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소문 -
권다품(영철)
오래 전 학원을 경영할 때의 일이다.
학생들이 방학일 때는 오전부터 수업을 시작한다.
매일 식당밥을 먹기가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들도 대부분 도시락을 준비해 오고 교무실에서 모여서 서로의 반찬을 나눠먹기도 하고, 아니면 하루 전에 선생님들이 뭘 먹고싶은지 의견을 모아서 내가 사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학원 아래 칼국수집으로 가서 먹기도 하고....
그날도 반찬이 시원찮았는 지 아내가 도시락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면서 "마 칼국수 먹자."길래 같이 갔다.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라 항상 손님들이 줄을 서는 집이다.
걱정은 하고 갔지만, 역시 줄이 길었다.
"아주머니 우리 점심 시간이 1시30분까진데 먹을 수 있겠습니까?"
자주 가서 나를 알기도 하지만, 학원을 경영하는 사람이란 것도 아는 아주머니라 최대한 예의를 다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대답도 없고 눈길도 주지 않고 주걱으로 솥에 있는 칼국수만 젓고만 있었다.
혹시 못들었나 싶어서 조금 크게 다시 말을 했다.
그런데도 대답이 없다.
아무리 손님이 많아서 장사가 잘 되긴 하지만, 그래도 손님이 묻는 말에 아예 대답을 않는다?
말만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이맛살에 짜증이 확 묻어났다.
'이게 뭐지? 아무리 장사가 잘 되어서 배가 부르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나빠서 한 마디를 하고 돌아설까 하는데, 그 때 국수를 젓고 있던 아주머니가 짜증스럽고 귀찮다는 듯이 말을 했다.
"하이구 아저씨, 눈이 있으마 쫌 보이소. 이 쪽 줄도 쫌 있으마 빌끼고, 저 쪽 줄도 빌낀데, 기다릴라 카마 기다리고 아저씨 알아서 하이소."
순간적으로 너무 놀랐다.
그 칼국수집은 건너편 가게까지 인수해서 할 정도로 잘 되고 있을 때였다.
'이 아주머니 말투가 왜 이 따위란 말인가' 싶었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의 말투가 그냥 "아저씨"가 아니었다.
'눈으로 보면 알지, 바쁜데 짜증나게 묻느냐'는 그런 짜증이 그대로 묻어나는 "아저씨"였다.
순간 기분이 확 나빴다.
'아, 이 아줌마가 여태 장사가 너무 잘됐구나!'
수업 시간에 쫓겨 빨리 먹고 학원으로 올라가야 학생들 수업 시간에 지장이 없겠다는 급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물어본 말이 뭐가 그렇게 잘못돼서 이런 짜증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간 몇 년 동안을, 바쁜 집이란 걸 알기에 한참을 기다렸다가 먹어왔고, 그리고 우리 가족들은 물론이고, 우리 학원 선생님들, 또, 우리 학원생및 학부모들, 그리고 내가 아는 여러 친구들도 수시로 데려가서 먹어 왔는데, 어떻게 손님에게 이 따위 말밖에 못한단 말인가?
'아주머니, 내가 뭐 잘못하 거 있어요'라고 한 마디를 하려다가,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잇달아 폭팔할 내 성격을 알기에 억지로 꾹 눌러참고 그냥 그 집에서 돌아서 버렸다.
마침 그 때 우리 학원 선생님이 딸아이와 아들과 함께 칼국수를 먹겠다고 내려왔다.
"고선생 이리 온나. 이 집 바쁘단다. 저기 보리밥집으로 가자."
벌써 내 말에도 내 기분이 실렸다.
나는 그 아주머니 집 바로 앞에 새로생긴 "보리밥집"으로 들어갔다.
그냥 넘길까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장사가 잘 될 때 고객 관리를 잘해야 하고, 고객 한 사람의 입이 얼마나 무서운 지도 알게 해줘야겠다 싶었다.
나는 보리밥 집 안에 앉은 다른 손님들이 다 들으라고 일부러 큰소리로 방금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우리 학원 선생이 "헐"하면서 놀랐다.
보리밥집의 손님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선생님, 내 돈 주고 먹으면서 그런 집에 뭐 할라꼬 갑니까? 그런 배부른 집에는 안 가는 게 맞습니다."
"그 아지매 장사가 너무 잘 된다는 말이네요!"
"그 아지매 그동안 장사가 잘돼서 인자 돈 많이 벌었을 낀데....."
"사람들한테 그 아줌마 말이 더러 나옵니다. 나도 그 말 듣고부터는 그 집에 안 갑니다. 이 집 보리밥 맛있습니다. 잡숴 보이소."
그 외에도 내가 몰랐던 그 아주머니에 대한 여러 얘기들도 나왔다.
그날부터 수업을 들어가는 교실마다 학생들에게 있었던 일을 말해 줬다.
"어떤 사업을 하든지 사업이 잘 될 때, 고객들에게 친절하고 최선을 다해야지, 그 아줌마처럼 하면 반드시 망한다."고 말을 해줬다.
그날 이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그 날 있었던 일을 전했다.
하긴 내가 그렇게 소문을 낸다고 해서 당장 그 집의 매상에 큰 차이가 안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가족이나, 우리 학원 선생님들 등,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내게서 들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에게 내 말을 전할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색소폰 교실의 어느 아주머니는 "그래요? 나도 그 집에 늘 다녔는데, 그런 집이라면 그 집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나는 안간다. 진짜 그런 배부른 집은 망해서 고생을 좀 해 봐야 된다."라는 말을 했다.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소문!
얼마나 무서운가!
그 아주머니는 장사가 잘 되다보니, 배가 불러서 그런지 몰라도,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사로 생각했던 건 아닐까?
'너 한 사람정도 안 와도 우리 집은 소문이 나서 충분히 장사가 잘 된다.'고 생각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의 입이 무서운 것이다.
한 사람이 두 사람 세 사람에게 소문을 전할 것이고, 또, 그 말을 들은 두 사람 세 사람이 또다른 두 사람 세 사람에게 소문을 낸다면 무서운 숫자가 될 것이다.
나라도 그런 집에는 안 가겠다.
한 번 웃어 주면 되고, 말 한 마디 예쁘게 해주면, 다음에 올 때는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올 것이다.
또, 그 사람은 자신의 친구나 동료를 데리고 오지 않겠는가!
나는 그 아주머니를 통해서 또 하나를 배웠다.
'설사, 내가 짜증이 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짜증을 내지 말자. 그 짜증은 어떤 형식으로 돌아오든지 반드시 내게로 돌아와서 나를 판단할 것이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인 피해가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인품을 알 것이다.
장사가 좀 잘 되고 돈을 좀 벌었다고, 자기 집에 찾아오는 손님에게 짜증을 내는 가게 주인이라면, 분명 그 가게는 오래 가지 않아 손님이 줄어들 것이다.
하긴 조금이라도 배움이 있는 여자라면, 손님들에게 그런 짜증은 내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가 "칼국수 먹으러 가자."는 말을 하면, 반드시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다른 집으로 데리고 가 버린다.
그럴 때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아~!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러마 그런 배부른 집으로는 가마 안 돼지."
그런데, 얼마전에 우연하게 그 칼국수집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아줌마 그 잘 되던 가게를 와 팔았는공?"
"나도 원장님 말 듣고는 한 번도 안 가서 잘은 모르겠는데, 손님이 전에보다 많이 줄었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 때문에 팔았겠지요 뭐."
2013년 1월 17일 오후 1시 03분,
2024년 6월 19일 낮 12시 17분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