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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夏至), 초여름보다 더 뜨거웠던 순수
2023.06.23
_ 1년 중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아 낮이 가장 길다는 절기, 하지(夏至).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이다.
하지 때에 지표면이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기 때문에, 이때 쌓인 열로 하지 이후에 몹시 더워진다.
_ 내 안에 과도하게 쌓여 있던 순진이 터져 나온 것도 하지 즈음이다. 스무 살 여름의 시작, 그곳에서
청춘의 온도도 여름의 더위 따라 올랐다. 같은 농도의 순수를 품고 있던 남자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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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 3년, 여고 3년을 다녔다. 내 주변에 남자라곤 아빠와 동생과 학교 선생님들이 다였다.
중학교는 집에서 가까워 걸어 다녔고, 고등학교는 버스가 사실상 스쿨버스나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학교까지 남학생이나 남자가 탈 일이 없어, 누런 황소 색 교복 입은 우리 여고 아이들만 타고 내렸다.
등하굣길에서 남자를 본다면, 그건 버스 기사 아저씨뿐이었다. 그러니까, 6년을 남자라곤 모르고 지냈다.
_ 모르고 지내도 괜찮았다. 나에겐 김민종과 임창정이 있었고, 신화와 박찬호를 보기에도 너무 바빴다.
그들을 보기에도 빠듯하고 행복해서 남자는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여대는 싫었다. 6년이나 여자들만
바글바글하는 곳에 있었어서, 살아있는 생물체로서의 남자도 보고 싶었다. 그들도 말을 하고 밥을 먹는지
그런 궁금증도 생기긴 했다. 여대를 지망하는 친구들을 보면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중, 여고에
여대라니. 쟤는 결혼 못할 거야. 아이고, 벌써부터 불쌍하다. 그렇게 남녀 공대?! 에 입학했다.
_ 안타깝게도, 어문계열은 대부분이 여자이다. 다행히 당시 중어과는 뜨기 시작한 학과라서 남자아이들이
꽤 많아 5:1의 비율이었다. 낫 배드. 노어과는 남학생이 4명이었다. 노어과 여자애들을 애도하러
가고 싶었으나, 노어과 여동지들은 어쩐지 러시아 언니들의 기운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노란 머리에 노란 눈썹에 호피무늬 옷을 입고 다녔다. 어디 감히 짱깨가 소련 언니들에게!
어문계열치고 남자가 많다고는 해도, 나는 여중 여고 순혈(…) 답게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남자애들이
말하고 밥을 먹는 건 쳐다도 보지 못했다. 다행히 우리 과는 시대에 뒤떨어지게 내외하는 분위기였다(?!).
남자애들은 자기들끼리 구석에 앉았다. 과 행사를 해도 자기들끼리 몰려 있었고, 치어를 하면서도
쉬는 시간에는 자기들끼리 뭉쳐 있었다. 나는 그게 편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남자아이들과는 어울릴 기회가 전혀 없었다.
_ 물론 그래도 잘 어울리는 아이들은 잘 지내기만 했다. 나와 친한 동성친구들은 남자아이들이랑
수다도 떨고 매점도 같이 갔고 학생식당에서 밥도 같이 먹었다. 슬슬 커플도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신기했다. 도대체 남자들이랑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 남자랑 무슨 이야기를 해야
저렇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거지, 남자애들이랑 밥을 먹으면 뭘 먹지, 남자들이 입에 음식을 넣는 걸 보면
무슨 기분일까. 어쩌다 남자아이들이 화장실에 들어가는 걸 보는 날엔, 혼자 고개를 돌리고 큰 죄를 진
기분에 어쩔 줄 몰랐다. 밤에 자꾸 생각이 나면, 내가 더러워지는 것 같아 습-하, 습-하 심호흡을 하곤 했다.
_ 나의 이런 순혈 기질은, 입학 초부터 스스로를 어렵게 했다. 강원도 검은 석탄 물 마시며 자랐습니다!
깨알 같은 지방 사투리 줄줄 흘리며 자기소개했다가, 덜컥 부과대가 된 것이다.
