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름을 버릴 때 / 이화영
나비가 피는 계절이 있다 나비는 하냥 피어났고 내일도 필 것이다 나비가 피기까지 열세 마리 꽃이 날아들었다 꽃 이름을 부르면 나비가 쑥대밭이 될까봐 눈으로 좇았다 나비가 정신없이 물들어 갈 때 꽃은 어디를 향해 뜨거워지나 손 지문 닮은 협곡을 따라 꽃이 빙빙 나비가 빙빙 암록의 베일은 몸 풀기 좋은 구유였다 눈이 쏙 빠지는 해산이 끝나면 세상은 변명으로 붉었다 나비 저녁에 이름을 버리고 아침에 혁명을 노래했다 동면에 드는 열세 마리 꽃들
— 시집 『하루 종일 밥을 지었다』 (천년의시작, 2024.10) ------------------------------
* 이화영 시인 1965년 전북 군산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한양대 대학원 국문학과 문학박사 2009년 《정신과 표현》 시 등단. 시집 『침향』 『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 『하루 종일 밥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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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피는 계절로 왔다. 나비는 꽃처럼 하냥 피어나고 내일도 피어날 것이다. 나비가 필 때까지 꽃들은 날아든다. 겉으로 보자면 나비와 꽃은 그 이름과 역할을 서로 바꾼 것이다. 나비가 물들어 갈 때 꽃은 뜨거워지고, 암록의 베일을 따라 나비도 꽃도 돌고 있다. 결국 나비는 이름을 버리고 혁명을 노래해 간다. 이름을 버린 나비의 수행성이 닿은 곳이 신비로운 존재 전환의 순간을 낳는다. 시인은 “나비에 홀려 전장을 헤매다 스러져 간 아픈 영혼처럼(「달」) 세상을 나서 ”운명에 흔들리지 않는/ 침묵“(「입춘」)을 어루만진다. 그 순간이 이름이라는 외피를 벗어던지는 사랑의 순간임을 암시한다. 사랑의 역설이 만들어낸 혁명의 순간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 서정시의 순간성이야말로 가장 숭고하고 초월적인 심미적 찰나였을 것이다.
이화영 시인은 ‘나비’라는 상징을 여러 곳에 불러와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을 탈환하면서도, 보다 높은 정신적 차원을 지향하는 경지까지 구축해 간다. 그만큼 그는 단순한 풍경에 도취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삶의 심층적 신비를 발견해 간다. 동시에 시인은 궁극적으로 가닿아야 할 실존적 모습을 다양하게 상상하면서 ‘나비’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 존재의 비극성과 심미성을 동시에 표상한다. 비록 물질세계에 연루되어 있지만 초월적 영혼으로 스스로를 탈환하려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화영은 현실과 신화, 구체와 상징, 몸과 영혼의 상호작용으로 사물과 삶을 파악하고 형상화하는, 숭고하고 초월적인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시를 써 가는 시인이다. 그 점에서 평균적 비속성이나 일탈과 부조화는 이화영 시의 목표가 아니다. 그의 상상력은 가장 숭고하고 초월적인 미학적 표지(標識)로서의 사랑을 역설적으로 암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고, 서정시의 순간성은 그러한 목표를 가능하게 해주는 상징적 시간 형식이 되어 주는 것이다. -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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