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언약까지도 갱신하시는 사랑
◎ 말씀/본문: 히브리서 8장
◆ 기도
아버지, 성장하는 신앙이 아니라면 인도함과 양육함으로 돌보시는 성령께선 무익할 것입니다.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앞서가신 예수를 한발자국이라도 더 닮다가 가렵니다. 이런저런 바람에 쉽게도 흔들리는 저를 인도하고 붙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 본문살핌
히브리서 8장은 새로운 대제사장이신 예수의 존재이유(당위성)에 대해 설명한다. 이미 율법이 있고 제사와 제사장들이 있는데 새롭게 대제사장이 필요하냐는 의문에 대해, 그런 땅의 모형적인 제사가 아닌 하늘의 제사 - 즉 원모델이 되었던 - 를 맡는 대제사장직을 예수께서 수행하신다고 설명한다. 기자는 모세가 '하나님이 보여주신 본을 따라' 장막과 성소를 지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본'이 되는 원모델이 존재함을 피력한다.
한편, 땅의 성막이 모형이요 그림자에 불과할지라도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은 영구하고 존엄한데, 굳이 새로운 언약이 태동한 이유와 그 새 언약의 제사장으로 존재하시는 예수님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첫 언약은 언약자체로는 문제가 없었으나, 이행의 이쪽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그 약속을 지독히도 오랜동안 지키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결국 계약을 파기하셨으나 그들을 버려버리시는 대신, 파기된 언약대신 강화된 계약으로 대체하여 그들을 자기 품에 다시 안으려 하셨다.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 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하여 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8:10-12). 이는 렘 31장에도 기록된 말씀이다.
◆ 묵상
사랑은 대상을 위하여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신경쓰게 만들고 일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것이 아내, 남편, 자녀, 부모, 친구... 누가 대상이든 사람은 그들을 향한, 그들을 위한, 그들에 대한 생각과 행동과 계획들로 자신을 이끌게 된다.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그들을 향한 멈출 수 없는 관심과 사랑이 흘러나가는 것 자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랑은 무력감에 빠진 사랑일 뿐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원래 아무 것도 아닌 줄을 알면, 무력한 모습이 본래의 나인줄을 안다면 오히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쁨이 찾아온다. 아내와 마당 일을 하며, 얼마 안되는 비상금을 슬쩍 아들 손에 쥐어주며, 딸 아이와 마라탕을 먹고 올리브영에서 물건을 고르게 하며, 나는 소박하고도 여여한 기쁨으로 충만하다. 나는 아들에게 페라리를 사주지 못해 괴로워해 본 적이 없다. 내 원래 꼬라지를 내가 알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사랑해 주는 가족이 있어서 행복하다.
그리고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다. 첫 언약을 내던기고 멋대로 살던 그 백성들을 벌하고 매섭게 버리셔도 될 것 같은데, 공의로 징계는 하셨으나 결코 버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화된 언약으로 다시 품으려 하신 하나님을 보며,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하나님을 만난다. 그 새 언약의 백성 중 하나가 된 나. 그런 내가 엇나간다고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실까? 옛 이스라엘 만큼만 봐주신다해도 내 한 평생 하나님의 신실을 의심, 걱정할 일은 없으리라. 그들은 1500년 넘게 긍휼을 얻었는데 나는 100년도 못 살 것 아닌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100년보다는 크시리라 믿어진다. 막 살아도 된다는 생각과는 다르다.
내게서 언약을 이행하는 백성답지 못한 모습이 종종 보일지라도, 나 역시 하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신경쓰고, 닮아가려 노력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멈추는 것은 참 쉽다. 육신의 본성이 원래 원하는 일이 하나님과 나에 대한 기대감을 접고 육신의 소욕과 계획에 따라 사는 것일 테니.
새 언약은 심비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내면에 성소를 지어서 거기서 만나 주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매일 하나님과 만나면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 변화는 곧 성장이자 성숙이다. 수영을 배웠다고 농사를 잘하게 되지 않듯이 신앙의 무엇 하나를 배웠다고 온전한 존재가 되거나 무슨 큰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서도 썼듯이, 내가 원래 아무 것도 아닌 줄 알면, 즉 나 역시도 첫 언약의 그 백성들과 본질상 동일한 군상에 불과함을 볼 수 있다면. 수영을 배운 날은 수영을 배워서 감사하고, 모내기를 배운 날은 모내기를 배워서 기쁠 수 있을 것이다. 여여히 걸어가는 성장의 길이 있구나.
하나님이 자기 안에 이미 온전하고 완전한 나라를 세우셨음을 믿는다면 이 땅에서 내가 살아가는 행동양식은 그를 점점 더 닮아갈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그 나라의 신비를 더욱 알고자 한다. 하나님을 닮고 싶은 열망이 내 마음을 바닥부터 채워온다. 얼마나 채우다 육신의 호흡이 끊어질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은 결코 신앙의 답이 될 수 없다.
신앙은 회사의 성장이나 군사훈련의 수료 같은게 아니라, 사랑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성장하면 성숙했다 말해준다. '이루었다' '해내었다' '성취했다' '올라섰다' '든든해졌다' 말하지 않는다. 사랑은 이루지 못할 것을 위한 쉼없는 손길이며, 응답받지 못할 불확실성 속에서도 대상을 바라봄이며, 안정되고 확고한 땅이 아닌 흔들리는 다리 위를 걸으면서도 뒤를 끝까지 따라가고야 마는 용기와 의지가 수반된 아름다운 마음이다.
아담부터 시작해 구원을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을 구체화하시고, 첫 언약을 통해 하늘의 모형을 보이시고 새 언약으로 신자의 마음 안쪽까지 치고 들어오신 하나님의 열심. 그 오랜 세월 허비된 하나님의 열정은 사랑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욕망이었다면 지구는 벌써 사라진 행성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나도 사랑을,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그래서 성장도 포기하지 않고 나가도 되겠다. 앞으로 100일 다시 새 힘을 얻어 시작할 수 있겠다.
◆ 기도
눈에 보이는 교회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힘들지만, 제가 교회다운 길을 걷고 교회다운 생각을 하며 성숙을 향해 사는 것은 가능하네요. 주님, 좋은 책과 좋은 사람들을 적절한 때마다 만나게 하셔서, 제게 주신 은사를 풍성케 해 사랑의 열매를 하나라도 맺게 하옵소서, 저라는 존재가 예수에게 매달린 가지가 분명함을 알도록 하옵소서.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자랑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랑으로 인한 열매, 성숙의 시간으로 맺어지는 열매. 제 삶의 끝자락이 올 때까지 하나라도 맺어 당신께, 포도원의 주인이신 아버지께 드리고 싶습니다.
첫댓글 1500년의 긍휼과 100년의 긍휼.
하나님의 긍휼하심도 종재기같은 나 중심으로
곡해한 어리석음 보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