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는 인도양에 있는 자그마한 섬나라이다. 과거 실론이라고 불렸던 스리랑카는 국토 면적이 6만5610㎢로 세계 122위, 인구는 2100만여명으로 세계 56위.
그런데 라닐 위크레메싱게 스리랑카 총리가 지난 4월 7일 베이징을 방문하자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 등 중국 지도부가 최고 수준의 의전으로 환대했다. 중국 정부는 인민대회당 광장에서 위크레메싱게 총리 환영행사를 갖고 예포를 발사하고 인민해방군 3군 의장대 사열식까지 벌였다. 서남아시아의 소국인 스리랑카의 총리가 방문한 것치곤 전례가 없는 융숭한 대접이었다.
지난 4월 7일 베이징을 방문한 라닐 위크레메싱게 스리랑카 총리 /중국 CCTV
중국 정부가 위크레메싱게 총리를 극진하게 대우한 까닭은 스리랑카가 지정학적으로 전략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스리랑카는 에너지 수송로이자 해상 교통로인 인도양의 관문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스리랑카는 역사적으로 볼 때 해상 실크로드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다. 명나라 때 환관 출신 제독으로 해상 실크로드를 개척하기 위해 항해에 나섰던 정허(鄭和·1371~1433)도 1407년 9월 스리랑카에 들러 물과 식량을 조달했었다. 당시 정허는 중국어, 타밀어(스리랑카의 현지어), 페르시아어(당시 국제어) 등 3개 국어로 쓴 비석을 세웠다. 현재 이 비석은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국립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스리랑카를 자국 편으로 만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해왔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스리랑카 내전(1983~2009)을 종식하는 데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18세기부터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아오다 1948년 독립한 스리랑카는 종족 분쟁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어왔다.
스리랑카는 전체 인구 중 75%가 불교를 믿는 싱할리족이고, 15%는 힌두교를 믿는 토착 타밀족과 영국 식민지배 시절 인도 남부에서 차 농장 노동자로 대거 유입된 인도 타밀족으로 크게 구성돼 있다. 정권을 차지한 다수파인 싱할리족은 자신들 위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고 소수파인 타밀족이 이에 반발하면서 내전의 불씨가 됐다.
스리랑카 내전 종식 막후 역할
타밀족 중 일부는 타밀 엘람 해방호랑이(Liberation Tigers of Tamil Elam·LTTE)라는 반군조직을 만들어 26년간 정부군과 내전을 벌였다. 이 내전으로 10만여명이 사망하고 수십만 명이 부상했다. LTTE는 한때 스리랑카 국토의 15%를 장악하며 기세를 올렸다. 전력은 정부군의 10분 1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자살 폭탄테러 등으로 대등한 전투력을 보였다. 자살 테러로 스리랑카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숨지기도 했다. LTTE는 지상군은 물론 고속정과 소형 잠수정까지 갖춘 해군, 소형 항공기와 헬리콥터로 무장한 공군도 보유했다. 하지만 LTTE는 2007년부터 시작된 정부군의 공세에 밀려 2009년 5월 궤멸했다.
스리랑카 정부가 LTTE를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가 스리랑카 정부에 각종 무기와 탄약, 전투기 등을 대거 지원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당시 마힌다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과 모종의 밀월 관계까지 맺었다. 2005년 집권한 라자팍사 대통령은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업적을 내세워 2010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승리해 연임에 성공했다.
이후 중국과 스리랑카는 끈끈한 관계를 구축했다. 시 주석은 2014년 9월 스리랑카를 방문해 라자팍사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총 40억달러에 달하는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프로젝트가 ‘콜롬보 항구도시’ 건설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중국이 14억달러(1조5000억원)를 투자해 콜롬보항 인근 지역에 새로운 항구도시를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신도시는 108헥타르 규모인데, 20헥타르는 중국이 완전 소유하고 나머지 토지는 99년간 임차하는 조건이다.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교통건설(CCCC)이 맡은 이 프로젝트가 성사될 경우 콜롬보항은 사실상 중국 땅이 된다. 콜롬보항은 과거부터 중동과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무역항이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또 중국 잠수함을 두 차례나 콜롬보항에 기항하도록 허가해 주기도 했다.
중국–스리랑카–인도의 삼각관계
중국과 스리랑카의 관계가 전략적 협력 수준까지 격상되자 인도 정부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스리랑카와 인도의 거리는 50㎞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 잠수함이 인도의 코밑까지 진출한 사례는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인도 정부는 자칫하면 자국의 앞바다인 인도양까지 중국이 진출할 것을 우려해 이때부터 스리랑카 내정에 은밀히 개입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1월 실시된 스리랑카 대선에 출마한 야당 후보인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를 물밑에서 지원했다. 시리세나 후보는 인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온 인물이었다. 결국 대선에서 시리세나 후보가 당선됐다. 시리세나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첫 조치로 콜롬보 항구도시 프로젝트를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해 중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시리세나 대통령이 내세운 이유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적절한 타당성 조사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시리세나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첫 방문국으로 인도를 택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기도 했다. 또 모디 총리도 같은 해 3월 인도 총리로는 28년 만에 스리랑카를 국빈 방문했었다. 결국 지난 수년간 중국에 밀려왔던 인도가 스리랑카의 정권교체를 계기로 세를 만회하게 됐다.
이후 중국과 인도는 스리랑카를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여왔다. 특히 중국은 콜롬보 항구도시 프로젝트 재개를 위해 사활을 걸었다. 중국이 스리랑카에 제시한 카드는 ‘자금’이었다. 스리랑카도 지난 1년간 인도에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자 다시 중국으로 기울어졌다.
스리랑카는 현재 심각한 재정 위기에 빠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리랑카의 지난해 재정적자는 GDP(국내총생산)의 7.4%로 2014년 5.7%보다 크게 늘어났고, 외환보유액도 2014년 말의 3분의 1 수준인 62억달러로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 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이에 따라 IMF는 스리랑카에 15억달러(1조7000억원) 규모의 차관을 제공키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리랑카는 중국에 갚아야 할 부채가 80억달러나 된다. 이처럼 많은 빚을 지게 된 것은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중국으로부터 차관을 무분별하게 도입했기 때문이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 재임 때 중국이 스리랑카에 제공한 차관은 47억달러나 된다. 중국 정부는 이 가운데 일부를 자국 기업이 스리랑카에서 사회간접자본(인프라)을 건설하는 자금으로 전환토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스리랑카는 중국의 ‘선심’에 대한 대가로 중단시켰던 콜롬보 항구도시 프로젝트를 재개하는 것을 허용했다.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이 장기간에 걸쳐 스리랑카를 돕고 지지해온 데 대해 감사한다”면서 “스리랑카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에 적극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이 되는 콜롬보 항구도시 개발 프로젝트가 재개되면서 중국은 앞으로 일대일로 구축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으며, 인도양에 적극 진출할 수 있게 됐다. <下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