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되리라”
묵시 21,9ㄴ-14; 요한 1,45-51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2024.8.24.
오늘은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입니다. 그는 갈릴레아 카나에서 태어나 필립보 사도가 이끌어 예수님을 만나게 된 나타나엘과 같은 인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그는 인도와 터키 등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르메니아에서 이교도들에 의해 치명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의 인간됨됨이와 사도로서의 자질을 만나자마자 일찌감치 알아보셨습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이스라엘에 흔한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는 넓은 편이어서 햇볕을 가려줍니다. 그래서 낮의 무더위를 피해서 모임을 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당시는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가 일상적으로 유다인들을 폭력으로 억압하고 있었던 시기였으므로, 열혈 지식인이 아니더라도 보통의 유다인들은 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나누기도 하고, 뜻이 맞으면 모임을 결성하는 결사 행동이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타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모임을 하고 있는”(요한 1,48)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그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내다보며 자신의 삶을 투신할 인물임을 알아보셨습니다.
그 정도만으로도 나타나엘 즉, 바르톨로메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만나자마자 그의 지사(志士)적 면모를 알아보셨고 나타나엘 또한 그분의 예언자적인 면모를 알아보면서, 서로 간에 동시대를 사는 아픔과 고민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바빌론 유배 이후 예언자들의 씨가 마를 정도로 워낙 시대상황이 답답했던 지경이라서 그분이 나자렛 출신이라는 필립보의 전언(傳言)을 듣고서는 시쿤둥하던 나타나엘도, 자기의 고민을 알아줄 법한 예수님의 통 큰 발언을 들으니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래서 가르치고 배운 사이도 아직 아닌데도 ‘스승님’이라 부르더니, ‘하느님의 아드님’이니 ‘이스라엘의 임금님’이라고까지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요한 1,49)
이런 호쾌한 고백을 들으시던 예수님께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심정으로 한 마디를 보태셨습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요한 1,30)이며,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요한 1,31)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공생활을 함께 겪으면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고 그 복음이 현실화되는 과정과 그리고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 순명하고 또 하느님께 청하는 역동적인 결과를 체험하게 되리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게다가 그가 사도가 되면 체험하게 될 현실 즉,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교회를 위하여 투신할 미래의 운명도 암시하셨음은 물론입니다.
마지막에 바르톨로메오에게 하신 말씀의 주어가 “너희”로서 복수 2인칭임을 감안하면, 하늘이 열리는 모습은 제자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베푸신 숱한 기적들을 목격한 것이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성령으로 함께 하시면서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신자들에게 공동생활 양식으로 보여주신 것도 바로 그 ‘열린 하늘’의 모습이었고, 오늘 독서에서 들려주는 ‘거룩한 도성’(묵시 21,10)이나 ‘새 하늘과 새 땅’(묵시21,1) 또한 ‘열린 하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들에게는 권력이 신앙을 박해하고 세상 사람들이 우상숭배에 물들어 무신론 사조가 만연해 있을 망정 예수님께서 희망을 열어젖히신 열린 하늘에 대한 비전이 살아 있었습니다. 아니, 권력의 신앙 박해와 세상의 무신론 풍조 때문에 더욱 더 열린 하늘에 대한 열망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열린 하늘’의 인간관계는 예수님과 바르톨로메오 사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머지 열한 사도들과의 사이에서도 일어났음이 독서 말씀으로 뒷받침됩니다. 즉, 사도 요한이 환시로 본 광경에서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 있는 성문에 동서남북으로 난 성벽에 열두 사도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묵시 21,13) 실제로도 예수님의 열두 제자로 시작된 인간관계는 부활 후 발현체험을 거친 후에는 스승과 제자 사이를 거쳐서 그리스도와 사도의 관계로 발전하였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살면서 백 살이 되도록 신앙을 증거하며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돌보며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한 사도 요한 외에는 열한 사도가 모조리 하느님 나라와 그리스도 부활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심지어 생전에 제자로 불리지 못했던 사도 바오로까지도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복음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고 목숨까지 바침으로써 교회 안에서 복음의 진리를 입증한 사도로 영광스럽게 부활하였습니다.