과대 부산 놈은 남자애들이랑 어울려 놀기 바빠서, 사실상 50명 여성 학우가 주되었던
우리 과의 과대 역할을 내가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자애들에게 전달사항을 말해야 할 때가 많았는데,
눈도 마주치지 못하니 대부분의 소통의 수단은 ‘활자’였다. 쪽지에 적어 수업 시간에 전하거나
쉬는 시간에 책상 위에 올려 두거나 핸드폰 ‘문자’로 보냈다. 다행히 전달은 잘 되어
학과 운영에 큰 차질은 없었다. 6월의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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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기말고사가 끝나고 1학년과 엠티를 가야 한다고 했다. 3학년 과대 오빠가
집행부 회의 중에 내 이름을 불렀다.
_ “진샤, Y랑 J랑 이번 주말에 엠티 갈 데 선발대 갔다 오면 되겠네. 갔다 와서 필요한 비용 얼마인지 말해 줘.”
_ 대답도 하지 못했는데, 과대 오빠는 해결되었다는 표정으로 수첩에 적더니 다른 내용으로 넘어갔다.
그 이후 회의에는 단 한순간도 집중하지 못했다. Y라니, J라니. 물론 치어 때문에 매일 보던 친구들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보기’만 했지 그들과 무얼 같이 하진 않았다. 아, J는 치어 안무 중 커플 안무의 짝이어서
손은 잡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비즈니스’였다. 춤 때문에 눈 맞추긴 했으나 역시나 ‘사무적’인 눈 맞춤이었다.
_ Y는 과 CC였다. 당시 인기였던 성시경 바람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꽤나 잘 어울렸다.
_ 사실 Y는 내게 조금은 특별했다. 5월 성년의 날, 치어 연습하러 모여있을 때 Y는 내게 무언가 쓱 내밀었다.
향수 샘플이었다. 그냥 준 것이 아니고 빨간 리본도 붙어 있었다. 20년 인생에 남자에게 받은 첫 선물이었다.
조금 이상했다. 여자 친구 있는 아이가 나에게 향수를? 그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배들,
친구들 대부분 손에 장미와 선물이 있었다. 나만 뭐가 없었다. 갑자기 향수 샘플을 던지고 싶어 졌다.
나를 불쌍하게 본 건가, 이딴 거 안 줘도 되는데. 필요 없는데! 손에 향수 샘플을 만지작거리다가
그 아이가 아직 옆에 있는 걸 알게 되었다. 나를 보고는 씩 웃길래, 속마음과는 달리 얼떨결에 ‘고마워’라고 했다. 그 아이의 표정과 눈빛으로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불쌍해서 준 것이 아니었다. 사실상 과대로 수고하고
있음을 알아주는 표정이었다. Y에게 남자로서의 감정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 그 아이 역시 내게 이성의
감정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 테다 -, 그래도 나를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했으니 주었던 걸 테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여학우 중 나에게 주었을 리는 없었을 테니까.
Y는 그렇게 성년의 날 선물도 챙겨준 아이였다.
_ Y와 J는 키가 크고 훤칠했다. 잘 생겼다기보다는(J는 꽤 잘 생기기도 했다) 시선을 끄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과는 더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고, 대화를 나누지도 못한 것 같다.
다른 문제가 또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_ Y성시경은 부산 토박이였고, J는 대구 놈이었다. 커뮤니케이션! 하아, 둘은 뭐라 뭐라 잘 이야기를 하는데,
옆에서 아무리 리스닝에 집중해 보아도 내용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능 영어 듣기 평가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어쩌고 저쩌고 그랬제, 아이다, 내는 모른다,
그랬다 아이가, 이 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국어가 다 같은 한국어가 아님을 그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남도 특유의 억양과 어휘는, 북쪽 산간지방 석탄 바람 마시며 지내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_ 이성으로서의 감정은 아니었으나, 네이티브 부산말, 대구 말을 쓰는 훤칠한 아이들과 이야기하면
나도 몰래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고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았다. 뭐라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시선을 끄는 놈들. 하아, 저런 아이들과 화창한 토요일에 기차를 타고 무려 대성리를 다녀와야 한다는 거지.
