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
머리위의 해가 15도 기울었을 때였다.
갑자기 통나무배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덜커덩거리는 충돌음도 없었고 밧줄에 걸렸을 때 느끼는 진득한 감각도 없이 통나무배가 꼼짝하지 않았다.
물속을 들여다봤다.
수심 13m정도의 사질대 위에 통나무배가 멈춰서 있었다.
도치씨가 나직하게 아시발을 깨웠다.
“아 시 발 님. 아 시 발 님.”
한쪽 눈을 반 쯤 뜨고 기지개를 하며 아시발이 물었다.
“벌써 다 왔는가?”
“아무리 저어도 통나무가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사방을 휘둘러보고 아시발이 말했다.
“여기가 어디쯤인가?”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GPS가 먹통인데요.”
“노련한 선장은 GPS같은 거 안 믿어. 파도소리만 들어도 어디 인줄 알아야지.”
배알이 틀려 들고 있던 노로 통나무배를 쿡쿡 찌르며 도치씨가 말했다.
“이까짓 통나무에 선장이라니요?”
아시발이 목덜미를 툭툭 치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어떤 함선이라도 키를 쥐고 있는 놈이 선장이야.”
도치씨가 노를 들어올렸다.
“이까짓 나무토막이 키란 말입니까?”
아직도 잠이 덜 깬 듯 아시발이 눈을 껌뻑 거렸다.
“바다에서 키는 생명인데, 보잘 것 없으면 던져버리든지.”
도치씨는 아차 싶었다.
아시발의 말대로 나무토막처럼 보이는 노가 없어질 경우 일어날 곤경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함선의 방향을 가를 수 있는 건 운전대 같은 키만 전부가 아니었다. 목선의 나무토막도 키고, 고무보트의 플라스틱 막대기도 키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도 그렇다.
잘생긴 사람도 인간이고, 장애를 가진 사람도 인간이다.
지금까지 볼품없다고 무시했던 통나무배가 없다면 이 광활한 바다에서 나는 어찌 될까? 죽은 목숨일 것이다. 통나무배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노를 내가 너무 함부로 대했구나. 도치씨는 자신의 과오를 뼈저리게 반성했다.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교만을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다.
두 손을 사타구니에 모았다.
고개를 숙였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시발이 빙그레 웃었다.
“용서하십시오. 다시는 이 통나무배를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함선과도 비교하지 않겠습니다.”
아시발은 못들 척 하늘과 수평선을 에둘러봤다.
아시발이 말했다.
“제대로 깨달았군.”
“네, 이 망망대해에서 무엇이 소중한지 절실히 깨우쳤습니다.”
“자네가 깨우치든 말든 그건 자네 일이고.”
“네에?”
“내가 말하는 건 블랙파이어렛을 추적할 수 있는 좌표를 자네가 깨달았다는 거야.”
수평선과 하늘을 두 팔로 십자 가르며 아시발이 도치씨를 쳐다봤다.
“여기서 열십자로 쪼개보면 이 쪽이 어둡고 수평선이 저쪽으로 기울었지? 바로 여기가 블랙파이어렛 포인트 초입이야.”
조심스럽게 도치씨가 물었다.
“허지만 포인트만 찾으면 뭐합니까?”
아시발이 도치씨를 송곳처럼 쏘아봤다.
도치씨도 송곳에 찔린 것처럼 눈이 따끔거렸다.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블랙파이어렛을 잡으려면 항상 한 치 늦게 생각하고 한걸음 늦게 움직여야 하는 법이네. 지긋하지 못하고 서두르면 실패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아시발이 명령조로 말했다.
“그 나무쐐기를 뽑아!”
“네에? 이 쐐기를 뽑으면 갈아 앉고 말텐데요.”
“싫으면 말고.”
도치씨는 아시발의 명령대로 통나무배의 바닥에 꽂혀 있는 물막이 같은 나무쐐기를 빙빙 돌렸다. 나무쐐기는 나사처럼 돌아갔다.
“뽑았는데도 물은 안 들어옵니다. 어떻게 된 일이지요?”
도치씨의 질문을 무시하고 아시발이 다음 명령을 내렸다.
“나머지도 뽑아!”
도치씨는 돌아앉아 나머지 나무쐐기도 뽑았다.
앞에 있는 쐐기구멍에 아시발이 손을 넣으며 도치씨에게 지시했다.
“뭐해?”
도치씨도 쐐기구멍에 손을 넣었다.
힘을 합쳐 통나무배의 바닥을 들어올렸다.
놀랍게도 통나무배의 바닥은 2층으로 되어 있었다.
바닥 아래는 두 사람이 누워도 여유가 있을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통나무배의 바닥을 들어 올린 순간 도치씨는 탄성을 질렀다. 양옆의 바닥선반에 걸려있는 낚시장비를 보고 놀란 것이다.
“아! 아시발님! 이런 곳에 낚시장비를 감추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도치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시발을 쳐다봤다.
“자네에게 맞을만한 놈으로 골라. 나는 이거면 됐고.”
아시발이 오래된 낚싯대와 릴을 꺼내들었다.
얼핏 보기는 낡았지만 자세히 보면 엄청난 조력이 느껴지는 장비들이었다.
아시발이 선택한 낚싯대는 선경10mm, 전장250cm의 하단알루미늄 사각트롤로드였다.
도치씨는 12mm선경의 전장 240cm지깅베이트로드를 선택했다.
흡족한 표정으로 아시발을 쳐다봤다.
