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밤 10시 조현아 전 부사장 구속영장 발부…서울 남부구치소 수감 예정
법원이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30일 오후 10시 40분쯤
발부했다. 사건 발생 25일만이다. 지난 24일에는 조 전 부사장을 조사한 국토해양부 조사관이 먼저 구속됐다.
여성
정치인이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구속된 일은 자주 있었지만 대기업 오너가(家)의 딸이 구속돼 구치소에 들어간 것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진그룹 오너 3세의 순간적 실수나 일탈 정도로 끝났을 수도 있었을 이번 사태가 한국 사회를 뒤흔든 메가톤급
폭풍으로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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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검찰 직원 등뒤에 얼굴을 파묻고 검찰로 이동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 전 부사장이 그동안 요리조리 내뺄 궁리만 하는 사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그가 초동
대응만 잘 했더라면 감옥에 가지 않았어도, 재벌3세가 도매급으로 싸잡아 비난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
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첫째 딸로 대한항공에서 입지를 굳혀가던 조 전 부사장에게는 이번 사태를 수습할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번째 기회는 이 사건이 처음 언론에 보도된 지난 8일 있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지난 5일 미국 뉴욕 공항에서 대한항공에 탑승한
조 전 부사장이 기내 서비스를 문제삼아 승무원에게 폭언을 하고 출발 중이던 비행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하기(下機)시킨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이 그가 사건 직후 즉각 당사자와 국민에 사과를 하고 자신의 모든 직책을 내려놨으면 이번 사태는 ‘재벌 3세의
주사(酒邪)’쯤으로 봉합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항공사의 객실서비스 담당 책임자로서 승무원의 서비스에 대해서 얼마든지 지적할 수
있는 사항이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면 과도하게 업무에 개입한 오너 딸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사건이 보도된 당일 밤 늦게서야 조 전 부사장을 옹호하는 한 장짜리 사과문을 내놨다.
사과문에서 대한항공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사무장 등에게 떠민 듯한 인상을 줬다. 그날 밤 이 사건은 CNN을 비롯한 주요 외신을
통해 ‘땅콩 리턴, 땅콩 부사장’ 등으로 희화화되며 해외토픽으로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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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NN투데이에서 조현아 부사장의 대한항공 항공기 회항 사건을 소개했다.
이튿날인 9일에도 만회할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조 전 부사장은 9일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면서 대한항공 ‘기내서비스
및 호텔사업 부문 총괄 부사장’ 보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이 부사장 직함과 등기이사 칼호텔 네트워크,
왕산레저개발, 한진관광 계열사 3곳의 대표이사 등의 권리를 그대로 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무늬만 사퇴’ ‘재벌3세의
꼼수’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다음날인 10일 오후 조 전 부사장은 대한항공에서의 모든 직책에 대한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11일 검찰, 대한항공 본사 및 인천공항 출장사무소 등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조 전
부사장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조 전 부사장이 국토부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12일 조양호 한진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딸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머리를 숙였지만 대한항공의 황당한 대응이 일을 악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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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항공법·항공보안법 위반 여부에 대한 국토교통부 조사를 받기 위해 김포공항
인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건물로 출석해“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사진 왼쪽) 이에 앞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딸의 잘못을 사과한다"고 했다.
언론을 통해 대한항공 측이 12일 조 전 부사장 국토부 출두에 앞서 국토부 청사내 동선과 화장실 등을 ‘사전 검열’하는
과정에서 특별대우를 요구한 듯한 소식이 알려진 것이다. 14일 조 전 부사장이 사과 차 사무장과 승무원의 집을 방문했으나 직접
만나 사과하지 않고 ‘쪽지’만 두고 나왔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여론은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했고, 검찰은 15일 조 전
부사장에게 17일 소환 통보를 했다.
검찰이 소환통보를 한 바로 다음날인 16일 대한항공은 주요 일간지 1면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검찰 조사에 앞서 여론을 설득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세 번째 기회였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엉뚱한 사과를 내놨다. 국민이 조 전 부사장의 ‘갑의 횡포’에 분노할 때 조 전 부사장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회사
탓으로 돌려버렸다. 이로써 그는 여론을 되돌릴 기회를 완전히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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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캡쳐
이 후 국토부 조사를 통해 이번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대한항공 측이 박창진 사무장에게 거짓 진술을 하도록 회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도록 현장 목격자를 매수하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더 나아가 국토부의 대한항공 출신
조사관과 대한항공의 객실담당 임원이 통화하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정황도 포착돼 ‘칼피아’ 논란까지 확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