그날부터 주말까지 나는 붕 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며 지냈다. 멀리 서라도 그 아이들을 보면
일부러 피해 다녔다. 이런저런 이유로 떨리는 마음을 들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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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서 청량리역까지 같은 버스를 탔다. 물론 나는 혼자 앞에, 그 둘은 내 뒤에 뒤에 탔다.
청량리 역에 내렸다. 무려 강원도 촌년과 대구 촌놈, 부산 촌놈이 청량리 역에 발을 디딘 것이다.
6월 초 햇살이 유난히 좋았던 토요일 아침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_ “일단 드가 보까.”
_ 성시경이 입을 뗐다. 셋은 서서 기차 시간을 둘러보고는 기차표 예약을 했다. 기차 출발까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셋은 기차역 안에서 또 멀뚱멀뚱 서 있었다.
_ “뭐 먹을까.”
_ 성시경이 또 입을 뗐다. 우리 셋의 12시 정면에 햄버거 집이 있었다.
셋 중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햄버거 집으로 향했다. 햄버거를 주문하고 한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그 순간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식사시간이었다. 셋은 아무 말도 없이 햄버거를 먹었다. 나는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입이 마르고 목에 걸리는 것 같아 콜라를 끊임없이 들이켰다. 콜라 리필만
세 번을 했다. 고개를 숙이고 먹기만 했다. 부산 성시경과 대구는 친했는데, 나 때문에
어색해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갑자기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졌다.
청량리에서 기차표를 끊고 집으로 가고 싶어 졌다.
_ 햄버거를 다 먹었는데도,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하아, 시간이 왜 이모양으로 흐르는 거지.
시간의 상대성 이론은 훌륭한 이론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_ “좀 걸어 볼까.”
_ 성시경이 입을 뗐다. 우리는 그의 입대로 움직였다. 청량리 역을 나와 그냥 걸었다.
그 둘은 낮은 목소리로 뭐라 뭐라 하며 앞장섰다. 나는 대여섯 걸음 뒤에서 걸었다. 혹시 뒤라도
돌아볼까 봐, 그러면 눈이 마주칠까 봐 일부러 땅을 보고 걸었다. 오늘 왜 이렇게 덥지, 휴, 기차에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자는 척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대구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_ “어?”
_ 나도 멈춰 섰다. 그 둘은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제 될 건 없었다.
사람이라곤 그 둘과 나뿐이었다. 낮은 집들이 붙어 있었고 날씨가 좋았다. 부산 성시경도 갑자기
‘어’라고 하더니 갑자기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나를 스쳐간다.
_ “야, 너네 어디 가? 왜 그래?”
_ 내가 소리쳤다.
_ “빨리 온나!”
_ “아니, 왜, 말을 해.”
_ “저 가스나가! 빨리 온나!”
_ 대구 아이가 오라고 손짓하고, 부산 성시경은 내게로 와 손목을 덥석 잡더니 나를 끌고 한참 데려간다.
태어나 처음 남자한테 손목 잡힌 순간이었다. 너무 빠른 걸음이라 헉헉댈 지경이었다.
_ “왜! 말을 하라고! 뭐 있었어?”
_ “진샤, 모르겠나?”
_ “뭘?”
_ “진짜 모르겠나?”
_ “뭐? 뭘 알아야 되는데! 말을 해 줘야 알지!”
_ “진짜 모르나?”
하면서 손으로 우리가 걸었던 곳을 가리킨다. 뭐가 문제지? 그냥 집들이 있고..
사람이 너무 없는 게 문제인가??
_ “와, 진짜 모르는갑네. 그… 저기… 그…. 그러니까… 그… 누나들…”
_ “누나? 아는 누나가 여기 살아?”
_ “아니 그게 아니고!”
_ 왜 화를 내고 난리야. 다시 둘러보았다. 집들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
낮고 다들 비슷하고 유리창이 전면에 있고..
_ !