교회는 이 사도들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열렸으며, 그 열린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 하늘과 땅을 오가며 믿는 이들에게 큰 일을 해 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은총스런 섭리가 실현 가능하게 된 원인은 예수님과 그 사도들이 맺었던 인간관계 덕분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또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그 거룩한 인간관계가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이룩할 수 있었던 일보다도 더 큰 일을 이룩할 수 있게 섭리하였던 것입니다. 이 ‘열린 하늘’의 징표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몸소 보여주시고 또 가르치셨으며 선포하셨던 대로,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 복음”을 듣는 일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이후 교회의 역사를 회고해 보면,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세에 이르기까지 12세기에 프란치스코의 청빈 운동이 반짝 일어났을 뿐 이 ‘열린 하늘’에 대한 기억도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8세기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동력기관의 발명으로 생산력이 갑자기 증대되어 갑자기 부유해 진 자본가들이 생산력을 더 늘려서 돈을 더 벌겠다고 농민들까지 데려와 도시 노동자들이 늘어나자 노동자들의 임금은 더 떨어져서, 자본가들은 더 부유해지고 노동자들은 더 빈곤하게 되는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 사태로 번져버렸습니다.
이러한 사태 속에서 노동자들이 하나의 계급을 형성할 만큼 대량으로 발생했고, 장시간 노동을 해도 생존하기에도 모자라는 저임금에 시달리게 되자, 노동자들이 단체를 결성하여 생존권을 주장하는 노동운동이 자생적으로 들불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이에 따라 시대의 혼란상이 극심해지던 이 무렵에 예수님의 말씀, 즉 하늘이 열리는 모습과 초대교회의 공동생활 양식을 기억하고 이를 재현하고자 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유럽에 출현했습니다.
제일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노동자들의 빈곤 문제가 심각했던 영국에서는 로버트 오웬(Robert Owen, 1771~1858)이나 윌리엄 킹(William King, 1786~1865) 같은 선구자들이 소비자 협동조합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산업혁명의 여파가 50여 년 늦게 밀려든 프랑스에서는 생 시몽(Saint Simon, 1760~1825), 샤를르 푸리에(Chales Fourier, 1772~1837) 같은 생산자 협동조합의 선구자들이 출현하였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서도 산업혁명의 전파 속도가 백 년 정도 늦었던 독일에서는 고리대금의 폐해로 빈곤해 진 도시와 농촌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신용협동조합 운동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도시 빈민들을 위해서는 슐체 델리치(Shulze-Delitzsch, 1808~1883), 농촌 빈민들을 위해서는 빌헬름 라이파이젠(Wilhelm Raiffeisen, 1818~1888)이 선구자였습니다.
그런데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이런 협동조합 운동 선구자들을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비웃으면서,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와 함께 1848년에 공산당 선언을 필두로 유물론적 역사관과 계급투쟁론에 입각한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무신론적 공산주의 운동이었지만, 제도교회가 부자들 편에 서서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던 형편에서 노동자 신자들이 대거 교회를 이탈하여 이 공산주의 운동에 합류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알아차린 교황청에서는 1891년에야 빈익빈부익부 사태를 다룬 최초의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하기에 이르렀고, 후임 교황들도 이 노선을 따라서 사회적 관심을 표명하였고, 이 흐름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어지고 보편화되었습니다.
뒤늦었지만 확고해진 가톨릭교회의 이 노선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를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로 구체화되었습니다(사목헌장, 1항). 예수님께서는 바르톨로메오에게 ‘열린 하늘’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고 대단히 강조하여 말씀하셨는데, 사목헌장은 이 말씀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는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신자들이 실현한 ‘공동생활 양식’의 새로운 모델을 발견해 냄으로써 예수님께서 열어젖히신 하늘을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실사구시적 실천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 실천의 핵심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습니다.
늘 하늘에 열려 있는 자세로 인간관계의 십자가를 짊어진다면, 마침내 우리를 도구로 쓰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천사들이 우리 위에서 오르내릴 것입니다. 우리네 인간관계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 생겨난 골이 있다면, 그분의 자비로 메울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 없이도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양 교만스러움으로 돋아난 우리네 인간관계의 언덕이 있다 해도 그분의 은총으로 깎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섭리가 우리네 인간관계도 성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르톨로메오를 사도요 선교사로 쓰신 하느님의 섭리가 우리 안에서도 재현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로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가며 도와주는 인간관계란, 외적인 변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사자들의 열린 신앙과 깨어 있는 의식으로 그 관계를 성화시켜가는 이들에 의해서 이룩되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셨고, 사도들에게도 가능하도록 해 주셨으며, 근세 이후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들을 통해서나 공의회의 교부들을 통해서 확인해 주신 이 ‘열린 하늘’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희망을 안겨줍니다. 이 희망이 오늘 미사의 영성체송에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가 나에게 나라를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리라.”(루카 22,2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