을 걸어 보십시오.
마른땅에서 걸은 것보다 훨씬 자기 몸에서 느낍니다.
그래서 지금 금대산에 걷는 분들
올 겨울에 금대산은 추우니까
'한 달 살이'로 동해안
바닷가에 방 얻어놓고
한 달씩 걷고 왔습니다.
거의 모두
암 환자들이고요.
많은 환자들이 대다수
완치 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왕 걸으시려면 모래사장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맨발 걷이를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은
맨발 걷기를 할 때 진짜로 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