“블랙파이어렛은 처음이라 라인은 어느 정도가 맞을 까요?”
아시발이 멀티박스에서 꺼내 준 모노필라멘트라인과 라벨스티커를 비교해보며 도치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렇게 두꺼운 줄이 LB120 밖에 안 됩니까?”
아시발이 빙그레 웃었다
“자네는 겉모습만보고 속을 믿나? 아니면 속보다 겉치레만 믿나?”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시발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건 새 줄이 아니니까 하는 말이야!”
“아! 어쩐지!”
도치씨도 따라 웃었다.
라인을 스풀에 옮겨 감은 후, 아시발이 10m짜리 라인을 내밀었다.
“이건 고래심줄이야. 바자우어부들이 즐겨 사용하는 쇼크리더지. 물속에 들어가면 이보다 유연한 건 없다네. 그리고 훅은 이걸 사용하면 될 거야. 내가 직접 제작한 수제품일세.”
새끼손가락 굵기 만한 바늘을 보고 도치씨는 블랙파이어렛의 크기를 짐작했다.
짜게 잡아도 밍크고래만한 참치일거라고 머릿속에 그리며 채비를 완성했다.
아시발도 채비를 끝냈다.
도치씨는 아시발의 다음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미끼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아시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바지를 벗었다.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시발을 바로 쳐다 볼 수 없어 도치씨는 얼른 두 눈을 감았다.
아시발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자네도 팬티를 안 입었으면서 뭘 그러나? 같은 남자끼리.”
아시발을 두 눈 뜨고 쳐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돌풍 같은 호기심도 참을 수 없었다.
실눈을 떴다.
아시발은 허리에서 사타구니를 한 바퀴 감은 긴 물체를 풀고 있었다. 마치 엿 같은 물체였다.
“자, 이게 우리 미낄세.”
실눈을 뜬 체 도치씨가 물었다.
“그게 뭔지 모르지만, 이때까지 아시발님의 거기에 감고 있었으면 냄새가 배었을 거 아닙니까?”
아시발이 호걸스럽게 웃었다.
“모르면 약도 밟고 다니는 법이지. 세상만물의 식욕을 자극하는 것은 냄새 아닌가? 사람냄새만큼 지독하고 상큼한 것이 또 있을까?”
“그렇다고?”
“물고기도 다를 바 없지. 뿐만 아니라 냄새로 교감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도치씨는 할 말을 잃었다.
미끼를 배합할 때 장갑까지 착용하던 도치씨는 너무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아시발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시발이 풀어 놓은 것 외에 미끼로 쓸 다른 묘안이 없었다.
도치씨는 아시발이 떼어주는 미끼를 코에 댔다.
고약하긴 하지만 맡을수록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한 향기가 깊숙이 배어있었다.
공손하게 아시발에게 물었다.
“냄새가 정말 이상야릇하군요. 이 미끼의 정체를 물어도 될까요?”
아시발이 고개를 꺼덕였다.
“나와 약속한다면.”
“레시피를 누설하지 않는다는 약속 말이죠?”
“세상에 지켜지는 약속이 어디 있을까만, 이 약속은 꼭 지켜야 하기 때문이지. 약속이 깨지면 한 종족이 멸망할 수 있는 중대차한 일이거든.”
굳은 얼굴로 도치씨가 말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약속을 깬 적은 없습니다.”
아시발의 표정도 무거워졌다.
미끼에 대한 설명을 도치씨가 완전히 납득하도록 설명했다.
아시발이 손수 빚은 미끼의 주재료는 죽은 절벽제비와 버리고 간 제비집을 적절히 배합해서 만든 것이었다.
아시발은 바자우어부들이 신성시하는 절벽제비를 보호하기 위해 태풍이 몰아 친 다음날은 반드시 절벽을 올랐다.
취약한 곳에 둥지를 튼 절벽제비들은 태풍을 견디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죽은 제비를 먹기 위해 사방의 뱀들이 다 모였다.
아시발은 이런 뱀들을 모조리 퇴치했다.
버려진 제비집도 제거해서 왕벌이나 숙주들의 은신처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절벽제비들의 사체는 바다에 버릴 수도 땅에 묻을 수도 없었다.
절벽제비의 냄새를 맡고 몰려든 외래물고기들이 토착어류들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땅에 묻으면 식물들의 서식지가 황폐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자우어부 아시발은 죽은 제비들을 꿰매 미끼로 만들었다. 미끼 만드는 과정까지 듣고 난 도치씨는 감동했다.
도치씨는 다시한번 아시발에게 맹세했다.
“제가 약속을 깨면 무지한 사람들이 절벽으로 모여 들것이고, 아시발님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된다는 것 깊이 명심해두겠습니다.”
아시발이 빙그레 웃었다.
아시발을 마주 바라보며 도치씨도 웃었다.
아시발의 등 너머에 수평선이 있었다.
수평선을 바라본 도치씨가 놀라 소리쳤다.
“아시발님! 저건 태풍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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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낚시 소설 잘보았슴니다
오늘도 건강 하시며 행복한날 만들어 가세요..
나드래님 고맙습니다. 편한 오후되십시오
낚시 소설 즐감 했슴니다.
편안한 저녁 되세요~~
고맙습니다. 고운 밤되십시오
태풍이 오면 모두
통나무배 에서 죽게될것이
아닌가 도치와 아시바리의
오가는 이야기 잘보았슴니다
감사합니다
맹복한 저녁시간되세요
어지러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고운 밤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