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이폰 제조업체인 폭스콘을 소유한 대만 훙하이정밀공업이 일본 전자업체 샤프를 인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훙하이가 샤프를 최종 인수할 경우 스마트폰용 중소형 액정패널 핵심 기술을 손에 넣게 돼 한국에도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샤프는 4일 "(이미 협상을 벌이고 있는) 산업혁신기구와 훙하이 두 회사로 압축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향후 1개월 내에 최종적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협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카하시 고조 샤프 사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훙하이와의 교섭에 사내외 (인재·정보 등) 리소스를 더 사용하고 있다"며 훙하이 측이 유리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카하시 사장은 훙하이의 지원을 받을 경우 "위탁생산 상품과 전자디바이스부품 조달 등 시너지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샤프가 이사회를 열고 훙하이 안을 축으로 교섭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며 "샤프가 외자계 기업(훙하이) 산하에서 재건을 진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당초 1월 중순까지만 해도 샤프 주거래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 등이 산업혁신기구에 샤프 재건을 맡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일본 정부와 재계가 공동출자한 산업혁신기구가 샤프의 중소형 액정패널 사업을 재팬디스플레이(JDI)와 통합하는 방식으로 산업경쟁력도 키우고, 기술 유출도 막으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1월 말 테리 궈 훙하이 회장이 일본 오사카 샤프 본사를 직접 방문해 당근을 제시한 후 분위기가 훙하이로 넘어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궈 회장은 7000억엔(약 7조원)을 제시한 후 액정 가전 분야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샤프 경영진과 주거래은행은 궈 회장 방일 이후 기존 안보다 훙하이 안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보고 이 안을 주축으로 협상에 들어가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훙하이 안을 받아들이면 산업혁신기구가 3000억엔(약 3조원)만 내고, 주거래은행이 3500억엔(약 3조50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해야 하는 산업혁신기구 안에 비해 주거래은행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 또 인력 감축이나 공장 폐쇄 등 고통스러운 구조조정도 피할 수 있게 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까지 합의한 마당에 거액을 제시한 훙하이를 놔두고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산업혁신기구를 선택했다는 대내외의 비판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샤프는 이날 산업혁신기구와 훙하이 제안을 검토해 한 달 내에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국 훙하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검토가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훙하이가 샤프 인수에 사활을 걸고 나선 것은 중소형 액정패널 핵심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샤프의 가전사업과 태양광사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샤프는 비록 적자에 시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기술력만큼은 세계 최고를 자랑할 만큼 정평이 자자하다.
훙하이는 샤프와 공동출자로 소형 액정패널 생산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샤프 본사를 인수하면 핵심 기술을 모두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샤프의 중소형 액정패널 세계 시장 점유율은 14.7%로 LG디스플레이(17.1%)와 재팬디스플레이(16.2%)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훙하이가 샤프를 가져가면 대만 기업들이 중소형 액정패널 세계 시장의 약 39%를 차지하게 돼 한국,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 점유율을 갖게 된다.
또 훙하이는 가전·태양광 투자를 통해 애플에 지나치게 쏠려 있는 사업구조를 다각화하는 데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훙하이 매출의 상당 부분은 자회사인 폭스콘이 제조하는 애플 아이폰에서 나온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면서 아이폰도 점차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훙하이로서도 새로운 성장산업을 발굴해야 하는데, 이 과제를 샤프 인수로 풀 수 있다는 설명이다.
훙하이의 샤프 인수가 유력해지면서 국내 전자업체들도 향후 파장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나섰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샤프의 액정패널이 훙하이 자회사인 폭스콘을 통해 애플에 공급되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애플은 현재 우리나라의 LG디스플레이와 일본의 재팬디스플레이, 대만의 AUO 등 3곳에서 패널을 공급받고 있다. 여기에 샤프가 합류하게 되면 기존 업체의 공급량이 줄어들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하이얼의 GE 가전사업부 인수에서 보듯이 중국 업체가 관심을 두는 것은 결국 브랜드"라며 "폭스콘의 제조 기술과 샤프의 브랜드가 합쳐지면 강력한 가전업체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가전사업의 경우 샤프의 존재감이 미미해 당장은 큰 영향이 없다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향후 성장 가능성을 경계하는 눈치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서울 = 이승훈 기자 / 김대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