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대의 뼈아픈 역사와 현대 한국 교회가 직면한 지탄의 현실은 정치에 대한 종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명확한 기준을 요구합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기독교 역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정치에 대한 종교의 바람직한 태도는 ‘결탁(연합)’도 아니고 ‘도피(무관심)’도 아닌, ‘거룩한 공공성(Prophetic Distance, 예언자적 거리두기)’의 유지입니다. 이를 4가지 구체적인 태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예언자적 거리두기 (Prophetic Distance)
종교는 특정 정치 세력이나 정당과 결탁하여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세상 정치는 악한 것이라며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도피주의도 지양해야 합니다.
비판적 지지와 감시:종교는 정당의 이념(보수와 진보)보다 하나님의 공의와 성경적 가치를 우위에 두어야 합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이라 할지라도 불의를 행할 때는 준엄하게 비판하고, 반대 진영이라 할지라도 선한 정책을 펼칠 때는 지지할 수 있는 '영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권력의 우상화 경계:정치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맹목적 믿음(정치의 우상화)을 경계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궁극적 통치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입니다.
2. 권력을 향한 '진리 선포'와 '소수자 보호'
성경의 예언자들(나단, 엘리야, 아모스 등)은 왕권의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당당히 선포했습니다. 종교는 권력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곳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과 백성 앞에 겸손하도록 촉구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성경은 끊임없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소외계층)'를 돌보라고 명령합니다. 정치가 강자의 이익 대변으로 치우칠 때, 종교는 소외되고 고통받는 약자들의 목소리가 되어 정책에 반영되도록 유도하는 촉진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사회의 통합과 치유자 역할 (화평하게 하는 자)
현대 정치는 진영 논리에 갇혀 끊임없이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며 표를 얻으려 합니다. 이때 종교마저 광장에 나가 확성기를 들고 혐오를 배가시킨다면 그것은 종교의 직무유기입니다.
피스메이커(Peacemaker):예수님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9)"라고 하셨습니다. 종교는 갈라진 사회적 틈새를 메우고,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도록 완충지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들이 교회라는 한 지붕 아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용납할 수 있는 모델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4. 성도의 '바른 시민 의식' 양육
교회라는 기관(Institution)이 직접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지만, 교인 개개인이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좋은 시민'이 되도록 훈련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적인 의무입니다.
소금과 빛의 파송:교인들이 세상의 법을 준수하고, 공정하게 세금을 내며, 약자를 배려하고, 투표에 성실히 참여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영역으로 파송된 기독교인들이 "정직, 정의, 평화,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가치를 가지고 정치를 선하게 변화시키도록 돕는 것이 가장 성경적인 방식입니다.
한 줄 요약:
바람직한 종교는 정치 권력을 쥐고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와, 세상 정치권력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눈물을 닦아주고, 사회가 불의와 탐욕으로 치달을 때 제동을 걸어주는 '사회의 양심'이자 '나침반'**으로 기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