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5일 묵상 본문 : 예레미야 애가 4장 11절 - 22절 - 심판으로 인한 절망과 탄식에서도 주의 구원과 회복을 바라보며 생명의 보좌로 가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은혜 가운데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부고의 소식으로 인해 분주한 아침을 보냅니다.
아픔을 당한 분들의 마음에 주의 위로하심이 임하고 하늘의 소망을 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고 그 음성을 따라가며 양식 얻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마음을 이끌어 주시고 깨어 있는 자와 같이 반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의 모든 일정을 주님께 맡기오니 주께서 친히 이끌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고 가는 모든 상황에서 안전과 강건함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함께 하시고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1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12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13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 그들이 거리거리에서 맹인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아무도 만질 수 없도다
15 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6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17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18 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
19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꼭대기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도다
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21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22 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본문 해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시온에 불을 질러 태우셨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것은 모든 백성이 생각지도 못했음을 고백하며 이는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성읍에서 의인의 피를 흘리게 했기 때문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들은 거리에서 맹인처럼 방황하는 자들이 되었고 그들이 피에 더러워졌기에 만질 수도 없다고 표현하면서 종교 지도자들이 괄시와 천대를 받고 외면당하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또한 이방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저리 가라 부정하다, 만지지 말라고 외치며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 다시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말했음을 이야기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노하셔서 흩어버리시고 돌보지 않으셨기에 사람들은 제사장을 높이지 않고 장로들을 대접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예레미야는 당시 유다가 헛된 도움을 바라고 있었음을 제시하며 구원하지 못할 나라, 즉 애굽을 바라보았던 모습을 눈이 상한 모습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바벨론이 자신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통제하여 끝이 가깝고 종말에 이르렀으며 자기의 뒤를 쫓는 자들이 독수리보다 빠르고 산꼭대기와 광야까지 잡기 위해 매복하였다고 고백한다.
또한 우리의 콧김(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를 의미) 즉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는데 사람들은 시드기야가 펼친 친 애굽 정책을 통해 바벨론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기대했지만 결국 그 정책으로 인해 처절하게 무너지게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즐거워했던 에돔을 향해 그들이 유다의 멸망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말하면서 그 결과는 그들에게도 심판의 잔이 임하고 취하여 벌거벗게 될 것을 선포한다.
반대로 시온은 죄악의 형벌이 다했으며 주께서 다시 사로잡혀가지 않게 하실 것이지만 에돔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벌하시고 허물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선포한다.
이는 실제로 유다의 심판이 끝난 것이 아니라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언젠가 거두어질 것과 반대로 에돔의 심판은 온전히 성취 될 것임을 확신하며 선포한 것임을 보여준다.
나의 묵상
예레미야는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예루살렘의 견고함을 하나님께서 진노의 불로 불태워버리셨다고 선포하며 당시에 임한 징계가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 임한 것과 비슷함을 증거 한다.
이는 종교적인 업적과 사람의 견고함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대신 할 수 없는 것임을 의미하며 땅에서 세운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땅의 것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세울 수 없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지 못한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무너지고 사라질 대상에 불과함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진정으로 자신을 지키고 온전히 세우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고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견고한 삶을 세우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하나님의 교훈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멸시를 당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 또한 종교적 지위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은 백성들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부패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으며 그 결과로 외면과 멸시를 당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의 왕과 같은 제사장인 성도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불의를 행하는 모습이 될 때 세상으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가 어떤 존재인지를 제시하며 그들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밝혔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9,10)
성도의 사명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통해 하나님이 행하신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는 복음을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고 하나님의 생명의 은혜를 전하며 증거하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도 여전히 복음을 드러내시고 선포하시는 은혜가 본문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예레미야는 시드기야가 친애굽 정책을 통해 바벨론을 견제하고 독립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하는 것이었기에 바벨론에 의해 철저히 무너졌음을 선언한다.
그래서 사람은 땅에서 자신의 의지할 대상을 찾거나 세워줄 수 있는 대상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임을 제시한다.
이 또한 성도가 하나님 이외의 것으로 자신을 세우고 의지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철저하게 무너지게 만드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무너짐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의 시작임을 제시하며 유다의 멸망을 기뻐하던 에돔이 심판을 당할 것과 유다의 회복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시를 끝맺는다.
이 또한 하나님의 백성은 심판이 끝이 아니라 구원과 회복이 끝이 됨을 제시함으로써 더욱 하나님의 언약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자로 살아갈 것을 제시했던 것이다.
심판에 대한 처절함과 고통, 아픔을 노래하던 예레미야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찬양했으며 백성들도 동일하게 찬양하는 자로 서기를 소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시편이 절망과 탄식으로 시작되지만 마지막은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끝난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이 목적이 아니라 구원과 회복이 목적이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생의 계획도 심판이 아닌 구원과 회복으로 마무리됨을 보여준다.
그래서 심판이 진행 되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소망과 회복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됨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나의 모습은 탄식과 절망으로 시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삶 가운데 주의 은혜와 사랑으로 인해 회복과 온전함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신다.
이 기대와 소망이 나의 삶, 그리고 교회 지체들의 삶 가운데 풍성하게 나타나고 선한 열매로 맺어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은 인생의 처절한 절망과 고통, 아픔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또한 주의 회복과 온전함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은혜를 보게 하십니다.
땅의 것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의 모습은 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주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심판이 주어져도 주께로 나아가기를 힘쓰는 자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주의 회복과 구원의 역사가 임하는 것을 보게 하시고 주를 향한 소망을 품는 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분주한 일정을 보내야 하지만 그 모든 일정 가운데 주의 은혜를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마음을 지켜주시고 주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