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5화분 시리즈에 원작의 그 방대한 내용을 축약하자니 스케일이 한정된 건 당연한 일이겠죠.
하지만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담아 내는 데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수년 전 베르세르크 원작을 처음 보고서 바로 애니를 접했을 때는 저도 원작에 비해 떨어진다고 느꼈지만, 최근 원작의 잔영이 어느 정도 씻겨진 상태에서 애니를 다시 한 번 접하니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독립된 매체, 독립된 하나의 작품으로서 바라볼 수가 있었습니다.
어차피 '원작의 불완전한 일부' 가 아닌, '기승전결이 있는 한 편의 인간적 드라마' 가 애초의 지향점이자 의도였던 듯 합니다.
도입부에서 그리피스가 왕이 되어 있다는 다소 단정적인 설정도 그에 따른 것이겠죠.
전체의 분위기 또한 환타지적 색채를 가능한 한 배제하고 현실적인 중세의 모습을 그려 내는 데 주력한 듯 하고, 인물들의 성격 역시 보다 현실적인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뛰어난 캐릭터의 재해석, 그 중에서도 캐릭터의 재창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그리피스에 대한 인물해석은 정말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죠.
만화를 위해 탄생된 듯한 인위적 캐릭터가 아닌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서 그를 이해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내면의 심리 전개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캐릭터 재디자인의 마술일까요? 원작의 그리피스보다 남성화되어 오히려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화, 어딘지 그늘진 무게가 실린 표정의 변화, 모리카와 토시유키라는 성우의 조화는 그야말로 절묘합니다.
작품의 흐름을 따라 적절히 분위기를 살려주고 있는 히라사와 스스무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는 묘미입니다.
다만 베르세르크의 팬인 이상 누구나 아쉬울 점이 있다면, 97년 일본방영 당시 심야시간대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드한 표현이 대폭 축소, 제거되었다는 거겠죠.
뚜렷한 선악의 구분없이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에 잣대를 들이대며 적용되는 어두운 이중적 면모, 그리고 도입부 무렵 검은 검사 가츠의 극한 상황이나, 수많은 전투시의 피와 살이 튀는 극렬한 느낌 등을 좀더 비중을 높여 치열하게 묘사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피스와 공주 사건 이후 드러나는 국왕의 이지러진 이면에 대한 묘사가 사라져 버린 것도 심히 유감스럽다고 할까요. 노골적인 근친상간의 방영은 일본에서도 역시 무리였던가..
결론적으로 원작 베르세르크가 이성적으로 강하게 어필하는 작품이었다면, 다시 본 애니 베르세르크는 현실성과 캐릭터성을 극대화시켜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열광하게 하는 흡인력이 대단하더군요.
개인적으로 후자 쪽의 느낌을 선호하기에, 베르세르크 애니가 과연 원작에 못 미친다고 할 수 있을 지는 매우 의문입니다.
첫댓글 그대신 만화책에선 잘보여주고 있죠. 심지어 트롤과 인간의 괴친상간 까지. 만화책에선 성기묘사까지 돼어있는점이 무척마음에 듬. 변태아님.
전 애니부터 봐서 처음부터 베르세르크의 위대함을 느낌 ㅡ.ㅡv
만화책 원작에 비해서 암울해보이는 그림체가 없어보이기에 약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