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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5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이스라엘이 종살이를 하던 애굽은 발로 물을 댈 수 있는 나일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약속의 땅으로 주신 가나안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그것도 이른 비와 늦은 비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로 농사할 뿐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100번을 생각해도 애굽 땅이 좋은 땅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측에서의 생각은 하나님이 주실 때 받으면 되고 안 주시면 안 받으면 되니 이 땅에서는 잠을 잘 수 있습니다.
하여 속을 끓일 필요도 없으며 그야말로 욥의 고백처럼 주신 이도 여호와, 안 주시는 이도 여호와임을 고백할 수 있음이 감사임을 믿습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나의 행위로 무언가를 행하려는 악을 범치 않도록 나를 장악하소서.
이 하루도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믿음의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애 4:11-22
제목 : 구약시대의 지도자에서 신약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나아가 기름부음을 믿고 복음을 따라 사는 지도자로 서게 하소서.
11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데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12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13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 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수 없도다.
15 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기 가라 부정하다, 저기 가라 저리 가라 말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6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17 우리가 헛되어 더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18 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
19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꼭대기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도다.
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21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22 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 나의 묵상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나라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당신의 언약백성으로 삼으셨다.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창성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말씀에 불순종하여 언약적 의를 저버리자 끊임없이 경고하시다가 결국 심판하셨다.
그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멸망당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거나 죽임 당했다.
경건한 시인은 이 참상을 목도하고 슬피 노래한다.
애가 4장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참상을 보도한다.
전에 금과 같던 이스라엘이 빛이 바래고 변질되었다.
존귀한 자들은 그 얼굴에 광채가 났으나 이제 그 얼굴이 상하였다.
무엇보다 기근이 극심해서 아이들이 죽어가고 심지어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졌다.
이 모든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 위에 불같이 임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백성들을 잘못 인도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있다.
시인은 백성들의 지도자의 죄악과 그들의 운명을 슬피 노래한다.
애가 4장은 두 개의 행을 한 개의 연으로 하여 22개 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히브리어 알파벳 순으로 되어 있다.
주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맹렬한 분노를 쏟으셨다.
시온을 불 지르시고 그 터를 태우셨다(11절).
땅의 왕들도 세상의 모든 거주자들도 믿기지 않았다.
원수와 적들이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12절).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그런 일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죄악으로 인함이다.
그들이(제사장들) 성 안에서 의인의 피를 흘렸다(13절).
그들은 소경처럼 거리거리를 배회하였다.
그들은 아무도 감히 그들의 옷을 만질 수 없을 만큼 피로 부정하게 되었다(14절).
사람들은 그들에게 ‘저리 가라, 더러운 것들’ 하고 외친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그들은 도망치고 피하며 다른 민족들도 ‘여기에 머물지 말라’고 말한다(15절).
여호와 자신이 그들을 내쫓으시고 그들을 더 이상 돌보지 않으신다.
제사장들을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장로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신다(16절).
17-20절은 예루살렘과 유다 왕국의 종말을 다시 애도한다.
눈이 감길 때까지 우리는 도움을 바랬으나 헛된 일이었다.
우리는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백성을 기다리면서 주시하였다(17절).
원수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으므로 거리를 다닐 수도 없다.
우리의 종말이 가까웠고 마침내 종말에 이르렀다(18절).
우리의 추적자들은 하늘의 독수리보다 더 빨랐다.
그들은 우리를 산꼭대기에 내몰고 우리를 초원에서 뒤쫓는다(19절).
우리의 숨결,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은 그들의 덫에 걸렸다.
우리는 그 왕의 그늘에 살면서 이방인 중에서 보호를 받으리라고 생각하였다(20절).
21-22절은 에돔의 멸망과 시온의 회복을 대망한다.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좋다고 날뛰어 보아라.
네게도 잔이 임할 것이며 너는 취해서 벌거숭이가 될 것이다(21절).
딸 시온아, 네 죄가 사해졌다. 그는 다시는 너를 끌고가지 않을 것이다.
딸 에돔아, 그가 네 죄를 벌하시고 그가 네 죄를 폭로하시리라(22절).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통해 백성들을 다스리셨다.
그들은 왕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제사장들인 지도자들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언약을 저버리고 심판을 받는 것은 궁극적으로 지도자들의 죄악으로 인해서이다.
시인은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백성들이 죽거나 포로되는 상황을 목도하며 그들 지도자들의 죄와 그들이 받을 운명을 슬피 노래한다.