_ “야!”
_ 하고는 먼저 다다다다 뛰어 기차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부산과 대구도 덩달아 뛰어왔다.
숨도 고르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쏘아붙였다.
_ “야, 말을 해줬어야지 말을 안 해주니 알 수가 있어야지!”
_ “우리도 몰랐다 아이가. 그.. 와, 진짜, 와. 그라고, 니도 빠딱빠딱 알아채야지, 그걸 모르나!
그것도 모르고!” _ 하고는, 우리는 기차역 안에서 셋 다 헉헉대기만 했다. 시계를 보니,
10분 후면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조금 더 그곳에서 헉헉대고 기차를 타러 갔다.
_ 기차에서는 다시 침묵 수행이 이어졌다. 부산과 대구는 같이 타고, 강원도는 혼자 탔다.
부끄러움이 속 안에서 비누거품처럼 몽게몽게 부풀어 올랐다. 정말 몰랐다. 그리고 그들도 몰랐던 것이다.
그저 어색함에 몸을 피해볼까 했던 스무살 어린것들이, 햇살 가득한 창녀촌의 한가운데 있게 될 줄은.
_ 대성리 엠티 펜션을 둘러보고 주변 계곡도 보고 계약을 하고 무사히 돌아왔다. 돌아오는 기차는 여전히
따로 앉았지만, 올 때만큼의 어색함과 불편함은 없었다. 의자 뒤편에서 초콜릿이 훅, 전해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먹고 조금 자고 일어나니 다시 청량리역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대구 아이가 나를 보고 씩 웃는다.
_ “진샤 니 아까 말 잘 하대.”
_ “야, 원래 말 잘하거든요!”
_ 하고는 팔로 쿡 찔렀다. 청량리 역의 찐한 경험 탓인가 우리는 너무나도 친해져 있었다.
말로는 표현 안 했지만, 우리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너랑 너랑 나만 아는 비밀을 갖게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 이런 이야기를 어디 가서 하겠어.
_ 2002년 월드컵의 한가운데 기말고사가 끝나고, 중어과 60명은 다 같이 대성리로 떠났다. 과티도
빨간색이었고, ‘Be the Reds’라고 적힌 티도 빨간색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한 덩어리의 빨갱이들이
기차에 올랐다. 마시고 토하는 MT에서, ‘방학 때 너네 집 놀러 갈게’ 이러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불고 그랬다. 스무 살의 엠티와 술자리는 왜 그랬는지, 눈물과 구토가 늘 함께 했다.
토하지 않으면 토할 때까지 마셨다. 그때만 주어진 특권처럼 토하고 마시고 또 토했다.
_ 엠티에서 나는 처음으로, 남자아이들 옆에 앉아서 술을 마셨다.
같이 이야기하고 발차기도 하고 헤드락도 걸고 알코올 치어도 하고 깔깔대며 놀았다.
순진과 순수가 뒤섞였던, 내 스무 해 하지(夏至)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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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성희롱으로 신고 안 당하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젊은 친구들 보면 괜히 툭툭 치면서
한 마디씩 더 붙이는 능글맞은 애셋 딸린 아줌마가 되었다. 20살의 봄과 여름의 나와 비교해 보면,
같은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정반대가 되었다. 그들 역시 딸바보 아빠,
아들 아빠가 되어 중년이라는 나이를 향해 가고 있다.
_ 이성에 대해 멍청할 정도로 순진했던 나였다. 스무 살의 그날, 여전히 순수했던 이성친구들과 함께 한
그 시간 그 장소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면, 그저 순수했던 우리 모두가 애틋해서 마음이 싱그러워진다.
_ 청춘, 그 푸른 발음 속에 새삼 느끼게 된다. 그 시절이었기에 더 빛날 수 있는 순수였음을,
그래서 예쁜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음을. 순수로 가득했던 청춘이 보낸 하지를 기억하기에,
뜨거운 20대를 가득 채울 수 있었음을.
by. 진샤 https://brunch.co.kr/@1kmhkmh1/142
(이 글은 오도독 시인 진샤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