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양 고속도로는 특히 토요일 일요일에는 주차장을 방불케 합니다. 여름 휴가철뿐 아니라 일년 내내 그렇습니다. 봄에는 상춘 인파로, 여름에는 피서인파로, 가을에는 단풍 인파로, 겨울에는 스키 등 동계 스포츠 인파로 넘쳐납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화야산방이 있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IC까지 밀리지 않고 가기 위해서는 보통 새벽 6시정도까지는 출발해야 합니다. 하지만 토요일인 2024년 9월 21일 새벽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난 휴일에다 전날부터 전국에 걸쳐 많은 비가 내리고 강원도 영동지역에는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폭우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야산방에 위치한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일대는 한국에서 기상 변화가 무쌍한 곳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에서 불과 차로 한시간 거리지만 강원도 산간같은 지형에다 하루중 일교차도 매우 심한 지역으로 분류됩니다. 서울보다 평균 4~5도 정도 기온이 낮습니다. 산악지대속에 놓여있어 비도 많이 내리고 눈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설악면입니다. 강원도 설악산의 설악으로 혼동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설악 IC 진입구에 설악(경기)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20일부터 21일 오전까지 설악면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아침 최저기온이 10도정도입니다. 전날의 22~23도에 비하면 급격한 하강입니다. 체감 온도는 더 낮습니다. 화야산방에 도착하자 마자 창고에 넣어둔 전기 난로를 꺼내 작동을 시킵니다. 전날 서울의 최저기온이 25도인 것을 감안하면 하룻동안 엄청난 기후 변화를 겪는 셈입니다. 정말 모 아니면 도같은 양상입니다. 무슨 날씨에 혁명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더웠던 여름 날씨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갑자기 가을의 한복판으로 급히 이동한 모습입니다. 언제 정말 역대급 폭염이 몇달간 지속되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2024년은 한국 기상사상 최고로 더운 여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특히 9월은 그렇습니다. 7~8월뿐 아니라 9월에도 폭염속에 전국 각지에서 무더위 신기록이 줄줄이 경신됐습니다. 9월 전국에 폭염과 열대야 일수는 1973년 기상 관측 이후 역대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누구도 반기지 않는 역대급 최고봉입니다. 하다 하다 못해 전국 대부분 지역은 사상 최초로 추석 연휴에 폭염 경보와 주의보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추석날 에어컨을 켜고 차례를 지낸 연도로 기록됐습니다.
기상청의 통계에서도 올해 2024년의 폭염은 역대급입니다. 올해 9월 전국 폭염 일수는 5.5일로 역대 1위입니다. 2010년 1.3일과 1994년 1.2일보다 무려 4배 많은 것입니다. 6년전 그야말로 찜통더위였다는 2018년때는 그래도 9월에는 올해처럼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9월에 상당히 이례적인 무더위가 계속된 것은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기압상황때문입니다.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두겹으로 찬 공기가 유입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물론 태풍의 접근은 막았지만 국민들은 찌는 무더위속에 그야말로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랬던 폭염은 21일부터 한반도로 돌진한 14호 태풍 풀라산의 여파로 무너졌습니다. 태풍이 한반도 주변의 기후 구도를 깨버린 것입니다. 풀라산은 열대저압부로 약해진 채 한반도로 들어왔지만 강풍과 폭우는 태풍과 흡사했습니다. 한국의 중남부지역은 300mm가 넘는 폭우와 강풍에 상당히 많은 피해가 생겼습니다. 태풍은 아니지만 태풍같은 피해가 생긴 것입니다. 결국 태풍정도의 강도를 지닌 기상변화로 한반도의 역대급 폭염이 사라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부글부글 용광로처럼 끓던 한반도 폭염이 태풍급이라는 혁명적 힘에 의해 붕괴되는 현상을 우리는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자연의 힘은 무섭게도 강하고 험악하다는 것을 이번 2024년의 경험으로 또 한 번 알게 됐습니다. 물론 앞으로 더위는 있겠지만 가을로 접어든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년중 가장 쾌적하다는 한국의 가을을 맞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간은 한달여 정도로 짧겠고 올 겨울도 역대급 추위가 한반도를 괴롭힐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역대급 폭염을 피하니 이제는 역대급 혹한을 맞을 것으로 우려됩니다. 이제 남은 한달여가 얼마나 소중한 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힘들게 찾아온 청량한 가을의 멋과 정취를 최대한 오랫동안 누려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2024년 9월 23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