사실 백성들은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자기들을 보호하고 지켜줄 것으로 생각하였다(20절).
또한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그대로 믿었으며, 제사장들을 믿고 따랐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헛된 묵시를 말하였고, 제사장들은 부정한 자들이었다.
이렇듯 패역한 왕들만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까지도 타락하여 백성들이 끔찍한 재앙을 당한 것이다.
이제 그들 지도자들은 소경처럼 거리를 방황하게 되었다.
그들은 너무도 부정하게 되어 아무도 그들의 곁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들을 향하여 ‘저리 가라, 저리 가, 이 더러운 것들아’ 하면서 멸시한다.
심지어 세상 이방 사람들조차 그들을 피하며 떠나라고 외친다.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이 그들을 내쫓으시고 그들을 돌보지 않으신다.
그들을 귀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으신다.
멸망의 날이 임박했을 때 잠시 애굽에 도움을 구했으나 그것도 헛된 일이었다.
결국 예루살렘은 멸망당했고 왕은 이방 나라에 끌려갔다.
시인은 에돔의 멸망 예고와 시온의 회복을 내다본다.
여기서 에돔의 멸망은 악한 도구로 쓰임 받은 나라의 멸망을 예시한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된다.
(롬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구약성경의 시내산 언약 곧 옛 언약은 새 언약으로 대체되었고 그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하셨다.
(눅 22:20)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시내산 언약은 하나님께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하나님과 언약관계는 지도자들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들을 통해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써 언약적 의를 이룬다.
하지만 새 언약은 큰 자나 작은 자나 각자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렘 31: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신약시대 구원 받은 자들 안에는 성령 곧 기름부음이 있다.
그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며, 진리 가운데로 이끄신다.
곧 다른 특별한 사람의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기름부음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사도 요한 당시 영지주의는 자기들만이 영적 지식을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가르침으로 살도록 이끌었다.
이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들 안에 영생이 있음을 확증하고, 각자가 기름부음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의 사귐을 갖도록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따라서 신약시대의 영적 지도자의 본분은 자기의 것을 가르치는 영지주의자가 결코 아니다.
성도 각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 안에 영생이 있음을 확증한 후에 그들을 정결한 신부로 한 남편 되신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것이다.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리하여 자기 안에 영생이 있음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인 곧 성도들로 하여금 각자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따라 진리를 알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도록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신약시대 아니 오늘 이 마지막을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영적 지도자의 본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였다.
그저 구약시대의 지도자들처럼 헛된 것들을 가르치는 소경과 귀머거리 지도자에 지나지 않았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곧 나에게 딱 맞는 말이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기들이 행하는 윤리도덕적 삶을 강조하며 가르쳤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 답습하도록 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야 말로 그런 지도자였다.
내가 전도사 때, 모셨던 담임목사님은 끊임없이 윤리와 도덕을 설교하였다.
그 때 나는 정말 머리에 쥐가 나는 줄 알았다.
복음을 잘 알지 못하였지만, 그런 설교는 아니라는 것을 알겠기에 그런 윤리도덕적 설교를 듣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목사가 되고 담임을 하면서 나 역시 그런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빛과 소금이어야 하기 때문에 마땅히 윤리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말이다.
이런 나는 구약의 지도자에 다름 아니었다.
그 후에 복음을 알게 되었고 영적 지도자요 설교자로서 성도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윤리도덕적 설교를 해 본적이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 그 자체이시며(창 3:15, 21), 그의 메시야적 행위(고전 15:3-5)가 복음임을 증거한다.
나는 내가 성도들의 모범이 되기 위하여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나 또한 하나님의 아들 된 하나의 객체로써 주님과의 교제와 사귐에 충실할 뿐이다.
내가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의 아들 된 자로 살아가며 하나님 나라의 맛을 순간순간 보는 것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영적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으면서도 복음도 영생도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 소경에 지나지 않는 자였습니다.
거룩한 처녀인 성도들을 한 남편 되신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자가 아닌 그들을 키워서 내가 잡아먹는 삯군 목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나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맞아죽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긍휼히 여기시어 복음을 듣게 하셨고 그로 인하여 거룩한 처녀인 성도들을 남편 되신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영적 중매쟁이로 서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복음을 증거하며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복음을 깨닫고 주님과 늘 교제와 사귐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드러나기를 원하면서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나 자신이 조금이라도 드러날라 치면 그 순간 십자가로 달려가오니 이런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그리하여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